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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53) - 인류의 대축제, 남아공 월드컵(4)
l. 축구란 무엇인가(4)
남아공 월드컵에서 심판의 그릇된 판정이 경기를 그르쳤다는 불만이 많이 나온다. 세상의 일은 때로 잘못된 결정으로 명운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를 승복하도록 정해진 룰을 따라야 질서가 유지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역사는 물론 세상만사는 불완전한 인간의 행동과 결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계승된다. 잘 찬 볼이 골대를 맞고 아웃되는가 하면 뜻하지 않은 자책골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심판의 잘못된 판정이 승패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런 우여곡절의 과정을 통해 챔피언이 탄생하며 관중은 열광하고 탄식한다. 이에 적절한 칼럼을 살펴보자.
월드컵 축구는 공평한가
폭우가 쏟아지는 그라운드에 누워 차두리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캡틴 박지성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여서 더 아쉽다”고 했다. 공격 점유율이 54-46으로 앞섰는데도 태극전사들은 우루과이에 지고 말았다. 그래서 의문이 치민다. 축구는 과연 공평한 경기인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89분을 잘 싸워도 한방으로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라며 축구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일깨운다고 했다. 이를 학술적으로 입증한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 틸버그대학의 경제학자 잰 밴 아워스 교수는 1960년 이후 주요 경기 1500개를 분석한 끝에 “홈팀의 이점과 실력, 행운뿐 아니라 국가정체성이 막판에 승패를 결정한다”며 이점에선 독일이 단연 앞선다고 했다.
독일 축구가 전쟁을 하듯 경기에 대비하고 무섭게 뛴다는 건 광적인 축구팬 헨리 키신저도 인정한 바다. 그는 “1954년 헝가리를 제외하면 공산국가는 결승전이나 준결승전에 오른 적이 없다”며 계획경제 역시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 프랑스가 자중지란의 추태를 보이다 1무2패로 A조 꼴찌 신세가 된 것도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불신하는 이 나라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프로선수들의 엄청난 수입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프랑스 국민들, 실력과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 국민에 반발하는 해외파 선수들이 A조 꼴찌를 합작했다고나 할까.
국내감독 휘하에서 원정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초로 G20회의를 주재하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박현욱이 소설에 썼듯이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정신력의 축구’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 한일전이나 남북대결 같은 특정 상대를 만났을 때 주로 통한다는 사실이다. 축구의 묘미도 실은 여기에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심오한 듯 말했지만 쉽게 말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빌 게이츠는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며 여기에 빨리 익숙해지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기 결과에 승복하는 건 축구엔 엄연한 룰이 있고, 월드컵은 4년 후 또 열리며,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자블라니 공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월드컵이 끝난 뒤에나 논의하겠다고 했다. 우리 팀은 자블라니 공에 맞춘 연습으로 16강 신화를 이뤄냈다. 그게 룰이다. 불리해도 내가 적응해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축구장 밖의 세상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결과가 실력대로만 나오는 세상도 좋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실력 없는 사람은 살맛이 안 날 테니까. 운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다. 다행히도 경쟁을 하면 할수록 경쟁력은 올라가게 돼 있다. 그게 프랑스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월드컵 기념으로 나부터 축구와 삶의 교훈을 깨우치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듯 쉽진 않다. 차라리 리더부터 변하는 게 빠르다. 허정무 감독도 그랬다. 2007년 12월 사령탑에 임명돼 첫 경기를 치른 그는 독단적이고 고집 센 ‘진돗개’로 유명했다. 그 해 9월 월드컵 최종예선 북한과의 경기에서 1-1로 사실상 패하면서 소통불능의 그가 달라졌다.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기는 등 주변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화합과 긍정의 리더십으로 180도 변신하면서 한국축구의 오늘을 만든 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처럼 불공평하다. 리더에게는 더 하지만 어쩌랴. 그게 리더의 멍에인 것을.(2010. 6. 28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에서)
2. 아쉽지만 잘 싸웠다, 태극전사들
장마전선이 길게 드리운 토요일, '부산에서 방문한 노후생애설계전문가단체 대표들과 한정식 음식점에서 회의를 겸한 식사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지인은 일본의 친지로부터 일본이 16강 진출로 온 열도가 환희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일본팀은 수능시험(평가전)은 망쳤으나 본고사(조별리그)를 잘 치른 셈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도 오늘(6월 26일) 저녁 16강 본고사를 잘 치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비가 내려 아침운동을 하지 못하여 저녁나절에 한 시간여 헬스 센터에서 땀을 흘리고 밤 11시에 시작되는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붉은 티셔츠를 입고 TV앞에 앉았다. 아내는 조마조마해서 경기를 지켜보기 어렵다며 하이파이브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고.
