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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람취(南郭濫吹)
남곽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에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南 : 남녘 남(十/7)
郭 : 둘레 곽(⻏/8)
濫 : 넘칠 람(氵/14)
吹 : 불취(口/4)
(유의어)
남우충수(濫竽充數)
출전 :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上篇)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이다. 원뜻은 ‘남곽(南郭)이 함부로(넘치도록) 분다’이다. 옛낧 제나라의 남곽(南郭)이 300여 명의 악단들과 함께 있으면서 생우(笙竽)를 잘 불지도 못하면서 잘 분다고 하여 무리 속에서 대충 불면서 녹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뒷날 홀로 불게 하지 그 실력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도망을 쳤다. 이때부터 남곽람취(南郭濫吹)는 ‘잘 알지도(하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1. 지식은 넘치는데 정작..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이다. 많은 사람이 정치 이야기를 한다. 예전과는 달리 유튜브를 포함한 각종 SNS에는 정치적 이야기가 넘친다. 그 넘치는 이야기 상당수는 근거나 논리가 부족하고 정보로서의 요건을 못 갖춘 것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 매몰되고 그런 것들을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또 타인에게 마구 퍼 나르고 마치 진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역설한다. 그것들이 얼마나 당파적이고 편협된 것인지는 가리지 않는다.
세상이 어지러운 상당한 이유는 사람들이 모르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저마다 편협된 정치적인 입장에서 올바르지 못한 정치적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이 충돌되는 당파적인 견해들이 충돌하고 난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국민이 그들에 편승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편파적이고 왜곡된 주장에 따라 국민도 분열되고 국민의 삶도 혼란에 빠진다.
세상은 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어 있다. 그 충돌은 대체로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욕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과 생각만 고수하고 자기의 욕망만 충족하려 하면 타인의 생각과 욕망을 배척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갈등이 증폭된다. 갈등 사회는 잘 알지 못하는 지식과 정보에 기반을 둔 각종 주장을 고수하는 만큼 갈등이 증폭된다. 그 중심에 정치인이 있고 국민이 그 정치인들의 당파적 견해와 이해관계에 줄을 서고 지지와 비판을 일삼는다.
옛날에도 그랬다.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혼란에 빠져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각축을 벌이고 싸웠던 것도 통일신라 조정의 정치적 대립이 심각해져 분열되었기 때문이었다. 강성했던 고구려가 쇠약해지고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것도 내부의 정치적 분열 때문이었다. 조선 말기 나라가 혼란해지고 서양 열강의 침탈 속에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도 가장 큰 원인은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혼란 때문이었으며 지금 남북이 분단된 것도 그런 이유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불안전한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자기주장들의 첨예한 대립이 있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나가고 심지어는 정치적 편 가르기를 한다.
인간이 사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는 이해관계와 정치적 욕망이 충돌되어 갈등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정치지도자들과 국민은 그런 갈등 상황 속에서도 편협되고 불안전한 지식과 정보를 극복하고 온전한 지식과 정보를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일점을 찾아가려고 노력함으로 갈등을 발전의 도구로 삼는다.
어쩌면 모든 정치적 상황은 헤겔(Hegel, 독일의 철학자) 이 말한 변증법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하나의 정치적 견해인 정(正)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완전하지 못한 견해다. 그러기에 그에 반하는 반(反)이 있기 마련이다.
이 정(正)과 반(反)은 대립과 투쟁을 한다. 그러나 이 정(正)과 반(反)이 새로운 창조 발전의 길을 가려면 서로의 모순을 극복하고 보완 통합되는 합(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와 학문과 사회와 역사의 발전 과정은 이 정(正) 반(反) 합(合)이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의 길로 반복되면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안타깝다. 우리 한국 사회는 정파적 이해관계와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와의 이해관계와 욕망의 충돌은 있는데(이는 어느 사회나 있는 것이다) 건강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는데 있다. 이를테면 정(正)과 반(反)은 연속되는데 합(合)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당파싸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바 4색 당파로 나누어진 정파들은 합일은커녕 자기들의 정파적 이론과 이해관계에 빠져 상대당을 무너뜨리고 죽이는 데만 몰입하였다. 그들에게 타협과 합일의 정신은 없었다. 그들은 이른바 헤겔이 말하는 정(正)과 반(反)에 의한 대립과 투쟁은 치열했으나 합(合)은 없었다. 그러기에 갈등의 연속이었으며 상대편을 죽이는 사화(士禍)의 연속을 초래했다. 그래서 조선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결국 일제에 의해 망국을 맞이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합(合)의 정신과 노력이다. 그런데 왜 그 합(合)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할까? 거기에는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완벽하다는 생각, 자기의 이익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편향된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도 포함된다. 그들 상당수는 잘 알지 못하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아도취적인 충동에 빠져 있다.
