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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유화(百忍有和)
백번 참는 곳에 큰 평화가 있다.
百 : 일백백(白/1)
忍 : 참을 인(心/3)
有 : 있을 유(⺝/2)
和 : 화평할 화(口/5)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의 줄임말로 구당서(舊唐書)의 효우열전(孝友列傳)에 전하는 이야기다. 중국 당나라 시대 장공예(張公藝)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장공예는 9대가 한 집안에 모여 살았는데 서로 싸우지 않고 항상 화목하게 지냈다. 친구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물었는데 자기 집안 사람들은 화가 날 때면 참을 인(忍)자를 백번 써서 큰 항아리에 넣는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화를 이겨내고 화목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서기 665년 태산으로 향하던 당 고종은 장공예 집안의 화목함에 대한 비결을 듣고 감동하여 그 집안에 작위를 수여하고 아들을 발탁하였으며 백인의문(百忍義門)을 세우도록 명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많은 유묵을 남겼는데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란 말을 좋아하여 이 또한 보물 제569-1호로 지정되어 전한다.
개개인은 물론 지금의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많은 사건 사고는 참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실패와 잘못된 일은 참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노는 더할수록 커지며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우리는 새기며 살아야 한다.
1. 분노하는 사회
2015년 6월 서울 동작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살던 이모씨(당시48세)는 자신의 집에서 열린 반상회에서 아래층 주민 허모씨가 층간 소음 문제로 욕설을 했다며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법 형사 29부는 이모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과의 다툼은 물론 살해 및 살인미수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2023년 8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10대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자 훈계하는 어머니와 다투다가 홧김에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홧김에 존속을 살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것만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다투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발생한다.
2023년 8월 3일 경기 분당에서 최원종의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며 모든 사람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 후에서 흉기 난동은 한동안 일어났고 SNS에 흉기 난동 예고의 글이 올라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이런 반사회적인 행동 또한 분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동안 우린 총기 난사 사건 등 대낮의 강력범죄는 미국 등 사회에서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한국 사회도 강력범죄의 청정구역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어른들만이 아닌 10대들로 내려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동안 한국 정치인들의 증오와 비방 발언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정치적 증오 발언과 상대편에 대한 증오심은 분노로 증폭되어 정치적 테러 행위를 유발했다. 얼마 전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살인미수 테러, 배현진 국민의 힘 의원에 대한 테러 등 정치인 테러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길에서는 보복 운전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고 심지어는 여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었다.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지나친 갑질로 교사가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대중뿐 아니라 지도층이라는 정치인들에게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분노 표출이 일반 대중들을 더욱 큰 분노의 불구덩이로 몰아 넣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 대중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인식과 행위에서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정황이 심화되는 것은 분명 한국 사회, 한국인의 상당수가 정신적으로 행동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각박한 사회, 자극적인 사회, 치열한 경쟁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분노를 체험하고 그 체험된 분노는 해소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으로 둔갑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분노 사회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분노의 잘못된 표출은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정치인들이 서로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하고 다투는 것도 분노를 이기지 못함이요.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팬덤을 이루어 다투고 비방하는 것도 분노의 탓이다. 세상 모든 분열과 다툼의 근원에는 분노가 도사린다.
최근에는 축구 신동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던 이강인이 지난 아시안컵에서 요르단 전을 앞둔 전날 탁구 치지 말고 휴식하라는 주장 손흥민에게 대들어 하극상의 물의를 빚음으로 국민은 물론 팬들의 강력한 질타를 받았다. 이강인은 뒤늦게 영국까지 날아가 사과했지만, 그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으며 당분간 축구대표팀에 선발될지 의문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 또한 이강인의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으며,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 데서 길러진 오만 때문이기도 했다.
교도소에 상담 교육을 가서 재소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 대부분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교도소 곳곳에 붙어 있는 가장 많은 경귀가 '참으라'는 내용이다. 물론 백인유화(百忍有和)라는 경귀도 있다.
현대인들이 분노를 더욱 참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사회 풍조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는 점차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고도 산업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조는 사람들을 정서적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와 정서적 문제도 있겠지만, 분노를 참는 마음의 훈련이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다.
