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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릴때 저의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 할려고 합니다.
오늘 따라 저의 어머니 생각이 나는 이유는~ 저는 사회 생활 하면서 제가 안좋은일이 닥치면 꼭 어머니는
전날 꿈에 나타 나십니다.
저번 술취한 별난 폭언당하면서 여성에게 자동차에 인대 다리를 부상 입는 날도 전날 꿈속에서 어머니는 꿈속에
나타 나셨습니다.
저는 경남 거창에 때어나 1살때 부모님과 부산 동대신동 이사 와서 부산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핍 을 많이
받고 자랍니다.
지금 생각 하면 제가 6살 까지 부산에서 부모님과 같이 있다가 ~ 초등 학교 1학년~5학년때 까지
사정이 있어 경남 거창 시골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머리가 나쁜데~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어릴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5~6 살때 기억을 지금도 희미 하게
한답니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 입니다
어머님이 찍으신 사진입니다
제가 3살정도로 기억 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2살 많은 누님 입니다
이때는 칼라 사진이 없는 시기였습니다
정말 40년 넘은 5~6세때 유아때 일을 기억 하니 참 ! 우서운 일 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성장 했다고 생각 듭니다.
제가 5세 였을 때는 우리나라가 경제 부흥이 없을때 입니다.
박정희 정권 "새마을 운동" 이 없을때 일이니 말입니다.
대한민국 나라는 후진국이었고 국민들이 대부분 못살고 못먹고 문명 헤택을 못받고 국민들은 생활 한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때는 TV 는 한대도 없을때 였어니 말입니다,
그때는 한동내에 만화방에 흑백 TV가 있었답니다.
만화를 많이 보면 흑백 TV를 볼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서..저는 6살 어린 남동생과 TV 만화 영화 볼려고
하루종일 만화방에 만화책 한권으로 돈 아낄려고 본것을 뒤져이고..또보고..ㅎㅎ 흑백 TV 저녁시간 되기를
기다리며 쫒겨 날까바 !! ㅎㅎ 만화방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때우곤 하였답니다. ㅎㅎ
그당시 우리 국민학교때 즐겨본 TV프로는 "엄마찿아3만리" 600만불의사나이" "신밧드의모험" 비키는바다바이
킹"바다의왕자 마린보이" 백설공주 ,,아루치와마추치 ,,로브트태권V 등 ㅎㅎ
그런데
그 당시 제일 인기있는 프로가 김일 레스링 이었습니다
김일 레스링있는 날에는 만화방이 초저녁부터 터져나갔습니다
초저녁부터 T어린이와 사람들이 만화방 에는 진을 치고 있어서 ..인원이 너무 많아서 만화방에 못들어가서 6살
어린 동생과 만화방 밖에서 이슬비를 맞으며 "김일" 레스링을 본것 이 기억남니다.
김일 선수의 최고 라이벌은 일본의 "이노끼" 였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이노끼" 선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주걱턱의 일본의 "이노끼" 레스링 선수 ㅎㅎ
그 당시 만화방은 대중적 문화였습니다.
지금의 PC방이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당시 칼라 TV가 없을때 입니다 ..흑백 TV 볼려고 동생과 사생결단 목숨 걸었습니다 ㅎㅎ
그 당시 우리 국민학교때는 상수도 시설이 잘안돠어 구청에서 동내에 물차가 오면 온가족 끼리 양동이 물을
길러는 것이 연레 행사 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릴때는 온몸에 종기 같은 것이 많이 났는데..특별한 약도 없고 몸에난 종기에는 "고약 " 을
발랐는데 .."이명래" 고약이 유명 하여 "이명래" 고약을 참 ! 많이 몸에 부쳤습니다. ㅎㅎ
그리고 소독차가 일주일 1번은 달동내를 횐연기를 뿌리며 가면 우리 동내 아이들은 소독차를 따라 가는것이
그당시 큰 재미 였습니다.
소독차가 지나가면 동내에 집에 문을 전부 열어 두는것이 늘상 있는 일입니다.
동내 아주머니들 !! 왈
야!! 야!!
야들아 !!!!!
