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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봉허행고(蠶蜂虛幸苦)
누에와 벌의 헛수고란 뜻으로, 누에와 벌은 평생을 몸 바쳐 실을 뽑아 집을 만들고, 꿀을 따다가 저장하지만 결국 그 실과 꿀은 인간이 뽑아 면사로 쓰고 채록하여 먹어버린다.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의 알몸과 알맹이 없는 집일 뿐이다. 그러니 평생 헛수고만 한 것 아닌가?
蠶 : 누에잠(虫/18)
蜂 : 벌 봉(虫/7)
虛 : 빌 허(虍/6)
幸 : 다행 행(干/5)
苦 : 쓸 고(艹/5)
누에와 벌의 헛수고란 뜻이다. 누에와 벌은 평생을 몸 바쳐 실을 뽑아 집을 만들고, 꿀을 따다가 저장하지만 결국 그 실과 꿀은 인간이 뽑아 면사로 쓰고 채록하여 먹어버린다.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의 알몸과 알맹이 없는 집일 뿐이다. 그러니 평생 헛수고만 한 것 아닌가? 세상 살면서 이런 헛수고는 참으로 많다. 평생 쓰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해 모으기만 한 재물을 다른 사람이 채어 간다거나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자식에게 다 빼앗겨 버린다. 그러니 살아서 지나치게 욕심부리며 재물을 모으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을 닦으며 베풀고 마음 넉넉하게 살 일이다.
1. 사기꾼이 득세하는 세상
세상은 어쩌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사기꾼이 득세한다. 하나는 펜싱 선수였던 남현희의 남자 친구로 알려졌던 전청조의 사기행각과 같은 불특정 타인에게 접근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눈속임하여 재산을 뜯어내고 곤란에 빠뜨리는 전형적인 사기행각이다. 이런 사기 행각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며 많은 사람을 수렁으로 빠뜨리는 범죄행위다.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교차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한 사라지기 어렵다. 이런 사기의 이면에는 사기를 당하는 자나 사기를 치는 자나 돈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기를 당하는 자는 애써 일하여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리는 것이며 사기를 치는 자는 별로 노력을 벌이지도 않고 타인의 노력을 가로채 가는 도둑이다.
또 다른 사기꾼의 하나는 부모가 자식을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며 재산을 물려주었는데도 그 자식은 재산을 상속받자마자 부모를 모시기는커녕 그 부모를 팽개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에 일어나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기행각이다.
그래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보면 모으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평생을 쓰지 못하고 모으다가 말년을 허무하게 보내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결국 그 자손은 부모가 남긴 재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살이의 이치 중에서 큰 모순이 아닌가?
전통적 상식으로 보면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 노년을 위한 소중한 보험이었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하여 재물을 모으고 자식을 잘 가르치고 키우면 나이 들어 그 자식은 자신을 키워준 그 부모를 지극히 봉양함으로써 은혜를 갚는다. 이것은 동양 사상의 중추를 이루는 효 사상의 기초였다. 그런데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화 되고 세상이 분화되고 가족이 해체되어 가면서 그런 효 사상은 이제 무너지게 되었다. 이제 부모를 집에서 지극히 봉양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은 노년을 위한 보험이 아니다.
요즈음 더 비참한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효도 각서를 썼지만, 자식은 재산을 물려받은 순간부터 효도는커녕 그 부모를 팽개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그 부모가 법정에 재산 상속 무효 소송까지 제기하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가진 여러 유전자적 특성 중에서 이기적인 특성만 발휘해서 소중한 인간적 도리를 버리는 일임에도 날이 갈수록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세상은 점차 풍속이 사나워지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만 기성을 부린다.
