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숨은 영웅들
#1. 속속 밝혀지는 안타까운 이야기들
7살 오빠의 6살 여동생 구출기, 권혁규 권지연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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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한 네티즌이 그린 남매 일러스트(좌)와 구조된 권지연양 |
세월호에서 성인용 구명조끼에 싸인 채 극적으로 구조된 6살 권지연 양. 많은 승객들의 도움으로 구조 된 권양은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중이었다. 부모님 그리고 한 살 많은 오빠와 함께 배를 탔지만 구조된 건 권양뿐이다. 특히 아이는 “오빠가 구명조끼를 입혀줬다”고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권양의 어머니 한윤지 씨는 베트남 출신 여성으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뒤 한국으로 귀화했다. 공단이 많았던 안산에는 이처럼 다문화 가정이 많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들을 키울 계획으로 제주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 제주시 한림읍에 드디어 집을 마련한 부부는 가족을 데리고 세월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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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통해 퍼진 남매의 모습 | 권양의 사연을 접한 태국의 한 네티즌이 7살 오빠와 권양의 마지막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 인터넷에 올렸다. 물이 차오르는 바닥에 앉은 남자 어린아이가 자신 보다 어린 여자아이를 꼭 안고 안심시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림 아래에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gonna be alright)라고 적혀 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오빠 무슨 일이야?(Brother, what’s going on?‘이라 묻는 권양에게 오빠가 ’다 괜찮아 질 거야, 약속할 게 (Everything’s gonna be fine, I promise)’라며 안아주고 있다.
결혼 앞둔 선상커플, 한 날 한 시에 떠나다. 故 김기웅․ 정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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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놓인 두 사람의 사진 |
선내에서 불꽃놀이를 담당했던 선상 아르바이트 직원인 김기웅씨와 세월호 승무원인 정현선씨는 28살 동갑내기 커플이다. 오는 9월 결혼을 약속했던 두 사람은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기웅 씨는 제대한 뒤 배 위에서 불꽃놀이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세월호 승무원이던 정현선 씨를 4년 전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기웅 씨가 올해 대학을 졸업하면 가정을 꾸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인 16일, 기웅 씨는 세월호가 아닌 오하나마호(사고 회사인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제주’간 여객선)에 승선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이벤트 일정이 잡히면서 15일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되돌아왔고, 그날 저녁 세월호에 승선했다고 한다. 그리도 이튿날, 남은 생의 불꽃을 채 터뜨려보지도 못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기웅씨와 함께 예비신부인 현선씨도 시신으로 발견됐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김씨의 친구는 물이 들이찬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양가 부모들은 곧 영혼결혼식 일정과 절차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깎이 신혼부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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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에 보도된 신혼부부의 안타까운 사연 |
경기도 안산 한 컴퓨터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이도남-한금희씨 부부의 사연도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두 사람은 빠듯한 형편 탓에 결혼 1년여 만에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다고 한다. 알뜰히 모은 돈으로 한 달 전 마련한 국산 경차와 함께 15일 세월호에 올랐다. 안개로 예정보다 출항이 늦어지면서 부부는 배에서 내리려고 하차를 요청했지만, 세월호측이 차를 실은 이상 뺄 수 없다고 해 결국 다시 배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 한 생명이라도 더.. 세월호 안에서 일어난 숭고한 희생
사고 후 속속 드러난 선장과 승무원들의 비뚤어진 리더십, 정부의 늑장대처와 언론의 허위보도 등이 남아있는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이들의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선장 떠난 뒤 배 지킨 사무장 故 양대홍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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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구하고 숨진 사무장 고 양대홍씨(좌)와 그의 아내(우) |
선장을 비롯해 가장 먼저 탈출한 세월호 승무원들에게 온국민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탑승객에 대한 서비스 총괄 업무를 담당했다는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 유족인 그의 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의 마지막을 이렇게 증언했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3분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통장에 돈이 있으니 애들 등록금 하라’고... 상황이 어떠냐고 했더니 ‘애들 구하러 가야 한다’... 그리고 끊었어요. 그 이후 전화나 문자를 해도 안 받았어요.그냥 애들을 구할 생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고, 탈출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그가 아내와 통화를 했던 16일 오전 10시 3분에는 이미 배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기울어져 있을 때다. 양 사무장은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고인이 평소 “남을 아낄 줄 알고 사명감이 투철했다”면서 "먼저 사고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해 탑승객의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너희들 다 보내고 난 마지막에 갈게, 승무원 故 박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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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그를 의사자로 지정하자는 청원 운동이 진행중이다 |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학생들을 대피시키며 승무원의 책임을 다하고 숨진 고 박지영씨, 이제 고작 스물 두 살이었던 이 막내 승무원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변을 당했다. 