양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긴장된 표정으로 도열한 선수들이 필승을 다짐하며 서 있는 모습이 숙연하게 느껴진다. 킥오프가 되자 열심히 뛰는 대한민국 팀이 4분 만에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가까운 곳에서 프리 킥 찬스를 얻어 박주영 선수가 찬 공이 골대를 맞고 아웃되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골대를 맞히면 경기가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아 애써 불길한 느낌을 떨쳐내며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수비가 느슨한 것을 비집고 우루과이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나이지리아전의 선제골을 떠올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한시라도 빨리 만회골이 터져주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전반전을 득점 없이 넘겼다.
볼 점유율과 공격찬스가 많은데도 우루과이의 골문이 열리지 않아 초조한 시간이 흐르는데 후반 23분경에 드디어 프리 킥한 볼이 상대방머리를 맞고 튕기는 것을 이청용 선수가 헤딩으로 밀어 넣어 1대1 동점을 만들었다. 여세를 몰아 추가득점이 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다가 후반 35분경에 우루과이의 코너킥으로 문전에서 맴돌던 볼이 선제골을 터뜨린 수아레스의 강력한 슈팅으로 골대를 맞고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추가실점으로 이어졌다. 두골 모두 완벽한 수비가 뒷받침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몇 차례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경기를 뒤집지 못한 체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을씨년스러운 폭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태극전사들은 아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토록 열망하던 8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러나 한국 팀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맞아 잘 싸웠다. 최선을 다한 후의 패배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경기에는 졌지만 한국 축구 대표 팀에 대한 응원 열기는 대단하였다. 경기 내내 장맛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은 몸이 젖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의 염원이 담긴 응원 함성을 저 멀리 남아공으로 끊임없이 날려 보냈다. 전국의 219곳에서 101만 6천명(경찰 추산)이 거리로 몰려나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다시 일궈내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새로운 응원 명소로 떠오른 코엑스 앞 영동대로에는 양방향 14개 차로가 모두 통제된 가운데 8만 명이 운집했고, 연예인의 사전 공연으로 열기가 고조된 한강공원 반포지구에도 역시 8만 명이 모여 쉴 새 없이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응원 함성은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뜨거웠다. 인천 문학경기장 4만 5천명, 광주 월드컵경기장 3만5천명,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만 5천명 등 서울을 제외한 전국 202곳에 62만 4천 500명이 운집해 우리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의 함성과 아쉬움의 탄성을 번갈아 내질렀다.
이색응원도 변함없이 펼쳐져 울산의 현대중공업 임직원은 사내 체육관에서 노사 6천여 명이 함께 미리 준비한 맥주와 안주를 나눠 먹으며 노사화합 응원전'을 펼쳤다. 교도소에서도 응원 함성은 이어져 춘천과 원주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이 모여 승리를 바라는 함성을 내질렀다. 이처럼 하나 된 응원열기가 사회통합과 국력신장의 촉매제가 되면 좋으리라.
