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올림픽 (히12:1-2)
파리 올림픽이 지금 진행 중입니다.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입니다. 주전 490년 그리스군대는,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침략해온 페르시아군대를 마라톤 광야에서 격파했다. 그때 그리스의 병사 필립피데스(Philippides)가, 그리스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들이여, 기뻐하라”고 알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병사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달려온 거리에서 달리기 경기가 벌어졌다. 이것이 마라톤 경기가 되었다. 이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은, 황제로부터 월계관을 받아쓰는 영광을 누렸고, 로마제국의 영웅이 되어,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기에, 달리기 경기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헬라 로마시대의 역사를 보면,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요.
신약에도, 달리기에 대해 고전9:24에“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빌2: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본문은 달리기와 같은 경주를 통해 신앙생활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해 말씀하는 내용이 있는데 오늘 본문인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치열한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신앙의 경주자로 승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신앙 올림픽에서 승리하려면 나를 응원하고 있는 수 많은 응원단(증인)이 있음을 기억하며 경주에 임하여야 합니다.(1절)
본문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말씀합니다. 올림픽 경기에는 수많은 응원단이 박수치고 환호함으로 응원하듯이 우리의 영적 경기를 응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경기 중에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나죠. 2002년 월드컵 축구 때 우리나라의 4강은 기적입니다. 우리의 실력이 세계 4강이라 생각은 안하시겠죠?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도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전 국민의 응원이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도 경기장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고함치고 노래하며 응원하는 것처럼, 구름같이 둘러싼 수많은 증인들이 우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믿음에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신앙에서 승리해서 금메달을 획득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우리 뒤에는 수많은 군중들, 이미 승리한 증인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경기에서 증인들은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 역시 인내로 승리하신 분들이다. 믿음의 영웅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응원과 격려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입니다. 그 증인들은 바로 히브리서 기자가 앞11장에서 소개한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간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등은 치열한 영적 싸움터에서 승리하고 자기들의 뒤를 따라 후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도록 응원하는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신앙 경주에서 응원하고 있는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힘을 내 경주해야 합니다.
2.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모든 무거운 것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1절)
1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즉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모두 다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이 양복 입고, 배낭 메고 가방 들고 뛴다면 잘 뛸 수도 없고 보기에도 우스울 것입니다. 무거운 것은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얽매이기 쉬운 죄’는 우리로 쉽게 죄에 빠지게 하는 환경, 우리의 습관, 죄를 짓게 만드는 유혹의 손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에서 달리는 발길을 붙잡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시킴으로 원활한 소통을 막아버리구요. 죄의 본질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인데. 하나님이 계셔야 할 중심 자리를 자기가 대신 차지하게 되고, 그 결과 모든 가치의 기준이 본인이 되는 이기주의에 빠진다.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죄의 근본이라면, 죄의 구체적 노출은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이기주의 인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각 얽어매는 죄의 뿌리,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약한 구석이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그 틈을 이용하여 공격합니다. 어느 사람은 돈. 어느 사람은 이성 어느 분은 오락과 취미, 등산이나 낚시, 세상사는 낙입니다. 동창회, 무슨 계모임, 재경 무슨 회, 무슨 친목회 등등 많은 모임에서 한자리씩 맡고 있어서 그런 모임이 교회에 대해 열심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느 분은 정치에 어느 분은 알콜 중독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주를 잘 하려면 이러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과감히 잘라 버려야 합니다.
3. 신앙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인내하며 달려가야 합니다.(1절하-3절)
1절 하반절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날마다 인내하면서 참으면서 나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 펜싱의 오상욱과 구본길, 도경동, 박상원으로 구성된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 금매달을 땄어요. 오상욱은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까지 정상에 오르며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2관왕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오상욱은 펜싱계에서 알아주는 연습벌레로 소문났습니다. 파리올림픽을 50여일 앞둔 지난 5월까지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 고민이 컸던 오상욱은 한달에 4일 밖에 없는 휴가 기간에도 펜싱장을 찾아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선수들은 먹고 싶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고, 자고 싶다고 아무 때나 자는 것이 아닙니다. 뼈를 깎는 훈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히11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인내로써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하므로 마침내 결승점에 도달하여 칭찬과 상급을 받은 것입니다. 고전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하늘에 머리를 두고 사는 인생은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인내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로 예수님을 바라보라 말씀합니다. 히12:2-3절“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선수가 주위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하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물질을 바라보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참으심과 인내를 본받아야 합니다. 경주가 계속되면 될수록 힘이 들고 피곤이 몰려온다. 외부로부터의 박해가 올 수도 있고, 내적인 흔들림으로 유혹이 찾아올 수도 있다.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헌신하는데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다.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 결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인내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경주자인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다른 곳에 한 눈을 파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했습니다. ‘믿음의 주’는 믿음의 출처이자 시작이란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믿음의 시작점이십니다. 예수를 만남으로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또한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믿음을 시작케 하시면서 또한 우리들의 믿음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시고 성장케 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바라보다’는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뜻인데, 그분에게 절대 유일한 희망을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하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 바라보지 못하면 살망하고 흔들리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입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에게 인내의 본보기가 되기 위하여 길이 참으신 예수님만을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썩을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올림픽에 참가한 하늘나라의 선수들입니다.
우리를 얽매이는 죄가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야 하는 우리의 목표와 방향이 흔들리지는 않는가? 인내하지 못함으로 신앙의 거룩한 경주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신앙인은 허다한 증인들이 그러하듯이 믿음의 경주의 수칙을 잘 지키고 달려가면 분명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 나라로 부름을 받을 때까지 잘 참고 견디셔서 믿음의 올림픽 경주에서 승리하여 생명의 면류관(계2:10), 의의 면류관(딤후 4:8) 기쁨의 면류관(살전2:19) 영광의 면류관 (벧전5:4)을 쓰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