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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특집 ─ 시의 공간 : 경기 안산·시흥·안양
수리산 자락의 시인들
윤의섭
안산, 시흥, 안양이라는 도시가 재미있는 것은 수리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수리산은 이들 세 도시의 접점에 놓여있는 도립공원이다. 소재지는 군포로 되어 있지만 말이다. 수리산은 예로부터 유명한 산이고 지금도 알 만한 사람들은 멀리서도 찾아와 등산을 즐기는 명소이기도 하다. 안산, 시흥, 안양 세 도시가 우연찮게도 수리산 자락에 놓여있는 것은 세 도시 간 행정구역 변동이 잦았었다는 저간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쨌거나 이들 도시에 시인들이 꾸준히 찾아들고 살고 하는 것도 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안산과 시흥 그리고 안양에 사는 시인들을 다 알지는 못한다. 더구나 서울에 인접해 있는 이들 도시는 많은 이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으로, 인구의 유동성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예전에 살다 지금은 이사를 갔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시인들이 옮겨와 둥지를 틀었는지 세세히 알기는 힘든 것이다. 공장도 많고 상가도 많으며 토박이보다는 외지인들이 더 많이 들어와 사는 이들 도시에는 지난 세월 많은 시인들이 거쳐 갔다. 예를 들면 안산에는 윤후명 시인, 정한용 시인이 살았었고, 안양에는 김기택 시인, 이진명 시인이 살았었다. 그만큼 안산, 시흥, 안양은 많은 이들에게 뚜렷이 각인 되지 못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이사를 왔든 살면서 시인이 되었든 시인들의 숫자는 꽤 많다.
1. 안산에 사는 줄 잘 모르는 안산의 시인들
안산시는 1986년 시로 분리 승격되면서 생겨난 도시로 이전에는 지금의 시흥시인 시흥군에 속해 있었던 곳이다. 물론 안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안산의 특징은 대부도, 제부도 등의 서해가 인접해 있다는 것이며, 예전부터 제방을 쌓고 간척 사업을 하면서 평야가 확충되었다는 점이다. 반월공단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공장지대이며 한 때 환경문제로 얘기가 많았으나 지금은 많이 개선된 곳이기도 하다. 안산은 계획도시답게 도로 시설이 꽤 잘 되어 있고 4호선 전철도 이어져 있어 생활환경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안산은 예술문화를 우대하는 친문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관광홍보 자원이 부족한 도시로서 지방자치제의 자구책으로 개발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아파트 중에는 아예 예술인 아파트라는 곳이 있어 이곳에 한 때 윤후명 시인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백인덕 시인이 결혼을 하여 안산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군집되어 있는데 그 근처에 권현형 시인이 산다. 권현형 시인의 고향은 강릉이지만 안산에 산지 꽤 되었다. 아파트 옆으로는 수리산이 수원지인 안산천이 흐르는데 한 번은 천변 포장마차에서 배용제 시인과 함께 즐거운 자리를 마련한 적도 있다. 권현형 시인은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재작년에는 안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시인 문학 축전’ 행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행사에는 안산에 서울예술대학이 있는 관계로 김혜순 시인, 채호기 시인 등도 참여를 하였다.
권현형 시인과 나는 사는 곳이 가까워서 가끔 서울에서 모임을 끝내고 집에 갈 때면 같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차 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그럴 때마다 소탈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지녔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시도 그렇다.
