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마타 이치야(墨俣 一夜)성 전설은 거짓?"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공을 빼앗긴 "시바타 가츠이에와 사쿠마 노부모리의 실패" / 2월 21일(토) / 동양경제 온라인
NHK 대하드라마 ‘도요토미 형제!’에서는 천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생인 도요토미 히데나가를 중심으로, 전쟁국 시대 한가운데서 천하 통일을 이룬 형제들의 궤적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스미마타이치야(墨俣一夜) 성 축성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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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신이 맡아야 했던 '스미마타 요새' 건설 사업
『그림책 태공기』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을 그린 에도 시대 중기의 독본(소설)입니다. 그 안에는 영록 연간에 미노 사이토 가문을 공격하는 데 고심하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모습과 히데요시의 활약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노부나가는 미노 공격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스미마타에 요새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가신에게 내렸습니다. 요새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면 그곳의 ‘성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이 명령에 뛰어든 사람은 히데요시였지만, 오다 중신·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 信盛)는 히데요시에게 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스스로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노부나가는 노부모리의 제안에 기뻐하며 “5000명의 인부를 동원해 20일 안에 요새를 건설하라”고 명령합니다. 노부모리는 오다 영지에서 대나무와 나무를 베게 하고, 그걸 이용해 뗏목을 만들고 강을 건너 요새를 지으려 합니다(3000명을 경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본 사이토 씨는 병력을 내보내 사쿠마 세력을 야습. 불안정한 적진이기도 해서 사쿠마 세력은 방어에 나서지 못하고 퇴각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노부모리 대신 이번에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가 5,000명을 이끌고 요새 건설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사이토 씨의 군대가 야간 습격을 감행합니다. 카츠이에는 노부모리의 실수를 잘 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적군을 격퇴. 요새 구축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지만, 사이토 가문의 군대가 카츠이에 세력의 뒤쪽까지 진입해 있었고, 그곳에서 공격을 받자 급히 후퇴하게 됩니다.
두 차례의 실패를 겪은 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불러 “어떻게 스미마타에 요새를 세워야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히데요시는 “우리 인부를 쓰지 않고, 우리 대나무와 나무를 베지 않으며, 부대를 이끌어 7일 안에 스미마타에 요새를 세우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히데요시의 ‘모계’에 기대를 걸었던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요새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우선, 히데요시는 하치스카(蜂須賀)·이나다(稲田)·카지타(加治田)·히비노(日比野) 등 호족에게 명령해 미노국(美濃国)의 산들에서 ‘하룻밤 사이’에 많은 대나무와 나무를 스미마타 강으로 베어내게 합니다. 이어 1,000명의 인부에게 오와리에서 기둥과 들보 등을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하치스카 코로쿠(蜂須賀小六)의 인부를 데리고 미노에서 깊이 2장(약 300m)의 해자를 파게 하여, 그 토양을 요새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당연히 사이토 씨는 이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습니다. 또다시 수천 명의 군대가 공격해 옵니다. 하지만 하치스카 군대는 히데요시에게서 ‘계책’을 받았기 때문에, 사이토 가문의 군대를 크게 괴롭혔다고 『그림책 태공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기는 6월 중순이었고, 비가 많이 내려 강가의 모습이 온통 진흙투성이였습니다. 진흙탕 속 전투가 힘들 것이라고 가정하고, 히데요시는 병사들에게 짚신을 신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맑은 날을 노려 한 번에 스미마타로 진군합니다. 사이토 세력은 이를 습격하려 했지만, 진흙에 막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한편, 히데요시 진영은 짚신 덕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사이토 진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히데요시 일행은 준비해 두었던 석축과 각종 자재를 재빠르게 운반해, 하룻밤 사이에 요새 건설을 성공시켰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스미마타 요새에 사이토 진영은 간담이 서늘해서 “이것은 요괴의 짓인가”라며 놀랐었고, 요새를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다고 같은 책에 적혀 있습니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의 요새 건설을 기뻐하며 그 공적을 크게 칭송했고, 하치스카 코로쿠 등에게도 금과 은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스미마타 이치야(墨俣一夜)성’에 얽힌 일화입니다.
■ "스미마타에 하룻밤 만에 성을 지었다"는 일화는 창작
하지만 각색이 많은 에도 시대의 독본에 적힌 내용이므로, 실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참고로 히데요시 전기 『태공기』에는 히데요시가 스미마타에 하룻밤에 성을 쌓았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히데요시가 나가오카의 미노 정복에 나서면서 어떤 움직임을 보였을(예를 들어 급히 소규모 요새를 만든)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스미마타에 하룻밤 만에 성을 만든 것은(1차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음) 창작으로 판단됩니다. 히데요시의 군사적 재능을 강조하기 위해, 후세에 이런 일화가 창작된 것이겠죠.
