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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드리워진 예언자의 땅 레바논에서 태어난
시인이며 화가, 그리고 '예언자' 인 칼릴 지브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고,
그 와중 앞으로 자신이 그리게 될 작품 세계의 초석을 쌓았다.
그는 한때 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그의 특별한 이력들은 그의 글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의 풍경화 같은 초기 작품들이 아랍권에서 대 유행하면서 지브라니즘(Gibranism)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였으며,
20년간의 구상을 거쳐 불후의 영문 시집,
《예언자 The Prophet》를 발표하면서 더 넓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서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영혼의 구도자인 동시에 강인한 인간 혁명가이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압제에 신음하는 조국을 위해 투지를 분발한 '반항하는 정신' ,
그리고 깊은 박애와 영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 정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정수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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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칼린 지브란의 작품집 몇 권을 읽고서는 짐짓 '사랑' 에 대한 여럿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무언가 글 한 줄을 쓰고 싶은데,
무슨 노릇인지 도무지 쓸 수가 없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ㅇㅇ수필문학회 회원의 글 한 편이 생각났다.
옮겨본다..
// 삶은 곧 사랑이다 //
삶은 곧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누군가 아니 무엇인가 사랑해야만 살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 대상의 의지적 성장을 위해
공동의 과제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행위다.
사랑이야말로
향상을 위한 건강한 몸짓이며,
호흡이 있는 날까지 멈출 수 없는 생명운동이다.
내 안에 감춰진
원석을 세공하여
상처의 눈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일이다.
결국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삶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구원에 이르기 까지
놓아서는 안 될 자신과의 약속이며
평생 가슴앓이를 하여도
사랑을 아는 자만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을 통해서
맛볼 수 있는 기쁨과 가치는
오직 그 사람만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는다.
누군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도
속살을 드러내지 않고
단 하나의 희망 때문에 자신의 뼈를 깎는다.
사랑은
아픔을 전제로 태어나
애증의 열병을 앓고 난 후
새로운 면역체가 강화된다.
오래 참음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세상에 또 다른 나를 낳을 수 있으리라.
* 수필가 이 명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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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단상1, 2, 3 을 옮겨 적어본다.
글쓴이는 아름다운5060 카페의 회원이며 50대 초반의 중년 여인이다.
단상1
< 삶은 사랑이다 >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질과 문명이 점점 가속화 되어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에 도달한 지금, 그래도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존재의 본질 앞에서 난 늘 질문을 던지곤 한다.
혼밥, 혼술, 졸혼, 욜로, 독신 등등 혼자라는 의미가 더욱 강렬해지고 그것이 마치 이 시대의 해결책인 양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알파고 시대, 4차 혁명이라는 거대담론으로 무장한 채 이 시대는 사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레밍 처럼 그렇게 무작정 달려간다.
소설 1984의 빅 브라더스의 감시하에 뒤쳐지면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서 그렇게 무작정 달려가고 있다.
임종의 순간에,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던가?
자신이 이룬 업적, 상, 돈, 금, 통장잔액, 졸업장, 땅문서... 그런 것들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긴 모르지. 사람 나름이니 그것을 보면서 안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지도.
그러나 그 마지막 생의 순간엔 사람이 아니던가.
자신을 사랑하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삶의 전부였음을 그 때에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좀 더 빨리 깨닫는 것이 현명하다.
그 마지막 순간에 이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에 도취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기에 우리는 관계에 대한 시간, 에너지 관심을 줄이려 한다. 성공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려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중요도는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할수록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 사람의 우선순위는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결정된다.
가만히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말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말과 혀로만으로 하는 것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관계의 발전이란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행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것을 얼만큼 주느냐이다. 바로 내 자신을 주는 것이다. 필요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것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는 무엇을 내어줄 수는 있지만, 내어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포기를 의미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안락함, 목표, 안전, 돈, 에너지 또는 시간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을 때 그제서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지금 바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만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 사랑을 실천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단상2
< 삶은 공유하는 것이다 fellowship >
교제(fellowship)란 함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 진실된 마음 나눔, 섬김과 헌신, 희생과 위로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없는 만남은 그냥 스치는 가벼움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교제는 첫째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상호 작용이 아니다. 깊은 마음의 나눔이다. 이것은 진실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만이 가능하다.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고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자기 방어를 하고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지만 가벼운 대화만 하고 가면을 쓰고 경계하면서 마치 모두가 장미꽃인 양 행동하고 말한다.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고 실패를 고백하고 의심을 보이고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깨닫고 나를 낮추어 갈 때만이 비로소 진정한 교제는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해지는 진정한 교제엔 위험함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기에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땅히 겸손해야 한다.
노출, 거부 그리고 또 다시 상처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굳이 감수하면서까지 진정한 교제를 나누고 싶은가?
이런 교제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도대체 무엇일까?
첫째, 사람들간의 상호 의존을 경험한다. 주고 받음을 통해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책임을 서로 나누고 서로를 진정으로 돕는 것이다. 서로에게, 서로를 위해 서로를 세워가는 일을 하는 것이다.
들째, 진정한 교제는 사람들은 공감을 한다.
공감이란 충고를 한다거나 빠르거나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나눈 것이다.
"나는 네가 겪고 있는 것을 안다.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즉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이 속에서 교제는 믿음은 쌓여져 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당면한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해결하려 하고 스스로의 상처에 너무 묶어 있어서 자기 연민의 장벽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을 메마르게 한다.
셋째, 자비를 경험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자비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서로에게서 그것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누군가에게 어떤 경로로든 우리에게 상처를 줄 때마다 우리는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에너지는 해결을 위함인가? 아니면 파괴를 위함인가?
