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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여우(守之如愚)
(자기 몸) 지키기를 어리석은 듯이 한다는 말이다.
守 : 지킬 수(宀/3)
之 : 갈 지(丿/3)
如 : 같을 여(女/3)
愚 : 어리석을 우(心/9)
자기 몸 지키기에 어리석은 듯이 한다는 뜻으로, 아는 사람은 자기 멋대로 오만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수렁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 말은 지식인이 겸허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노자가 말한 "총명하고 지혜 있고 슬기로운 자는 자기 몸 지키기에 어리석은 듯이 한다(聰明慧智 守之如愚)"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몰라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알지만 오만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은 겸허하며 물어가면서 문제를 조심스럽게 해결하기에 큰 탈이 적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자기 멋대로 오만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수렁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 말은 지식인이 겸허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해방 후 계속된 의무교육의 확대는 이제 문맹자가 제로에 가까울 만큼 사라졌다. 이제 젊은 세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도 없다. 만약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탓이 아니다. 거의 100% 가깝게 개인적인 탓일 수 있다. 배움의 의지만 있다면 국가와 사회는 그 배움을 지원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대학 졸업자가 많다. 고등학교 졸업자와 대학 입학자 수가 거의 같다. 앞으로는 대학도 학생모집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대학이 팽창되어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모두가 고등교육의 혜택까지 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이다.
대학 졸업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식인이 넘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똑똑해졌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운 자는 많은데, 똑똑한 자는 넘치는데, 진짜 똑똑한 자들은 넘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아는 것이 힘이 되고 인격이 되어야 하는데 아는 것이 세상을 갈라치고, 아는 것이 서로 다투게 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지식은 있는데 참된 지식은 숙성되지 못하고, 지식인은 넘치는데 참된 지식인은 길러내지 못했다. 지식인은 넘치는데 지혜인은 길러지지 못했다. 지식은 인격을 연마하고 삶을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단순히 삶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도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1% 이내의 똑똑한 사람들의 집단인 의사는 넘쳐나는데 참된 의술을 펴는 의사는 줄어든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본의 노예가 되어간다.
이런 것도 또한 하나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배운 자들이 배움을 바탕으로 바른 삶을 살고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며 정직과 성실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그 배움이 도구적 배움에 그치고 배움을 이용하여 이기심과 사회적 정쟁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이유는 배움의 내면이 요구하는 지혜와 겸허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쩌면 가을 추수를 한 낱알의 곡식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을 많이 가졌다는 것은 창고에 그 곡식의 낱알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았다는 것이다. 창고에 쌓아놓은 곡식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려면 올바른 곳에 마땅한 때에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자랑하거나 타인의 우위에 있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식은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성숙의 과정을 거친 것이 지혜가 된다.
지식인은 진짜 총명한 자가 못 된다. 진짜 총명한 자는 지혜인이다. 지식을 도구로만 이용한 자는 언젠가는 그 지식으로 인해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지식에는 겸허와 지혜가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도 지식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공자도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고 하여 지식인의 겸허함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젊은 날에 너무 일찍 성공하면 대부분 오만해진다. 그리고 그 오만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흉기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겸허다. 예로부터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듯이 ‘진짜 총명한 사람은 총명함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며 어리석은 듯이 한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수지여우(守之如愚) 한다는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聰明慧智 守之如愚(총명하고 지혜 있고 슬기로운 자는 자기 몸 지키기에 어리석은 듯이 한다.)라 하였다. 聰明慧智(총명혜지)에서 聰明(총명)하려면 배워야 한다. 총명은 천지 만물과 인간사의 이치를 알고 깨우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이 배워야 한다. 스스로 탐구하고 궁리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지식을 충만하게 갖추는 가운데 총명함이 깃든다. 그래서 예로부터 배움을 강조하였다. 노자가 무위(無爲)로 돌아가라고 하였지만, 그 무위(無爲)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배움과 궁리궁행(窮理躬行)은 절대 필요했다.