소독차 왔데이 !! 방에 문열어 놓아래이 !!!!! ㅎㅎ
그리고 가정마다 "쥐" 가 많아서 우리 국민학교때는 "쥐잡기" 운동 을 한달에 2정도 하여 잡은 쥐를 세상에
학교에 선생님께 확인차 가져 갔답니다.
참~ 잡은 "쥐"를 학교에 확인차 가져 갔다하니 ~ 지금 생각 하니 지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알면 "기절초풍"
할일 입니다.
그런데 달동내에 쥐가 얼마나 많은지 ~ 쥐와의 전쟁 이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 부산 동대신동 달동내 스레트 집에 저는 자랐는데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약간 지붕에 새서
밥그릇을 방에 받치는 기억도 나고 지금 생각 해도 동대신동 달동내 스레트 집을 기억 합니다.
그 당시 달동내 주민들 여성 가정 주부들 모두 생활이 어려워 남편도 직장 생활하고 생계가 어려워 주부도
길거리에 장사를 모두 하던 시절 이었습니다.
다른 서울과 지방은 모르겠는데 ~ 그~당시 제가 살던 부산 동대신동 달동내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의 어머니 께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경남 거창 시골에서 제가 태어나고 1살때 부산으로 이사와서 당연히 형편이 좋을리가 있습니까?
그 당시 저의 부친 아버님은 일본에 사업차 간것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유아때 부친이 일본 가서 안계시니 ~ 당연히 어머님이 혼자 우리 생계를 꾸려 갔던것으로 기억 합니다.
부산 동대신동 달동내 주민들은 연합 작전으로 대신동 "구덕산" 에 도토리를 따서 동내 주민과 묵(도토리묵) 을
만들어 "국제시장" 에 단체로 같이 만들어 묵을 팔때는 2인이 다니면서 같이 묵을 팔은 것으로 기억 합니다
.
저의 어머니는 국제시장 에서 양동이를 이고 콩국 장사를 국제시장 노상에서 아침 일찍 갔다가 오후 쯤 콩국을
다팔고 동대신동 달 동내로 온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당시 5세때 저는 엄마를 따라 국제시장 콩국 장사를 하는데 많이 따라 다녔은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 당시 콩국을 파는데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왠 ~ 여성이 한명 와서는 콩국을 혼자 콩국을 퍼먹고
계산을 하여야 하는데 엄마가 안오니 ? 한참 기다리더니 ..너히 ? 엄마 어디갔니? 하는 말이 기억이 흑백 필림
같이 기억이 확실히 남니다. ㅎㅎ
그리고 모친은 봉숭아 장사를 하였는데~ 장사라 해봐야 "리허커" 도 아니고 ~ 그냥 큰 양푼이 에 봉숭아 20
~30 개 정도 머리에 이고 !! 붕숭아 다팔때 까지 팔고 들어 오는데 ~ 모친은 봉숭아 안팔릴때는 복숭아를
다팔고 아주 깊은 밤늦게 집에 온걸로 한걸로 기억 합니다.
모친이 올때 까지 저는 저녁 밥을 모친이 와야 비로서 저녁 밥을 먹는데 ..이때는 나와 6살 차이 나는 동생의
탄생 ~태어나지 않았을때 입니다.
제가 확실 하게 기억 나는것은 어느날 ! 아무리 밤늦게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배는 고파오고..어린 마음에 엄마가 왜? 안올까?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간걸까? 많이
걱정 한것으로 기억 하고 엄마가 밤늦게 까지 안오니? 마음이 점점 어두워 져는 것 같은 생각이 들은 것 으로
기억 합니다.
그런데
밤 늦게서야 한참 있어니 엄마가 오더군요 ..저는 배가 고파 졸졸 굶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폰이에 있는 봉숭아가 다 팔지를 못하고 그대로 있었던걸 것으로 기억 합니다.
붕숭아 안팔리니 밤 늦게 까지 ~ 붕숭아 엄마는 다팔려고 했던것 같았습니다.
그당시~엄마가 양동이에 팔려는 붕숭아는 저의 희미한 기억은 우리가 일반 가게 에서 파는 풋복숭아가
아니고 엄마가 머리에 이고 파는 복숭아는 크기가 크고 아주 상품이 좋은 복숭아로 기억 합니다.
