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당시에 김대중대통령이 천거한 사람이었다. 몇차례 만남을 통해 나와 그분의 관계는 매우돈독해졌고. 그분의 제안으로 지식산업 발전 협의회를 항공대학교 당시 총장이던 홍순길 총장과등과 함께 발기 했었다.
이 단체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두뇌를 써서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으로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결집하는 단체로 내가 그 중선에 선 단체였다. 홍순길 총장이 상임회장,내가 비상임회장을 맡았으나,실질적인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법률가(판사,변호사등),정치가(국회의원,시의원외행정가),벤처기업인,문화계(미술,음악,영화등)
,언론계,종교계인사들이 모두 결집이 된 단체였다.
서로의 교류와 영역을 높이는데 활력소가 넘치는 단체이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정부의 지식화 산업단지 조성계획에 딱 걸맞는 단체이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바른선거 시민 모임이라는 NGO의 사이버 관리 위원장을 먼저 맡고 있었던 때이다.
성당에서는 사목회의 교육분과 위원장직을 맡아 재도약의 숨고르기를 하던때 였다.
하느님은 항상 내곁에 존재하고 계심을 알게 된것도 그 때였다.
우리부부는 성당의 아내는 구역장 나는 사목위원으로 주님의 역사하심의 도구로써 혼신을 기우리고 신심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부부는 엠이 주말을 신청했고(당시는 주말 신청후 1년여 정도 기다릴 때이다.)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엠이 주말을 함께 하였다.
막내 아들도 영세를 하게되었고 우리부부도 견진성사를 받았다.
대부 대모님도부부였고 신심이 매우 깊은분이었다.
막내의 대부도 신심굳은 형제였다.
히느님이 우리를 도구로 쓰신만큼 나에게 일자리와 경제적 풍요의 삯을 주시었다.
우리는 바람이던 일산 정발산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정발산은 나름 부촌을 이루고 있던 고급 빌라촌이 많은 곳이었다. 마침 김대중 대통령의 사가가 있는 곳이었다.
좋은 환경과 안정된 사람들이 많은 지라 정발산 성당은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상당이 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엠이 대표부부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지구 엠이 주말분과장등 열정적인 주님의 사업에 헌신하였다.
이후 여러가지 사업과 봉사활동을 하며 우리 향우인 강모수석, 박모차관등과 봉사활동및 사회활동으로 참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 나이도 들어가고 해서 아내에게 내 고향에 내려가서 노후 전원생활을 하자 제안했다. 그런데, 순 서울 토박이었던 아내는 약간의 두려움과 막연함을 느끼고는 제안한것이 경기도 끝자락에 가서 살기로 협의 했다.
엠이를 통해 얻은 서로의 속마음을 오픈하는 시간이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었었다.
텐앤드텐, 나인틴 나인,등을 열심히 하고 브릿지모임의 형제자매의 쉐어링은 우리부부에게는 그지없는 신심과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주말분과장 본당엠이대표. 지구 봉사자역활을 하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해주심을 깨닫게 해주셔서 영광이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