한국은 점차 노년 사회로 접어들면서 날이 갈수록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 문제를 모두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핵가족 체제의 확대와 천민 자본 의식의 만연으로 부모 봉양의 책임을 가족과 자식의 책임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경향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그리고 말세적인 퇴폐문화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지금부터 40-50년 후가 되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노년이 되면 노인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화와 자본주의의 천민화, 핵가족화 등이 복합적으로 가져온 가족문화의 해체가 초래하는 현재의 문제이자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향후 노인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많은 부모는 지금도 자신의 삶보다는 자식의 삶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며 자신은 즐기고 쓰지 못하면서 자식에게 모두를 바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은 쓰고 즐기지 못하면서 모으는 데만 열심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삶이 과연 옳은 삶인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기로 약정하였으나 결국 팽개치는 일이나 전청조와 같은 사기꾼이 대상자에게 접근하여 재벌인 양 행세하고 온갖 선물 공세를 펴면서 환심을 사고 투자를 유도하여 사기를 치는 것이나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양자에는 모두 극도의 친절과 말로 믿음을 심어주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도사리고 있음이다. 그리고 큰 노력없이 남의 노고를 빼앗아 가는 사기적 행동이 나타난다.
어쩌면 세상은 온갖 형태의 사기꾼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의 노고를 가기꾼에게 빼앗기지 말고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772년~846년)는 인간이 누에와 꿀벌의 평생 노력을 한순간에 다 빼앗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은 어차피 평생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으려고 악을 써 봐야 결국 그것을 빼앗아 가는 자들은 따로 있으니 지나치게 재물 모으는 일과 지위를 위해 헛수고하지 말고 삶을 즐기고 자신을 수양하라고 하였다.
2. 백거이가 말하는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
사람으로 태어나 일을 하고 가정을 일으키고 재물을 늘리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며 책무의 하나다. 그러나 그것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면 자신을 잃어버린다. 재물은 그저 어느정도 넉넉하게 살 수 있고 삶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으며 자신을 간수하고 다스릴 수 있으면 족하다. 재물에 대한 욕망이 정도를 벗어나 모으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자신의 그 노고는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된다. 그래서 백거이는 삶을 즐기라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백거이의 시를 보자.
蠶老繭成不庇身(잠노견성불비신)
누에는 늙어서 고치를 만들지만 제 몸을 가리지 못하고
蜂飢密熟屬他人(봉기밀숙속타인)
벌은 굶어가며 꿀을 만들어도 그 꿀은 남에게 먹이네
須知年老憂家者(수지년노우가자)
모름지기 나이 들도록 집 걱정만 몹시 하는 자는
恐似二蟲虛幸苦(공사이충허행고)
누에와 벌의 헛수고와 같게 될까 두렵도다
이 시는 홍만종의 순오지에 나오는 것이다. 홍만종은 이 시를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이익에만 급급하게 살지 말 것을 이렇게 당부하였다. “좋은 전답이 천만 두렁이 있다고 해도 하루에 먹는 것은 두되 곡식에 지나지 않으며, 큰 집이 천간이나 되어도 밤에 누워서 자는 곳은 8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어찌 죽은 뒤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느라 한평생을 노심초사로 이익에만 급급하게 지낼 것인가? 스스로 경계하여야 한다.”
그러면 자손들도 자연스럽게 잘살게 될 것이며 자손을 위해서 재물을 물려주려고 노심초사하여 봤자 자식들은 그 재물을 노리개로 삼아 탕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부모가 즐기지 못하고 모으기만 한 재물은 자식의 향락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니 부모는 이를 경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경계하면서 경건하게 사는 일이라 하였다.
백거이(772년~846년)의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또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그는 낙양 부근 신정(新鄭)의 하층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과 숙부들은 모두 관직 생활을 했으나 그가 태어날 즈음에는 가세가 기울어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매우 총명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갈 지(之)’ 자와 ‘없을 무(無)’ 자 두 자를 구분할 수 있었고, 다섯 살에는 시 짓는 방법을 배웠다고 전한다. 또한 그는 열여섯 살 무렵 이미 시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성장하여 관직 생활을 했으나 서민들의 생활을 대변하는 역할을 많이 하였으며 그가 쓴 3000여 수의 시중 상당 부분은 관리들의 호화로운 삶을 비판 풍자하는 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백거이는 ‘시선(詩仙)’ 이백이나 ‘시성(詩聖)’ 두보와는 달리 퇴고(推敲)로 유명하다.
