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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란광장 원문보기 글쓴이: 엄지와지원이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정원 직원 상조회인 양우공제회의 실체 일부가 <월간중앙>취재결과 드러났다. 자본금 30억원의 이 단체가 운용하는 자금 규모는 확인한 것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특히 양우공제회에는 현직 공무원이 참여하고 있어서 영리사업에 대한 위법성 논란이 있는데도 골프장 운영, 부동산 임대, 펀드 투자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일부 사업에는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뒤로도 매년 수십억~수백억 원의 돈을 메워온 것으로 드러났다. 양우공제회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경영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국정원에는 두 개의 외곽단체가 있다. ‘양우공제회’와 ‘양지회’를 말한다. 전자는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공제회이고 후자는 국정원 퇴직자들의 친목 단체다. 이 단체들의 존재는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흔한 인터넷 웹사이트도 없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전화번호나 주소 등 기본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정부와 국회 등 어디에도 이 단체들의 현황을 알수 있는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단체들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양우공제회는 1970년 중앙정보부 시절에 설립됐다. 이 단체의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자본금이 30억원이고, 국정원 직원들의 생활증진과 복지 향상을 도모한다고 되어 있다. 직원들이 급여 중 일정 금액을 매달 적립했다가 퇴직 때 지원한다. 양지회는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친목단체다. 양우공제회보다 20년 늦은 1990년에 설립됐다. 회원의 친목과 권익 옹호, 직업 안정, 복지 증진, 국가 안보에 관한 사업을 한다. 회원은 약 7천 명 정도다. 국정원장과 차장 등 최고위직까지 퇴직자 전원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양지회는 이따금 보수단체들의 집회 소식에 참여 단체로 이름을 드러내곤 한다. 지난해 8월 10일 국가 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종북세력 규탄 및 국정원 무장해제 반대 촉구’ 집회에는 국정원 퇴직자 모임 자격으로 참가했다.
양우공제회는 양지회보다 더 비밀스러운 단체다. 그동안 몇몇 언론이 양우공제회의 실체를 파악하려 했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골프장을 운영한다’, ‘사업 자금이 불분명하다’는 식으로 의혹을 되새기는 수준이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으로 호기심을 자극한 정도였다. 양우공제회를 취재하던 중 ‘양우회, 충주 땅 매각 추진’이라는 인터넷 뉴스 제목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8월 말께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기사였다. 이 보도에 따르면 양우공제회는 보유 중인 충북 충주시 일대 임야(약 50만 평)를 매각하기로 하고 인수 의향자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구매자는 개인으로 토지를 사들인 뒤 18홀짜리 퍼블릭골프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 구매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통해 토지대와 공사비 등을 포함 13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부동산 처분을 통한 현금확보 차원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 토지의 총 사업 면적은 137만9817㎡에 달한다. 이 중 11만㎡가량을 2006년 말 매각했는데, 당시 거래금액이 6억4600만원 정도였다.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600억원은 족히 넘으리란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거액을 굴릴 정도면 순수한 ‘친목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취재를 시작하자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양우공제회가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의 친목단체 성격의 모임이라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단체다. 전직 직원들의 모임은 사단법인 양지회가 따로 있다. 양우회와 양지회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로 구성된, 국정원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셈이다. 국정원 측은 "양우공제회는 직원들의 상조회”라며 “(국정원과)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0년 대법원은 한 국정원 직원의 부인이 제기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언급된 양우공제회의 성격을 ‘국정원 외곽단체’로 명시했다
대규모 영리 사업하는데도 “단순 상조회”
국정원의 설명대로라면 양우공제회 자체의 성격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논란의 여지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공제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 공제회’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 공제회’가 그것이다. 순수 공제회는 쉽게 말해 ‘계모임’을 생각하면 된다. 계모임에서 회원 부담금을 은행에 적립해 이자를 불리는 것을 영리추구 행위로 보지 않는다. 반면 영리 공제회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 회원들이 낸 부담금으로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매입 등 직접투자도 한다. 여기서 나온 이익금을 회원들에게 돌려준다.
문제는 공무원은 영리 공제회에 가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는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직무를 겸직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공무원의 영리 추구를 금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공무원이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재테크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예외는 있다. 개별법령에 의해 설립된 공제회에 한해서다. 교직원공제회의 경우 교원공제회법, 군인공제회는 군인공제회법, 소방공무원은 대한소방공제회법 등이 있다. 공제회법이 없는데 공개적으로 공제회를 운영하는 기관은 ‘공제조합’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양우공제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 단체다.
