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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조절충(樽俎折衝)
술자리에서 외국 사신과 담소하면서 상대편의 요구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외교상의 교섭에서 담판으로 국위를 빛냄을 이르는 말이다.
樽 : 술통준(木/12)
俎 : 도마 조(人/7)
折 : 꺾을 절(扌/4)
衝 : 찌를 충(行/9)
출전 : 안자춘추(晏子春秋)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말이다. 樽俎(준조)에서 樽(준)은 제사 때 술을 담는 술통을, 俎(조)는 제사 때 산적 등 고기를 담는 도구를 일컫는다. 이는 전하여 잘 차려진 술상을 의미한다. 折衝(절충)에서 折(절)은 창을 ‘꺽는다’는 뜻을 지니며 衝(충)은 ‘찌르다’의 의미를 지닌다. 하여 折衝(절충)은 적의 창끝을 꺾어 막는다는 뜻으로, 외교나 교섭 등에서 담판하거나 흥정할 때 상대를 꺾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는 것을 말한다. 전하여 오늘날은 어떤 문제에 접근하여 해결하려 할 때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위치를 차별화하고 승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1. 증오와 비방의 언어와 승리의 언어
한국의 정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증오의 언어였다. 일부의 의원들이 실력으로는 안 되니 자기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증오와 비방의 언어를 동원하여 상대당을 비방하고 헐 뜯었다. 그것이 도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자 양당(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증오의 언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증오와 비방의 언어가 서로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고 정치적 협상과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는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는 굳이 정치적 문제를 떠나 개인 간에도 모든 협상의 여지를 무너뜨리고 적대적 구도로 가게 만든다. 그래서 증오와 비방의 언어는 승리자의 언어가 아니라 야비한 패자의 언어가 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것이 장인 권오석의 좌익 행각이었다. 권오석은 6.25가 발발하기 직전 남로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 활동을 한 토착 좌익이었다. 6.25가 발발하여 공산군이 남하해 오자 경남 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 겸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북한 공산군이 창원을 점령하자 자발적으로 '반동분자 색출'에 나섰다. 인민 재판을 열고 진전면장 등 양민 11명을 학살했다. 이것이 ‘창원군 진전면 양민학살 사건’이다.
이 문제는 늘 거론되며 노무현의 사상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2002년 새천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인천시당 연설회장에서도 이 문제가 크게 붉어졌다. 단상에 오른 노무현은 장인의 좌익활동 이력 등을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나서는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면 저더러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 하고 역공했다. 순간 조용해졌다. 그 한마디로 노무현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대선 가도를 무난히 달릴 수 있었다. 노무현은 “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한마디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지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의 엄청난 공격에도 촌철살인(寸鐵殺人)같은 대응 화법을 통해 인지도가 급부상하여 차기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 1순위 자리까지 오르고 드디어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 퇴임 직전인 2023년 11월21일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여의도에서 300명만 쓰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 아니냐”고 하며 “나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하였다. 이것 한마디로 그의 정치적 언어의 각도와 방향이 정해졌음을 알렸고 야당 의원들의 증오와 비난의 언어 화살을 피해 갔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인은 악처로 알려졌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아내에게 걷어차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뿐 아니었다. 광장에서 토론하던 소크라테스는 반대주장을 하는 격렬한 토론자로부터 주먹질을 당한 적도 있었고 발길질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참을성이 대단하였다. 개의치 않았다. 그런 소크라테스를 향해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참을 수 있냐’고 하면서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면 내가 당나귀를 고발해야 하는 건가요?” 이 한마디로 사람들의 비방과 경멸을 딛고 일어섰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모든 위치에서 대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모아 갔다.