지식의 자아도취적 충동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고 또 자기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자기의 능력이 얼마나 모자라는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잘 알지도 정확하지도 못한 지식과 정보를 하나의 신념 체계로 받아들여 떠들어대고 타인을 공격한다. 그들에게 지식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음을 깨우치기는 쉽지 않다. 이미 하나의 신념 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우며 진정한 실력자, 진정한 지식인들이 발을 붙이기 어렵다. 이들은 항상 정치집단과 연결되어 편을 갈라 대립하기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편협되고 초보적인 악사(樂士)의 수준에 불과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군중심리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 그래서 유튜브 등 온갖 SNS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사람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데 자신은 잘 불지도 못하면서 마치 특정악기를 잘 부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함으로 군중들에 편승하여 이익을 보고 자기주장을 펴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개별적인 연주를 하여야 할 때는 악기를 잘 불지 못하는 것이 탄로가 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대거나 잠식하는 경우와 같다. 오늘날 대체로 자기가 많든 자료가 아닌 퍼 온 자료를 퍼 나르며 자기주장을 펼치는 많은 유튜브와 정보 전달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인은 넘치는데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아는 지식인은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 또한 정확하게 그리고 바르게 알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사람들이 남곽람취(南郭濫吹)에 빠져 있다고 하기도 한다.
2. 남곽람취(南郭濫吹)의 유래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생우(笙竽: 생황, 관악기의 한 가지) 소리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궁중에 300명의 악사를 모아 생우(笙竽)를 불게 하였다. 이 궁중 악사들의 생우 연주는 자주 이루어졌고 연주자들은 후한 녹봉(祿俸)을 받고 있었다.
그 악사들 중에 남곽(南郭)이란 한 처사(處士)가 있었다. 남곽은 생우를 불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생우를 불 줄 안다면서 생우 불기를 자청하였다. 그래서 그 300명의 생우 연주자 틈에 합세하여 생우를 불게 되었다. 그런 바람에 그도 녹봉(祿俸)을 후하게 받았다.
세월이 흘렀다. 선왕(宣王)이 죽고 민왕(泯王)이 즉위했다. 민왕은 선왕과는 달리 생우 합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별 연주를 좋아했다. 하여 악사들은 개별적으로 왕의 앞에 나아가 생우를 연주하게 되었다. 남곽(南郭)은 자기 차례가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실력이 없는 것이 탄로나 처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몰래 도망을 쳤다.
이때부터 남곽람취(南郭濫吹)라는 말이 유행하였으며 이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설쳐댄다(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 말은 남우(濫竽: 남곽의 생우), 남곽남우(南郭濫竽: 남곽의 넘치는 생우) 라는 말로도 전하여 진다.
3. 남곽람취(南郭濫吹)가 극복되는 사회
남곽람취(南郭濫吹)가 극복된 사회는 겸허한 사회다. 서로서로 오류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 군중 속에 들어서 군중심리에 빠지면 얌전하던 사람도 투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군중을 벗어나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다. 군중심리에 편승한 결과다. 군중이란 자신의 약점과 모순을 가려주는 중요한 울타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마치 자기가 잘 아는 것처럼, 혹은 투사인 것처럼 날뛰던 사람은 언젠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사회는 대중사회다. 대중들 모두가 자기표현을 하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다. 그 표현과 주장의 질은 따질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불량한 정보, 불량한 주장들도 넘친다. 그러나 그런 불량하고 불안전한 지식과 정보를 내세우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편승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특히 이상해진 것은 진리와 합리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고루하다고 여기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자극적이고 당파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쏠리고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자극적인 말을 쏟아내고 이를 편승한 사람들도 그런 주장을 편다. 민주주의가 갖는 폐단의 하나다. 인류가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 민주주의가 오늘날 타락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합리적 정신과 이론과 주장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당파적 이론과 이익, 주장에 편승하면 혼란에 빠지고 대립만 양산한다. 그리고 주장 간의 충돌만 증폭되고 합일을 찾지 못한다. 그러면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정의와 진리보다는 사이비의 지식과 무식한 자들이 주장하는 주장에 빠져들기 쉽다. 그들의 주장은 자극적이고 감각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고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무지한 군중들이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무지한 군중들은 자기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날뛰면서 거리를 활보하였다. 이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바로 그 사실 외에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며 무지의 탈피를 역설했던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타킷이 되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분노하고 소크라테스가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한다고 고발하였다. 그리고 처형되도록 했다. 그 중심에 아뉘토스, 뤼콘, 멜리토스 등이 있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소크라테스가 죽고 난 후 아테네 시민들은 곧바로 후회했다. 자기들이 현자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음을 인정했다.