양우공제회는 현직 국정원 기조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른 이사회 멤버들도 대부분 국정원 간부급 직원이다. 대한교원공제회·군인공제회·경찰공제회가 법령에 의해 현직 공무원의 이사진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직 공무원이 영리 공제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건 명백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는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양우공제회의 운영 상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국회 등 외부기관의 감사를 받지 않아 밖에서 운영 상황을 감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정원을 감독하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몇 차례 양우공제회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공공기관이 아니므로 국회에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사원도 양우공제회에 대한 조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중앙부처의 감사와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등으로 경영투명성을 검증할 장치가 겹겹이 있는 다른 공제회들과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과 양우공제회 측은 묵묵부답이다. 양우공제회 측은 “국정원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양우공제회의 영리사업, 현직 직원들의 참여 여부등의 질문에 “답변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 2008년 2월 양우공제회는 미래에셋증권에서 판매한 ‘항공기펀드’ 2호에 가입했다. 양우공제회가 투자한 항공기펀드는 펀드 판매사인 NH농협증권이 투자자를 모집했고, 운용은 마이애셋자산운용이 담당했다. 이 펀드는 항공기를 사서 태국의 항공사에 빌려주고 임대료 수익을 얻는 방식이었다. 양우공제회가 투자한 금액은 67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8개월 뒤 태국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양우공제회보다 앞서 84억원을 투자한 공무원연금과 3호 펀드에 100억원을 투자한 군인연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건진 원금은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선박·비행기·해외 골프장 등 펀드투자 수백억 원
이듬해에는 약 20억 원을 투자해 선박펀드에 참여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상선을 사서 임대수익을 얻는 방식인데,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원금 손실을 봤다. 양우공제회는 투자대행사가 선관주의(善管注意) 의무를 위반해 19억6900만원을 손해 봤다며 대신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6억 2300만원을 배상받는 데 그쳤다. 바로 이 때문에 세월호 사고가 난 뒤 ‘국정원이 선박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고, 세월호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시 양우공제회의 투자 사업으로 돌아가보자. 양우공제회의 공격적 투자는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2007년에는 중국 현지의 골프클럽 조성사업을 위한 펀드에 60억원을 투자했다. 마이애셋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통해서다. 3개월 뒤에 원금과 수익을 돌려받는 조건이었다. 투자 대상 기업인 E사는 이렇게 끌어 모은 자금으로 중국 산둥성 애두진경제개발지구 안에 40만 평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에 두 개의 법인도 설립했다. 그러나 사업이 늦어지면서 펀드 만기가 도래하고도 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양우공제회는 펀드 판매 은행을 통해 E사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투자금 회수 대신 주식 지분 65%를 받았다.
그래도 사업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적자가 계속됐다. 결국 E사는 설립 3년 만인 2010년 K사에 흡수합병됐다. 합병 당시 E사의 누적 적자는 131억원에 달했다. 총부채(224억원)가 총자산(160억원)을 뛰어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양우공제회는 E사가 합병된 그 해 K사에 18억5천만원을 추가로 빌려줬다. 연 5%의 이자를 받는 조건이었다. 당시 K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총 자산 210억, 총 부채 236억원으로 역시 자본잠식 상태였다. 2010년 한 해에만 4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기업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A공인회계법인의 K이사(공인회계사)는 “자본잠식 상태가 계속되고 기업의 존속과 핵심 사업의 진행 여부가 불투명하면 부도나 청산에 대비해 자금 회수를 준비하는게 일반적이다. 오히려 부실기업에 투자를 늘린 양우공제회의 태도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골프장 사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양우공제회와 양지회 모두 골프장 사업에 적극적이다. 국정원 퇴직자들의 친목단체인 양지회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과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산동의 골프연습장은 1990년에 개장했다. 대지 3천㎡(약900평)의 제법 큰 규모다. 100야드짜리 36타석을 갖췄고 지상 4층에 스크린골프장도 운영한다. 해당 지번의 올해 공시지가(㎡당 354만4천원)로 계산하면 토지가치만 100억원에 이른다. 처음 개장했을 때보다 부동산 가치가 3배가량 올랐다. 안양에 있는 연습장은 이보다 더 크다. 대지만 1만5540㎡(약 4700평)에 달하고 지하1층·지상3층 규모로 길이 190야드에 72타석을 갖췄다. 공시지가로 따진 부동산 가치는 약 50억원이다. 두 개의 골프연습장을 통해 양지회는 연간 1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경비를 빼면 순수익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골프장 집착, 수백억 원 현찰로 인수하기도
양우공제회의 골프장 사업 규모는 양지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양우공제회가 처음 사들인 골프장은 S식품에서 운영하던 강원도 원주의 파크밸리 골프클럽이다. 치악산 기슭의 50만 평 부지에 18홀짜리 퍼블릭 골프장으로 1996년에 개장했다. 양우공제회는 2003년에 500억원을 일시금으로 지불하고 골프장을 사들였다. 골프장을 운영하기 위해 강원레저개발㈜란 회사를 설립했다. 운영자금까지 더해 인수 당시에만 540억원을 썼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말까지 골프장에 빌려준 돈이 508억원이나 된다. 이 골프장에만 10년 새 1천억원 넘는 돈을 쓴 것이다.
