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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삼손이 블레셋에 붙잡히고 두 눈이 뽑힘(사사기 16:15~22)
* 본문요약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를 사랑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날마다 졸라대자
삼손이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러다 결국 삼손은 자신이 나면서부터 나실인이어서 머리를 깎지 않았다며
머리를 밀면 힘이 없어진다고 알려줍니다.
들릴라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하고는 사람을 불러 삼손의 머리를 깎습니다.
삼손이 힘을 잃자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붙잡아 그의 두 눈을 뺀 후에
놋 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찬 양 : 86장(새 86) 내가 참 의지하는 예수
330장(새 272)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 본문해설
1. 삼손이 들릴라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음(15~17절)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그 말로(날마다 같은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끈질기게 졸라대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그리하여 삼손이 마침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16절) :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영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삼손은 이때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어야 했는데
여자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2. 삼손이 블레셋에 붙잡히고 두 눈이 뽑힘(18~22절)
18)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러나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셨다(20절) :
떠나간 것은 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21절) :
‘맷돌을 돌리게 하였다’의 문자적인 뜻은 ‘맷돌질하는 자가 되었더라’입니다.
영화에서 본 동물의 힘으로 돌리는 연자 맷돌은 로마시대부터 알려졌습니다.
당시 맷돌은 크고 넓적한 아래짝에
밀대 비슷한 방망이 모양의 위짝을 밀거나 굴려서 빻거나
주먹만 한 돌로 곡식을 빻거나 갈았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맷돌로 곡식을 빻으려면 무릎을 꿇거나 쪼그리고 앉아야만 합니다.
엄청난 괴력의 사나이 삼손이 두 눈이 뽑힌 채 이런 모습으로 곡식을 빻는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고 치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22절) :
머리털이 자라면 잃었던 힘이 곧바로 다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야 힘이 다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머리가 자랐으니 그에게 힘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삼손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을 제시한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삼손의 몰락
삼손이 세 번째 여자인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의 삶의 마지막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삼손의 몰락은 삼손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영적인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느슨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삼손처럼 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손의 몰락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된 삼손 : 번뇌의 괴로움은 아직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16절)
머리카락 일곱 가닥과 베틀의 날실을 섞어 짠 것으로 단단히 묶으면
힘이 없어질 것이라는 삼손의 세 번째 말도 거짓말로 드러나자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힘의 비밀을 알려주기 전에는 삼손의 사랑을 믿지 않겠다’며 매일 졸라댔습니다.
이에 삼손은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됩니다.
삼손이 번뇌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영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삼손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들릴라의 유혹이 상당히 강하게 삼손의 심령에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으로 치면 아직은 살아있지만
당장 치료하지 않고 이대로 두면 결국 죽고 마는
상당히 중한 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회개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경고하기 위해 마음에 번뇌를 주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죽을 것 같은 마음의 번뇌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것 같은 고민과 번뇌가 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영적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임을 알리는 경고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번뇌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2) 욕망의 소리에 굴복한 삼손 : 그는 결국 파멸을 택하였다(18절)
➀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들릴라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마음에 죽을 것 같은 번뇌를 주신 것은
시급하게 하나님을 찾으라는 경고의 신호였는데,
삼손은 끝내 그 신호를 거부하고 들릴라를 택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삼손이 기도하지 않은 것은,
그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릴라는 자기 곁에서
영원히 떨어뜨려 놓으실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➁ 죄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 이것이 바로 마귀의 독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죄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면
그 향락의 즐거움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기 직전에
예레미야가 목 놓아 주께 도움을 청하라고 호소했지만,
이스라엘이 끝내 기도를 거부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에는 죄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 묵상 : 회개의 마지막 기회까지 놓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회개할 수 있는 한계점(임계점)을 넘기 전에 주께로 돌아오십시오.
그 기회를 놓치면 영영 회개를 할 수 없는 악령에 빠진 자가 되고 맙니다.
3) 삼손의 순진한 생각 : 들리라에게 털어놓으면 계속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
그러면 그 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죄의 즐거움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까?
본문은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삼손을 통해서 죄에 빠진 사람들의 이런 순진한 생각을 봅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털어놓으면
들릴라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삼손은 이제 모든 것을 털어 놓았으니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녀의 사랑을 받을 꿈에 젖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달콤한 잠에 빠집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하고는
일곱 가닥으로 땋은 삼손의 머리를 몽땅 밀어버렸습니다.
➠ 만일 하나님께 기도하면 : 하나님께서 그 죄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결국은 그 죄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 죄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잠시 갈등을 겪기는 하겠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독이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어두음을 벗게 됩니다.
지금 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보면
그 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삶의 즐거움이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하늘의 신령한 기쁨을 알게 됩니다.