이처럼 승리의 언어는 다르다. 승리의 언어는 여유와 품격과 은유가 있게 마련이다. 승리의 언어에는 증오와 비방이 담겨 있지 않다. 품격 있는 수사와 은유와 위트가 묻어 있다. 따라서 상대가 화를 낼 겨를도 없이 승복하게 하거나 다른 대중들이 볼 때 ‘그래 맞다’는 지지를 보내게 한다. 그래서 대중은 그 사람에게 승리의 표를 던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는 증오와 비난의 언어가 나무한다. 증오와 비난의 언어에 익숙한 정치인들은 특히 외교무대에서는 절대 유리한 위치를 점령할 수 없고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낼 수도 없다. 외교나 협상 등에서 승리의 언어와 행동은 樽俎折衝(준조절충)하는 언어이다. 樽俎折衝(준조절충)하는 언어와 행동은 증오와 비방 없이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기선을 제압하여 유리한 위치를 장악하는데 있다. 그래서 樽俎折衝(준조절충)은 승리의 언어와 함께 한다.
2. 樽俎折衝(준조절충)의 유래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자기의 형인 장공(莊公)을 살해한 최저(最杼)와 경봉(慶封)의 권세에 눌려 지냈다. 경공은 그 최저(最杼)와 경봉(慶封)의 권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좌우상(左右相)에 임명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죽이기로 맹세(盟誓)까지 했다. 이에 모든 신하들도 그에 따라 맹세를 하였다. 다만 안영(晏嬰)만은 그 맹세에 동참하지 않고 오직 임금에게 충정(忠情)이 되고 나라에 이로우면 무엇이든 따르겠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정변이 일어나 최저와 경봉 일당은 피살되고 도망쳤다. 그리하여 안영이 국가(國事)를 맡아보게 되었다. 안영이 경공(景公)을 모시고 강대국인 진(秦)나라에 갔을 때였다. 진나라에서 여흥으로 투호 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때 진나라의 신하가 수작을 걸어오길 만약 우리 주상(主上)께서 맞히면 제후(諸侯)의 주장이 될 징조라 했다. 진나라 평공(平公 )이 던져 맞혔다. 이번엔 안영이 나섰다. 만일 우리 주군(主君)께서 맞히면 제나라는 진나라를 대신해 흥하리라고 했다. 드디어 경공이 던져 맞혔다. 그러자 평공이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이때 안영이 나서 말했다. “투호는 하나의 놀이일 뿐 맹약은 아닙니다” 그리고 귀국하였다.
안영은 복잡하고 미묘한 기류가 오가는 외교 문제를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 잘 처리했다. 그리고 안영의 처세에서 보듯이 안영은 위기에서도 자신의 지조를 지키면서 잘 처신하여 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안영의 처세술에는 증오나 비방은 없고 유연성과 품격과 위트가 숨어 있었다.
3. 樽俎折衝(준조절충)하기 위하여
공자가어 제1권 상로(相魯)에 공자의 협곡(夾谷)의 회맹(會盟) 이야기가 있다. 서기전 500년, 노나라 정공(定公) 때의 일이다. 당시 공자는 재상의 일을 섭행(攝行: 일이나 통치 등을 대신하여 행함)하고 있었다. 정공은 제나라의 경공(景公)과 지금의 산둥 치박(淄博) 근처의 산인 협곡(夾谷)에서 회맹을 갖게 되었다. 이때 공자는 정공을 수행하게 되었다.
떠나기 전 공자가 정공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문사(文事: 학문 예술에 관한 일)가 있으면 무비(武備: 군사적인 준비)도 있어야 하며 군사(軍事-군대, 전쟁 등에 관한 일)가 있으면 반드시 문비(文備: 학문 예술에 관한 준비)도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옛날 제후들은 자기 나라 국경을 나설 때는 반드시 수행하는 관리를 구비(具備)했던 것입니다. 청하는데 좌우의 사마(司馬-중국 주(周)나라 때 벼슬로, 육경(六卿)의 하나. 군정(軍政)을 맡아 보았음)를 대동하고 가십시오.”
정공은 이 말을 따랐다. 회맹 장소에 이르러 세 층으로 된 단을 마련하고 서로 만나는 예로 마주하게 되었다. 읍양(揖讓-상대방에게 공경의 뜻을 표시하는 예의 한가지 형태)의 예를 치른 다음 단상으로 올라가 술잔을 주고받는 절차를 마쳤을 때였다. 제나라의 사신인 내인(萊人)이 갑자기 군사들에게 북을 시끄럽게 울리게 하여 정공에게 겁을 주었다.
