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염병이 내 감기 몸살만 못하다.‘라는 옛말이 있다. 아프다는 것, 그것도 큰 병病에 걸려 아프다는 것, 그 아픔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병원이나 약국을 가면 환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환자나 다름없이 보인다. 모두 다 환자 이상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 아프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평생토록 끌어안고 살면서 세계문학사상 찬연히 빛나는 작품을 많이 남긴 사람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사형선고에서 풀려난 그는 지옥같은 시베리아의 유형생활을 끝 낸 뒤 도박과 가난을 극복하며 글을 썼다. 하지만 천형 같은 간질병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간질 발작 직전에 느낌을 다음과 같이 술회 했다.
“발작 작전, 바로 그 찰나에 더할 나위 없는 황홀감이 간질병 환자를 어떻게 사로잡는지, 건강한 여러분은 모를 거요. 코란에서 모하메드는 그의 항아리가 쓰러져 물이 밖으로 흘러 내렸기에, 그 자신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천국에 있다고 말했죠. 그러자 모든 영악한 바보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거나 그들을 속였다고 말했소.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소. 모하메드는 그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았소. 분명 나처럼 간질병을 앓으며, 그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천국에 있었소. 나는 그 환희의 나라가 몇 시간이고 지속될 수 있는지 모르오. 하지만 내 말을 믿어주시오. 나는 지상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과 그것을 절대 바꾸지 않겠소"
그를 두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천재와 광기> 중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간질을 그의 예술이 안고 있는 최고의 신비로 바꾸어 놓았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그는 미지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한껏 빨아들였다. 따라서 황홀한 예감을 느끼는, 순간, 스스로에게 은밀히 몰두하는 자아도취에 빠졌다. 이 때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아주 짧게 체험하게 되었다. 즉 매번 죽기 직전의 찰나를, 존재의 가장 강력하고 황홀한 정수를,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지각하는 긴장된 순간이 정열적으로 더욱 고양됨을 체험했다.“
”나는 매일 죽노라’라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 아픔의 시간에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중에 그 순간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갑자기 무엇인가가 그의 앞에서 전개되었던 것 같았다. 비상한 내면의 빛이 그의 영혼을 비춰주었던 것이다. 이 순간은 아마 0.5 초 가량 지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가슴속에서 그 어떤 힘으로도 억제할 수 없이 저절로 터져 나온 무서운 비명의 첫마디를 분명히 기억했다. 그런 직후에 그의 의식은 순간적으로 사위어 버렸고, 완전한 암흑에 묻혀버렸다.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던 간질병 발작이 일어난 것이었다. 잘 알다시피 간질병 발작은 순간적으로 온다. 이 순간에는 갑자기 얼굴, 특히 시선이 유난히 일그러진다. 전신과 모든 안면근육은 경련을 일으킨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상상 불가능한 무서운 비명이, 인간적인 모든 것을 일순간에 토해버리려는 듯 한꺼번에 가슴속에서 터져 나온다. 그래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조차 그것이 바로 이 사람의 비명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 사람의 내부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간질병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언가 신비스러운 듯한, 지독한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 죽는 날까지 멀고 먼 길을 가면서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것을 견디고 그 고통과 불행을 더 크나큰 무엇인가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운명일 것이다. 운명이라는 그 길에서 우리는 어떤 병을 앓고 있으며, 그 아픔 속에서 어떤 아름답고 황홀한 것들을 느끼며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