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의 귀찮은 가시를 따 훌렁 벗겨버린 홍수개는 이제 토실토실한 미끈한 밤알을 손에 움켜쥐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남모를 미소를 삼켜 무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진수성찬의 제사상을 차리고 자시(子時)가 되어 제사를 다 지내도록 산 너머 마을로 배달을 나간 옹기장수는 홍수개의 예상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에서 밤을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올 양이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지방(紙榜)을 써서 붙여놓고 격식에 맞춰 제사를 지냈다. 분향(焚香)을 하고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정씨 부인과 자녀들까지 대동해 정말로 극진한 효자라도 된 양 정성껏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