여기서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용서와 신뢰의 이해이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다. 신뢰는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그것을 구하든 구하지 않든 간에 해야 하는 것이고, 신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즉시 이뤄져야 하나 신뢰는 시간 속에 쌓여가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의 교제를 통해 재창조되어 간다.
그래서 진정한 교제는 진실함, 상호의존, 공감, 그리고 자비를 갈구할 때 만이 이뤄진다.
단상3
< 멤버쉽 membership >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구성원으로서 교제하도록 만들어졌다.
몸의 기관들이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몸에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잘린 손가락 발가락은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즉 각 지체가 몸 전체를 통하여 그 의미를 찾는 것이지 몸이 각 지체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살아있는 몸의 중요한 기관이 되는 것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이것이 멤버쉽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몸 즉 공동체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의 멤버쉽은 사소하거나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각자는 진정으로 충만하고 행복한가?
정신적 고립감은 더욱 높아져서 결핍과 우울은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고립은 속임을 낳는다.
나를 방해하는 자가 없으면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거짓되고 진정함이 없는 가벼움으로 결핍의 아픔이 생긴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고, 섬기며, 받아들이고, 존경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서로 용서하고, 서로 헌신하는 등 서로 각각의 위치에서 서로 위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충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본성을 거스리는 독립과 고립은 우리에게 자꾸만 헛것을 보여주며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다. 시나브로.
우리 인간은 유혹에 대한 면역이 없다.
힘든 상황이나 위기가 오면 누구나 그 유혹의 손길을 잡고싶은 충동이 일어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럴 때 진정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고 교제를 한 관계는 서로의 삶에 사랑으로 관여하게 되고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고 권면하게 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흔드리기 쉬운 유혹의 손길에서 구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멤버쉽이다.
세상은 물질의 놀라운 발전으로 혼자서도 살 수 있으니 사람보다는 물질과 기계를 더 신뢰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라는 태생 자체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인데 점점 고립되고 관계의 결핍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보여지는 이 모든 것들이 허상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이끌면서 서로에게 헌신할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진정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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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본문의 단상1, 2, 3의 글쓴이는 아름다운5060 카페 회원이며 50대 초반의 중년 여인의 글임을 거듭 밝힙니다.
여타한 사정으로 대명이나 실명은 밝힐 수 없음을 양지바랍니다.
행여 오자 탈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하시길...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랑은 내안의 원석을 세공하여
상처의 눈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일이다.
사랑은 아픔을 전제로 태어나
애증의 열병을 앓고 난 후 새로운 면역체가 강화된다.
진리가 고상하다거나 고차원 적이거나
우리가 닿을수 없는 먼곳에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겠지요.
삶의 진리와 진실이 담겨진 글 너무도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어느 경전에 선각자 께서
이르시길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 하셨으니
의지하여 앞뒤를 살펴봅니다 이따금씩요.
제 자작의 글이 아님에도 귀한 댓글을..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의 소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감사하며 고맙습니다.
늦은 답댓글에는 너무 죄송합니다.
칼릴 지브란의 책속에 이런 귀절이 있었습니다.
(참된 진리의 빛과 소리는 우리의 마음속으로부터 나오지요. 숨겨진 마음의 비밀들을 영혼에게 나타내 주는 것이 진리의 빛과 소리입니다. 진리는 어두운 밤의 장막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별들과도 같답니다. 세상에 모든 다른 아름다운 것들처럼, 진리의 꽃도 거짓의 그늘에서만 핀답니다.)
여전히 차가운 겨울 밤입니다.
편히 쉬시기를 요..
촌부님의 글속에 푹 파묻혀봅니다
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촌부님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독서력도 대단하시고요.
감사합니다
관심가져 응원의 말씀과 박수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이라도 뵙고 싶습니다.
임야를 매입하여 조림에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시는...
아무턴, 늘 건안 강건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시골촌부님, 칼린 지브란의 글을 읽은 소감과
그외 네편의 글을 올리셨네요.
아름다운 5060 회원이라는 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수필방에 글을 올리시면, 좋은 글이 오를 것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차가운 기온의 나날입니다.
건강관리에 유의하시여 늘 건안하십시요.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독감(감기) 증상은 치유되셨는지요?
늘 편편히 지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댓글, 감사하며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부질있는 짓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다람쥐 도토리 발라먹듯 그렇게 알맹이만, 아니 '에쎈스'만 먹고 산다는 게 좀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더러는 알맹이가 아닌 껍질이나 쭉정이를 맛 볼 때가 있는 것이고, 어쩌면 세상 사는 잔재미는 오히려 그 쪽에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카페생활, 게시 글 작성도 마찬가지겠지요. ㅎ
제 생각이 그러합니다~
댓글 주시여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소소한 삶의이야기 자주 남겨주십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ㅡ 소녀
새벽 이슬 속에 숨쉬는
한 송이 흰빛 장미처럼
낮에는 시인을 꿈꾸고
밤에는 예언자를 꿈꾸는 그 소녀
하늘의 음악을 향해 손 내미는 소녀의 마음속에
남몰래 싹트는 숨겨진 사랑,
그보다 애틋한 것은 없네
그 사랑은 나그네들의
그리움에 지친 마음을 달래 주고
먹구름 너머 떠오르는 무지개처럼
그대 가슴을 고동치게 하네
* 칼릴 지브란의 <아주 깊이 사랑하다> 중에서
댓글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글이 너무 품격 있어
감히 댓글도 달기 어렵습니다
인사만 드립니다
삶은 사랑이다
가슴깊이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