이어 다음날 새벽에 벌어진 미국과 가나의 16강전에서는 가나가 연장 접전 끝에 미국을 2대1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였다. 가나는 90분 동안 1골씩 주고받은 후 연장 전반 3분 아사모아 기안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2-1로 승리, 아프리카 대륙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다. 이로써 가나는 두 번째 월드컵 진출 무대에서 8강에 도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006년 첫 출전한 독일 대회에서 16강에 오른 가나는 당시에도 조별리그에서 미국을 1-2로 꺾어 16강 진출을 무산시킨 바 있다.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가나지만 경기장을 벗어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로 나라의 경제사정을 들 수 있다. 2009년 기준으로 미국이 세계 1위인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가나는 100위이며, 1인당 GDP를 보면 미국(4만6천8백59불)이 가나(1천5백20불 2008년 기준)보다 30배나 많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축구는 평등한 것. 미국은 돈이 없어 응원단조차 철수시켜야 했던 가나에 두 대회 연속 고배를 마셔야 했다.
미국과 가나의 경기에서는 가나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안의 골이 돋보였다. 기안은 1-1로 맞선 연장 전반 3분 미드필더 안드레 아예우가 전방으로 높이 올려준 공을 페널티 지역 앞에서 어깨로 트래핑한 뒤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가나의 역사와 아프리카의 자존심을 세운 한방이었다. 가나는 16강전에서 한국을 2-1로 누른 우루과이와 7월 3일 4강 티켓을 놓고 승부를 벌인다.
3. 난적을 제치고 8강에 오른 독일과 아르헨티나
6월 27일 새벽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르 우주센터에서 국내기술진이 참여해 프랑스 아스트리움사와 공동 제작한 기상위성 천리안이 지난 10일 발사 후 추락한 나로호의 실패를 딛고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세상의 정보가 수 없이 많고 취사선택할 자료가 넘치는 시대에 각자 멀리보고 잘 분별할 자기 나름의 천리안을 가지면 좋으리라.
이날 저녁 11시에 남아공 블룸폰테인의 프리스테이트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와 독일의 16강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독일(FIFA랭킹 6위)은 잉글랜드(8위)에 4-1로 대승, 지난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8강에 15회 연속 개근했다. 독일은 전반 20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자신의 월드컵 통산 12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루카스 포돌스키가 전반 32분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잉글랜드는 전반 37분 스티븐 제라드의 크로스를 받아 매튜 업슨이 헤딩으로 만회골을 터트렸다. 잉글랜드는 전반 38분 프랑크 람파드의 명백한 골이 오심으로 노골 선언이 된 것이 아쉬웠다. 독일은 후반 22분과 25분에 토마스 뮐러가 연속골을 넣으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 경기는 지난 17일에 있은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결과와 닮은 점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전반전에 두 골을 먼저 빼앗기고 한골을 만회하여 후반전에 임한 점, 후반에 만회골을 얻기 위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다가 순식간에 두 골을 잃고 4대1의 스코어로 진 것을 잉글랜드도 판에 박은 듯이 되풀이했다. 잉글랜드가 더 억울한 것은 분명히 골라인을 통과하여 얻은 골을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경기 전체를 그르친 점이라고 할까?
이어 다음날 새벽 요하네스버그 사커 시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경기는 아르헨티나가 3대1로 낙승하여 8강에서 독일과 맞붙게 되었다. 4년 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맞대결에서 아르헨티나가 2골을 몰아친 테베스의 맹활약에 힘입어 8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도 첫 골이 오프사이드 상태에서 얻어진 것을 심판이 그대로 골로 인정하는 오심에 영향을 받은 셈이니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억울한 점이 있다 하겠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전에 이어 이번에도 16강전에서 멕시코를 물리쳤다. 또한 멕시코전 4연승을 거두며 멕시코 킬러의 명성을 이어갔다.
이날 경기에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한골을 추가하여 통산 12골로 펠레의 기록을 넘어서며 호날두의 15골 기록에 한발 다가섰고 아르헨티나의 이과인은 한골을 넣어 이번 대회 4골로 득점경쟁 선두에 올랐다.