실은 머리를 늘 남쪽으로 두고 잠들진 않는다
남쪽에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궁한 대로 기원전의 풀과 씨앗이 그득 담겨 있는
가죽 바구니가 있다고 대답했다
녹색이 살아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잔설 때문인지 몸이 차가웠다
눈이 그친 다음 날이었다
남쪽에 가면 좋을 줄 알았건만
무엇보다도 빨리 따뜻해지고 싶었건만
우리는 각자 돌아누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뜻밖에도 경주까지 내려와서
삼월에 몸이 그토록 식을 수 있다니
몸에 갇히면 몸만 남는다
텅 빈 심연에서 꽃을 피워 올려야 하는
산수유의 노랑 고뇌뿐이었다
남쪽에서도 남쪽을 그리워하며
아지랑이 같은, 납덩어리 같은 죄의식에 시달렸다
──권현형, 「몸의 남쪽」 전문
경주는 지리적으로 남쪽에 있는 곳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울을 기준으로 하였을 경우다. 그래서 경주가 남쪽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시인이 서울에서 가까운 안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경주에서는 경주가 남쪽에 있다고 굳이 얘기하진 않으리라. 아무튼 권현형 시인은 성격과 마찬가지로 실존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시를 다수 발표하고 있다. 시인은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다. 시의 깊이가 그런 일상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산에는 배용제 시인도 살고 있다. 원래 수원에 오래 살았는데 몇 년 전 안산으로 옮겨 왔다. 배용제 시인은 등단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나는 배용제 시인이 안산에 온 것에 대해 내심 반가웠으나 정작 안산에서는 자주 만나지 못했고 문학 행사 때 가끔 보고 지낼 뿐이다. 생각이 깊고 주의주장이 강한 배용제 시인은 시에 대해서는 뼛속까지 시인인지라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해가 질 때 지상의 먼지들이 붉게 타오르는 건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지들의 혈맥 속에 진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을 위한 춤이 아니다
무거운 형체를 꺼내놓고 잠시
한때의 가벼움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
환생의 사원에 들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믿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나는 믿는다
──배용제, 「노을」 전문
이 시가 안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안산은 석양과 노을이 유명하다. 서해가 곧바로 펼쳐지고 있는 오이도(오이도는 사실 시흥시 소속이지만) 쪽으로 낙조 시간에 맞춰 가보면 커다랗고 붉은 태양이 바다 속으로 서서히 잠기는 광경과 구름이라도 있으면 붉은 카펫처럼 펼쳐지는 노을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아마도 이 풍경을 보며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경지를 터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산은 서울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우리는 대개 서울에서 만나게 된다. 안산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안산에 산다는 것을 굳이 밝힐 겨를도 별로 없다. 그러니 안산에 산다고 그러면 그 지명조차 얼핏 생소하게 들리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안산에 산다는 것을 모르는 안산의 시인들인 것이다. 하지만 안산은 둘러볼 곳도 많고 공원도 다른 도시에 비해 풍성하게 조성되어 있어 시인들이 여유를 찾으며 시상을 가다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안산의 시인들도 그것이 좋아 안산에 산다는 것을 자신들만의 소중한 자산으로 몰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2. 잘 알려지지 않는 도시, 시흥의 시인들
시흥시는 예전에는 시흥군이었다. 시흥군은 꽤 면적이 큰 도시였는데, 지금은 광명, 안양, 부천, 안산 등지로 영역이 분할되어 전만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넓은 도시여서 안산시와의 경계인 수암동 수리산 자락에서부터 소래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빙 둘러 서해까지 펼쳐져 있는데 아직도 주택 공사가 한창인 지역이 많다. 물왕저수지와 관곡지의 연꽃, 서해에 있는 오이도가 유명하다.
