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2026. 5. 17.
루가 24:44-53. 사도 1:1-11
지금 이 자리에서 증인 됨
주님 승천대축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많은 가르침과 당부를 하신 후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이 지난 후 즉 부활 6주 목요일에 이날을 지킵니다. 그 의미를 더 깊이 새기기 위해 주일로 옮겨 지키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날을 기념하며 교우들이 행진(순행)하던 습관이 있었습니다.
성지주일에 예루살렘 입성을 기억하며 순행한 후 수난 주일이 시작되었고, 이제 하늘에 오르신 날에 다시 순행함으로 마무리를 짓던 것입니다.
두 가지 순행의 목적지는 모두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입성하시던 예루살렘과 제자들이 승천 후 다시 돌아간 예루살렘은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하여 오늘은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과 주님의 당부대로 남은 제자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렀던 ‘예루살렘’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승인된 삶’에 대해 묵상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며 하신 첫 말씀이 ‘하늘나라(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였습니다.
이천 년 전과 오늘날 우주관의 차이를 극복하며 하늘에 오르셨다는 말을 새겨봅니다.
주님이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진리의 본래 자리, 복음의 원천으로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지치고 아파서 서글픈 많은 사람을 위로하시고, 고쳐 주시며, 사람 취급받지 못하던 이들을 사람답게 아니,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죄인이라 낙인찍힌 이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사시다 끝내 목숨까지 바친 분께서 이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하늘’은 슬프고 아프고 힘겨운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상징입니다. 이제 그분이 마땅히 있어야 할 원래의 그 자리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마음자리입니다. 지치고 고단한 일상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 즉 한 처음으로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한 처음 창조 때 인간이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놀랍게도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피하고 숨어 버립니다. 바로 어둠입니다. 더 높아지고 싶고 더 잘나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인간의 삶에 고통이 생겨납니다. 근심과 걱정, 번민,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모든 인류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바로 우리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부끄러운 마음자리가 바로 하늘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것은 그분은 우리의 가장 약하고 아픈 자리를 하늘이라 여기시고 그 자리에 오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보이는 모든 곳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는 하늘이 보이는 곳에 늘 서 있어야 합니다. 그 하늘이 싫어서 보이지 않는 곳만 다니는 어둠을 벗어버리자는 말입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천사는 "왜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사도 1:11) 라고 말합니다. 이제 승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곳은 저 멀리 하늘이 아니라 바로 여기의 일상, 더 나아가 가장 약하고 부끄러운 마음자리라는 사실을 꼭 기억합니다.
에페소서 4장 9절에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먼저 땅의 낮은 데로 내려오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셨고 그분이 있어야 할 자리는 우리의 연약함 그 안입니다. 이제 주님의 승천 후 그분의 뜻을 깨닫고 헤아린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머무릅니다. (루가 24:52)
제자들이 돌아간 ‘예루살렘’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화려한 성전이 있는 그 나라의 수도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던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을 죽인 곳입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열두 살 소년 예수가 자신을 잃었다 찾은 후 나무라는 부모에게 “왜 나를 찾으십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라고 당차게 말하던 그 예루살렘입니다. 성전을 뒤집어 정화하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절규하던 그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함과 세속이 함께 공존하는 바로 우리 인간의 일상입니다.
이제 제자들 보는 앞에서 하늘에 오르셨고 구름에 싸였다는 것은 곧 그분의 부재(不在)가 현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보았지만, 곧 그들은 기쁨에 차서 고난과 역경의 자리 곧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은 화려하고 기쁨과 환호와 만족한 삶과 아픔과 절규, 분노와 저주, 그리고 살인이 함께 공존하는 뼈마디 쑤시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현실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말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가운데 제자들은 성령을 체험합니다.
성령의 활동하심으로 비로소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그리고 온 유대를 넘어 세계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증인이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섣불리 나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복잡한 삶 가운데에서 우리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긍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인이 된다는 것은 힘든 현실에도 내 마음의 하늘에 모셔진 주님의 은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증인의 삶은 어둠을 버리고 빛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삶입니다.
성령이 움직이기 전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지켰고 기도하였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본분을 지키면 성령께서 움직이십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자리가 한숨과 회한 그리고 불안이 있을지 모르는 바로 지금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이곳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함께 걸을 때가 훨씬 쉽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희망을 품고 사는 우리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