밤 늦게 붕숭아를 못팔고 온 양동이에 있는 붕숭아를 어린 나이에 저는 보니 당연히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당시 희미한 엄마와 대화
해리슨포드 : 5살때: 와!! 복숭아다 !! 엄마 나 !! 이것 복숭아 !! 먹을래 !! (저는 너무나 탐스럽게 생
긴 복숭아를 손으로 빨리 집어 먹을려 하는데..
엄 마: 어어..만지면 안된다 ..!! 복숭아 털이 까끌럽다 !! 하면서 복숭아에 일절 손을 못대게 하더 군요.
그~당시 저는 어린 마음에 .. 너무나도 탐스러운 꿈에 봄직한 복숭아를 먹지를 못하여
잠을 자면서도 너무나 복숭아를 먹고 싶어서 복숭아를 생각 하면서 잠이 든것으로 기억 합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왜? 엄마가 복숭아를 못먹게 하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저는 지금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는 그 당시 자식 에게 맛난 1등 상품 복숭아를 얼마나? 먹이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사업에도 계획이 있고~ 엄마의 양폰이에는 30개의 복숭아도 엄마의 장사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복숭아를 다팔면 그밑천으로 다른 장사를 할계획 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세월은 흐름니다
아버지도 일본에서 사업차 가셨는데..돌아오시고 아버지께서 오시면서 그당시 기억으로 생활의 윤택 해짐
이 기억됩니다.
아버지가 오시고 집에는 부족 한것이 없었고 집에는 맛난게 항상 있은걸로 기억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의 그늘이 무섭다고 생각 듭니다
.
아버님이 일본에 가셔서 어머니 홀몸으로 우리 어린 유아를 형제를 키운다고 고생 한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
합니다
아버지는 항상 퇴근 하시면서 맛난 먹을것과 제가 좋아하는 어린이 자동차를 항상 사오셨던걸로 기억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나 1학년때 중학교때 소풍을 가면 엄마는 꼭 ! 오뎅을 반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오뎅 반찬이 그당시는 고급반찬 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네모난 오뎅을 반찬으로 해주시고 ~네모난 오뎅도 엄마는 냄비에 간장에 졸려서 반찬으로 해주면
우리 형제는 어릴때 서로 오뎅을 많이 먹을려고 밥에 로뎅을 숨겨 가면서 오뎅을 많이 먹을려고 다투고 머리를
많이 쓴걸로 기억 합니다.
엄마가 해주신 간장에 졸인 갓 붂은 뜨거운 ~ 오뎅은 어찌나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맛있든지 ㅎㅎ
소풍이나 우리가 큰 행사를 할때는 오뎅도 같은 오뎅 이라도 고급 오뎅이 있었는데 둥근 오뎅에 가운데 구멍이
난 오뎅이 아주 고급 오뎅입니다.
제가 국민학교때 소풍 갈때만 엄마는 고급 오뎅인 둥근 구멍난 오뎅을 반찬으로
해주셨습니다.
엄마가 ~ 부엌에서 구멍난 오뎅 요리를 하면 ..아 ~ 오늘 집안에 큰 행사가 있구나 생각 하였답니다.
그리고 지금 가만 생각 해보면 저는 중학교 1학년까지는 엄마는 맛있는것 을 안먹는것 으로 생각 하였습니다.
엄마가 뭐? 맛난것 사와서 먹어면 저는 엄마도 하나 먹으라고 권하면 ~ 엄마의 이야기 엄마 왈 ..
엄마는 맛난것을 절대 안먹는 사람 이단다 !!
엄마는 맛난것 안먹어 ..너나..맛난것 많이 먹어..
저는 맛난 것을 몆번이나 엄마에게 권했어나? 역시 엄마의 대답은 ~ 엄마는 맛난것 안먹는 사람 이단다 !!
같은 대답 이었습니다.
엄마는 맛난것을 절대 안먹는 사람 인줄 알고 ~ 저는 맛난것 있어면 엄마에게 맛난것 안주고 혼자 실컨
맛난것 먹었습니다 ㅎㅎ
저는 어린 마음에 아 ~ 엄마는 맛난 것을 절대 안먹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제가 중학교 1학년 되면서 철이 들면서 엄마도 맛난 것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요즘 저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살다 보면 사업에 실패를 하여 못살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수는 있어나 ~ 못살고 가난 한것은 죄가 아니고 부끄러운 것이 절대 아니다 ~ 사람은 삶을 살면서 잘살수도
있고 못살수도 있는것이 사람 인생이다.