어쨌든 분노 사회는 불안한 사회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살인, 방화, 테러 등 온갖 반사회적인 행동을 표출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당사자의 삶은 물론 선량한 시민의 안정된 삶까지 파괴되고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의 쇄신과 정서적 풍토 조성도 중요하겠지만 참는 마음의 훈련도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안중근 의사도 옥중에서도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란 말을 마음에 새기며 지냈다고 한다.
2. 百忍有和(백인유화) 에 얽힌 이야기
앞에서 말했지만 百忍有和(백인유화) 란 말은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의 줄임말로 구당서(舊唐書)의 효우열전(孝友列傳)에 전하는 이야기다. 중국 당나라 시대 장공예(張公藝)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제목은 구세동거 장공예(九世同居 張公藝)이다.
당나라 고종 때 장공예(張公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안에는 9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한 집안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사람들뿐 아니라 집안에서 일하는 가솔(家率)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투는 일이 없이 늘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 집안에는 가축도 많았고 개도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만 화목하고 질서 있게 지내는 것이 아니었다. 개들도 싸우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개들도 밥때가 되어 한 마리라도 오지 않으면 다 올 때까지 기다리는 미덕을 보이고 있었다. 그 소문은 주변에 파다하게 퍼졌다.
어느날 한 친구가 장공예의 집안 화목의 비결이 궁금하여 방문하였다. 친구는 장공예에게 “한 집안에 3대도 같이 살기 힘이 드는데 9대가 같이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장공예는 말없이 친구를 데리고 장독대 비슷한 곳의 창고로 친구를 안내했다. 거기에는 대단히 큰 항아리가 있었고 그 앞에는 책상에 벼루와 붓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장공에는 말했다. “우리 집안의 규칙일세. 누구든 화가 나면 이곳에 와서 ‘참을 인(忍)’자 백번을 써서 저 항아리 안에 넣는다네. 그러한 과정에서 화를 삭여지고 화합을 이룰 수 있다네. 그리고 개들을 포함한 모든 집안 식구는 식사 시간에도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려 준다네.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다툼은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었다네.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이란 말일세”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 친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이후 이 말은 소문으로 돌고 돌아 당 고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서기 665년 당고종이 태산(泰山)에 봉선(封禪: 임금이 흙으로 단을 모아 땅을 깨끗하게 쓸고 하늘과 선천에 제사를 지내는 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당고종은 장공예의 집에 들러 구세동거화목(九世同居和睦)의 비법을 물었다. 이에 장공에는 종이와 붓으로 대답하기를 청하여 당 고종에게 ‘참을 인(忍)’자를 백번 써서 올렸다.
그러면서 “그 어떤 집안이든 화목하지 못한 이유는 집안의 어른인 존장(尊長)이 의복과 음식을 분배함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며, 항열(行列)이 낮은 자와 젊은이들이 예절을 행함에 있어서 불비(不備)함이 있기 때문이고, 서로 책망하고 의견의 대립이 발생하여 다투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로 이것들을 능히 참아낼 수만 있다면 가도(家道)가 화목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부자지간에 참을성이 없으면 자비와 효심을 잃고, 형제간에 참을성이 없으면 남에게 속을 것이며, 동서(同壻) 간에 참을성이 없으면 형제들이 흩어지게 되고, 고부(姑夫)간에 참을성이 없으면 효심이 없어지고, 서로 존중하며 따지지 않고 참으면 화목해집니다”라고 하였다.
장공예의 이 말에는 참을성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정과 상식, 예의와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생활 지표를 말한 것이다. 그것을 지키는 데는 참을성이 중요한 것이었다.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이익을 참고 무례함을 참아야 공정과 상식의 예의를 지킬 수 있음이다.
당 고종은 매우 감동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장공예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그 집안의 아들을 관리로 발탁하였다. 그리고 백인의문(百忍義門)을 건립하게 하였고 백인의문(百忍義門)이란 글자를 하사하였다. 그리고 뒷날 장공예의 후손은 선조의 뜻을 기려 인(忍)과 효(孝)를 이어가기 위해 백인당(百忍堂)을 건립하였다.