그는 시를 탈고할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파에게 먼저 들려주어 그 노파가 알아들었는지를 묻고, 만약 모르겠다고 하면 그가 뜻을 알 때까지 몇 번이고 고친 후에야 비로소 붓을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쉬운 어휘로 이루어져 있으며, 통속적인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문장은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대에 맞게 써야 하며 세상을 깨우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의 시 또한 이러한 풍자와 계몽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蠶老繭成不庇身(잠노견성불비신)
누에는 왜 늙어서 고치를 만들지만 제 몸을 가리지 못하는가? 인간은 누에고치를 이루는 실을 모두 뽑아 의복을 만드는데 이용하므로 누에는 결국 알몸이 되고 만다.
蜂飢密熟屬他人(봉기밀숙속타인)
벌은 굶어가며 꿀을 모으지만 왜 타인에게 빼앗기고 마는가? 인간은 벌이 힘껏 모아 놓은 꿀을 모조리 따내고 빈집만 남겨 놓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누에와 벌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헛수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집과 가정 걱정만 하며 재물 모으는 데만 열을 올린다.
여기서 憂家者(우가자)는 무슨 뜻일까? 가정을 걱정하는 일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가정 걱정은 자식에게 재물을 더 물려주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애를 쓰는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만약 죽을 때까지 재물 모으는 데만 몰입하고 진실하고 경계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식에게 배움과 지혜와 덕을 물려주지 않아 결국 누에와 벌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평생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니 효도는커녕 부모를 팽개치는 자식들과 무엇이 다르랴.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죽고 나서 그 재물은 엉뚱한 사람의 횡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세상은 야박하여 그런 사람의 그 재물을 탐하는 사기꾼이 넘쳐나 잘못하면 그런 사기꾼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러니 살아서 경계하면서 진실한 삶, 즐기는 삶을 살고 배풀 일이다.
3.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의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린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 열심히 산다는 것은 꼭 재물을 모으고 지위와 권력을 갖는 데만 열심히 살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지혜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수양하고 자신과 세상을 경계하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일순간에 자신이 일군 재물과 지위와 권력이 무너질 수 있다. 세상에는 온갖 형태의 사기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 맹세를 하고 재산 상속을 받은 후에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사기꾼이요. 권모술수와 온갖 아부로 권력을 탐하는 자들도 사기꾼이다. 남의 재물을 온갖 감언이설로 가로채는 자들도 사기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린 마지막 후자만 사기꾼이라 한다. 그러나 맥락은 같다. 이들에게는 공통성이 있다.
첫째는 모든 사기꾼은 교언영색(巧言令色)한다. 즉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온갖 좋은 말과 친절로 정성을 바친다. 그리고 목적이 이루어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하게 돌아선다. 그래서 이들을 조심하려면 항상 나에게 과잉 친절로 접근해 오는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이든 자식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전과 다르게 갑자기 부모에게 친절을 베풀고 효자로 바뀌면 진짜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효자가 된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그가 가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도 갑자기 달라져 지나치게 효도하는 태도를 보이면 경계하여야 한다. 친구나 타인이 지나치게 친절하게 다가오면 경계하여야 한다. 타인이 교언영색(巧言令色)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겪지 않으려면 경계하는 일이다.
둘째는 경건한 삶을 사는 일이다. 경건한 삶이란 항상 열심히 일하되 지나친 욕망을 절제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아는 삶이다. 그리고 자신을 수양하면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삶이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일만 하는 삶은 경건한 삶이 아니다. 재물이 아까워 남과 어울리지 않는 삶도 경건한 삶이 아니다. 경건한 삶은 자신의 삶을 즐기되 음탕하지 않는 삶이며 타인과 어울리며 베풀되 주체성을 지닌 삶이다.