저의 어머니는 저에게 ~하지만 세상을 죄짓지말고 "비급하게 " 비굴하게" 절대 "삶" 을 살지 말라고 신신 당부
를 하더군요.
제가 어릴때 생각 하면 ~ 어머니는 매일 새벽에 항상 일어 나셔서 빨래를 한 새옷을 항상 정갈하게 갈아입고
옷을 단정히 입으시고 하루 일과를 짜며 노트에 항상 메모를 하는 것을 봤으며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한번도
흔트려 진모습을 한번도 보여준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어머니 말씀대로 저는 현재 조금만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만약 !! 사업에 실패 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면 어머니 말씀대로 가난은 죄가 아니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 저는 리어카에 끌며 하루 하루 힘겼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살더 라도 비급하게 삶을 살지 않을것을 다짐 해봅니다.
저의 어머니는 그예날 제가 5살때 그 어려운 시기에 아버님이 일본가서 아계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복숭아
장사..콩국장사..도토리묵장사를 ..하시면서
비굴하지 않고 삶을 대나무처럼 기개 있게 삶을 사신 것을 저의 어머니는 몸소 실천 하여 자식들에게 보여
주신분이 저의 어머니 입니다..
어머님이 오래동안 사시기를 빌어봄니다
세월은 나이 많은 부모를 절대 기다려주지를 않더군요
저의 친구 부모님께서 한분 한분 돌아가시더군요
부모란 세상을 한번 떠면 절대 자식에게 돌아오지 않는 존재더군요
아무조건 없이 자식에게 주기만 하는 부모...
저~또한 2딸의 아빠(부모) 입니다..
저의 어머니 입니다
2013년 5월 저의 회사에 오셨더군요..제가 과일 좋아하는줄 알고 과일을 엄청 사오셨더군요
아직 모친은 아픈데 없고 아직은 건강 하답니다
해리슨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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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
이대로님~반갑습니다
막바지 여름 잘보내시길 바랍니다^^
살아생전에 효도를 나름대로 해도 가신뒤엔 또후회가 되는것이 자식의 심정입니다.
건강하시고 오래 사사길 빌겠습니다.. 늘행복 하세요.~~~
부모는 조건없이 자식에게 주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하늘처럼깊은모침의마음;;;
반갑습니다^^ 여름 잘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세대의 부모님 오직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죠~~
어머님의 따사한 사랑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부모란~~자식에게 한없는 조건 없이 주기만 하는 존재 인것 같습니다~~
아!! 어머니~~너무 고우십니다..
아마 어머니은 행복하실겁니다.
해리슨포드님같은 아들이 있어서.~~
살아생전 잘 해드리세요..저는 잘 해드리고싶어도
두분다 돌아가셔서 너무나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비가와요님 ~~반갑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니..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대신..자녀에게 잘하시길 당부 하고 싶습니다
내리사랑이 있드시..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 자녀에게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어머니께서 건강 하시니 넘 좋습니다
본부장님~~반갑습니다
아직 모친이 건강 한데...오래 사셨어면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한 눈에 그려지네요..
어머님의 큰사랑이 오늘의 헤리슨 포드님 같이
훌륭한 분이 자리를 지킬수 있게 만들었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레이디가님~~반갑습니다^^
어머님은 저의 스승 이라 생각 합니다~~
아직 부족 한것이 많이어니..항상 낮은 자세로서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 뿐입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잘난사람이 많더군요~~
^^*
편한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예쁜 어머님을 닮으신 듯
부럽습니다
쌩유
박지영님 ~~반갑습니다
더운여름 건강 유의 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
가장많은 영양을 주신분이 어머님이 아닐까요?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은.
오직어머님의 사랑이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바다별님 ~~반갑습니다^^
어머니란 이름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찡 ~~~합니다~~
즐거운 휴일 되시고 항상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와우님..반갑습니다^^
부산에서..안부전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