이때 공자가 층계에 올라서며 정공을 뒤로 물러나게 한 후 이렇게 말하였다. “군사로 위협을 가하다니 참으로 안될 일입니다. 우리 두 나라 임금이 서로 좋은 모임에 예이(裔夷: 오랑캐)의 포로가 감히 무력으로 난동을 부리니 안될 일입니다. 이는 제나라 임금으로서 제후에게 행할 바가 아닙니다. 원래 변방의 후예들이 중원의 하(夏)를 어찌해 보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변방의 오랑캐가 중원의 중화를 어지럽게 하지 못하며, 포로 된 자로서는 국가의 회맹에 간여할 수 없는 것이며. 병기를 가지고 좋은 모임에 겁을 주어서는 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귀신에게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며, 덕(德)에 있어서는 의리를 어기는 것이며, 사람에게는 예(禮)를 잃는 것이 됩니다. 제나라 임금께서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제나라 임금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군사들을 물러나게 한 후 자신도 자리를 피해버렸다. 조금 지난 후 제나라 궁중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 앞에서 배우와 주유(侏儒: 궁중의 배우)들이 온갖 놀이를 벌였다.
공자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다시 층계를 올라 단상을 향해 층계를 다 올라가지 않은 채 말하였다. “필부로서 제후를 모욕하는 자는 그 죄 죽어 마땅하니 청컨대 우사마(右司馬: 우의정 격)께서는 속히 형을 집행하시오.”
이에 주유의 머리를 베고 손과 발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제나라 임금은 두려워하면서 그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돌았다. 곧 맹약이 성립될 즈음에 제나라 사람이 문서에 한 조목을 이렇게 더 기록하였다. “제나라의 군사가 국경을 나설 일이 있을 때 노나라로서 3백 승(乘)의 병거(兵車)를 가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이 맹약에 따라 책임을 물으리라.”
제나라는 노나라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한없이 오만하며 노나라를 마음대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이에 공자는 자무환(慈無還)으로 하여금 이렇게 대답하도록 했다. “그대들이 문양(汶陽) 땅을 돌려주지 않으면 우리도 약속 지키기를 또한 이와 같이 하겠소.”
제나라 왕이 향례(饗禮: 손님을 청하여 향응을 베푸는 의식)를 베풀 때가 되었다. 공자는 양구거(梁丘據)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와 노니라 사이에 있었던 옛일을 그대는 듣지 못하였소? 일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또향례를 한다고 하니 이것은 일을 하는 사람만 수고롭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희상(犧象: 소의 모양과 코끼리 모양으로 만든 술잔) 잔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으며, 가악(嘉樂)은 들에서는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향례(饗禮)를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를 이미 갖추어 놓았다면 이는 좋은 예를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여러 가지를 아직 갖추지 않은 상태라면 이는 껍질만 쓰는 것입니다. 이런 껍질을 써서 임금을 욕보이는 것은 예를 버리고 악한 명분을 뒤집어쓰는 것이 됩니다. 그대는 어찌 이를 바로잡지 않고 있습니까? 무릇 향례란 덕(德)을 밝히는 것이니 덕을 밝히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낫습니다.”
공자의 이 말로 인하여 향례는 치르지 않게 되었다. 회맹이 끝나고 제나라 경공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신하들을 모아 놓고 책망하면서 말했다. “노나라는 군자의 도로 임금을 보필하는데 어찌 우리 제나라는 이적(夷狄: 오랑캐)의 도로 나를 가르쳐 죄를 얻게 하였는가?”
그리고 옛날 차지하였던 노나라의 네 고을과 문양의 땅까지 노나라에 반환해 주었다.
공자의 이 협곡의 회맹에 얽힌 이야기는 바로 외교에서 이치에 맞는 말과 논리와 기개로 상대인 제나라의 무례함을 지적하여 위기를 모면하였고 많은 이득을 취한 樽俎折衝(준조절충)의 사례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樽俎折衝(준조절충) 하려면 우선 세상과 사물 역사 등 이치를 알아야 한다. 어슬프게 안 지식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 둘째, 절대 흥분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상황에 맞게 말과 논리로 대처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사람들은 유리하거나 불리하면 서두르고 당황하기 쉽다 그리고 유리하면 오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항상 겸허하고 침착하여야 한다.