慧智(혜지)는 지혜 있고 슬기로운 것이다. 세상사 온갖 문제에 접하면서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배운 것(아는 것)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올곧게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겸허함이 절대 필요하다. 공자가 말한 중용(中庸)의 도(道)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중용은 물리적으로 중간이 아니라 성실함이 적절하게 충만한 것이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때에 따라서 부족할 때보다 넘칠 때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守之如愚(수지여우) 즉 어리석은 듯이 하라고 했다. 그래야 소중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지부지(知不知)를 강조하였다 (노자 도덕경 제71장) 노자가 말한 지부지(知不知)의 세계를 보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최상이요,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대저 오로지 병을 병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병이 없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병이 없으니 그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없는 것이다.(知不知上이요 不知知病이니 夫惟病病이다. 是以로 不病이다. 聖人은 不病이니 以其病病이다. 是以로 不病이다)<老子 道德經 제71장>”
위에서 중심이 되는 말은 知不知(지부지)와 不知知(부지지)이다. 知不知(지부지)는 알고 있으면서도 아는 체하지 않는 겸손의 미덕을 말하는 것이다. 不知知(부지지)는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오만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오만하지 말고 겸손할 것을 강조한 것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의 미덕임을 강조한 것이다. 만약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것은 대단한 병(病)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병(病-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병(病)으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병(病)을 병(病)으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다. 많이 배우고 수양의 도(道)에 이른 성인(聖人)은 병(病)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병(病-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병(病)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것이 매우 큰 병임을 잘 알고 이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이는 겸손을 최상의 미덕으로 강조한 것이다. 노자의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모든 배움과 수양은 겸손의 미덕을 몸에 익히기 위함이다.
반면에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孔子 論語 爲政>” 고 하였다. 이 또한 겸허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지만 노자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공자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라지만, 노자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겸양의 미덕을 강조한 맥락에 있어서는 같은 말이다. 다만 노자가 겸손의 미덕을 더 강조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노자가 말한 지부지(知不知)의 변은 그것이 곧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길이며 최상의 도(道)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은 최상의 겸손을 실천하는데 있다. 모든 병은 아는 체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도 아는 체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인은 바로 그 도에 이른 사람이기에 모든 병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에서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하였다. 살아가다 보면 식자우환(識字憂患)인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안다고 함부로 나서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고, 어설프게 아는 지식을 잘못 말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옛날 왕권 치하에서는 함부로 아는 체하였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 또한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다.
예로부터 德先才後(덕선재후) 즉 ‘재주보다 덕이 우선이다’고 하였다. 그것은 재주가 있고 총명하면서도 덕(德-착함)이 없는 것보다 재주는 부족하더라도 착함이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옛날의 교육은 德先才後(덕선재후)의 교육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당에 가거나 서원에 들어가면 행실의 기본 교육부터 하였다. 소학(小學)에서도 소제(掃除) 즉 청소하는 것부터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德先才後(덕선재후)가 아니라 재선덕후(才先德後)이다. 재주를 먼저 가르치고 덕은 나중에 가르친다. 아예 덕(德)은 가르치지 않는다. 재주에만 몰입하기에 교권 추락이라는 현시점의 사회적 문제도 일으킨 것이다. 학교 교육은 인성이 망가진 아이를 많이 생산하기도 한다. 그것은 순전히 학교 탓만은 아니다. 부모와 국가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자녀교육과 학교 교육의 중심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라 하지만 오늘날 교육은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지식교육에만 매진하고 있다. 그것은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간성 상실의 교육을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삶을 이루고 지배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습관이다. 학자들이 말하기를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학력은 15% 정도가 작용하고 그 성공을 뒷받침하는 85%는 삶의 태도와 습관이라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은 지식도 작용하지만, 태도와 습관이 지배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태도와 습관은 바로 삶의 지혜이며 덕(德)이다. 그리고 그 덕의 중심에 겸손의 미덕이 자리 잡고 있기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알지만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자기 연찬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 연찬의 노력이며 그 연찬의 중심에는 겸손의 미덕이 도사리고 있다. 다 안다고 여기면 더 공부할 것이 있겠는가?