유명한 미국의 기업가 스티브 잡스(Steve Jobs) 는 성공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그는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암으로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삶을 후회하는 많은 말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말에는 살아서 일만 하느라고 챙기지 못한 자신과 가족과 이웃에 대한 후회였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사랑하라. 가족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아주 평범한 진리며 삶의 법칙이지만 사람들이 새기고 실천하기가 어려운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이 말을 그냥 흘러버린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욕망의 노예가 된다. 욕망의 노예가 되면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의 신세가 된다.
우리의 삶은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의 신세가 되지 않아야 한다.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되 누구에게든 사기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자신을 경계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蠶蜂虛祿幸苦(잠봉허행고), 얼마나 허망하랴.
▶️ 蠶(누에 잠)은 형성문자로 蚕(지렁이 천, 누에 잠)은 간체자, 䗝蚕(누에 잠)은 속자, 蝅(누에 잠) 䗞(누에 잠) 䘉(누에 잠) 蠺(누에 잠)은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 2개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朁(참→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蠶(누에 잠)은 ①누에 ②양잠(養蠶: 누에를 치는 일) ③(누에를)치다 ④잠식하다(蠶食--)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 처럼 남의 것을 차츰차츰 먹어 들어가거나 침략하는 것 또는 남의 땅을 점점 쳐들어감을 잠식(蠶食), 누에를 치는 방을 잠실(蠶室), 누에의 번데기를 잠용(蠶蛹), 말린 누에의 똥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을 잠사(蠶砂), 누에를 칠 때에 입는 옷을 잠의(蠶衣), 누에를 치는 일을 잠사(蠶事), 누에를 치는 직업을 잠업(蠶業), 누에의 똥을 잠분(蠶糞), 누에를 치는 여자를 잠부(蠶婦),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왕후가 몸소 누에를 침을 친잠(親蠶), 알에서 깨어 나온 누에를 누엣자리에 떨어 놓음 또는 그 일을 소잠(掃蠶), 자고 있는 누에를 와잠(臥蠶), 누에를 기름을 양잠(養蠶), 잠자는 누에 같다는 뜻으로 길고 굽은 눈썹을 이르는 말을 와잠미(臥蠶眉), 고치실과 쇠털이라는 뜻으로 일의 가닥이 많고 어수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잠사우모(蠶絲牛毛), 점차적으로 조금씩 침략하여 들어감을 이르는 말을 초잠식지(稍蠶食之) 등에 쓰인다.
▶️ 蜂(벌 봉)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창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夆(봉)으로 이루어졌다. 날카로운 침을 가진 벌레의 뜻이다. 蜂(봉)자는 '벌'이나 '꿀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蜂(봉)자는 虫(벌레 충)자와 夆(끌 봉)자가 결합된 모습이다. 蜂자에 쓰인 夆자는 '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과 함께 모양자 역할을 하고 있다. 금문에 나온 蜂자를 보면 夆자 아래로 두 개의 虫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꿀벌과 애벌레를 함께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辵(쉬엄쉬엄 갈 착)자가 더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복잡한 획이 간략화 되면서 지금은 虫자와 夆자만이 결합된 蜂자가 '꿀벌'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蜂(봉)은 ①벌(벌목의 곤충 가운데 개미류를 제외한 곤충) ②꿀벌 ③봉망(鋒鋩: 창, 칼 따위의 뾰족한 끝) ④크다(=封) ⑤날카롭다(=鋒)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떼지어 날아 나오는 벌떼처럼 사람들이 곳곳에서 일어남을 봉기(蜂起), 벌과 나비를 봉접(蜂蝶), 