이날의 경기에서 나온 결정적 오심으로 남아공 월드컵이 최악의 오심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심판의 오심이 경기 흐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세상일은 문제가 불거져 논란이 확산되어야 뒤늦게 시정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이번을 계기로 오심을 잠재울 대책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4. 가볍게 8강에 오른 네덜란드와 브라질
6월 28일,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노인건강타운의 물리치료실을 찾았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치료하는 분들도 있고 수압마사지 등 여러 가지 물리치료를 한 시간 넘게 받을 수 있어서 줄을 서 기다리는 등 이용자들이 꽤 많다. 첫날이라고 자원 봉사하는 대학생들이 몇 가지 측정을 하는데 노인들이 넘어져 다치는 사례가 많아서 그런지 넘어지기 가능성을 지수로 측정하기도 하고 초음파로 무릎관절부위의 근육형성도를 체크하기도 하는 등 과학적으로 치료 상식을 일깨어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손발의 움직임으로 균형감각을 측정하는 여학생이 손가락이 예쁘다고 감탄 (?)하는 말에 흐뭇한 기분이 들기도. 아내도 젊은 시절에 손가락이 예쁘다고 칭송하였다. 듣기 좋은 말로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이날 저녁 11시에 더반 모저스 마비다 경기장에서 네덜란드와 슬로바키아의 16강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전반에 터진 아르연 로번의 선제골과 후반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의 추가골로 경기 끝나기 직전에 페널티 킥으로 한 골을 만회한 슬로바키아를 2-1로 물리치며 우승후보 브라질과 8강에서 맞붙는 빅 이벤트를 만들었다. 유럽지역 예선에서 8전 전승, 본선 E조 조별리그에서 3연승을 거두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네덜란드는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F조 조별리그에서 전 대회 우승 팀 이탈리아를 꺾은 슬로바키아의 선전을 기대하였으나 관록과 실력에서 약간 밀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체코와 분리된 슬로바키아를 함께 여행한 적이 있는 아내는 슬로바키아가 어찌되었느냐고 관심을 표명하기도. 관객은 약자를 응원하는가?
다음날 새벽에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남미 팀끼리의 브라질과 칠레 경기는 브라질이 주앙, 파비아누, 호비뉴의 연속골에 힘입어 칠레를 3-0으로 완파하며 8강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형과 아우의 대전처럼 약간의 실력 차가 느껴지는 양 팀은 칠레가 악착같이 달려들어도 소득이 없고 브라질은 부드럽게 대응하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결정적인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예선과 조별 리그에서 선보인 칠레의 공격축구는 화끈하였으나 브라질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까, 언론에서는 이를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썼다.
월드컵 통산 6회 우승에 도전하는 브라질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4강 진출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이로써 독일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와 브라질 등 상위 팀들이 8강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진정한 승자는 강자들과 겨뤄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5. 일본의 불운과 스페인의 행운
6월 29일 오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던 대한민국선수단이 팬들과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선수단이 푸대접 속에 쓸쓸히 귀국한 것과 대조적으로. 16강 진출의 큰 사명을 완수하고 38일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선수단이여, 수고하였다.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새로운 각오로 다음을 기약하라.
이날 저녁 11시,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이 프리토리아 로프투스 페르스펠트 경기장에서 열렸다. 8강 진출을 향한 집념으로 무장한 일본과 파라과이는 연장전까지 120분 간 접전을 벌였으나 끝내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하고 양 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본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승리를 기원했다. 하지만 전반 20분 마츠이의 중거리 슈팅을 거부했던 골대는 일본의 승리를 외면했다. 일본의 세 번째 키커로 나선 풀백 고마노 유이치의 오른발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넘어갔다. 반면 파라과이 선수들은 승부차기에서 대담함과 자신만만한 슈팅을 날려 5명의 키커가 모두 골 망을 흔들었다. 이로써 일본은 승부차기에서 3대 5로 패하여 한국과 마찬가지로 16강에서 남아공 월드컵의 여정을 마쳐야 했다.
다음날 새벽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에 FIFA 랭킹 2위의 스페인과 3위의 포르투갈이 빅 매치를 펼쳤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축구 강국이 펼친 자존심 대결에서 '무적함대' 스페인 스페인은 후반 18분 터진 다비드 비야의 결승골로 포르투갈에 1-0으로 승리했다.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 통산 33번째 맞대결을 펼친 스페인은 이번 승리로 16승 12무 5패로 우위를 점했다. 반면 죽음의 조에서 탈출한 포르투갈은 라이벌에게 패퇴하며 16강에 만족해야 했다. 스페인은 일본을 꺾고 8강에 올라온 파라과이와 4강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스페인의 비야는 결승골을 넣으며 이번 대회 통산 4골로 득점 선두대열에 합류하였고.