그들은 뒤늦게 자기들이 무지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소크라테스를 청동상으로 부활시켰다. 소크라테스의 명예를 회복하고 숭배하였던 것이었다. 그 중심에 그리스의 조각가 뤼시포스가 있었다. 에우리피테스는 《팔라메세스》에서 아테네 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죽였네, 당신들이 죽였네, 지극히 현명한 자를”이라고 노래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중들이 무지와 왜곡된 지식에 빠지면 정의를 무너뜨리고 현자를 배반하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타락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무식한 사람이 날뛰며 한몫을 하게 되어 있다.
요즈음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여 각종 SNS는 정치적 메시지로 도배를 하고 있다. 카톡 등에도 전에 날아오던 미담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라지고 정치적인 편향된 정보가 난무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파와 지지자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의 난립이다. 정선되지도 믿을 만하지도 않은 것이 많다. 둘째는 자기와 반대되는 정파와 정치적 견해 정치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비난의 정보들이다. 그 정보의 신빙성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퍼 나르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정보에 신념화되어 있다. 셋째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다. 그 지지의 글 속에도 논리성과 진정성보다는 찬양 위주이다.
거기에 의기투합의 열정을 발휘한다. 일종의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지지자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단합될지언정 외연의 확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나친 용비어천가는 후보자나 지지자들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질 염려도 있다. 이런 일들의 일련에는 남곽람취(南郭濫吹)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린 남곽람취(南郭濫吹)가 극복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립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에 대한 겸허함이다. 지식에 대한 겸허함이 있어야 잘 모르면서 날뛰는 일이 사라진다. 거짓 정보를 남발하면서 당파적 이익을 보는 일도 사라진다.
그래야 민주주의는 올곧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중심에 국민이 있다. 남곽람취(南郭濫吹)가 극복된 올곧은 지식사회가 되기 위해선 국민이 현명해져야 하며 국민이 지식에 겸허해져야 한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를 타락에서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남우충수(濫竽充數)
피리 부는 사람이 머릿수만 채우다. 여러 사람 속에 끼여 무능한 자가 재능이 있는 척 숫자만 채우고 잘하는 사람같이 대가를 받아간 경우를 말한다.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체 하는 것과,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
머릿수만 채우며 묻어간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태만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무능한 사람이 그 무능을 감추고 재능이 있는 체하는 것 혹은 그런 무능한 인간이 외람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하며, 무능한데 아부로 살아남거나, 혹은 조직에 묻혀 물타기를 하는 사람들을 언급할 때 흔히 사용한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관악기의 일종인 우(竽)를 듣기 좋아했다. 특히 우를 부는 사람이 300명이 함께하는 합창을 좋아했다. 어느 날 남곽자기는 300명중의 한사람인데 앞장서서 선왕을 위해 피리를 불겠다고 청해왔다. 합창을 좋아하는 선왕은 기뻐하며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피리를 불게 했다. 연주가 끝나자 흡족해하며 남곽을 비롯한 모든 악사에게 곡식을 하사했다.
남곽자기는 우를 전혀 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300명의 틈에 끼어 흉내를 내며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민왕도 역시 우(竽)라는 피리 연주를 좋아 했다. 그러나 민왕은 혼자서 연주하는 독주(獨奏)를 즐기며 천천히 감상하기를 좋아했다. 남곽은 지금 까지 불 줄도 모르면서 함께 있었던 것이 탄로(綻露)날까봐 몰래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남곽자기를 꾸짖기 위해서 말하는 고사가 아니다. 선왕의 무분별한 인재등용을 이용한 남곽보다도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남곽을 골라내지 못하는 선왕의 인재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선왕은 피리를 잘 분다는 남곽의 말만 믿고 중책을 맡겼다.
군주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똑같이 대우하면 어리석은 자는 우쭐댈 것이며 지혜로운 자는 불만이 생길 것이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되게 된다면 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평화롭지 못할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남우충수(濫竽充數)는 통치자를 위한 메시지다. 이 교훈은 최고 권력을 가진 자가 대신들을 관찰할 때 그들의 행동과 처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함을 일러준다. 겉모습은 번드르르하고 말은 논리가 정연하고 인상에 얽매이면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럼으로 중책을 맡기려면 신중하게 살펴야함을 말한다.
대신들의 말과 행동을 살피는 일은 통치자 스스로 진행하고 그들에게 실제 능력을 보이게 함으로써 속임수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적어도 기만당하지는 않을 것이며 인재가 누구인지를 가려서 정치를 잘해나갈 것이다.