장공예의 이러한 고사는 전하여져서 송나라 시대의 대학자인 주희(朱熹)도 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일근천하무난사 백인당중유태화: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하늘 아래 어려운 일이 없고, 백번 참는 집안에는 편안과 화목이 있다)는 말을 즐겨 썼다고 전한다. 이말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전하여져 많은 선비가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를 인용하였으며 백인당(百忍堂)을 짓고 인(忍)과 효(孝)를 가훈으로 정하여 왔다고 한다.
애국 투사 안중근(安重根) 의사도 이 말을 좋아하였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사형당하기까지 뤼순(旅順) 감옥에서 생활할 때였다. 그는 사형의 날을 기다리며 온갖 것을 참고 이겨냈다. 촌음도 아끼며 독서하였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마음을 다지는 글귀를 많은 유목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이다. 이는 보물 제569-1호로 지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안 의사의 百忍堂中有泰和라는 유묵의 좌측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書(경술이월 어여순감옥중 대한국인 안중근서-경술년 이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이라고 쓰고 단지한 손바닥 도장인 장인(掌印)이 찍혀 있다. 이 글씨는 오늘날 많이 회자되고 있다.
3. 어떻게 참을성을 키울까?
참을성을 키워 분노를 이겨내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자기 주체성을 확립해 가는 노력이다.
분노는 대부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지만, 그 관계에서 나타나는 자기 내면의 심리적 소용돌이다. 그 소용돌이를 이기지 못하면 자기는 물론 타인에게 큰 피해를 준다. 분노는 참기 어렵다. 그래서 분노를 이겨내는 사람은 엄청난 수양을 이룬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공자도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논어 학이편)”라 하였던 것 같다. 참고로 논어 학이편에는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 되어 있다.
공자가 말한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무시한다고 화를 내기 마련이다. 상대에게 화를 내지 못하면 자시 스스로 마음 앓이를 한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군자 즉 수양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여기서 공자가 강조하는 자기 수양의 중심에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를 다스려 가는 셀프 리더십을 강조한 것이다. 모든 근원은 나를 다스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원효가 당나라 유학을 가다가 늦은 밤에 한 폐가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곁에 있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는데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다. 그것을 안 순간부터 구역질이 나고 견딜 수가 없었다.
원효는 생각했다. “같은 물인데 어젯밤에는 그토록 달았는데 왜 이리 구역질이 나는가?” 그때 원효는 깊이 깨달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새로운 불교의 세계를 열었다. 마음의 다스림은 주체성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꾸준히 마음 수련을 하여야 한다.
둘째, 분노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분노는 발휘할수록 커지며 참을수록 줄어드는 속성을 지닌다. 부부간에도 작은 말다툼이 계속되면 큰 싸움이 되고 사소한 나중에는 이혼으로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간에 잠시 사간을 두고 삭이면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그 이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자기 자의 내면에서도 그렇다. 혼자서도 분노를 자꾸 곱씹으면 분노는 증폭되어 주체할 수 없게 되고 그 분노는 결국엔 자기를 지배하게 된다.
다음 우화인 '분노를 먹고 사는 악마'를 보자
오랜 옛날 천계의 어느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왕이 외출한 틈을 타서 악마가 왕궁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악마는 형언할 수 없이 추한 몰골에, 몸에서는 심한 냄새가 나고, 말투 역시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왕궁의 신하들과 경비원들은 공포로 몸이 얼어붙었다. 그 결과 악마는 거침없이 왕궁 내부를 통과해 왕의 접견실로 걸어 들어가 왕좌에 앉았다. 악마가 왕의 자리에 앉은 것을 보자, 신하들과 경비원들은 그제서야 정신이 번적 들었다.
그들은 소리쳤다. “썩 나가지 못할까?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냐. 당장 그 추한 엉덩이를 치우지 않으면 칼로 요절을 낼 테다!”
분노에 찬 말을 듣자, 악마는 금세 키가 몇 센티미터 커지고 얼굴은 더욱 추해졌으며, 냄새는 더 악취가 났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들조차 더욱 더 저속해졌다. 경비원들과 신하들이 휘두르는 칼들이 허공을 찌르고 위협이 난무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휘두르는 칼과 거친 말이 더할 때마다 악마의 몸은 몇 센티미터 더 커졌다. 심지어 마음속으로 화를 내기만 해도 악마는 커져 가고 악취와 말은 거칠어졌다.
