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세우기
김 상 립
누구를 막론하고 인생여정에서는 크고 작은 목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완행열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면 만나게 되는 여러 개의 역(驛)과 같다. 물론 열차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느냐에 따라 머물게 되는 역의 성격이나 환경이 각기 다르겠지마는, 어디로 가던 도중에서 만나는 역이 제게 유리할 것 같다 하여 아예 그 곳에 눌러 앉기는 쉽지가 않다. 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시간되면 운명처럼 다음 역을 향해 떠나야 하는 게 인생길이기 때문이다. 떠남은 시간의 흐름이요, 목표란 스쳐 지나가는 삶에서의 짧은 머묾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살면서 하나의 목표만을 내세워 끝을 보려는 행위가 과연 최선인가 하는 데에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며 선택한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창생을 통해 노씨라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 분은 꿈 속에서 신선이 나타나‘너는 국회에 들어가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명을 받았다며 꽤 의기양양해했다. 다음선거부터 출마하기 시작 했는데 6번을 연속으로 떨어지고 나서 7번째는 통영에서 서울 불광동 쪽인가 지역구를 옮겨서도 선거에 패하고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 번 떨어지면 4년동안 온 힘을 다 바쳐 준비에 몰두 하다 또 떨어 지면 다음 선거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평생 국회의원 출마가 세상사는 목적 이었던 것 같다. 과연 그에게서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요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한다든지, 큰 돈을 번다든지 하는 목적만이 최상인줄 알고 인생 전부를 거는 쪽으로 달리는 것을 본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실패하는 쪽이 더 많겠지만, 요행이 성공한 사람도 뜻대로 미래가 열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돈이나 권력을 잡고 나면 그것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 아직은 갈 길이 한 참이나 남은 인생길에서 제가 설정해둔 목표에 닿았다고, 마치 여행을 끝낸 사람처럼 온갖 유혹의 열매를 따며 즐기다 보면 낙상(落傷)하기 십상이다. 반대로 평생을 음지에서 열심히 살다가 종착역에 와서야 큰 깨달음을 얻고,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훈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가도 후학들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죽었어도 다시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설정한 세속적인 목표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내달리는 일이 꼭 능사는 아닐성싶다. 그 길 위에서 자칫 실패를 연속하다 보면 폐인이 될 수도 있고, 설령 성공했다 해도 반드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제일 큰 약점은 사람을 진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출세라는 어떤 정형화된 틀에 맞는 자리를 가질 때만 성공으로 인정하는 폐습이다. 이렇게 잘못 설정된 기준 때문에 많은 젊은 이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누가 뭐래도 삶에서 확실한 미래란 없다. 사람이 한가지 목표를 위해 산다기보다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갈 때 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헤쳐간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소박하더라도 가급적 여러 종류의 목표를 달성하고 또 도전하고, 그런 과정을 계속하는 중에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한 경험이 쌓여 쓰임새가 큰 사람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삶은 어떤 특정 목표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열심히 살아내며 닥쳐오는 수 많은 삶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조건 실패가 없는 탄탄대로만 걷는 것보다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나 흙탕물에 빠지는 경험도 하고, 험한 산길도 올라보는 게 삶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는 얘기다. 다만, 긴 세월 동안 경험한 여러 과정을 어떻게 하나 하나 잘 엮으며 살았는지가 훗날 더욱 보람으로 남을 것이다.
내 인생길에서 크던 작던 목표 하나를 달성하고 다음 목표를 향하여 출발하면 언제나 고단한 시간이 찾아 오더라는 것을 익히 체험한 결과 욕심난다고 무턱대고 새로 목표를 설정하는 일에 조심하고 조심했다. 또 내가 나이를 무시하고 쫓기는 마음에 목표를 속히 달성하고 다음 목표로 재빨리 가려 설치면 도리어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내가 어떤 목표를 성취한 때의 만족감은 잠시였고, 언제나 가늠하기 어려운 허탈감 같은 게 곧이어 찾아오니 그 이유가 뭔지 몹시 궁금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앞에는 늘 길고 짧은 목표들이 놓여있었고 그에 따라 계획하는 일도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스쳐간 목표들은 결국 내가 평생 추구해온 나의 본질과는 관련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의문은 풀렸다. 결국 목표라는 것은 나를 내 세우기 위한 에고 같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게 있다면 죽음이라는 종점뿐이다. 하기야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승의 삶은 일단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 결산하고, 하늘이 점지한 일정기간은 쉬어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 휴식이 금새 끝날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 생전 보통 사람들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며 소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 본다.
누구나 제 형편에 맞는 행복을 목표로 삼고 살면 그게 내실 있는 삶이 될 터이다. 그래서 나이에 비례하여 겸손함을 쌓아가는 일은 꼭 필요하다. 물론 목표도 겸손해져야 할 터이다. 하여 사람이 진짜 노령에 들면 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냥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핵심적 지혜다. 나는 멀리서라도 누가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 일을 한다면 적극 응원 할 것이고, 내 자신 평온한 종점을 맞기 위해 나를 내려놓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이것이 지금의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