어떤 일을 판단할 때 보통 다수의 의견, 즉 여론을 따르기 쉽다. 본질에서 벋어난 일이라도 여러 사람이 진실이라고 주장 하면 혼란에 빠진다. 말주변이 부족하여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면 옳은 사안이라도 미심쩍어하고 거짓이라도 빈틈없이 달변으로 설득하면 넘어가기 마련이다. 보통 사기꾼들이 후자에 속한다.
현명한 통치자라면 대신들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이 과연 쓸 만 한지 살펴야 하고 또한 그의 언행이 조화를 이루는가를 면밀히 보고 상벌을 해야 한다. 간교한 말들은 대부분 겉모습이 화려하다. 공자가 말한 논어에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했다. 통치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하여 충신과 간신을 분별해야 한다.
당연히 통치자는 신하들에게 어떻게 해도 좋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통치자에게 아첨하고 죄를 모면하려고 한다. 중국 역사상 최고 정치를 잘했다고 하는 당 태종 이세민이 통치하던 정관시기 나온 말이 있다. '나라를 일으키는 데는 열 충신도 부족하지만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는 간신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국시대 말기 법가사상을 추구했던 한비자(韓非子)는 군주들에게 일곱 가지 술책을 말했다. "첫째 여러 신하의 말을 참조하고 관찰하라. 둘째 죄 있는 자는 반드시 벌해라. 셋째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상을 주어 칭찬해라. 넷째 신하가 한말은 신중하게 듣고 실적을 따진다. 다섯째 의심하는 신하들은 계책으로 부린다. 여섯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본다. 일곱째 반대되는 말을 하라. 술(術)이란 방법을 일컫기 때문에 그냥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남우충수(濫竽充數)를 통해 한번 듣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으므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傾聽)해야 하고 그 내용을 검증받은 뒤에 실행하게 하면 간신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실력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지적하는 고사성어가 바로 남우충수(濫竽充數)다. 제나라 선왕 시절, 피리를 전혀 불 줄 모르는 남곽처사가 300명의 악단에 끼어 단지 머릿수만 채우며 봉급을 받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이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플라톤은 "무능한 자가 권력을 쥐면 그 자신뿐 아니라 주변 모두를 망친다"라고 말했다. 이는 능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았을 때 발생하는 폐해를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다. 남우충수(濫竽充數) 와 같은 사람들이 조직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조직은 결국 경쟁력을 잃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위나 명예가 아니다
세상 속을 들여다보면 지위나 명예에 도취되어 세상을 피곤하게 하는 무지한 자가 의외로 많다. 이런 자는 세상 이치를 잘 모르고 확고한 사회 철학이나 능력도 없다. 자가당착에 의한 공상적인 독선자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지성과 감성이 부족하여 연구하고 노력하는 열정 없이 남이 해놓은 일에 참견하여 대단한 식견(識見)이라도 있는 것처럼 미혹(迷惑)하며 기생(奇生)하는 인간 곤충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느냐는 것이고,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이웃이나 남에게 무엇을 베풀며 사느냐 하는 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베풀지는 않고 거느리고 받기만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고독하고 끝내는 슬픈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다. 상대의 부족함이 있을 때 자신의 능력이나 힘을 보태어 결과에 대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만남이고 행복한 인생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군림하는 위정자들의 처신을 보면 짜증만 나게 된다.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도 없고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 얼간이 같은 위인들이 득세(得勢)를 하여 사회를 온통 어지럽히고 국민들을 너무 지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속 없는 자가 유난히 허세를 부리는 경우를 속담에서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 난체한다'라고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여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을 '세 가지 체병'이라 한다. 실력이 없는 자가 어쩌다가 운 좋게 또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서 분수에 넘치는 지위에 올랐어도 밑천은 들통 나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에 인용하는 성어(成語)가 있는데 우(芋)라는 피리를 멋대로 부는 남곽(南郭)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제(霽)나라의 선왕(宣王)이 관악기의 일종인 우(芋)의 연주를 듣는 것이 취미였다. 우(芋)를 불게 할 때는 반드시 300명이 합주하는 것을 즐겼다. 남곽(南郭)이라는 처사가 선왕을 위해 우(芋)를 연주하겠다고 그럴듯하게 간청하자 왕은 대단히 기뻐했다(南郭處士 請爲王吹芋 先王說之).