2006년에는 골프장 개발업체 제피로스㈜의 지분을 292억원에 인수했다. 이 업체는 2005년에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 골프리조트 조성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됐다. 양우공제회가 인수할 당시 이 업체가 보유한 골프장 부지의 가치는 약 200억원이었다. 양우공제회는 업체를 인수해 중원레저개발㈜이란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말 중원레저개발의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양우공제회가 그동안이 업체에 투자한 금액은 700억원에 이른다.
양우공제회는 또 제피로스와 같은 이름의 또 다른 골프장 운영업체(제주도 소재)와도 관련돼 있다. 두 업체는 모두 충북 출신의 사업가 정모 씨가 실질적 소유주였다. 정씨는 건설·부동산 개발 등 여러 업체를 내세워 각종 개발사업을 벌여오고 있는 인물이다. 정씨는 노무현정부 때 언론사 회장을 지내고 각종 개발사업을 벌이며 세를 확장했다. 묘하게도 양우공제회가 정씨로부터 제피로스를 인수하면서 양쪽의 인연이 시작된 시점(2005~2006년)은 정씨가 가장 활발히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정씨는 2005년에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 씨를 제주도 골프장 운영업체 대표로 내세웠다. 이때쯤 양우공제회는 정씨의 사업체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사업비를 빌려주는 식으로 정씨의 골프장 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정씨는 정화삼 씨 영입을 계기로 사업 확장을 위해 정권 실세들에게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의 사정으로 이어졌다. 정씨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개발사업을 벌이는 업체들 곳곳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있다. 그리고 일부 사업은 양우공제회가 벌이는 사업과도 관련돼 있다. 정씨와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정권이 바뀐 뒤로 그의 거취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밖에 양우공제회는 우양개발㈜이란 회사를 설립해 2001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토지를 사들여 임대사업도 벌였다. 법인 설립 당시 146억원이 들어갔다. 구미동 토지는 건설사의 모델하우스용으로 빌려주고 임대료 수입을 얻었다. 토지를 처분한 2012년까지 양우회가 우양개발에 차입금 명목으로 우회 투자한 돈은 모두 358억여 원에 이른다. 우양개발의 2012년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양우공제회로 부터 받은 차입금은 이자를 포함해 모두 상환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업은 활발한데 실적은 적자투성이
이렇게 양우공제회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만 사업체를 관리하거나 경영하는 능력은 그리 신통치 않다. 우선 1천억원 이상 들어간 원주 파크밸리CC의 성적표를 보자. 이 골프장을 운영하기 위해 양우공제회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강원레저개발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자본금 88억원에 총부채가 512억원이나 된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581%에 달한다. 지난해 골프장 운영 매출이 77억원이었지만 11억원의 적자를 냈다.
충주의 골프리조트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원레저개발도 지난해 말 누적 적자가 320억원으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이 -318억원의 자본잠식상태다. 아직 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매출도 없다. 양우공제회가 차입금 형식으로 투자하는 돈에 의존해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 현지골프장 사업에 투자했다가 원금도 받지 못하고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주식을 떠안았던 E사도 회계감사보고서가 마지막으로 나온 2010년 말 총부채가 224억원에 달했다.
<월간중앙>이 확인한 양우공제회의 투자금만 2천억원이 넘는다. 드러나지 않은 사업체와 펀드 등의 규모는 짐작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확인한 거의 모든 사업이 수익을 내긴 커녕 적자를 메우는 데 급급하다. 수익을 내는 회사라곤 양지회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두 곳과 골프장 시설 관리를 위해 설립한 자본금 5억원짜리 (재)늘푸른영농재단,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지상 7층짜리 상업용 건물의 임대수입 정도다. 이들에게서 나오는 수익을 전부 합쳐도 2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양지회와 양우공제회의 사업을 월간중앙과 함께 분석한 공인회계사 K씨는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허공에 뿌리는 수준”이라며 “대부분의 골프장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건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이지만 양우공제회의 투자능력은 특히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말했다.