두 번째는 학습하는 자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아는 것을 내세우고 타인에게 말하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식을 가슴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입으로만 습득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날 넘쳐나는 지식은 표피적인 지식이다. 입으로는 지식을 말하지만,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지식인이 넘친다. 그것은 단순히 알기 위해 학습하는 것이지 깨닫기 위해 학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알고 나서 깨닫는 것이다. 깨닫는 학습에는 겸손과 인내가 깃든 학습이다.
세 번째, 요즈음 사람들의 지식을 대하는 마음은 조급하다. 빨리 많은 것을 접해야 한다.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긴 글이나 무게감이 있는 철학 서적이나 역사 서적 등은 골치 아프다고 읽지 않는다. 짧고 재미있는 글을 우선한다. 그러니 지식은 있지만 체계화되지 못하고 지식인은 넘치지만, 개념화된 지식인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식은 어떤 것이든 깊고 오묘한 구석이 있다. 그런 깊고 오묘한 지식을 깨닫는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조급함으로 말을 달리듯 지식을 읽고 습득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따져 새기는 노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벽돌책 한 권을 평생 읽으면 어떠하랴. 그 세계를 체득할 수만 있다면.
네 번째, 평생학습의 자세다. 배움은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평생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평생 배움의 의지를 가진 사람은 평생 자기를 다스리고 연찬해 간다. 그래서 삶이 더욱 윤택해지며 겸손해진다. 이런 평생학습을 이루는 저변에는 겸손의 미덕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고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계속 공부하게 되어 있다.
F. 라블레는 “양심 없는 지식은 인간의 혼을 멸망케 한다(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고 하였다. 유명한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를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 하여 경계하였다. 모두 겸손의 미덕과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리라
노자는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였다. 공자도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였다. 소크라테스도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반추해 보면 나는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오만한가를 알 수 있다. 노자가 말한 수지여우(守之如愚)는 곧 겸손의 미덕이야말로 자기를 지키는 최상임을 강조한 것이리라.
우리는 아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루고 지키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진짜 총명하고 지혜로운(聰明慧智) 자는 겸손의 미덕으로 守之如愚(자기 몸 지키기에 어리석은 듯이 한다) 하리라. 지부지(知不知)의 참 의미를 새기고 실천하리라.
▶️ 守(지킬 수)는 ❶회의문자로 垨(수)는 동자(同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의 관청에서 법도(寸; 손, 손으로 꽉 잡는 일, 또는 치수, 규칙)에 따라 일을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직무를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守자는 '지키다'나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守자는 宀(집 면)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寸자는 又(또 우)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법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문에 나온 守자를 보면 집안에 寸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집을 '지킨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守자는 본래 '보호하다'나 '지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寸자가 가지고 있는 '법도'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다스리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守(수)는 (1)조선시대 때 관계(官階)가 낮은 사람을 높은 직위에 앉혔을 경우에 관계와 관직 사이에 넣어서 부르던 말. 가령 종2품(從二品)인 가선 대부다 정2품(正二品)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된다고 하면 가선대부 수 이조판서(嘉善大夫守吏曹判書)라고 서칭(書稱) (2)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두었던 정4품(正四品) 벼슬. 왕자군(王子君)의 증손(曾孫)들에게 주었음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다스리다 ②머무르다 ③기다리다 ④거두다, 손에 넣다 ⑤청하다, 요구하다 ⑥지키는 사람 ⑦직무, 직책(職責), 임무(任務) ⑧벼슬의 지위는 낮고 관직은 높음을 나타내는 말 ⑨지방 장관(지방에 파견되어 그 곳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 ⑩정조(貞操), 지조, 절개(節槪) ⑪임시, 가짜 ⑫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보(保), 막을 방(防), 좇을 준(遵), 지킬 위(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격(擊), 칠 공(攻)이다. 