그러나 남곽(南郭)이란 자는 우(芋)를 전혀 불 줄 몰랐기에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어 열심히 연주하는 흉내를 내며 그럭저럭 권좌(權座)에서 행세를 하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선왕이 죽고 민왕(緡王)이 즉위했는데 그는 합주를 싫어하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부는 것을 좋아했다. 그제서야 들통 날 것이 두려웠던 남곽(南郭)은 줄행랑치고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남곽(南郭)처럼 우리의 정치는 능력도 없는 무지한 영웅 심리에 빠져 나라의 근간을 허망하게 내팽개치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내 조국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구분 못하는 망나니들의 자화상을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개탄(慨歎)함을 금할 길이 없다.
목공은 목수에게 맡겨야하듯 정치는 정치도리를 아는 덕성(德性)이 있는 성숙한 사람이 해야 한다. '목수가 아닌 자가 대패질하다 손을 다쳐 자해(自害)를 하게 된다'는 노자(老子)의 경고는 오늘날의 불량 정치배들이 마땅히 인지(認知)해야 할 대목이다.
지도자가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도 낯짝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매사에 내로남불로 표리부동(表裏不同)하며 인면수심(人面獸心)에다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철면피(鐵面皮)하니 기가 막히고 가슴을 칠 일뿐이다. 하는 것마다 도리에 어긋나고 못된 짖 거리로 사회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린 횡포가 그칠 날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꼴사납게 국격을 추락시키는 작태(作態)에다 국민들 편 가르는 짖을 일삼으면서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능청을 떠는 행색을 보면 눈이 절로 감기고 귀마저 닫고 싶어지는 고충은 필자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성경 갈라디아서 6장7절에는 '자신을 속이지마라. 하나님은 조롱은 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하였다.
선조 때 유학자인 김집(金集)의 호(號)가 신독제(愼獨齊)인데 그 뜻을 보면 '혼자' 길을 갈 때 그림자에도 부끄럼이 없고 잠자는 이불에도 부끄럼이 없다는 고매(高邁)한 의미가 들어 있다. 무릇 지도자란 청렴하지 않으면 지위를 잃게 되고 어질지 못한데서 죄악이 생기게 된다. 옳지 않는 세력에 의지하다보면 도리어 재앙이 따른다는 역사 속의 흔적을 새겨 순리대로 처신해야 할 것이다.
지위나 명예가 있다고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뢰와 사랑과 기쁨이 있는 곳에서만 행복한 생애가 있게 된다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를 새겨 알았으면 한다. 공자는 일찍이 순천자는 살고(順天者 存) 역천자는 반드시 죽는다(逆天者 必亡) 하였으니 더 늦기 전에 두려워하라.
찰관지술(察奸之術)
간사한 자를 찾는 법 : 간사함을 살피는 기술
간사한 자를 식별해내는 ’찰관술‘은 한비자 내저설 左上에 나온다. 이 책은 군주의 통치술을 주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신하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한비자의 ‘칠간술’에는 관청법(觀聽法), 일청법(日聽法), 협지법(挾智法), 도언법(倒言法), 반찰법(反察法) 등이 있다.
① 관청법(觀聽法)
관청(觀聽)이란 말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다. 단편적인 한 가지 사실에만 근거하지 않고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보고 들은 것을 서로 참고하고 비교하고 증명하지 않고는 진상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습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싫어하는 일은 물리친다.
만약 보는 것이 사람을 유쾌하게 하면 이 일과 관련된 부정적 평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만약 듣는 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면 이 일과 관련된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는 보려하지 않는다. 군주의 이런 약점을 간파한 간신은 달콤한 말로 군주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게한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만족스러운 말을 들은 이후에는 반드시 다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사유(思惟)상의 준비 자세이기도 하다.
② 일청법(一聽法)
일청(一聽)이란 '일일이 들어본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집단 속에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재능도 없이 머리 숫자만 채우고 있는 자들을 간파해내는 것을 가리킨다. 일일이 들어보지 않으면 지혜로운 자와 우둔한 자를 구분할 수 없다. 만약 하나 하나 개인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들 틈에 이리저리 섞여 있는 개인의 능력을 알아낼 수 없다.
한비자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우화를 예로 들고 있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우(竽; 피리 비슷한 악기의 일종) 연주를 몹시 좋아했는데 특히 합주를 좋아해서 궁중에는 3백 명이나 되는 합주단이 있었다. 남곽(南郭)이라는 처사는 자칭 우 연주의 명수라며 늘 합주에 참여하여 많은 봉급을 받았다.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왕은 합주를 좋아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독주를 시켰다.이 소식을 들은 남곽 처사는 얼른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이 방법은 꼭 각 개인의 의견을 청취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교묘하게 응용되기도 한다. 또한 이 방법은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태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그 진심을 간파하는 데도 활용된다.
