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유지를 생명처럼 여기는 국정원의 특성은 양우공제회의 운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가 안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관련 단체까지 비밀주
의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쳐
진 내곡동 국정원 청사 입구. / 2 양우공제회는선박펀드를 통해 상선 임대사
업에 투자했다가 원금의 상당액을 손실했다. 또 항공기를 임대하는 항공기
펀드에 투자했다가 원금 대부분을 잃기도 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월간중앙>이 확인한 양우공제회의 투자금만 2천억원이 넘는다. 드러나지 않은 사업체와 펀드 등의 규모는 짐작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확인한 거의 모든 사업이 수익을 내긴 커녕 적자를 메우는 데 급급하다. 수익을 내는 회사라곤 양지회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두 곳과 골프장 시설 관리를 위해 설립한 자본금 5억원짜리 (재)늘푸른영농재단,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지상 7층짜리 상업용 건물의 임대수입 정도다. 이들에게서 나오는 수익을 전부 합쳐도 2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 국정원 외곽단체 투자사업 내역
양지회와 양우공제회의 사업을 월간중앙과 함께 분석한 공인회계사 K씨는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허공에 뿌리는 수준”이라며 “대부분의 골프장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건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이지만 양우공제회의 투자능력은 특히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말했다.
양우공제회가 상법상 법인(주식회사)을 만들어 사업을 벌이는 것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다. 양우공제회가 직접 골프장 사업 등을 벌이지 않고 제2의 법인을 통해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 것은 직접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서로 보인다. K공인회계사는 “현직 공무원들이 회원으로 있고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단체가 직접 사업을 벌인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전문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법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 해도 사업의 적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우공제회가 이처럼 제대로 된 투자 성과를 내지 못하는건 조직체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교직원공제회나 군인공제회 등 다른 공적 기금의 성격을 띤 공제회들은 자금 운용을 전문 금융사에 맡기거나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관리한다.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다 보니 리스크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그러나 양우공제회는 자금을 운용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인색하다. 국정원 특유의 비밀주의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회계감사는 거의 고정적인 반면 양우공제회가 설립한 법인들의 회계감사를 맡은 법인들은 대부분 1, 2년마다 교체되곤 한다. 한 제보자는 “그들이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와 자금의 흐름이 노출되는 걸 꺼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우공제회 의혹 규명 열쇠 쥔 국정원
금융업계에서 양우공제회의 투자금 규모는 3천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자산 규모로 따지면 성격이 비슷한 교직원공제회(22조)·군인공제회(8조)·과학기술인공제회(2조)·경찰공제회(1조7천억)에 비해 무척 적은 규모다. 그러나 조직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교직원공제회는 회원 수가 67만 명이고, 군인공제회는 17만 명이다. 경찰공제회도 회원 수가 10만 명이나 된다.
양우공제회의 밑천은 국정원 직원들이 월급의 7% 정도씩 떼는, 약 10여 만원의 공제회비다. 국정원 직원이 5천 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연간 적립할 수 있는 기금은 6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돈은 퇴직자들에게 ‘연구비’ 명목으로 일정기간 지급하는 재원으로도 쓰인다. 일시금으로는 1억원 정도이고 직급에 따라 월 100만여 원씩 7~8년 정도 연금 형태로도 준다. 직원들이 모은 돈만으로 퇴직자에게 연금을 주고도 각종 사업에 수천억 원씩 투자한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다른 도움이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국정원 퇴직자의 친목회인 양지회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서초구 방배동에있는 양지회 소유 건물은 1300㎡가 넘는 대지에 지하 4층, 지상 7층 연면적 6600㎡ 크기다. 이 건물과 토지는 2000년에 사들였다. 부동산 가치가 수백억 원짜리다.
국정원 관계자는 중국과 충주에 추진중인 골프장 건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해명을 요청하자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양우공제회가 운용하는 수천억원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정원의 비밀주의는 정치권력에 대해서도 요지부동이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국회의원은 “양우공제회에 대해 의원들이 몇 번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자료를 내놓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의원은 “법적으로 보면 자료를 요구하거나 국정감사를 할 대상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운영의 적법성을 따지기 위한 최소한의 자료 공개 요구조차 ‘비밀’을 들먹이니 국회로서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양우공제회의 실체를 규명하는게 국정원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의 살림은 기조실이 맡는다. 공식 예산 외에 비공식적인 ‘공작비’도 기조실이 관리한다. 공작비는 특히 해외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요원(정보관, 분석관, 공작관, 수사관 등이 있다)’들의 활동비로 요긴하게 쓰인다. 정보요원의 존재 자체가 주재국의 정보기관도 모르는 비밀인 탓에 활동자금도 흐름을 드러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제보자는 “국정원 기조실은 비공식적인 자금관리도 총괄하기 때문에 금융권과 거래가 많다. 공제회 기조실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것도 자금 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조실장이 사업과 자금 집행을 총지휘하는 이사장으로 있다는 건 결국, 국정원 자금이기 때문이란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전직 간부 B씨는 “양우공제회는 사실상 현직 직원들이 거의 모든 사업을 관리한다. 사업 참여 전후에도 국정원이 공무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하거나 정보관들이 개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의 폐쇄적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양우공제회가 어떤 사업을 벌여 얼마를 손해봤는지를 직원들은 거의 모른다. 양우공제회 근거법률을 만들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건 국정원 개혁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권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