한 생존 학생은 “사고 당시 ‘너희를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고인이 모교인 수원과학대 명예졸업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원과학대학교는 “고인이 평소에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했고, 같이 입학했던 동기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있어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 박지영 씨는 2011년 수원과학대 산업경영학과에 입학,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가정 형편 때문에 휴학한 뒤 청해진해운사에 입사해 승무원으로 일해 왔다. 현재 승무원 박지영 씨를 의사자로 지정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하자는 네티즌 10만 명 청원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의 스승, 아이들 구하고 떠난 故 남윤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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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 설치된 남윤철 교사의 추모장 |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구하고 본인은 배에 남아 희생된 고 남윤철 교사에 대한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1979년생, 올해 나이 서른 여섯인 고 남윤철 교사는 청주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했다. 사고 당시 남 교사는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기울어진 배 안에서 난간에 매달린 채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아이들을 보호하려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황한 학생들에게는 “침착하라”고 다독인 뒤 아이들을 탈출구로 내보내려 노력했다. 급격히 기울어진 선체에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도 남 교사는 아이들이 있는 선실로 다시 돌아와 학생들을 비상구 쪽으로 인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구한 학생들은 20명 남짓, 정작 남 교사는 사고 이튿날인 17일 오전 세월호 후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가 나온 청주 신흥고등학교 총동문회 SNS에는 ‘우리 동문의 의로운 죽음을 받들자. 편히 쉬시길’, ‘학생 20여명을 구하고, 심지어 자신의 구명조끼까지 학생에게 벗어주다니’, ‘모교의 슬픔이다. 후배님 영면하시길’ 등의 글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그의 후배인 청주 신흥고등학교 학생들은 21일 추모식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남 교사의 청주 대성초등학교 은사도 제자를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남윤철 교사의 초등학교 스승으로 알려진 이현호 씨는 SNS에 '훌륭한 나의 제자 남윤철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한 편의 글을 올렸다. “세월호 사망자 명단을 보던 중 낯익은 이름이 있어 확인을 해보니 25년전 청주 대성초 재임 시절 제자였던 윤철이란 사실을 알았다. 눈물이 나 수업을 하기도 어려웠다.. 어린 시절 명랑하고 공부도 잘하고 의리 있는 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 되어서도 반 학생들을 구하고 본인은 안타까운 죽음을 택한 훌륭한 이 시대의 스승.. 제자이기에 앞서 정말 존경스런 선생님이었다.” 라는 글이다. 남윤철 교사의 시신은 20일 청주목련공원에서 화장된 뒤 충북 청원군 가덕면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첫 제자들과의 마지막 여행, 故 최혜정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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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혜정 교사의 발인식 |
첫 제자들과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한 교사도 있다. 올해 스물 다섯인 최혜정 교사. 그녀는 지난해 동국대 역사교육과를 수석 졸업했고 재학 중 임용시험에 합격해 안산 단원고 2학년 담임교사로 재직하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최씨는 급박한 사고 상황에서도 SNS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걱정하지 말라,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전하며 학생들을 안심시키고 구출에 전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2년차 교사인 최씨는 1학년 때부터 같은 학생들의 담임을 맡아 왔고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 했다.
최혜정 씨의 발인은 19일 오전 8시 50분께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최씨의 유가족과 제자 등 100여 명이 함께 했다. 최씨의 유가족들은 “세 남매의 장녀로 집안의 기둥이었다”며 “일찍 철든 딸이 늘 자랑스러웠는데 딸을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고인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후 경기도 화성시 효원납골공원으로 옮겨져 안장될 예정이다.
구명조끼, 구조헬기를 친구에게 양보한 학생들 故 정차웅 , 조대섭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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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에 보도된 정차웅 학생 |
진도 여객선 침몰 사망자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은 친구를 구하려고 몸을 던졌다 끝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차웅 군은 본인이 먼저 살아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넸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정 군은 평소 부모님의 속을 한번도 썩인 적 없던 모범생이었으며, 검도 3단 유단자로 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특히, 덩치가 커 '웅이'로 불리던 활달한 성격의 학생이었으며, 친구들을 잘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고 2학년 조대섭 군도 배가 기울자 구명조끼를 여객선 안 쪽에 있던 여학생 방을 찾아다니며 조끼를 나눠주고 복도에 있는 어린아이에게도 구명복을 입혔다고 전해진다. 조 군은 구조헬기가 도착한 후 주변의 여학생들을 먼저 보냈고, 자신은 바닷물이 가슴에 차오를 때까지 배에 남아 20여 명을 구한 뒤에야 구조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조대섭 학생은 현재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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