③ 협지법(挾智法)
협지(挾智)란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한다'는 뜻이다. 즉, 모르는 척하면서 상대를 시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한(韓) 소후(昭侯)가 하루는 가위로 손톱을 자르다 일부러 잘린 손톱이 없어졌다며 '손톱이 없어진 것은 불길한 징조니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측근들이 온 방안을 다 뒤지기 시작했지만, 없는 손톱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없을 리가 있나? 내가 찾아보지'라며 소후가 직접 찾아 나서려 하자 한 측근이 몰래 자기 손톱을 잘라 내밀며 '찾았습니다. 여기'라고 외쳤다. 소후는 이러한 방법으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냈다.
한비자에서는 간신을 찾아내는 협지법(挾智法)을 '모르는 척 물어보면 알지도 못하는 자가 나타나고, 어떤 사물을 깊게 알아보면 감추어져 있었던 것들이 모두 드러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감추고 물어보면 모르던 사실도 알게 되며, 한 가지 일을 세세히 탐지하게 되면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상대에게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하면 상대는 곧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운다. 모르는 척해야 비로소 경계 없이 그 진실 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체의 면목을 다 드러낸다면 끝내는 우롱을 당하게 마련이다.
④ 도언법(倒言法)
이 방법은 황당한 말로 상대를 시험하는 것이다. '도(倒)' 자는 '뒤바뀌었다'는 뜻으로, '도언(倒言)'이라 하면 '그 말을 뒤집어 한다'는 뜻이다. 사실과 상반된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는 방법이다.
이런 고사가 있다. 연나라에서 상국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지(子之)라는 인물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방금 문 입구에서 뛰어나간 것이 백마 아닌가?'라고 물었다. 물론 이 말은 거짓이었다. '아닙니다. 아무 말도 뛰어나가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와서는 '분명 백마 한 필이 뛰어나갔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자지는 이렇게 해서 자기 주위에서 누가 진실치 못한가를 알았다. 이 방식은 요즘 말로 하자면 올가미를 쳐놓고 시험한다고 할 수 있다.
⑤ 반찰법(반찰법)
상반된 입장에서 동기를 찾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일로 누가 이득을 보느냐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이다. 누군가 피해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그 일로 득을 보는 자의 행위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고사가 있다. 한(韓)의 희후(喜侯)가 목욕을 하다가 욕조에서 작은 돌을 발견했다. 희후는 시종을 불러 '욕실을 담당하고 있는 자를 파면하면 그 후임자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예, 있습니다.' '그자를 불러오너라.' 희후는 그자를 심하게 다그쳤다. '어째서 욕조에 돌이 있느냐?' 그러자 그 자는 '담당관이 파면되면 제가 그 자리를 맡으리라는 생각에서 돌을 넣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관적 분석에만 한정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그 동기를 찾는 것, 이것이 상대를 간파하고 그 상대를 부리는 방법이다.
고대사회에서 통치자의 부하, 통치 집단 내부인들 사이의 관계는 서로 이용하고 시기하고 충돌하는 관계였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심리를 통찰하는 많은 모략 방식을 창조해왔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이 모략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시대적 제한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 파격적인 검찰총장에 대한 인선에 앞서서 관련 부처 당사자들은 그를 검증할 때 이 '찰관지술'을 활용하고 응용했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인사를 등용할 때는 언제 어느 때나 반드시 역신과 간신을 가려내는 혜안(慧眼)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 南(남녘 남, 나무 나)은 ❶회의문자로 울타리를 치고 많은 양을 기르는 곳이 남쪽 지방이었기 때문에 남쪽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南자는 '남녘'이나 '남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南자는 악기로 사용하던 종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南자의 갑골문을 보면 상단에는 걸개가 있고 그 아래로는 종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南자는 종의 일종을 그린 것이었지만 일찍이 '남쪽'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이 종은 남쪽에 걸려있던 것이기 때문에 '남쪽'을 뜻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유래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南(남, 나)은 (1)남쪽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남녘, 남쪽 ②남쪽 나라 ③풍류(風流)의 이름(아악의 이름) ④임금 ⑤벼슬의 이름 ⑥시체(詩體)의 이름 ⑦남쪽으로 가다 그리고 ⓐ나무(南無)(나)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북녘 북(北)이다. 