넷째, 분명한 중심을 지키면서 기개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말에 있어서 비유적이고 논리적으로 적합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잘못을 은근하게 깨우치면서 감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와 품격과 비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승리의 언어이며 행동이다. 분노와 증오, 비방의 언어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고 상황만 악화시킨다.
앞에서 말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장인 권오석의 좌익 활동 전력이 문제시되었을 때 말한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면 저더러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말 한마디는 솔직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상대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승리의 한마디였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만약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면 내가 당나귀를 고발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한마디가 사람들이 다시는 소크라테스를 조롱하지 못하게 하였음을 기억하자.
요즈음 정치인들의 분노와 증오, 비방의 언어가 판친다. 침착하고 솔직하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품격있는 언어로 樽俎折衝(준조절충)할 줄 아는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 樽(술통 준)은 형성문자로 墫(준), 罇(준)과 동자(同字), 尊(준)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木(목;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尊(존, 준)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樽(준)은 ①술통(술을 담아 두는 큰 통) ②술 단지(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 ③술잔 ④술 그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통에다 넣어 빚은 술을 준주(樽酒), 무덤 앞에 있는 술통을 올려놓는 돌을 준석(樽石), 제향 때 술을 담는 그릇을 준뢰(樽罍), 술병과 술잔을 준작(樽杓), 제사 지낼 때 준罇을 놓아 두는 곳을 준소(樽所), 제사 지낼 때에 준뢰樽罍를 올려놓는 상을 준상(樽床), 제기의 하나인 준을 받쳐 놓는 대를 준대(樽臺), 제기의 하나인 준을 덮는 보자기를 준멱(樽羃), 초의 한 가지를 준촉(樽燭), 좋은 술단지 또는 맛이 좋은 술을 방준(芳樽), 박으로 만든 술 그릇을 포준(匏樽), 술통으로 술을 담아 두는 큰 통을 주준(酒樽), 용을 그린 술 그릇을 용준(龍樽), 오이처럼 생긴 큰 항아리를 과준(瓜樽), 물오리 모양으로 만든 술잔을 부준(鳧樽), 솥 모양으로 된 술 항아리를 정준(鼎樽), 바가지와 술통으로 술을 담는 그릇을 표준(瓢樽), 도마와 술통을 조준(俎樽), 금으로 만든 술통이라는 뜻으로 화려하게 꾸며 만든 술통을 이르는 말을 금준(金樽), 술통과 안주를 놓은 상에서 적의 창 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공식적인 연회에서 담소하면서 유리하게 외교 활동을 벌임을 이르는 말을 준조절충(樽俎折衝) 등에 쓰인다.
▶️ 俎(도마 조)는 회의문자로 且(조)가 본자(本字), 爼(조)는 와자(訛字)이다. 어육을 조리하는 도마의 뜻이다. 그래서 俎(조)는 (1)도마 (2)제사를 지낼 때 소, 돼지, 양(羊)의 칠체(七體)를 날것으로 괴어서 담는 제기(祭器) 등의 뜻으로 ①도마 ②적대(炙臺: 제사 때 산적을 담는 그릇)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마 완(梡)이다. 용례로는 도마와 술통을 이르는 말을 조준(俎尊), 도마와 식칼을 이르는 말을 조도(俎刀), 제사 때 신 앞에 놓는 나무로 만든 그릇류를 이르는 말을 조두(俎豆), 도마 위 육고기 따위 또는 어떤 일이 눈앞에 당하여 성토나 비난이나 논의 등이 행해질 장면을 이르는 말을 조상(俎上), 제사를 끝마치고서 제관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에 쓴 고기를 조육(俎肉), 칼과 도마를 이르는 말을 도조(刀俎), 솥과 도마를 이르는 말 또는 솥에 삶기어 도마 위에서 잘린다는 말로 몹시 위험한 운명에 다다른 경우를 이르는 말을 정조(鼎俎), 제사 때에 술을 담는 준樽과 고기를 담는 조俎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예절을 갖추어 하는 공식적인 잔치를 이르는 말을 준조(樽俎), 솥에 삶아지고 도마에 오른 것을 면치 못한다는 말을 불면정조(不免鼎俎), 술통과 안주를 놓은 상에서 적의 창 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공식적인 연회에서 담소하면서 유리하게 외교 활동을 벌임을 이르는 말을 준조절충(樽俎折衝), 자기의 직분을 넘어 부당히 남의 일에 간섭한다고 인정되는 혐의를 이르는 말을 월조지혐(越俎之嫌), 도마를 넘어가서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음식 만드는 일을 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직분을 벗어나 남의 직분이나 권한 따위를 침범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월조대포(越俎代庖) 등에 쓰인다.