한참 동안 악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왕이 돌아왔다. 왕은 자신의 왕좌에 앉아 있는 추한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토록 추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악마에게서 풍겨나는 악취는 구더기조차 도망갈 정도였다.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언어들은 토요일 밤 술 주정뱅이로 가득찬 시내 술집에서 들리는 그 어떤 말보다 심하고 역겨웠다.
왕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왕이 되었다. 왕은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 오시오. 내 궁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아직까지 누군가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대접하지 않았단 말이오?”
그 한마디의 말만으로도 악마의 모습은 몇 센티미터 줄어들고 얼굴은 덜 독해졌으며, 사용하는 언어도 덜 공격적이었다. 궁정 대신들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한 대신이 악마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친절하게 물었다. “다르질렁 차와 영국의 홍차, 얼그레이 차가 있소. 아니면 향기 나는 박하차가 좋겠소? 건강에는 허브차가 더 좋을 것이오.”
다른 신하는 피자를 구해다 주었으며, 누군가는 유기농 채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또 다른 신하는 악마의 목에 있는 비늘을 지압해 주었다. 악마는 생각했다. “음 좋은데!”
그러자 악마의 몸집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악취도 줄어들고 말도 부드럽게 변했다. 하지만 왕궁의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악마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계속하여 친절을 베풀었다. 악마는 점차 작아져서 이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한 번의 친절한 행동이 더해지자 악마는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우리가 화를 내다보면 처음에는 화가 나서 화를 내지만 나중에는 화를 즐기면서 화를 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화의 구렁텅이로 빠진다고 한다. 좀 못마땅한 일도 한번 감싸주면 사소한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서로 짜증 나서 조약돌을 던지지만, 자꾸 던지다 보면 바위를 던질 수 있다.
화도 사소한 친절이 있다면 녹일 수 있다. 우리 안에는 누구에게나 분노의 악마가 자라고 있다. 작은 친절과 부드러운 배려가 있다면 그 악마는 자랄 틈이 없다. 아잔 브라흐마의 '분노를 먹고 사는 악마'의 이야기는 분노를 다스리는데 많은 교훈을 준다.
셋째,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 조성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것은 매우 복잡한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린 이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여야 한다. 정서적 분위기의 조성은 물론 정책적 배려도 중요하다.
특히 정치인들의 행동과 언어 순화는 국민의 정서적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동안 정치인들의 증오와 비난 발언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으며 그때 사회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정치에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정치적 언어에 민감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넷째, 서로 절제하고 존중해 주는 사회풍토 조성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은 인간관계서 나타나는 중요한 예절(禮節)과 질서의 영역이다. 법적인 질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내면에서 성숙한 질서 의식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내가 타인을 존중하여 줄 때 나도 존중받을 수 있으며 내가 타인을 인정해 줄 때 나도 인정받을 수 있음을 내면화하는 노력이다. 이것은 교육과 사회적 풍습의 교화로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해타산이 고도화되는 산업 사회에서 그 길은 점점 묘연해지고 있다. 어쩌면 세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사회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춘수의 시 '꽃'은 바로 서로의 존재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강조한 것이리라. 김춘수의 시 '꽃'을 낭독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분노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노를 발휘하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과 인격도 파괴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를 이루는 수단으로 인내(참음, 忍)를 최선의 미덕으로 강조해 왔다. 우리 사회가 참을성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좀 더 참을성을 길렀으면 좋겠다. 확실한 것은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이다.