시흥시에는 한 때 기형도 시인이 살았었다. 지금은 광명으로 편입된 곳에 살았었는데 안양과 인접해 있는 까닭에 기형도 시인은 안양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시와 관련된 환경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저변확대가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소래문학회’ 같은 경우는 시를 사랑하는 시흥시 주변 시인들과 동호인들이 모여 결성된 문학회인데 해마다 문집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시흥문학상이 제정되어 있어 해마다 시상을 하고 있다. 소래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현재는 인천시에 속해 있는 소래포구는 많은 시에 등장하고 있는 명소이며 오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전철 4호선의 종점인 오이도 역은 실제 오이도에서는 꽤 멀다.) 또 최승호 시인은 물왕저수지를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
시흥시에는 시화호가 있다. 반월공단과 인접해 있는 시화공단 뒤쪽에 있는 이 시화호는 한 때 환경문제로 시끄러웠으나 이제는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많은 오해와 불안이 불식되었다. 가끔 시화호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뉴스에 나오는 등 환경 지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화호는 어떻게 보면 기준점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화공단이 있는 곳을 흔히 시화단지라고 하고, 그 행정구역은 정왕동에 속해 있다. 정왕동은 인구밀집 지역이고 교육, 문화, 관광, 유락 시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바다에 인접한 정왕동은 예전에는 갯벌이 펼쳐져 있었고 지하수에서도 염수가 나올 만큼 지대가 낮았는데, 지금은 거의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논밭은 거의 없었다. 원래 어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외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산다.
이 정왕동에 김신용 시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화한 도시도 아닌 이곳에서 김신용 시인은 일상에 뿌리를 내린 삶의 단면들을 보여 주고 있다.
소래 포구에서 뱀처럼 꾸불텅 파고든 갯골을 본다
뻘이 제 육신을 열어 터놓은 저 물길
서해에 뿌리 박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서도 힘차게 가지 뻗은 듯하다
한 때, 소래 벌판의 염전들은 그 가지에 매달려 푸른 잎 나부꼈을 터
결 고운 옹패판 위에 희디흰 소금의 결정들을 수확했을 터
지금은 나뭇잎 다 져 앙상한 고사목 같은 형상으로 놓였지만
해주도 소금창고도 허물어져 갈대밭에 누운지 오래지만
뿌리는 아직 살아 밀물 때마다 염수를 밀어올린다
스스로 무자위 밟아 수액을 끌어올린다
뻘밭에 세한도 한 폭을 새겨놓기 위해
바다는 오늘도 묵지墨紙가 된다
그 갯골이 커다랗게 입 벌린 상처처럼 보이지만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사행蛇行의 갯골에는
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뻘 속에는 혈거穴居의 게들, 흘림체로 별사를 쓰듯 기어 나온다
저 뿌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묵지墨紙가 살아 있는 그늘이라고
──김신용, 「섬말시편-갯골에서」 전문
이 시는 그야말로 소래포구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래포구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서민들의 삶이 ‘새’나 ‘게’들을 통해 형상화되어 있는 듯하다. 지금은 예전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이 많이 사라졌지만 시인이 본 이 풍경에는 녹녹치 않은 삶 속에서도 생기 있게 살아가는 애틋함이 가득 배어 있다.
시흥시는 서울의 시흥과 지명이 같아 많은 이들이 혼동을 한다. 그래서 꼭 경기도 시흥시라고 명기해야할 때도 있다. 그만큼 시흥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서울과 인접해 있으면서 도로 교통 여건은 좋지만 환경문제와 낮은 집값에 대한 오해로 인해 인식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시흥시는 공기 맑고, 경관 좋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각종 문예지로 꾸준히 시인들이 등단하고 있는 곳이다. 관광지로써도 손색이 없으며, 포도가 유명하다. 그러니까 좋은 시를 쓰기에 적격이라는 말이다. 기회가 되면 소래포구에 가서 김신용 시인과 함께 ‘뻘밭에 세한도 한 폭’ 새겨놓는 바닷길을 보고 싶다.