오후에 일본의 8강 진출에 대하여 경로원 직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느 직원이 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기자가 일본이 탈락하였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였다며 대통령은 외교적 발언으로 일본의 승리를 기원한다고 하겠지만 그녀는 솔직히 일본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누리꾼들이 한국의 8강 탈락을 기뻐한다는 소식도 있어서 인접한 나라들끼리의 국민감정에는 미묘한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더라도 대승적으로 이웃의 승리를 기뻐하는 마음이었으면.
오늘 새벽(6월 30일)으로 16강전을 모두 마치고 3일간의 휴식을 취한 후 8강전에 돌입한다. 8강에 오른 팀은 유럽의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가나,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로 남미의 강세가 이어졌고 아시아와 북중미의 대한민국, 일본, 미국, 멕시코가 모두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16강전에서는 미국과 가나 전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으로 전력이 우세하다고 여겨진 나라들이 승리한 셈이어서 조별리그와는 달리 단판승부의 필승구도에 각 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16강에서 탈락한 나라들에게는 위로를, 8강에 진출한 나라들에게는 축하를 보낸다. 8강에 오른 모두, 더 좋은 경기를 펼치라.
6. 읽을거리
1)프랑스 팀의 굴욕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그랬으니까. 우승과 준우승까지 했던 팀이란 걸 기억하면 기복은 좀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역시 프랑스인들답다”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성적과 무관하게 프랑스 팀은 남아공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다. ‘콩가루 집안’의 진수를 보여줬으니 말이다. 선수는 감독에게 대들고, 감독은 대든 선수를 중도 하차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반발해 선수들은 훈련을 거부했다. 감독은 경기에서 졌다고 상대팀 감독의 악수 제의를 거부했다. 프랑스 팀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은 남아공 월드컵 최대의 웃음거리가 됐다. 예선을 통과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 될 뻔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 팀이 거둔 승리는 에메 자케란 감독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철저하게 팀워크 위주로 선수를 기용했다. 단독 드리블로 골을 터뜨리는 선수보다 결정적인 어시스트로 골을 만들어내는 선수를 중용했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에릭 캉토나가 대표 팀 명단에서 빠지자 프랑스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언론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밀고 나갔다.
그의 용병술은 지네딘 지단이란 스타를 탄생시켰다. 지단은 자케의 축구 철학에 가장 충실한 선수였다. 화려함 대신 헌신을 택했다. 자케는 지단을 중심으로 11명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나서는 전방위 축구로, 몇 명의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한 브라질을 3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그해 7월의 파리는 흥분과 열광, 환희의 도가니였다. 프랑스가 처음으로 월드컵의 주인이 되던 날, 파리에서는 1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샹젤리제는 밤새 “알레 라 프랑스(가자, 프랑스)”를 외치는 사람들의 함성과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계층과 나이, 남녀와 인종, 정치와 종교적 신념의 차이를 떠나 프랑스는 하나가 됐다. 백인과 흑인, 아랍인으로 이루어진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프랑스 팀이 이루어낸 ‘다양성의 힘’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다인종 팀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뭐가 달라진 것일까.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조차 따라 부르지 못하는 아랍권이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애국심과 정체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부터 프랑스적 가치의 실종에서 원인을 찾는 목소리까지 온갖 얘기가 다 나오고 있다. 르몽드지는 “프랑스 월드컵 팀은 프랑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이기주의, 배금주의, 분파주의 등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다양성은 힘의 원천이지 그 자체가 힘은 아니다. 다양성은 톨레랑스(관용)라는 접착제와 만날 때 힘이 될 수 있다. 시멘트가 물을 만나야 단단하게 뭉쳐지듯 다양한 개성과 의견은 서로를 용인하고, 인정하는 톨레랑스와 합쳐질 때 힘이 될 수 있다. 톨레랑스 없는 다양성은 모래알이고, 콩가루일 뿐이다. 프랑스 팀의 자멸에서 톨레랑스가 사라져가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005년 6월, 파리 근교 슬럼 지역에서 시작된 이민자 출신 청년들의 폭동으로 여름 내내 프랑스 사회는 열병을 앓았다. 