▶️ 百(일백 백, 힘쓸 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흰 백(白; 희다, 밝다)部와 一(일)의 뜻을 합(合)하여 일백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百자는 '일백'이나 '백 번', '온갖'과 같은 수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百자는 白(흰 백)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百자는 白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기는 하지만 글자의 유래가 명확히 풀이된 것은 아니다. 百자의 갑골문을 보면 타원형 위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고 가운데로는 구멍이 있었다. 이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百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일백'이라는 수로 쓰인 것을 보면 이것은 지붕에 매달린 말벌집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말벌집 하나당 약 100여 마리의 말벌이 있으니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래서 百(백)은 열의 열 곱절. 아흔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數). 일백(一百) 등의 뜻으로 ①일백(一百) ②백 번 ③여러, 모두, 모든 ④온갖 ⑤백 배 하다 그리고 ⓐ힘쓰다(맥) ⓑ노력하다(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백 번째의 대 또는 오래 이어 내려오는 여러 세대를 백대(百代), 백 갑절을 백배(百倍), 여러 가지의 일이나 온갖 일을 백사(百事), 백 대의 수레를 백승(百乘),백 사람이나 갖가지로 다른 많은 사람을 백인(百人), 어떤 수를 백으로 나눔을 백분(百分), 언제든지 이김을 백승(百勝), 여러 가지로 많이 나옴을 백출(百出), 많은 가족 또는 여러 가지 변명을 백구(百口), 일반 국민을 백성(百姓), 여러 학자들이나 작가들을 백자(百子), 높고 낮은 모든 벼슬아치를 백관(百官), 온갖 과일을 백과(百果), 온갖 방법이나 갖은 방법을 백방(百方), 모든 것 또는 여러 가지를 백반(百般),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을 일컫는 말을 백척간두(百尺竿頭),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먼 앞날까지 내다보고 먼 뒷날까지 걸쳐 세우는 큰 계획을 일컫는 말을 백년대계(百年大計),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백 번 꺾여도 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뜻을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절불요(百折不撓), 남편과 아내가 되어 한평생 같이 지내자는 아름다운 언약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기(百年佳期),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백전백승(百戰百勝), 많은 전투을 치른 노련한 장수란 뜻으로 세상일에 경험이 많아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전노장(百戰老將), 백일 동안의 천하라는 뜻으로 짧은 기간 동안의 영화 또는 단명한 정권을 일컫는 말을 백일천하(百日天下),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백 번 쏘아 백 번 맞는다는 뜻으로 계획이 예정대로 들어맞음 또는 무슨 일이든지 생각하는 대로 다 들어 맞음을 일컫는 말을 백발백중(百發百中),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백해무익(百害無益),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음이나 온갖 약이 다 효험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약무효(百藥無效), 온갖 요괴가 밤에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못된 악인들이 때를 만나 제멋대로 날뜀을 이르는 말을 백귀야행(百鬼夜行) 등에 쓰인다.
▶️ 忍(참을 인)은 ❶형성문자로 㣼(인)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刃(인)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忍자는 '참다'나 '잔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忍자는 刃(칼날 인)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刃자는 刀(칼 도)자의 날 부분에 점을 찍은 것으로 '(칼이)날카롭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날카로운 칼날을 뜻하는 刃자에 心자를 결합한 忍자는 '칼날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픈 감정을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바로 忍자인 것이다. 그래서 忍(인)은 마음에 꾹 참는다는 뜻으로, ①참다 ②잔인(殘忍)하다 ③동정심(同情心)이 없다 ④차마 못하다 ⑤질기다 ⑥용서(容恕)하다 ⑦참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극(克), 이길 승(勝), 견딜 감(堪), 견딜 내(耐)이다. 