양우공제회가 상법상 법인(주식회사)을 만들어 사업을 벌이는 것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다. 양우공제회가 직접 골프장 사업 등을 벌이지 않고 제2의 법인을 통해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 것은 직접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서로 보인다. K공인회계사는 “현직 공무원들이 회원으로 있고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단체가 직접 사업을 벌인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전문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법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 해도 사업의 적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우공제회가 이처럼 제대로 된 투자 성과를 내지 못하는건 조직체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교직원공제회나 군인공제회 등 다른 공적 기금의 성격을 띤 공제회들은 자금 운용을 전문 금융사에 맡기거나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관리한다.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다 보니 리스크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그러나 양우공제회는 자금을 운용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인색하다. 국정원 특유의 비밀주의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회계감사는 거의 고정적인 반면 양우공제회가 설립한 법인들의 회계감사를 맡은 법인들은 대부분 1, 2년마다 교체되곤 한다. 한 제보자는 “그들이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와 자금의 흐름이 노출되는 걸 꺼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우공제회 의혹 규명 열쇠 쥔 국정원
금융업계에서 양우공제회의 투자금 규모는 3천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자산 규모로 따지면 성격이 비슷한 교직원공제회(22조)·군인공제회(8조)·과학기술인공제회(2조)·경찰공제회(1조7천억)에 비해 무척 적은 규모다. 그러나 조직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교직원공제회는 회원 수가 67만 명이고, 군인공제회는 17만 명이다. 경찰공제회도 회원 수가 10만 명이나 된다.
양우공제회의 밑천은 국정원 직원들이 월급의 7% 정도씩 떼는, 약 10여 만원의 공제회비다. 국정원 직원이 5천 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연간 적립할 수 있는 기금은 6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돈은 퇴직자들에게 ‘연구비’ 명목으로 일정기간 지급하는 재원으로도 쓰인다. 일시금으로는 1억원 정도이고 직급에 따라 월 100만여 원씩 7~8년 정도 연금 형태로도 준다. 직원들이 모은 돈만으로 퇴직자에게 연금을 주고도 각종 사업에 수천억 원씩 투자한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다른 도움이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국정원 퇴직자의 친목회인 양지회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서초구 방배동에있는 양지회 소유 건물은 1300㎡가 넘는 대지에 지하 4층, 지상 7층 연면적 6600㎡ 크기다. 이 건물과 토지는 2000년에 사들였다. 부동산 가치가 수백억 원짜리다.
국정원 관계자는 중국과 충주에 추진중인 골프장 건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해명을 요청하자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양우공제회가 운용하는 수천억원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정원의 비밀주의는 정치권력에 대해서도 요지부동이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국회의원은 “양우공제회에 대해 의원들이 몇 번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자료를 내놓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의원은 “법적으로 보면 자료를 요구하거나 국정감사를 할 대상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운영의 적법성을 따지기 위한 최소한의 자료 공개 요구조차 ‘비밀’을 들먹이니 국회로서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양우공제회의 실체를 규명하는게 국정원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의 살림은 기조실이 맡는다. 공식 예산 외에 비공식적인 ‘공작비’도 기조실이 관리한다. 공작비는 특히 해외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요원(정보관, 분석관, 공작관, 수사관 등이 있다)’들의 활동비로 요긴하게 쓰인다. 정보요원의 존재 자체가 주재국의 정보기관도 모르는 비밀인 탓에 활동자금도 흐름을 드러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제보자는 “국정원 기조실은 비공식적인 자금관리도 총괄하기 때문에 금융권과 거래가 많다. 공제회 기조실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것도 자금 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조실장이 사업과 자금 집행을 총지휘하는 이사장으로 있다는 건 결국, 국정원 자금이기 때문이란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전직 간부 B씨는 “양우공제회는 사실상 현직 직원들이 거의 모든 사업을 관리한다. 사업 참여 전후에도 국정원이 공무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하거나 정보관들이 개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의 폐쇄적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양우공제회가 어떤 사업을 벌여 얼마를 손해봤는지를 직원들은 거의 모른다. 양우공제회 근거법률을 만들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건 국정원 개혁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권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