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희, 항쟁의 불길 타오른 그날의 광주, 조선녀성, 1982년 제5호 (루계제399호), 페이지 54 ~ 55
항쟁의 불길 타오른 그날의 광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탄압이 있으면 반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탄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반항이 있고 반항이 있는 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1980년 5월, 더는 파쑈와 압제의 노예로 될 수 없어 ≪전두환 찢어죽이라!≫ 웨치며 광주인민들은 투쟁에 일떠섰다.
그들은 민주와 통일을 그렇든 열렬히 바랐기에 파쑈독재광의 총칼부림도, 죽음도 맞받아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들이 흘린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념원하던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의 그날은 기어이 오고야말것이다.
아래에 투쟁의 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부탁
광주인민봉기의 거세찬 열풍이 휘몰아치던 2년 전 5월 19일이였다.
피복 공장에서 재봉공으로 일하던 성옥이는 전두환괴뢰악당놈을 단죄하면서 민주성전의 성스러운 마당에 떨쳐나섰다.
그는 3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살육에 미쳐난 괴뢰악당놈을 그대로 두고 집으로 갈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슴 헤쳐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파쑈의 철퇴를 맞받아나가는 봉기자들의 대렬, 모든 시위대렬은 거리마다에서 괴뢰통치의 아성인 ≪도청≫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단김에 새 파쑈폭압체제를 짓뭉개버릴 기상이였다.
거세찬 투쟁대오에 서서 성옥이가 최루탄연기속을 뚫으며 총칼의 숲을 헤쳐 나가고 있을 때 어데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야!-≫
≪성호야, 네가 어떻게 여길 왔니?≫
≪누나, 난 누나가 이렇게 잘 싸우는 줄 알았어. 어데 다친 데는 없나? 그런데 집엔 언제 오겠어?≫
동생의 목소리엔 안타까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실려 있었다.
사실 성호는 딸을 기다려 근심하는 앓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싸움에 참가한 누나의 장한 모습을 보니 집에서 앓는 어머니가 기다린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성호야, 우리 동무들이 피 흘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여길 떠날 수 있겠니. 나는 우리가 이길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 만일 내가 못 돌아가면 나를 대신하여 네가 싸우구 또 네가 어머니를 잘 모셔라.≫
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타이르듯 부탁하는 성옥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어려 있었다.
이렇게 헤여진 오누이는 급류에 휘말려들듯 군중의 노한 물결 속에서 다시 가라졌다.
시위대렬이 ≪도청≫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난데없이 하늘에 나타난 직승기에서 공정대원놈들이 락하산에 매달려 벌떼처럼 떨어지기 시작했고 ≪도청≫쪽에서는 장갑차를 앞세운 공정대원놈들이 시위자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거리는 삽시간에 봉기자들의 피로 물들었다. 치떨리는 살육과 파괴가 란무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공포에 전율한 성호는 야수와 맞다들린 순간처럼 두 눈을 꼭 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눈을 뜬 성호는 공정대원놈들이 세 명의 처녀를 붙잡아가지고 마구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 몸부림치며 항거하는 처녀들을 놈들은 구두발로 사정없이 걷어차고 옷을 마구 찢어댔다.
이때였다. 한 처녀가 공정대원놈의 멱살을 붙잡으며 달려들었다.
분노에 치를 떠는 처녀의 얼굴을 본 순간 성호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처녀가 바로 그의 누나 성옥이였던 것이다.
놈들은 사생결단하고 저항하는 누나의 잔등에 벌써 시퍼런 날창을 사정없이 내리꽂는 것이였다.
≪누나-≫
성호는 뛰여가 쓰러진 누나를 부둥켜안았다.
≪누나, 누나-≫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누나는 대답이 없었다. 원한서린 두 눈을 감지못한채 항쟁의 거리를 피로 붉게 수놓으며 숨진 것이다.
누나의 처절한 주검 앞에서 성호는 몸부림쳤다.
이윽고 성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이 악마들아, 우리 누나를 살려내라.≫
죽음의 공포는 이미 한계를 넘었고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그의 가슴을 불태웠다.
성호에게는 누나의 부탁이 떠올랐다. 그는 어느덧 폭동으로 변한 시위자들의 대렬에 섞였다. 화염병을 내던지며 앞장서 달리던 성호는 폭동군중이 빼앗아 타고 달리는 장갑차 우에 올랐다. 달리는 장갑차 우에 올라선 그는 원쑤놈들을 짓밟고선듯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고 웨쳤다. ≪전두환 찢어죽여라!≫
웨치다 웨치다 목이 쉬여 더는 소리가 나지 않게 되자 그는 팔시늉으로 구호를 불렀다.
놈들은 ≪도청≫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관총까지 휘둘러댔다. 폭동자들 속에서는 사상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이놈들아, 죽일테면 죽여라. 형님들- 누나들- 저 원쑤놈들을 모조리 쳐부십시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시꺼먼 총구앞에 애어린 가슴을 내대며 성호는 웨쳤다.