용례로는 참고 견딤을 인내(忍耐), 참고 힘씀을 인면(忍勉), 웃음을 참음을 인소(忍笑), 치욕을 참고 받음을 인수(忍受), 잔인한 마음 또는 참는 마음을 인심(忍心), 애정을 참고 견디어 냄을 인애(忍愛), 욕심을 참음을 인욕(忍辱), 잔인한 사람을 인인(忍人), 묵묵히 참고 좇는 일을 인종(忍從), 치욕을 견디는 일을 인치(忍恥), 괴로움을 참음을 인고(忍苦), 배고픔을 참음을 인기(忍飢),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을 잔인(殘忍), 참고 견딤을 내인(耐忍), 억지로 참음을 강인(强忍), 굳게 참고 견딤을 견인(堅忍),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음을 용인(容忍), 아무리 어렵고 거북한 일이 있더라도 늘 잘 참고 견디어 냄을 백인(百忍), 차마 하기가 어려움을 불인(不忍), 마음속에 넣어 두고 참음을 함인(含忍), 참고 견디는 마음을 기르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인자공부(忍字工夫), 참는 것이 덕이 됨을 이르는 말을 인지위덕(忍之爲德),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을 이르는 말을 은인자중(隱忍自重),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견인불발(堅忍不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하거나 참혹한 상황을 이르는 말을 목불인견(目不忍見), 참을 인忍자와 일백 백자를 쓴다는 뜻으로 가정의 화목은 서로가 인내하는데 있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서인자일백(書忍字一百), 끝까지 참고 견딤을 일컫는 말을 견인지구(堅忍持久), 끝까지 굳게 참고 견딤을 일컫는 말을 견인지종(堅忍至終),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불인지심(不忍之心), 남의 해침을 받고도 앙갚음할 마음을 내지 않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내원해인(耐怨害忍), 너무나 참혹하여 차마 눈으로 못 봄을 이르는 말을 참불인견(慘不忍見), 아주 잔혹한 정치를 일컫는 말을 불인지정(不忍之政), 중생에게 자비하고 온갖 욕됨을 스스로 굳게 참음을 일컫는 말을 자비인욕(慈悲忍辱), 몹시 추악하여 바로 보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불인정시(不忍正視)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和(화할 화)는 ❶형성문자로 惒(화)는 통자(通字), 咊(화)는 고자(古字), 訸(화)와 龢(화)는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禾(화)와 수확한 벼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는(口) 뜻을 합(合)하여 '화목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和자는 '화목하다'나 '온화하다'하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和자는 禾(벼 화)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禾자가 '벼'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口자가 더해진 和자는 먹고살 만하니 '화목하다'와 같은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龠(피리 약)자가 들어간 龢(화할 화)자가 쓰였었다. 龢자는 피리를 그린 龠자를 응용한 글자로 피리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조화롭다'를 뜻했었다. 여기서 禾자는 발음역할만을 했었다. 하지만 금문에서 부터는 소리의 조화를 口자가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의 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和(화)는 (1)관악기(管樂器)의 한 가지. 모양의 생(笙)과 같이 생겼는데, 십삼관(十三管)으로 되었음 (2)합(合)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화하다(서로 뜻이 맞아 사이 좋은 상태가 되다) ②화목하다 ③온화하다 ④순하다 ⑤화해하다 ⑥같다 ⑦서로 응하다 ⑧합치다 ⑨허가하다 ⑩모이다 ⑪화답하다 ⑫양념하다 ⑬나라의 이름(일본) ⑭합계 ⑮악기(樂器)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화합할 협(協), 화목할 목(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싸움 전(戰)이다. 용례로는 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풂을 화해(和解),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을 화목(和睦), 화목하여 잘 합하여 짐을 화합(和合), 시나 노래에 서로 응하여 대답함을 화답(和答), 온화하고 순함을 화순(和順), 날씨가 바람이 온화하고 맑음을 화창(和暢),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급박하거나 긴장된 상태를 느슨하게 함을 완화(緩和),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서로 잘 어울림을 조화(調和), 날씨가 맑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드러움을 온화(溫和), 교전국끼리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함을 강화(講和),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됨을 융화(融和), 성질이 부드럽고 온화함을 유화(柔和), 서로 친해 화합함을 친화(親和), 화창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란 뜻으로 따뜻한 봄날씨를 이르는 말을 화풍난양(和風暖陽), 남과 사이 좋게 지내되 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부드러운 기운이 넘쳐 흐름을 이르는 말을 화기애애(和氣靄靄),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단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날씨가 고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화풍감우(和風甘雨), 음과 양이 서로 화합하면 그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상서를 냄을 일컫는 말을 화기치상(和氣致祥),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여 일컫는 말을 부화뇌동(附和雷同),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을 금슬상화(琴瑟相和),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충돌 또는 둘 이상의 음이 같이 울릴 때 서로 어울리지 않고 탁하게 들리는 음을 일컫는 말을 불협화음(不協和音),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동이불화(同而不和),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을 곡고화과(曲高和寡), 국민의 화합과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조민유화(兆民有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