벌꿀이나 벌을 봉밀(蜂蜜), 벌의 소리를 봉성(蜂聲), 벌집을 봉소(蜂巢), 송송 뚫어진 벌집의 여섯모 구멍을 봉방(蜂房), 벌떼처럼 나옴을 봉출(蜂出), 바늘꼴의 벌 산란관을 봉침(蜂針), 벌의 허리 모양으로 잘록하게 생긴 허리를 봉요(蜂腰), 꿀벌의 집에서 여왕벌이 사는 곳을 봉대(蜂臺), 벌의 독침을 봉미(蜂尾), 벌떼가 모여 있다는 뜻으로 벌떼처럼 무리 지어 모임을 이르는 말을 봉둔(蜂屯), 꿀벌을 길러 꿀을 채취하는 일을 양봉(養蜂), 꿀벌이나 참벌을 밀봉(蜜蜂), 벌의 수컷을 웅봉(雄蜂), 독이 있는 벌을 독봉(毒蜂), 벌통 속에 있는 꿀벌의 얼마를 다른 통으로 갈라 냄을 분봉(分蜂), 땅벌로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벌을 토봉(土蜂), 토종꿀을 한봉(韓蜂), 꿀벌 치기에서 꽃에서 꿀을 얻지 아니하고 남의 벌통에서 꿀을 도둑질해 오는 꿀벌을 도봉(盜蜂), 암펄 곧 벌의 여왕을 자봉(雌蜂), 일벌로 집을 짓고 애벌레를 기르며 꿀을 치는 일을 맡아 하는 벌을 직봉(職蜂), 벌의 집과 물의 소용돌이라는 뜻으로 건물이 꽉 들어차 있는 모양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봉방수와(蜂房水渦), 벌처럼 높은 콧대와 가늘고 긴 눈이라는 뜻으로 영특하고 생각이 깊은 인상을 이르는 말을 봉준장목(蜂準長目), 벌이나 개미에게도 군신의 구별은 뚜렷이 있다는 뜻으로 상하 위계 질서를 강조할 때에 이르는 말을 봉의군신(蜂蟻君臣), 벌과 나비가 향기를 따른다는 뜻으로 남자가 미인을 좇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봉접수향(蜂蝶隨香), 버들 같은 눈썹에 개미 같은 허리를 이르는 말을 유미봉요(柳尾蜂腰), 꽃을 찾아 다니는 벌과 나비라는 뜻에서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유로 이르는 말을 탐화봉접(探花蜂蝶) 등에 쓰인다.
▶️ 虛(빌 허)는 ❶형성문자로 虚(허)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범호 엄(虍; 범의 문채, 가죽, 허)部와 丘(구; 큰 언덕)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큰 언덕은 넓고 넓어 아무것도 없다는 데서 텅 비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虛자는 '비다'나 '공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虛자는 虎(범 호)자와 丘(언덕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丘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구)자로 바뀌기 때문에 虛자는 丘자가 결합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丘자는 '언덕'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니 虛자는 마치 호랑이가 언덕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맹수의 왕이 나타났으니 모두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그래서 虛자는 드넓은 언덕에 호랑이가 나타나자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비다'나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虛(허)는 (1)내용(內容)이 비어 있는 것 (2)방심(放心)하여 게을리 한 곳이나 틈. 허점(虛點) 등의 뜻으로 ①비다, 없다 ②비워 두다 ③헛되다 ④공허(空虛)하다 ⑤약(弱)하다 ⑥앓다 ⑦살다, 거주(居住)하다 ⑧구멍 ⑨틈, 빈틈 ⑩공허(空虛), 무념무상(無念無想) ⑪마음 ⑫하늘 ⑬폐허(廢墟) ⑭위치(位置), 방위(方位) ⑮큰 언덕 ⑯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열매 실(實), 있을 유(有), 찰 영(盈)이다. 용례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을 허위(虛僞), 비거나 허술한 부분을 허점(虛點), 사실에 없는 일을 얽어서 꾸밈을 허구(虛構), 몸이 허약하여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멍함을 허탈(虛脫), 사람됨이 들떠서 황당함을 허황(虛荒), 텅 비어 실상이 없음을 허무(虛無), 실상이 없는 말로 거짓말을 허언(虛言), 텅 빈 공중을 허공(虛空), 피곤하여 고달픔을 허비(虛憊), 마음이나 몸이 튼튼하지 못하고 약함을 허약(虛弱), 쓸 데 없는 비용을 씀을 허비(虛費), 실상은 없이 겉으로 드러내는 형세를 허세(虛勢), 어이없고 허무함 또는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음을 허망(虛妄), 때를 헛되게 그저 보냄을 허송(虛送), 몹시 배고픈 느낌을 허기(虛飢), 쓸데없는 헛된 생각이나 부질없는 생각을 허상(虛想), 너무 과장하여 실속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허풍(虛風),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을 