불사신 같은 그의 모습은 군중을 불러일으켰고 대오는 또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두주먹을 부르쥐고 민주와 통일을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성호가 그만 갑자기 장갑차 우에서 쓰러졌다. 가증스러운 놈들의 총탄이 어린 소년의 가슴을 뚫은 것이다.
≪얘야, 정신을 차려라.≫
시위자들이 어린 소년을 안아 일으켰다.
≪저 원쑤놈들을, 우리 누나를 죽인 저 원쑤놈들을…≫
가까스로 눈을 뜬 소년은 이렇게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오누이의 죽음, 오누이의 부탁은 사람들을 항전에로 불렀다.
마침내 ≪도청≫은 폭동군중에게 점령되고 공정대원놈들은 거리에서 쫓겨났다.
본사기자 한복희
할머니의 념원
광주인민들의 항쟁이 며칠째 계속되던 어느날이였다.
약국 앞에까지 진출한 시위대오는 공정대원놈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더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때였다.
총탄이 비발치듯하는 약국 앞으로 백발의 할머니가 량손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들고 왔다.
사람들이 말렸으나 할머니는 시위대오의 선두로 꿋꿋이 걸어 나갔다.
가증스러운 원쑤놈들의 총구가 불을 뿜는 항쟁의 거리에 거연히 나선 할머니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그는 대학생들이 늘 다니던 단골빵집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남편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북해도 어느 탄광에 묻혀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8.15후 민주구국항전에서 희생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조금도 우울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왔다.
대학생들은 이 할머니의 집에서 비밀모임을 하였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밖에 나가 망을 봐주군 했다. 그런 할머니가 바로 시위자들 앞에서 들고 온 보짐을 푸는것이였다. 거기에는 빵, 우유, 닭알들이 들어있었다.
생계를 이어주던 마지막 ≪재산≫마저 다 들고 나와 시위자들에게 말없이 쥐여주는 할머니, 빵을 받아든 항쟁자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목이 메여 넘어가지를 않았다.
할머니는 나직하나 힘있는 목소리로 ≪젊은이들, 부탁이네. 우리 백성들이 지금처럼은 더는 못살아, 우리는 젊은이들을 하늘처럼 믿네.≫라고 하였다.
살인악당 전두환군사깡패에 대한 치솟는 증오, 파쑈를 저주하고 민주와 통일을 바라는 할머니의 념원―
그러던 할머니는 그렇게도 바라던 새 제도, 새 생활의 그날을 보지 못한 채 공정대놈의 대검에 찔려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할머니가 바라던 자유와 민주통일의 새날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못 이룬 너의 뜻 우리가 이어주마≫
광주시 망월동에 있는 공동묘지의 한 무덤가에는 이런 글발이 씌여있었다.
≪완봉아, 못 이룬 너의 뜻 우리가 이어주마. 학우일동≫
김완봉소년은 광주인민봉기때 무등중학교 3학년 4반에서 공부하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모진 가난을 겪어온 그는 공정대놈들의 만행이 절정에 달해 온 광주가 피에 잠겨있었던 5월 21일, 피의 수요일 식중독으로 집에서 앓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 찢어죽여라!≫는 웨침소리를 듣고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를 고생 속에 몰아넣은 원쑤놈들, 인민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인민의 철천지 원쑤놈들을 요정내고 새생활을 요구하는 이 성스런 싸움에 자기 한 몸을 그대로 불태우고 싶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근심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다들 나가 싸우는데 나만 락오자가 될 수 없지 않아요?≫
이렇게 항쟁의 거리에 뛰여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어린 그의 동무들은 가슴을 치며 완봉이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손을 잡고 굳게 결심했다. 오늘은 비록 원쑤놈들을 다 요정내지 못했으나 저들의 그 주먹으로 원쑤놈들을 쓸어버리고 완봉이가 못 이룬 뜻을 꼭 이루어 주리라고.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2&wr_id=4435&page=0&sca=&sfl=&stx=&spt=0&page=0&cwin=#c_4440
첫댓글 [ 난데없이 하늘에 나타난 직승기에서 공정대원놈들이 락하산에 매달려 벌떼처럼 떨어지기 시작했고 ≪도청≫쪽에서는 장갑차를 앞세운 공정대원놈들이 시위자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
이것이 서울대 총학생회가 제작한 5월 22일자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에서 제가 보았던 바로 그 문구입니다. 그 대자보는 "공수부대원들이 비행기에서 낙하하면서 총을 쏘기 시작하여 광주시민 수천 명이 죽었다"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광주를 드나들던 제 친구 광주시민들의 말은 전혀 달라 그때부터 제가 광주사태를 깊이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자보 내용은 북한 빨갱이 문구로 작성되었는데 정부에서 대책을 세우지 못하나요, 당시안기부,경찰,기무사 직무유기아니면 동조자들 입니다!!
윗 기사는 북한신문 기사입니다.
네,잘못이해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