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
철학의 시작은 ‘인간과 우주의 본질은 무엇일까’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철학이란 모든 사물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일 때시작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철학은 인간과 우주를 논리적으로 탐구하여 본질을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철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는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공자에 이어 동양사상의 학문적 발전을 이룩한 맹자는중국의 전국시대 때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이 원래 선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맹자의 性善說이라 한다. 그는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선한 성질이인생을 살아가면서 모진풍파를 겪으면서 더럽혀져 생기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에 의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본래의 선한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초심을 잃지 말고 심신을 수양하고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부르짖었다. 그는 기원전 250년경 전국시대 때 공자 맹자의 사상을 더욱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엄격한 법과 규율이 있어야만 바르게 살수 있다고 했다. 성악설은 애초에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자신만을 위하며 타인에 대한 해악을 본능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인간은 악한 존재이므로 법과 규칙으로 이러한 문제를 순화시켜야 하며 인간이 법치를 존중하면 사회 전체도 선순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자告子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하였다. 본능 이외에는 백지상태 그러니까 인간이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본성이 전무하니 善도 惡도 없다는 개념이다. 고자도 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맹자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고자는 성무선악설에서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는 것은 오직 식욕과 성욕 같은 것밖에 없고 그 외의 성질은 자라면서 환경과 사회 그리고 교육에 따라 선한 자와 악한 자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고자의 본래 이름은 고불해告不害였다.
그 역시 유명한 사상가였으나 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유교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사상계를 점령해 나간 것과 달리 고자의 사상을 잇는 후계자들은 주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맹자와 논쟁을 벌일 정도라면 그 역시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도 인간은 성선설의 존재인가 아니면 성악설에 대한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은 끊임이 없다. 서양의 사상계와 비교한다면 맹자의 성선설은 루소의 이론과 비슷하다. 다만 두 분 다 성선설에 기초하지만 맹자는 국가의 군주를 중요한 가치로 제시하였고 루소는 국가 역시 위험한 억압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서양 사상계에서 고자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 인물은 로크이다.
그 역시 성무성악설과 비슷하지만 고자의 교육은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 소용없다고 본 것과 달리 로크는 교육에 의해 강제로 본성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에 대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고자의 성무선악설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인간은 원래 선하냐 악하냐의 논쟁보다도 맹자든 순자든 고자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하나같이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여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관을 추구함에 있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이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 또는 100년의 큰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있어 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가치추구의 교육이 왜곡되거나 편향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육이란 보편타당성의 기초 위에 무엇이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인데 이것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편향된 인격이 형성되어 정도를 어긋날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의 교육은 유치원 때부터 50분 교육하고 10분간 자아비판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표현력이 뛰어나고 막힘이 없다.
그래서 북한의 외교관은 어려서부터 외교술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집중시켜 제갈공명을 갖다놔도 언변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한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편향된 사고를 갖도록 세뇌시켰기에 3대 세습이 가능했다. 세뇌교육은 무서운 것이며 한 번 형성된 가치관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떠한가. 국가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동량棟樑들은 바른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 교육자는 없고 교직자만 득실대는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과연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성선설을 배우고 있을까. 성악설을 배우고 있을까. 아니면 성무선악설을 배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