오와리국의 토호·마에노 가문의 동향을 기록한 군기 『무공야화』에도, 스미마타 일야성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공야화』도 ‘위서’라는 평가를 받아 신뢰성이 높지 않은 사료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부분도 많고, 양질의 사료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와 관련된 1차 사료의 공백을 메우는 참고 사료로서는 귀중한 것이며, (중략) 위서·위문서로 단순히 버리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후지타 타츠오 『히데요시 신화를 뒤집다』 코단샤(2007년)라는 역사가의 평가가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 히데나가(秀長)의 일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참고 자료
참고로 『무공야화』에는 히데요시의 동생인 코이치로 히데나가(小一郎秀長)의 일화도 담겨 있습니다. 히데요시와 비교했을 때 관련 사료가 적은 히데나가. 필자 역시 『무공야화』가 슈초와 관련된 일차 사료의 공백을 메우는 참고 사료로서도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무공야화』에 그려진 히데나가가 ‘허상’이었다 하더라도, 그 ‘허상’을 통해 히데나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참고문헌 목록)
・ 와타나베 세이유 『풍태공의 사적 생활』(소겐샤, 1939년)
・ 쿠와다 타다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연구』 (각코다와 서점, 1975년)
・ 쿠다타 타다오 『쿠다타 타다오 저작집』 제5권(아키타서점, 1979년)
・ 쿠와다 타다오 편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든 것』(신인물왕래사, 1981년)
・ 신인물왕래사 편『도요토미 히데나가의 모든 것』(신인물왕래사, 1996년)
・ 후지타 타츠오 『히데요시 신화를 뒤집다』(코단샤, 2007년)
・ 와타나베 다이몬 『히데요시의 출신과 승진 전설』(요센샤, 2013년)
・ 시바 히로유키 편저 『도요토미 히데나가』(에비코쇼 출판, 2024년)
・ 하마다 코이치로 『히데요시와 히데나가, 천하 통일의 궤적』(내외출판사, 2025년)
하마다 코이치로 역사학자, 작가, 평론가
「墨俣一夜城の伝説はウソ?」豊臣秀吉に手柄とられた“柴田勝家と佐久間信盛の失敗”
「墨俣一夜城の伝説はウソ?」豊臣秀吉に手柄とられた“柴田勝家と佐久間信盛の失敗” / 2/21(土) / 東洋経済オンライン
墨俣一夜城(写真:GLP / PIXTA)
NHK大河ドラマ「豊臣兄弟!」では、天下人・豊臣秀吉の弟である豊臣秀長を中心に、戦国時代のど真ん中で天下統一を果たした兄弟の軌跡にスポットライトがあてられています。今回は豊臣秀吉による墨俣一夜城築城の逸話を紹介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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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重臣が担うはずだった「墨俣の砦」建設事業
『絵本太閤記』は、豊臣秀吉の生涯を描いた江戸時代中期の読本(小説)です。その中には、永禄年間に美濃斎藤氏攻めに苦慮する織田信長の姿と秀吉の活躍が描かれています。
それによると、信長は美濃攻めの足がかりとするために、墨俣に砦を築くことを家臣に命じます。砦を築くことに成功すればそこの「城主」にするというのです。
この命令に飛び付いたのが秀吉でしたが、織田重臣・佐久間信盛は秀吉に手柄を奪われまいと自らその役目をかって出るのでした。
信長は信盛の申し出に喜んで「5000の人夫をもって、20日間で砦を築く」ことを命じます。信盛は織田領にて竹木を切らせ、それでイカダを組んで川を渡し、砦を築こうとします(3000人を護衛としたそうです)。
ところがそれを見た斎藤氏は兵を繰り出し、佐久間勢を夜襲。不案内な敵地でもあり、佐久間勢は防戦ならず、退却の憂き目を見るのでした。