3. 만나보고 싶은 안양에 사는 시인들
안양시는 크게 두 시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전부터 발달해 있었던 시가지는 만안구에 속해 있는데 전통적으로 재래시장이 유명하다. 중앙시장과 남부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점포가 죽 늘어서 있는데 시장 구경하다 들러 먹는 곱창순대볶음은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그 아래에 있는 안양지하상가는 한 때 그 규모면에 있어서 필적할 곳이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삼원극장과 그 앞의 본백화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서점을 오가며 안양에 사는 시인들과 예비시인들은 ‘수리시동인’ 모임을 가졌다. 기형도 시인이나 김기택 시인이 동인이기도 했다. 당연히 ‘수리’라는 명칭은 수리산에서 온 것으로 안양예술고등학교 뒤쪽, 보신탕으로 유명한 병목안 담뱃골로 쭉 들어가면 수리산이 나온다. 지금은 수리산의 행정관할권이 군포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군포의 한 시 모임 이름이 ‘수리샘’이기도 하다.
안양시는 평촌으로 알려진 동안구가 있다. 여기에는 공장도 있지만 시청 등의 행정건물과 아파트가 대거 밀집해 있다. 기획시가지이기 때문에 평촌중앙공원을 중심으로 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건물들이 펼쳐져 있고 높은 빌딩도 많아 도시의 풍치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특히 평촌중앙공원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동안구는 집값이 높고 교육환경이 우수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기에는 유동인구가 많았지만 지금은 정착인구가 늘어난 편이다. 이 동네에 안양이 원래 고향이 아닌 소설가도 살고 시인도 많이 산다. 그 중에 홍은택 시인이 있다.
1.
하늘을 나는 흰 말을 그린 화공의 마음이었나 채색판에 자작나무 고운 껍질 입히던 섬세한 손길의 꿈이었나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 속 천마도를 보고 온 날, 나는 툰드라의 설원에 서 있었다 설원에 발을 묻고 선 자작나무 숲이, 흰 나무껍질이 역광으로 눈부셨다
2.
흰 채색의 평면이 부풀어 근육으로 꿈틀거렸다 힘차게 울음 울며 앞발을 굴렀다 지포라이터를 꺼내 말발굽에 불을 붙인다 흰 말이 설원을 달린다 자작자작 발굽이 타고 무릎이 타고 허벅지 근육에 불이 붙는다 꼬리와 갈기를 불길로 흩날리며 허공에 떠오른다 날개만 남아 하늘을 날아오른다
3.
자작나무 내 머리 속으로 흰 말 한 마리 훨훨 사라진다
──홍은택, 「자작나무의 꿈」 전문
홍은택 시인은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어서 주소지가 대학교 연구실로 되어 있다. 그래서 주소를 확인해 봐도 안양에 사는지를 알 수가 없는데, 우연한 기회에 같은 전철을 타고 가면서 평촌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발이 성성한, 차분한 외모에 목소리도 좋아서 누구에게나 호감형인 시인의 시는 그러나 광활한 자연을 다 품을 듯한 호기와 역동성이 넘쳐난다. 사는 곳은 삭막하고 사방이 막힌 도시이지만 시인의 마음만은 설원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밖에도 김경인 시인, 박성창 시인 등이 사는데 많은 시간을 두고 만나보지 못한 시인들이다. 안양천 옆 관악산 능선에 있는 삼막사에 오르며 도란도란 담소라도 나누고 싶은 시인들이다.
안양시 인근에는 산본으로 알려진 군포시와 의왕시가 있는데 여기에도 많은 시인들이 살고 있다. 그만큼 서울 인접 도시에 둥지를 튼 시인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어떤 시인들은 서울로 향하고, 또 어떤 시인들은 제 도시로 파고들어 나름의 시심을 펼쳐내고 있다. 만약에 시인탐방이라는 목적으로 이들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시와 인생을 논하려 한다면 먼저 그 도시가 왜 그 시인들을 품고 있는지 알아봄직 하다. 사는 곳을 아껴야 뿌리내린 생물도 아낄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윤의섭 /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가 있고,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재직 중이다.
첫댓글 제가 고등학교 시절 안양에 김기택시인,배준석시인들이 청년시절..낙엽동인 활동하고 있었는데...
김시인은 이제 무지 유명한 시인이 되었죠 그때 싸인 받은 것 어디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