용례로는 지키고 보호함을 수호(守護), 절개를 지킴을 수절(守節), 일정한 지역이나 진지 등을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어 방비함을 수비(守備), 적을 맞아 지키는 형세 또는 힘이 부쳐서 밀리는 형세를 수세(守勢), 진보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따름을 수구(守舊), 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킴을 수직(守直),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법을 준수함을 수법(守法), 보기 위하여 지킴으로 관청이나 회사 등의 경비를 맡아 봄 또는 맡아보는 사람을 수위(守衛), 적의 공격 등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지킴을 수성(守城), 그대로 좇아 지킴을 준수(遵守),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굳게 지킴을 고수(固守),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공격과 수비를 공수(攻守), 후퇴하여 수비함을 퇴수(退守), 망을 봄으로 또는 그런 사람으로 교도소에서 죄수의 감독과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간수(看守), 경계하여 지키는 것 또는 그 사람을 파수(把守), 완강하게 지킴을 완수(頑守), 튼튼하게 지킴을 견수(堅守), 감독하고 지킴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守), 규칙이나 명령 등을 그대로 좇아서 지킴을 순수(循守), 중요한 곳을 굳게 지킴을 액수(扼守), 혼자서 지킴으로 과부로 지냄을 독수(獨守), 엄하게 지킴으로 어기지 않고 꼭 지킴을 엄수(嚴守), 행실이나 말을 제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을 자수(自守),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라는 뜻으로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수구여병(守口如甁),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진지만(守眞志滿), 묵적의 지킴이라는 뜻으로 성의 수비가 굳세고 튼튼함을 이르는 말 또는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을 일컫는 말을 묵적지수(墨翟之守),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을 뜻하는 말을 독수공방(獨守空房),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성(創業守成),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킴을 일컫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愚(어리석을 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에둘러 번거롭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禺(옹, 우)로 이루어졌다. 마음의 움직임이 느림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愚자는 '어리석다'나 '고지식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愚자는 禺(원숭이 옹)자와 心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禺자의 사전적 의미는 '꼬리가 긴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사람과 닮았지만, 사람처럼 지능이 뛰어나지는 못하다. 그래서 愚자는 원숭이처럼 머리가 나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어리석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愚(우)는 ①어리석다 ②우직하다 ③고지식하다 ④어리석게 하다 ⑤나(자기의 겸칭) ⑥어리석은 사람 ⑦어리석은 마음 ⑧자기(自己)에 관계되는 사물에 붙이는 겸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리석을 당(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슬기 지(智), 어질 현(賢)이다. 용례로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놀림을 우롱(愚弄), 어리석고 둔함을 우둔(愚鈍), 어리석고 고지식함을 우직(愚直), 어리석고 몽매함을 우매(愚昧), 아주 어리석은 남자를 우물(愚物), 어리석은 남자를 우부(愚夫), 어리석은 사람을 우인(愚人), 어리석은 사람을 우자(愚者), 자기 아들의 겸칭을 우식(愚息), 어리석은 생각을 우견(愚見), 어리석은 백성을 우민(愚民), 어리석은 질문을 우문(愚問), 무지하고 포악함을 우악(愚惡), 매우 못나고 어리석음을 우애(愚騃),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음을 암우(暗愚),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범우(凡愚), 어짊과 어리석음을 현우(賢愚), 엄청난 바보를 상우(上愚), 아주 어리석고 못남 또는 그 사람을 하우(下愚), 크게 어리석음 또는 그러한 사람을 대우(大愚),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중우(衆愚),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석음을 혼우(昏愚),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을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라는 말을 우부우부(愚夫愚婦), 어리석은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이라는 말을 우문우답(愚問愚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는 말을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자도 한 가지 득은 있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자라도 수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하나쯤 쓸모 있는 생각도 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우자일득(愚者一得),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서로 속인다는 말을 우지상기(愚知相欺), 적고 어리석어 몽매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우몽등초(愚蒙等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우불이(下愚不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