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시몬 성인과 유다 성인은 열두 사도의 일원이다. 시몬 사도는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었다가 제자로 부름받았으며, 주로 페르시아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며, 유다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도는 예수님의 친척일 수도 있다. 예수님의 형제로 언급되는 복음 구절에 같은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 13,55)
본기도
하느님,
복된 사도들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저희에게 알려 주셨으니
거룩한 시몬과 유다의 전구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 나날이 늘어나 교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소서.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긴 새 주택을 구하고,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면 처음에는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계속해서 그 행복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전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돈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던 교수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노튼 교수는 돈으로 행복을 높이는 좋은 방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돈으로 경험을 구매하라.”
물건은 점차 남루해지고 유행도 바뀌고 지겨워지지만, 가령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좋은 사람과 함께한 경험을 많이 만들면 행복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경험을 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경험은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정을 파괴하는 외도, 자신을 파괴하는 마약류의 섭취, 다른 이의 몰락을 위해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 등은 순간의 만족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속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위해 돈을 쓴다면, 분명히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모범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병자를 고쳐 주셨고, 마귀 들린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에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이 전혀 없는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따라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참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 부름은 세상의 것과는 분명 구별되는데,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문제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느냐면서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는 더 편하고 쉽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반문합니다.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가질 수 있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때, 행복은 시작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약함과 실패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그분 아드님의 모상이 될 실질적 역량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사진설명: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