▶️ 折(꺾을 절, 천천히 할 제)는 ❶회의문자로 摺(절)의 간자(簡字)이다. 斤(근; 날붙이, 자르는 일)과 재방변(扌=手; 손)部의 합자(合字)이다. 옛 모양은 풀이나 나무를 자르는 모양이었으나 나중에 모양이 닮았기 때문에 艸은 재방변(扌=手)部로 쓰고 뜻도 손으로 꺾는다는 것으로 변하였다. ❷회의문자로 折자는 '꺾다'나 '깎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折자는 手(손 수)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折자는 手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갑골문에 나온 折자를 보면 도끼로 나무를 두 동강 낸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折자는 이렇게 나무를 동강 낸 모습으로 그려져 '꺾다'나 '부러지다'라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잘린 나무가 手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折(절, 제)는 ①꺾다 ②값을 깎다, 할인하다 ③꺾이다, 부러지다 ④타협하다 ⑤결단하다, 판단하다 ⑥꾸짖다 ⑦따지다, 힐난하다, 헐뜯다 ⑧자르다, 쪼개다 ⑨찢다 ⑩일찍 죽다 ⑪밝은 모양 ⑫제단(祭壇) 그리고 ⓐ천천히 하다(제) ⓑ편안한 모양(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굽힐 굴(屈), 굽을 만(彎), 꺾을 좌(挫), 굽을 왕(枉), 에돌 우(迂)이다. 용례로는 하나를 둘로 똑같이 나눔 또는 그 반을 절반(折半), 어느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것과 저것을 취사하여 그 알맞은 것을 얻음을 절충(折衷), 물건을 교환할 때 그 값을 나누어 수량을 정함 또는 물건의 값을 깎음을 절가(折價),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자를 절척(折尺), 가지째 꺾은 꽃을 절화(折花), 구부려서 끊음을 절단(折斷), 부러져 떨어져 나감을 절락(折落), 갈비뼈가 부러짐을 절륵(折肋), 부담하여야 할 구실 가운데서 일부를 면제함을 절면(折免), 칼국수를 절면(折麵), 밥값으로 쳐서 셈함을 절반(折飯), 방향을 돌리어 꺾음을 절방(折方),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알맞게 맞춤을 절보(折補),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을 일컫는 말을 절골지통(折骨之痛), 쳐들어 오는 적을 물리친 충의의 신하를 일컫는 말을 절충지신(折衝之臣), 마른 나무를 꺾어 낙엽을 떨어낸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이르는 말을 절고진락(折槀振落), 솥발을 부러뜨려 음식을 엎지른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소인을 쓰면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만듦을 이르는 말을 절족복속(折足覆餗),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이 쉽다는 뜻으로 대단히 용이한 일을 이르는 말을 절지지이(折枝之易),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꼬불꼬불한 험한 길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을 구절양장(九折羊腸), 백 번 꺾여도 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뜻을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절불요(百折不撓),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적은 힘이라도 일치 협력하면 강적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을 군경절축(群輕折軸), 흐르는 물도 겨울철에 얼음이 되면 쉽게 부러진다는 뜻으로 사람의 강유의 성질도 때에 따라서 달라짐을 이르는 말을 동빙가절(凍氷可折), 술통과 안주를 놓은 상에서 적의 창 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공식적인 연회에서 담소하면서 유리하게 외교 활동을 벌임을 이르는 말을 준조절충(樽俎折衝), 가지가 크면 줄기가 부러진다는 뜻으로 지족이 강대하면 종가가 쓰러진다는 말을 말대필절(末大必折), 한창 자라는 나무는 꺾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길이 창창한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 혹은 잘 되어 가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을 방장부절(方長不折), 난초가 꺾이고 옥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현인이나 가인의 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난최옥절(蘭摧玉折), 북두칠성처럼 꺾여 구부러진 모양과 뱀이 기어가듯 꼬불꼬불한 도로나 수류 등의 모양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두절사행(斗折蛇行) 등에 쓰인다.