겸허(謙虛), 속이 텅 빔을 공허(空虛), 속이 빔을 내허(內虛), 정신이 허약한 병증을 심허(心虛), 위가 허약함을 위허(胃虛), 원기가 약함을 기허(氣虛), 마음이 맑고 잡된 생각이 없어 깨끗함을 청허(淸虛), 높고 텅 빔으로 지위는 높으면서 직분은 없음을 고허(高虛), 마음이 들뜨고 허황함을 부허(浮虛), 푸른 하늘을 벽허(碧虛),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을 일컫는 말을 허심탄회(虛心坦懷),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을 이르는 말을 허장성세(虛張聲勢), 세월을 헛되이 보냄을 일컫는 말을 허송세월(虛送歲月), 방을 비우면 빛이 그 틈새로 들어와 환하다는 뜻으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실생백(虛室生白),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계략이나 수단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을 이르는 말을 허허실실(虛虛實實), 말하기 어려울 만큼 비고 거짓되어 실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허무맹랑(虛無孟浪), 허명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허명무실(虛名無實), 예절이나 법식 등을 겉으로만 꾸며 번드레하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허례허식(虛禮虛飾), 사심이 없고 영묘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의 실체와 작용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령불매(虛靈不昧) 등에 쓰인다.
▶️ 幸(다행 행)은 ❶회의문자로 夭(요; 일찍 죽다)와 屰(역; 거역하다)의 합자(合字)이다. 일찍 죽는 것을 면함을 좋은 일로 생각하여 다행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幸자는 '다행'이나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幸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幸자를 보면 양손을 묶는 수갑과 벽에 고정하는 쇠사슬이 그려져 있었다. 수갑은 죄를 지은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런데 왜 수갑을 그린 글자가 '다행'이나 '행복'을 뜻하게 된 것일까? 한자는 지배계층이 만든 문자다. 그들로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幸(행)은 ①다행(多幸), 행복(幸福), 좋은 운(運) ②요행(僥倖), 뜻하지 않은 좋은 운(運) ③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④은총(恩寵), 베풀어 준 은혜(恩惠) ⑤오래 사는 일 ⑥다행히, 운좋게 ⑦다행하다, 운이 좋다 ⑧기뻐하다 ⑨임금이 사랑하다, 임금의 사랑을 받다 ⑩바라다, 희망하다 ⑪행복하게 하다 ⑫행복을 주다, 은혜를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⑬좋아하다, 즐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복된 좋은 운수로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행복(幸福), 행복한 운수나 좋은 운수를 행운(幸運), 사회가 어지럽게 되기를 바람을 행란(幸亂), 재앙이 일어나기를 바람을 행화(幸禍), 서로 사이가 벌어져서 틈이 생기기를 바람을 행흔(幸釁), 행복한 사람을 행인(幸人), 다행을 바람이나 행여나 하여 바람을 행기(幸冀), 운수가 좋음 또는 일이 좋게 됨이나 뜻밖에 잘 됨을 다행(多幸),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하늘이 준 다행을 천행(天幸), 기쁘고 다행함을 희행(喜幸), 감격하고 다행하게 여김을 감행(感幸), 마음에 잊혀지지 아니하는 다행한 일을 경행(耿幸), 더할 수 없이 다행함을 지행(至幸), 남에게 아첨하여 귀염을 받음을 폐행(嬖幸), 다시 더할 수 없이 다행하다는 말을 행막행의(幸莫幸矣), 남의 재난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는 말을 행재불인(幸災不仁), 남이 재화를 입음을 보고 좋아한다는 말을 행재요화(幸災樂禍), 매우 다행함을 이르는 말을 천만다행(千萬多幸), 부귀 할지라도 검소하여 산간 수풀에서 편히 지내는 것도 다행한 일이라는 말을 임고행즉(林皐幸卽), 다행하여 썩 행복하다는 말을 다행다복(多幸多福), 요행을 노리는 화살은 자주 차질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사행심의 발동으로 하는 일은 성취하기 어려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행삭질(射幸數跌), 공교롭게 아주 못된 때를 만남을 이르는 말을 봉시불행(逢時不幸) 등에 쓰인다.