信盛に代わって今度は、柴田勝家が5000人を率いて、砦の構築に挑みます。そして今回も、斎藤氏の軍勢は夜討ちを仕掛けてくるのです。勝家は信盛の失敗をよく見ていましたから、少しも騒がず、敵勢を撃退。砦の構築は成功するかに見えましたが、斎藤氏の軍勢は勝家勢の背後にも回り込んでおり、そこから攻められたことから、あわてて撤退することになります。
2度の失敗をうけて、信長は秀吉を召して「どのようにして墨俣に砦を築くべきか」と尋ねます。すると秀吉は「当家の人夫を用いず、当国の竹木を切らず、手勢を引き連れて、7日の内に墨俣に砦を築いてみせましょう」と豪語。
秀吉の「謀計」に期待した信長は、秀吉に砦の構築を命じるのでした。
まず、秀吉は、蜂須賀・稲田・加次田・日比野といった豪族に命じて、美濃国の山々より「一夜の内」に多くの竹木を墨俣川へ切り落とさせます。続いて、1000人の人夫に尾張にて柱や棟木などを作らせます。そして、蜂須賀小六の人夫をもって、美濃において深さ2丈の堀を掘らせ、その土を砦の土台としたのでした。
当然、斎藤氏はこの動きを見逃すはずはありません。またもや、数千の軍勢でもって、攻め掛かってきます。しかし、蜂須賀の軍勢は秀吉より「計策」を授けられていたので、斎藤氏の軍勢を散々に悩ましたと『絵本太閤記』にはあります。
時は「6月中旬」のことであり、雨がよく降り、川辺の有様はことごとく泥土にまみれていました。泥濘の中での合戦は難儀ということを想定し、秀吉は兵卒に藁靴を履かせていたそうです。
そして晴れた日を狙って一気に墨俣に進軍します。斎藤勢はこれを襲撃しようとしますが、泥土に阻まれ、進退自由ならず。
一方、秀吉勢は藁靴のお陰で自由に動くことができたので、斎藤勢を蹴散らすことができたのでした。
その後、秀吉勢は用意していた石垣・諸材を素早く運び込み、一夜のうちに砦の普請を成就させたのです。一晩のうちに忽然と出現した墨俣の砦に斎藤勢は肝を冷やし「これは天狗鬼神の所為か」と驚き、砦をすぐに攻撃することはなかったと同書にはあります。
信長は秀吉の砦構築を喜び、その功績を大いに賞し、蜂須賀小六などにも金銀を与えたとも記されています。これが有名な「墨俣一夜城」の逸話です。
■ “墨俣に一夜で城を作った”逸話は創作
しかし、脚色が多い江戸時代の読本に書かれていることですので、本当の出来事とは考えられていません(ちなみに秀吉の伝記『太閤記』には、秀吉が墨俣に一夜で城を築いたという逸話は記載されていません)。
秀吉が信長の美濃攻略に際し、何らかの動きをした(例えば急いで小規模な砦を作った)ことは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墨俣に一夜で城を作ったというのは(一次史料には記載されておらず)創作と考えられます。秀吉の軍事的才能を強調するため、後世、このような逸話が創作されたのでしょう。
尾張国の土豪・前野家の動向を記した軍記『武功夜話』にも、墨俣一夜城に関する詳しい記述があります。ところが『武功夜話』も「偽書」という評価もあり、信頼性が高くない史料です。とは言え「荒唐無稽な部分も多く、良質な史料とはいいがたいかもしれないが、信長や秀吉に関する一次史料の空白を補う参考史料としては、貴重なものである(中略)偽書・偽文書として切り捨てるだけの時代は、とうの昔に終わっている」(藤田達生『秀吉神話をくつがえす』講談社、2007年)という歴史家からの評価があることもまた事実であります。
■ 秀長の逸話を知る貴重な参考資料
ちなみに『武功夜話』には秀吉の弟・小一郎秀長の逸話も盛り込まれています。秀吉と比べて関連史料が少ない秀長。筆者も『武功夜話』は秀長に関する一次史料の空白を補う参考史料としても貴重なものであると考えています。
『武功夜話』に描かれた秀長が「虚像」だったとしても、その「虚像」から秀長について様々考えることもできますし、そこから我々が学べることもあると思うのです。
(主要参考文献一覧)
・渡辺世祐『豊太閤の私的生活』(創元社、1939年)
・桑田忠親『豊臣秀吉研究』(角川書店、1975年)
・桑田忠親『桑田忠親著作集』第五巻(秋田書店、1979年)
・桑田忠親編『豊臣秀吉のすべて』(新人物往来社、1981年)
・新人物往来社編『豊臣秀長のすべて』(新人物往来社、1996年)
・藤田達生『秀吉神話をくつがえす』(講談社、2007年)
・渡邊大門『秀吉の出自と出世伝説』(洋泉社、2013年)
・柴裕之編著『豊臣秀長』(戎光祥出版、2024年)
・濱田浩一郎『秀吉と秀長 天下統一の軌跡』(内外出版社、2025年)
濱田 浩一郎 :歴史学者、作家、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