용례로는 남쪽으로 내려감을 남하(南下), 남쪽으로 향함을 남향(南向), 북쪽에서 남쪽지방을 침범함을 남침(南侵),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南山), 지구를 적도에서 둘로 나누었을 때의 남쪽 부분을 남반구(南半球), 남쪽으로 난 나뭇가지를 남가(南柯), 지축의 남쪽 끝을 남극(南極), 남쪽에 있는 바다를 남해(南海), 남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을 남풍(南風), 남쪽으로 보냄을 남파(南派), 남쪽으로 감을 남행(南行), 태평양의 적도 부근에 널리 흩어져 있는 많은 섬들을 포함한 넓은 바다를 남양(南洋), 남쪽에 위치한 나라를 남국(南國), 남쪽에 있다고 하는 큰 바다를 남명(南冥), 성의 남쪽을 성남(城南), 강의 남쪽을 강남(江南), 남쪽으로 넘어감을 월남(越南),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남쪽 또는 남방에 대함을 대남(對南),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을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이라는 뜻으로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남가지몽(南柯之夢),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 나무로 변한다는 뜻으로 사람도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르는 말을 남귤북지(南橘北枳),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곱다는 뜻으로 일러 내려오는 말을 남남북녀(南男北女), 남쪽은 배 북쪽은 말이란 뜻으로 사방으로 늘 여행함 또는 바쁘게 돌아다님을 이르는 말을 남선북마(南船北馬), 제대로 되는 일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 다님을 일컫는 말을 남행북주(南行北走), 남곽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에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을 남곽남취(南郭濫吹),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간다는 뜻으로 마음과 행위가 모순되고 있음을 비유한 말을 남원북철(南轅北轍), 뜻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말을 경멸하여 이르는 말을 남만격설(南蠻鴃舌), 남산의 수명이라는 뜻으로 장수를 비는 말 또는 종남산이 무너지지 않듯이 사업이 오래감을 이르는 말을 남산지수(南山之壽), 아름답고 귀중한 물건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남금동전(南金東箭) 등에 쓰인다.
▶️ 郭(둘레 곽/외성 곽)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둘러싼 성벽의 망루(望樓)를 나타내는 享(향, 곽)으로 이루어졌다. 주민을 지키는 '바깥 울타리'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郭자는 '둘레'나 '가장자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郭자는 享(누릴 향)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享자는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는 사당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郭자를 보면 단순히 성벽과 출입구만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의 성곽은 동서남북이나 남북방향으로 출입구가 있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성벽과 출입구를 그려 성의 외곽을 뜻했었다. 이후 소전에서는 邑자가 추가되었고 해서에서는 성곽을 享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郭(곽)은 (1)성(姓)의 하나 (2)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토벽(변해서 모든 것의 외곽을 말함) 등의 뜻으로 ①둘레 ②가장자리 ③성곽(城郭: 도읍을 둘러싼 성) ④외성(外城: 성 밖에 겹으로 둘러 쌓은 성) ⑤외위(外圍: 바깥 둘레) ⑥가죽, 피부(皮膚) ⑦칼집(칼의 몸을 꽂아 넣어 두도록 만든 물건) ⑧성(姓)의 하나 ⑨벌리다 ⑩뻗어 퍼지다 ⑪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둘레 곽(廓). 용례로는 어떤 구역의 안을 곽내(郭內), 어떤 구역의 밖을 곽외(郭外), 내성과 외성을 아울러 일컫는 말을 성곽(城郭), 하나의 담으로 막은 지역을 일곽(一郭), 안쪽 테두리를 내곽(內郭), 높이 우뚝 솟아 벽같이 된 산을 산곽(山郭), 마을과 도시를 방곽(坊郭), 책장의 사주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선을 광곽(匡郭), 남곽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에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을 남곽남취(南郭濫吹) 등에 쓰인다.