▶️ 苦(쓸 고, 땅 이름 호)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오래다, 낡다, 굳게 긴장(緊張)하는 느낌이 쓰다는 고(古)와 쓴 풀(艹)의 뜻이 합(合)하여 '쓰다', '괴롭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苦자는 '쓰다'나 '괴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苦자는 艹(풀 초)자와 古(옛 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古자는 '옛날'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 역할만을 하고 있다. 苦자는 풀이 매우 쓰다는 뜻으로 艸자가 의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괴롭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苦(고)는 씀바귀, 쓰다, 괴로움을 뜻과 전세前世의 악업에 의하여 받는 고통 등의 뜻으로 ①쓰다 ②괴롭다 ③애쓰다, 힘쓰다 ④많다, 오래 계속되다 ⑤거칠다 ⑥엉성하다, 졸렬하다 ⑦무르다 ⑧욕(辱)되다, 욕보이다 ⑨싫어하다 ⑩씀바귀(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⑪쓴 맛 ⑫깊이, 심히 ⑬기어코, 그리고 ⓐ땅의 이름(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喜), 즐길 낙/락(樂), 기쁠 환(歡), 달 감(甘)이다. 용례에는 괴로워하고 번민함을 고민(苦悶), 마음을 태우며 애씀을 고심(苦心), 매우 기다림을 고대(苦待), 괴로움과 슬픔을 고비(苦悲), 매우 힘드는 일을 고역(苦役),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고통(苦痛), 괴로운 심경을 고충(苦衷), 몸과 마음이 괴로움을 고뇌(苦惱), 쓴 즙을 담은 잔으로 쓰라린 경험을 고배(苦杯), 괴로움과 즐거움을 고락(苦樂),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매우 힘드는 일을 고역(苦役),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초(苦楚), 귀에는 거슬리나 참된 말을 고언(苦言), 괴로운 인간세계를 고해(苦海),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는 힘든 싸움을 고전(苦戰), 힘들여 생각하는 것을 고려(苦慮), 괴로운 처지를 고경(苦境), 목이 말라 고생함을 고갈(苦渴), 시들어 마른 풀을 고초(苦草), 고생스럽고 곤란함을 고곤(苦困), 고통스러운 생각을 고사(苦思), 어이가 없거나 하찮아서 웃는 웃음을 고소(苦笑), 매운 것과 쓴 것으로 괴롭고 고생스럽게 애를 씀을 신고(辛苦), 처지나 형편 따위가 고생스럽고 딱함을 곤고(困苦), 즐거운 일이 어그러져서 받는 고통을 괴고(壞苦), 단 것과 쓴 것으로 고생을 달게 여김을 감고(甘苦), 애쓰고 노력한 수고로움을 노고(勞苦), 괴로움을 참음을 인고(忍苦), 몹시 애씀이나 대단히 힘들임을 각고(刻苦), 아이를 낳는 괴로움을 산고(産苦), 옥살이 고생을 옥고(獄苦), 적을 속이는 수단으로서 제 몸 괴롭히는 것을 돌보지 않고 쓰는 계책을 이르는 말을 고육지책(苦肉之策),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고진감래(苦盡甘來), 괴로움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름을 일컫는 말을 고락병행(苦樂竝行), 안일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그 반동으로 찾아옴을 일컫는 말을 고일지복(苦逸之復), 몹시 애를 태우며 근심 걱정을 함을 이르는 말을 고심참담(苦心慘憺),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같이 고생하고 같이 즐김을 일컫는 말을 동고동락(同苦同樂), 몹시 고되고 어렵고 맵고 쓰다는 뜻으로 몹시 힘든 고생을 이르는 말을 간난신고(艱難辛苦)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