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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민변소속 변호사로써 촛불집회 사상 최초로 구속된 윤모씨에 대한 형사재판의 변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6. 30. 서초동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윤씨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인 제가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고 변론했다면서 바로 이 언급을 기사의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208867.html?ctg=12
2. 이 날 재판은 윤씨에 대한 형사재판으로는 처음 열린 것이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첫 기일에는 피고인에 대하여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거쳐 검찰측 기소요지낭독과 변호인측의 모두진술, 그리고 검찰측의 증거신청과 변호인의 증거인부절차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 날 재판 역시 이러한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윤씨의 사안은 간단합니다. 그가 2008. 6. 7. 시청에서의 촛불집회 등 세차례에 걸쳐 촛불집회에 참석하였고, 6. 7. 촛불집회에서는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방석판을 손괴하였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인정하는데야 변호사가 이를 부인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노숙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구치소에서 나오는데 관심이 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변호인인 저로서도 다툴만한 부분을 찾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기일을 마치고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게 해 주는 것이 낫다 여겼습니다.
3. 그러나 문제는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였습니다. 노숙자 신분으로 단순참가자에 불과한 윤씨에 대한 증거의 양으로는 놀랍게도 500쪽이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양도 양이려니와 그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가운데 약 400여쪽은 윤씨에 대한 공소사실과의 관련성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윤씨는 단지 전경버스 위에 올라갔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증거로 제출된 것들은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의 사진들,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부상을 입은 전, 의경들 전체의 명단, 그리고 그 치료비 지급내역서와 그 전, 의경들의 진술서, 촛불집회 이래로 파손당한 전경버스 현황과 그 파손을 돈을 환산한 감정내역...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압권은 윤씨가 체포된 이후의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진자료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윤씨가 체포된 이후의 폭력시위가 윤씨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윤씨가 광우병 대책회의 같은 촛불집회관련 단체의 간부도 아니지 않은가?
검찰의 증거신청에 대한 변호인으로서의 저의 증거의견은 간단했습니다. 윤씨의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없는 증거들에 대하여는 증거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4. 중앙일보가 기사제목으로 뽑아낸 대목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저의 증거의견에 대하여 검사는 그런 증거가 윤씨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양형으로 참작할 증거여서 제출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반박하였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은 뚜렷한 주최자가 없다는 것은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수십만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하나의 단일한 입장으로 촛불집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촛불집회에 나오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그간 평화적인 의사표시로 얻은 것이 무어냐, 이제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정부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피고인은 쇠파이프를 든 사람도 아니고 피고인이 폭력적인 촛불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닌데 쇠파이프를 들고 폭력적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된다면 이것은 명백히 부당한 것이다.”
이렇게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를 놓고 갑론을박하던 모습은 연합뉴스가 가장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08/06/30/0702000000AKR20080630164500004.HTML
5. 재판을 마치고 난 그날 밤 동료로부터 이런 악의적인 기사가 게재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저는 중앙일보라면 능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중앙일보와 관련기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절차를 밟아야 할 생각으로 다만 짜증이 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간단치 않게 흘러갔습니다. 이 기사를 접한 주변의 지인들은 저의 예상과 달리 중앙일보의 보도를 진실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런 비상한 시국에 이런 말실수를 한 이유가 뭐냐며 저를 힐난했습니다. 동료가 해당기사에 붙은 댓글이라며 건네준 자료에서 저는 폭력을 옹호하는 변호사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분들로부터는 개념없는 변호사로 자살골을 넣은 선수였기도 하구요. 생전 처음 댓글의 융단폭격을 당해보는 지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로마켓 같은 사이트로부터 저에 대한 신상정보가 흘러나와 인터넷에 도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심지어는 세계일보 7. 2.자 사설에서는 제 이름 석자를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저를 질타하고 있었습니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080701002889&cid=0101100300000
6. 중앙일보는 단지 거두절미 왜곡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가증스럽기까지 골고루 하더군요. 6. 30. 밤 정확하게 7시 38분에 중앙일보 대검출입기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저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변론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둥 하면서 윤씨에 대한 수임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슬며시 물어 오더군요. 노숙자에게 수임료를 받겠느냐며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엉뚱하게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어도 윤씨만 노숙자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 사람은 영장청구가 기각된 것은 사실상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변형이 아닌가, 중앙일보도 비록 촛불집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더라도 이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아뿔사...
기사를 보고나서 수임료를 물어본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합니다. 저의 발언을 저토록 거두절미했다면 이 물음 역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7.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 상황이었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하여 관점을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딴지총수 김어준이 명쾌하게 정리했듯이 조중동, 편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에, 나쁜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저의 사례가 생생히 증언하듯이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비열하기까지 합니다.
변호사로써 법에서 정한 테두리 내에서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변호사로서의 저의 명예와 변호사단체로서의 민변의 명예를 한없이 손상시키고, 촛불집회에 대하여 갖는 저의 견해를 왜곡하여 마치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작문을 한 중앙일보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8. 제가 중앙일보에 대하여 하려고 하는 법적인 조치들이 언론개혁운동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등뒤에서 칼 꽂는 형태의 이런 비열한 모습으로 정치권력과 특정세력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그 댓가로써 진실보도의 원칙을 내팽개쳐버린 중앙일보는 이미 언론일 수는 없는 것이라 여깁니다. 여러분이 힘이 되어 주십시오. 그 말씀을 좀 드리려고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