그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면
죄에 빠졌던 과거를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삼손처럼 죄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영영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 묵상 : 죄의 마지막은 결코 기쁨도 즐거움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죄는 결코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죄의 결과는 파멸이고 사망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 삼손을 몰락시키는 들릴라의 빠른 움직임(20~21절)
삼손의 머리를 모두 밀고 난 후에 들릴라가 삼손의 몸을 조금 괴롭게 해보고는
그에게 힘이 모두 빠진 것을 확인합니다.
들릴라는 즉시 블레셋의 다섯 왕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삼손은 곧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블레셋의 가사로 끌려갑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사랑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말했지만,
들릴라는 그 말을 듣고 삼손을 몰락시키는 일을 발 빠르게 행하였습니다.
● 묵상 :
이처럼 우리가 마귀가 놓은 덫에 걸리면
마귀는 들릴라처럼 발 빠르게 움직여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놓은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2. 여호와께서 삼손을 떠나셨다
1) 여호와께서 삼손을 떠나셨다(20절)
삼손의 머리를 자른 것은 들릴라이지만
들릴라가 삼손의 힘을 빼앗아 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힘이 삼손에게서 스스로 나갔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힘이 나간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가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나가시니 삼손에게 힘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삼손의 머리카락은 ➠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삼손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최소한의 규범이며, 또한 상징물이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기 위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규범이었던 것처럼,
삼손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범들 중에 마지막 최후의 규범이었습니다.
그 규범을 어기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삼손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힘써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3. 비참해진 삼손 :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고(21절)
사랑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는데
삼손에게 온 현실은 비참한 파멸이었습니다.
일단 삼손이 힘을 잃자 곧바로 블레셋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두 눈을 뽑고는 놋 사슬로 묶어 가사의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곳에서 삼손은 맷돌을 갈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연자 맷돌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연자 맷돌은 로마 시대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개역성경에 '맷돌을 돌렸다'의 히브리어 원어를 직역하면
'맷돌질하는 자가 되었다'입니다.)
당시 맷돌은 납작하고 넓은 아랫돌에 밀대 모양으로 밀거나
주먹만 한 매끈한 돌로 빙빙 돌리며 곡식을 빻았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무릎을 꿇거나 쪼그리고 앉아야만 합니다.
엄청난 괴력의 사나이 삼손이 두 눈이 뽑힌 채 무릎을 꿇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조그만 돌을 잡고 빙빙 돌리며 곡식을 갈고 있는 장면은
참으로 비참하고 치욕적인 모습입니다.
● 묵상 :
이것이 바로 죄의 즐거움을 벗지 못해
기도하는 것도 거부하며 머뭇거린 결과입니다.
내 힘으로 죄를 벗지 못하겠거든 주께 도움이라도 청해야 합니다.
이것까지 거부한 자는 이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4. 번뇌의 때에 주께 도움을 청하라
1) 그러므로 아직 고민하고 있을 때 주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아직 최종적인 심판이 오지 않았을 때,
아직 내 마음에 번민이 있을 때,
아직 죽을 것 같은 아픔이 내 안에 남아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죄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사나 싶겠지만,
하나님께서 더 큰 즐거움을 주시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면만 먹던 사람이 라면 없으면 죽을 것 같겠지만
세상에는 더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는 이 세상의 죄의 즐거움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2) 죄의 즐거움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마음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들릴라가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마음을 마귀가 삼손에게 넣었습니다.
삼손은 마귀가 주는 그 생각에 속아 이런 비참한 결과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 묵상 :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마귀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자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달콤한 즐거움으로 유혹하겠지만
일단 마귀의 먹잇감이 되면 그다음에는 파멸뿐입니다.
5. 다시 자라는 머리털
1) 다시 자라기 시작한 머리털(22절)
그러나 본문의 마지막 절인 22절은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마치 베토벤 전원 교향곡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장면의 모습과 같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폭풍우 속에 있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전원의 풍경을 그리는 음악이
플루트와 오보에와 클라리넷 등을 통해서 저 멀리에서 들려오듯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고통에 빠진 삼손에게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 기도하고 난 후에
손바닥만 한 구름이 떠올랐던 것과도 같습니다.
2) 그러나 삼손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삼손이 끝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죄에 빠져 있다면
머리카락이 이전처럼 자란다고 하더라도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손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기록한 것은
삼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해서 삼손에게 곧바로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삼손의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삼손을 아직 완전히 잊으신 것이 아님을 표현하였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의 현장에서,
그 광야의 아픔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 묵상 : 우리도 죽을 것 같은 그 고통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한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내일도 살아있을지
내 생명이 모레나 글피까지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개의 기회일지 모릅니다.
회개를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께서 성령을 선물로 보내십니다.
* 기도제목
1. 삼손처럼 죄의 즐거움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빠져 있지 말게 하옵소서.
2. 기도까지 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말고
지금 당장 입을 열어
주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3. 지금이 내가 회개할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지금 당장 주님을 찾고 부르는 기도를
시작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