▶️ 濫(넘칠 람/남, 동이 함)은 ❶형성문자로 滥(람)은 통자(通字), 滥(람)은 간자(簡字), 灠(람)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범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監(감, 람)으로 이루어져 물이 넘쳐 퍼진다는 뜻이 전(轉)하여 넘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濫자는 '넘치다'나 '퍼지다', '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濫자는 水(물 수)자와 監(볼 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監자는 물이 담긴 대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대야를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監자에 水자를 결합한 濫자는 물이 넘치는지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정도가 과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남발(濫發)하다'라고 하면 말이나 행동 따위를 함부로 하는 것을 뜻하고 '남용(濫用)하다'는 기준을 넘어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濫(람, 함)은 ①넘치다 ②퍼지다 ③뜨다 ④띄우다 ⑤훔치다 ⑥탐(貪)하다 ⑦외람(猥濫)하다(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분수에 지나치다) ⑧담그다 ⑨함부로 하다 ⑩마구하다 ⑪범람하다 ⑫뜬 소문 ⑬허언(虛言) 그리고 동이 함의 경우는 ⓐ동이(질그릇의 하나)(함) ⓑ목욕통(沐浴桶)(함) ⓒ샘(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주제넘을 참(僭), 넘칠 범(氾), 넘칠 일(溢), 넘칠 창(漲), 외람할 외(猥)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규정이나 범위를 벗어나서 함부로 쓰거나 행사함을 남용(濫用), 법령이나 증서 따위를 마구 공포하거나 발행하는 것 또는 말이나 행동 따위를 마구 함부로 하는 것을 남발(濫發), 재물을 함부로 소비함을 남비(濫費), 차례나 방법 및 체계가 없이 아무렇게나 읽음을 남독(濫讀), 짐승이나물고기 따위를 마구 잡는 것을 남획(濫獲), 나무를 함부로 벰을 남벌(濫伐), 물건의 질은 보장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많이 만듦을 남제(濫製), 마구 제조함을 남조(濫造), 일정한 기준도 없이 함부로 상을 줌을 남상(濫賞), 이유 없이 함부로 벌주는 일을 남벌(濫罰), 글의 내용을 사실에 어긋나게 함부로 적음을 남기(濫記), 법령이나 규칙 등을 함부로 범함을 남모(濫冒), 법령을 어기거나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무역함을 남무(濫貿), 분수에 지나치고 번다함을 남번(濫煩), 분수에 지나치게 넘침을 남분(濫分), 지나치게 여색을 좋아함을 남색(濫色), 물이 넘쳐 흐름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크게 나돎을 범람(汎濫), 하는 짓이 분수에 지나침을 참람(僭濫), 너무 한도에 지나침을 태람(太濫), 거짓됨과 문란함이나 참람함을 가람(假濫), 거짓이 범람함을 위람(僞濫), 번거롭고 지나침을 번람(煩濫), 분잡하고 지나침을 분람(紛濫), 구차하고 지나침을 구람(苟濫), 탐욕을 부림이 지나침을 탐람(貪濫), 하는 짓이 완악하고 외람됨을 완람(頑濫), 우를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체하는 것이나 또는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말함을 남우(濫竽), 술잔에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이라는 뜻으로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이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한다는 남상(濫觴),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체하는 것이나 또는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우충수(濫竽充數) 등에 쓰인다.
▶️ 吹(불 취)는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欠(흠; 숨울 내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吹자는 '불다'나 '부추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吹자는 口(입 구)자과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欠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하품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吹자는 이렇게 입을 벌려 하품하는 모습을 그린 欠자를 응용한 글자로 입으로 바람을 '분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吹(취)는 크게 숨을 내쉼의 뜻으로, ①입김을 불다 ②불 때다, 불태우다 ③과장(誇張)하다 ④부추기다, 충동(衝動)하다 ⑤퍼뜨리다 ⑥바람 ⑦관악(管樂), 관악기(管樂器) ⑧취주(吹奏) 악기(樂器)의 가락, 따위의 뜻이 없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불 허(噓)이다. 용례로는 피리나 나팔이나 생황 따위의 관악기를 입으로 불어서 연주함을 취주(吹奏), 사이렌 등을 불어 울림을 취명(吹鳴), 젓대나 피리 등에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도록 뚫어 놓은 구멍을 취공(吹孔), 풀무질을 함을 취비(吹鞴), 곡식을 바람에 날리어 정갈하게 하는 일을 취정(吹正), 물고기가 물위에 떠서 숨쉬느라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함을 취랑(吹浪), 입김을 불어 넣음을 취입(吹入), 북을 치고 피리를 붊을 고취(鼓吹), 노래하고 관악기를 붊을 가취(歌吹), 입김을 세게 넣어 관악기를 붊을 역취(力吹), 입김을 약하게 넣어 관악기를 붊을 저취(低吹), 아내가 죽은 뒤에 두 번째 드는 장가 또는 그 아내를 재취(再吹), 털 사이를 불어가면서 흠을 찾는다는 뜻으로 남의 결점을 억지로 낱낱이 찾아내는 것을 말함을 취모멱자(吹毛覓疵), 터럭을 불어 헤쳐 그 속의 허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남의 조그만 잘못도 샅샅이 찾아냄을 이르는 말을 취모구자(吹毛求疵), 뜨거운 국에 데더니 냉채를 먹을 때도 분다는 뜻으로 한번의 실패로 모든 일을 지나치게 경계함을 비유한 말을 징갱취제(懲羹吹虀), 남곽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에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을 남곽남취(南郭濫吹), 먼지에 새기고 그림자를 입으로 분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헛된 노력을 이르는 말을 누진취영(鏤塵吹影), 말의 귀에 동풍이 분다는 뜻으로 아무런 감각이나 반응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동풍취마이(東風吹馬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