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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이다. 여름방학에 집에 와 일손을 도운 일이 있다. 그 날은 마침 품앗이로 우리 집 논을 매는 날이었다. 나는 품앗이 일꾼과 함께 논매는 어려운 일을 몸소 체험하였다.
쨍쨍 햇볕이 내려 쬐는 삼복더위에 논에 들어가 몸을 바짝 구부리고 호미로 논바닥을 긁고 훔쳐가면서 잡초를 뽑아 논을 매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선글라스(sunglass)하나 없던 시절에 뾰족한 벼 잎이 얼굴과 목을 찌르면 따가웠다. 잘못하여 눈을 찌르면 눈이 상하기도 하였다.
태양의 복사열(輻射熱)로 더워진 논바닥은 뜨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숨이 턱턱 막혔다. 더운 한낮에는 뜨거운 물에 데어 개구리가 쪽쪽 뻗어 죽어갔다. 그렇게 더워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더운 폭염에 벼가 데어 죽을 터인데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지금은 제초제 대신 논에 오리를 방사(放飼)하여 오리로 하여금 벌레를 잡아먹고 풀을 뜯어 먹어 논을 매게 한다. 이를 '오리농법'이라고 한다. 논매는 일이 끝나고 오리를 팔면 농가수입이 되었다.
일꾼들은 힘들게 일 하는 대신 여러 번 먹는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오전 새참을 먹고, 점심과 저녁사이에 오후 새참을 먹는다. 새참은 일을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먹는 음식이다. 즉 간식(間食)이다.
새참은 지금처럼 우유, 두유, 빵, 커피는 없고 그 대신 만들어 먹어야 했다.
바깥일을 하는 일꾼들 못지않게 안에서 새참을 준비하는 누이동생과 어머니가 더 고생을 하였다.
오후 새참은 손칼국수였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손칼국수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밀가루 만드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맷돌에 밀을 넣고 돌려 가루를 만들었다. 맷돌로 갈아진 밀을 어머니는 체로 쳤다. 이 고운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을 하였다. 체로 친 밀가루는 희지 않고 갈색을 띄었다. 밀껍질이 맷돌에 갈렸기 때문이다. 맛은 흰색 밀가루 보다 더 좋았다.
밀가루 반죽은 힘을 들여 쫄깃쫄깃하게 해야 맛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반죽이 끝나고 잠시 있다가 주먹만큼 떼어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밀대로 되도록 얇게 미셨다.
나무 도마는 어머니와 가까이 매일 쓰다시피 하는 주방기구이다. 아버지가 예산 5일장에서 사온 대추나무 도마이다. 아버지는 "대추나무는 목질이 워낙 단단하여 칼자국이 나지 않는다. 단풍나무와 함께 주방용 도마로 많이 쓰이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밝은 황갈색을 띠는 대추나무 도마 윗부분에 불로 새긴 야채모양의 검정 화인(火印)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는 도마 위에서 칼로 파도 썰고, 마늘도 짓이기고, 생선도 자르고, 고기도 썰고, 호박을 채썰고, 무, 배추 등 김장용 채소를 써셨다.
그날은 반죽한 밀가루를 대추나무 도마 위에 놓고 2~3mm로 썰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인 양은솥과 콩밭 열무김치를 지게에 지고 들로 갔다.
나는 누이동생과 같이 아직도 펄펄 끓는 칼국수를 그릇에 담아 일꾼들에게 퍼주고 일꾼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무김치와 함께 다들 맛있다며 잘 먹었다.
기계로 만든 칼국수보다 그날 새참에 먹은 손칼국수가 맛이 있다. 그 이유가 있다. 대추나무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손으로 되도록 얇게 민 갈색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썰어서 만들므로 그곳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배어있고 갈색 밀가루에는 현미처럼 영양이 많은 밀껍질이 들어 있어 감칠맛이 났다.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연세대학교 졸업
교육계 30년 봉사
한국문학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미주한국일보 수기 우수상 수상
뿌리문학동인
저서 수필집<솔바람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