그들은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프랑스 공권력에 폭력으로 맞섰다. 곳곳에서 자동차가 불타고, 상점 유리창이 박살났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그들을 ‘불한당’으로 규정하고,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이 싹 쓸어버리겠다”며 ‘톨레랑스 제로’를 선언했다. 그 덕에 폭동을 잠재울 순 있었지만 후유증은 깊고 크다. 사회적 양극화 속에 계층 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면서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미덕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에 프랑스적 가치는 함축돼 있다. 그나마 프랑스를 지탱해 온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귀에 거슬리더라도 소수의 목소리를 용인하고, 억압하지 않을 때 다양성은 힘이 될 수 있다. 마녀사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때 다양성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도자다.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성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역시 지도자를 잘 골라야 한다.(중앙일보 2010. 6. 29 배명복의 세상읽기에서)
'2) 신의 손',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이지만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원시적인 놀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1920년대에 독일에선 한 체조교사가 축구공을 찰 때 신체의 품위 없음을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곱사등을 불룩 튀어나오게 하고 턱을 짐승처럼 앞으로 쭉 빼는 것은 인간을 원숭이로 전락시키는 것이다."(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축구팬이 듣기엔 '신성모독' 같은 소리다. 다행히 유럽의 지식인들은 축구의 매력을 인문사회과학적 시각으로 풀이하길 즐긴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에바르는 '열정의 축구사전'을 펴내 축구야말로 원시 본능을 억제하는 문명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역설했다.
축구와 손의 관계를 거론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축구사의 한 페이지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축구 신동 마라도나가 외친 '신의 손'이 차지한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분명히 핸드볼 반칙으로 골을 넣어놓고는 경기가 끝난 뒤 "신의 손이 했다"고 강변했다. 같은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상대방 수비수 여럿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며 현란한 드리블로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을 성공시켰기에 그의 '손장난'은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잊혀져 가던 '신의 손' 전설은 2009년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앙리가 되살렸다. 앙리는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월드컵 지역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교묘하게 공에 손을 대 동료의 득점을 도왔다. 프랑스는 앙리의 '손장난' 덕분에 본선 진출 티켓을 땄다. 비디오로 판독하면 앙리의 반칙은 너무나 명백했다. 아일랜드는 억울해 땅을 쳤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심판은 앙리의 손을 들어줬다. 프랑스 축구팬들은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며 본선 진출에 환호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신의 손'은 다시 지상에 강림하시었다. 브라질의 공격수 파비아누가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두 차례나 팔로 공을 건드린 뒤 절묘하게 득점했다. '신의 손' 반칙 외에도 이번 월드컵에선 너무 많은 오심이 TV에 잡히고 있다.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만하다.
부조리(不條理) 문학의 소설가 카뮈는 "나는 축구를 통해 도덕과 의무에 대해 배웠다"는 말을 남겼다. 올해로 사망 50주년이 된 카뮈가 만약 살아서 이번 월드컵을 봤다면 "이보다 더한 실존의 부조리는 없을 것"이라며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심판이 못 보는 '신의 손'을 잡아내는 비디오로 축구에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2010. 6. 29 조선일보, 박해현의 동서남북에서)
첫댓글 선거는 마지막 한표까지 뚜껑을 열어봐야 당락을 알고, 축구나 모든 경기는 마지막 순간에야 승패를 가름함으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기대요 희망이다. 2010월드컵의 우승 국가팀은 과연 어느 나라가 될런지? 우리야 마음 졸이며 응원할 이유는 잃었어도 우리팀과 맞섰던 아르헨티나가 우승 한다면, 한가닥 자부심과 위안으로 선전한 우리 선수들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잘 싸웠어요! 태극전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