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제1독서
<너희가 과부와 고아를 억누른다면 나는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22,20-2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21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22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23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
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24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 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
25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26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제2독서
<여러분은 우상들을 버리고 돌아서서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1,5ㄴ-10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6 또한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의 모든 신자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시작하여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 울려 퍼졌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10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
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인생 원씽: 사랑뿐!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한 가지만을 말해달라고 할 때 주저 없이 말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주식으로 투자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워런 버핏은 주식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첫째는 원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 번째 규칙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을 주식은 사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주식은 오르락내리락해서 단기 투자를 한다면 원금을 손해 볼 일이 있으므로 10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칙은 원금을 잃지 않으려는 기본 법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첫 번째 도미노를 알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쓰러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책 『원씽』의 저자 게리 켈러는 남다른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이 도미노 원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삶은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로 뒤덮여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세우고 줄을 맞춰 잘 세운다면 최초의 단 하나, 그것만을 움직임으로써 다른 문제들을 저절로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사실 이는 쉬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모세 오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한 구절을 뽑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계셨습니다. 율법의 제정자셨기 때문입니다.
중국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시골의 가난한 한 노총각이 친척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돈을 얼마 주고 장애가 있는 여인과 혼인합니다. 여자를 한 번도 사귀어보지 못한 남자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잘해 주려고만 합니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무작정 잘해 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아내도 무언가 하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은 피까지 팔아가며 아내를 위해 일을 하기에 아내는 달걀을 부화 시켜 병아리를 태어나게 합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달걀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둘은 열심히 일하며 집을 지어 동물을 키우며 살아갈 생각에 기쁘기만 합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깨끗하게 보이기 위해 물살이 빠른 수로에서 몸을 씻다가 불편한 다리 때문에 아내가 죽게 됩니다. 남편은 삶의 의욕을 잃고 가진 모든 것들을 팔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위해 아내가 키운 닭들이 낳은 달걀을 계속 먹으며 자신도 숨을 거둡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삶도 의미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그냥 살았으면 그냥저냥 살아졌을 인생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알고 나서는 사랑이 없는 인생은 살아있는 삶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75년간 연구한 끝에 행복은 사랑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당연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돈이 행복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더라도 잘되지 않습니다.
영화 ‘헝거’(2023)는 한 맛집의 요리 잘하는 딸이 헝거라는 부자들을 위한 요리사 집단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습니다. 그 헝거의 대표는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난했고 그래서 천대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리로 부자들을 자기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그는 최고가 되어야 했습니다. 또 그것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 행패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딴 다른 식당을 만들어주겠다는 투자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둘은 한 나라에서 가장 요리 잘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스폰서 편에서 남자 셰프가 부자들이 사냥한 천연기념물로 요리하는 사진을 몰래 찍어 그를 감옥에 가게 합니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은 자기도 그 남자 셰프처럼 결국엔 화내고 짜증 내며 남을 이용해 최고가 되고자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먼저 무언가 되려고 합니다. 부자가 되거나 창조자가 되고, 혹은 심판자가 되려 합니다. 그러며 자신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처럼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하느님을 부모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형제가 사랑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함입니다. 사랑은 노력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면 이웃도 저절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형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전문가가 되면 자녀들에게 교육을 할 때 다 필요 없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만 사랑하면 된다고 가르치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갑곶성지에 있을 때, 손을 자주 다쳤습니다. 성지 바깥일을 하다가 나무에 찔린 적도 있고, 요리하다가 칼에 베인 적도 있습니다. 강화도 시골길을 자전거 타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손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다가 책에 베인 적도 있지요.
올 초부터 인천 송도에 위치하고 있는 성 김대건 성당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그렇게 손을 많이 다쳤었는데, 이곳에서는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갑곶성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갑곶성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손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방 일도, 또 바깥일도 하지 않으며, 자전거 도로는 잘 되어 있어서 넘어질 일도 없었습니다.
손을 많이 다치는 이유는 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친다고 손 사용하는 것을 멈춰야 할까요? 아닙니다. 손 사용을 멈출 수 없으니 조심할 뿐입니다.
마음을 다친 분을 종종 만납니다. 어쩌면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마음을 많이 쓰기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처받았다고 마음 쓰는 것을 멈추는 것이 옳을까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써야 합니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면서 계속해서 마음을 써야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 실천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상처받는 것이 싫겠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마음을 써야 합니다.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을 크게 보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을 많이 쓸수록 그만큼 다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도 더 가깝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에는 365개의 금령과 248개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 이를 지키기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특히 이를 지켜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알지도 못하고 또 지키기도 힘드니 구원의 길에서 제외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로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이 사랑을 마음에 담고,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마음을 써야 합니다. 물론 아픔과 상처가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만큼 가까워집니다.
오늘의 명언: 악마는 삶의 상처와 어떤 경우에는 실수를 이용하여, 예수님꼐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성 마더 데레사).
사진설명: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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