▶️ 衝(찌를 충, 뒤얽힐 종)은 형성문자로 冲(충)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다닐 행(行; 다니다, 길의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꿰뚫다의 뜻을 갖는 重(중, 충)으로 이루어졌다. 마을을 꿰뚫고 있는 길의 뜻에서 음(音)을 빌어 '부딪치다'의 뜻으로 쓰인다. 행성(行星)이 지구(地球)에 대하여 태양(太陽)과 정반대의 이치(理致)에 오는 시각(時刻), 또는 그 상태의 뜻이 있다. 그래서 衝(충, 종)은 ①찌르다, 치다 ②부딪치다 ③향(向)하다 ④움직이다 ⑤돌다, 회전(回轉)하다 ⑥용솟음치다(물 따위가 매우 세찬 기세로 위로 나오다) ⑦목, 요긴(要緊)한 곳 ⑧길, 통로(通路) ⑨거리 ⑩전거(戰車)의 이름, 그리고 ⓐ뒤얽히다(종)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찌를 자(刺), 찌를 차(箚)이다. 용례로는 서로 맞부딪쳐서 몹시 침 또는 물체에 대해 급격히 가해지는 힘을 충격(衝擊), 서로 대질러서 부딪침 또는 쌍방의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서로 맞섬을 충돌(衝突), 들쑤셔 움직이게 함을 충동(衝動), 분하거나 또 외로운 느낌이 북받쳐 오름 또는 기세가 높아 하늘을 찌를 듯한 모양을 충천(衝天), 냅다 들이쳐서 무너뜨림을 충결(衝缺), 냅다 대질러서 침범함을 충범(衝犯), 불을 질러서 태워 없앰을 충설(衝爇), 더러운 것을 씻어 내기 위하여 물을 부어서 세차게 흔듦을 충탕(衝蕩), 사물이 많이 모이는 곳을 충로(衝路), 들이쳐서 죽임 또는 찔러서 죽임을 충살(衝殺), 맞부딪쳐 뛰어 오름을 충상(衝上), 부딪치어 하나로 되거나 되게 함을 충합(衝合), 어려운 고비를 뚫고 무릅씀을 충모(衝冒), 적의 창끝을 꺾어 막는다는 뜻에서 외교나 기타의 교섭에서 담판하거나 흥정하는 일을 절충(折衝), 맞지않고 서로 어긋남을 상충(相衝), 충돌을 완화 시킴을 완충(緩衝), 위로 치밀어 오름을 상충(上衝), 살갗이나 근육이 화끈거리며 아픈 증세를 흔충(焮衝), 눈을 찌를 막대기라는 뜻으로 남에게 해악을 끼칠 고약한 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충목지장(衝目之杖), 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부딪침 또는 아무 사람이나 구분하진 않고 함부로 맞딱뜨림을 좌충우돌(左衝右突), 자는 범의 코를 찌른다의 뜻으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서 화를 스스로 불러 들이는 일을 숙호충비(宿虎衝鼻),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다는 말을 노기충천(怒氣衝天),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을 이르는 말을 노발충관(怒髮衝冠), 꽃밭에 불을 지른다는 뜻으로 젊은이의 앞을 막거나 그르침을 이르는 말을 화전충화(花田衝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