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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의 반역
-로마서 1장-
1. 인사말(1:1-7)
열 세 편의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이 위대한 사도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그 당시에는 글쓰는 이의 이름과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바울은 자신을 종이요, 사도라고 신분을 밝히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아(5절), 이 놀라운 사역에로 성별되었다고 말하여(행 13:1-3/갈 1:15-24)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그는 즉시로 그의 사역이 복음에 속한 것이라고 서술하는데, “하나님의 복음“(1절), “그의 아들의 복음“(9절), “그리스도의 복음“(16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이 그가 발명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약속되어 있음을 언급한다(고전 15:1-4 에 나오는 “성경“이란 말은 구약 성경임이 분명하다. 그 때는 신약이 기록되고 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구약을 복음에 연관시킴으로 그의 편지를 읽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관계된다. 그는 육신으로는 유대인이시지만(3절),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입증되었다(4절). 복음은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입증한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될 수 있는 신인(神人, God-man)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신 이 복음의 목적은 무엇인가? 5절은 “모든 민족들로 믿음에 순종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 준다. 인간이 진실로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그는 주님께 순종할 것이며, 순종을 통하여 자기의 믿음을 입증할 것이다.
6-7절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인 그의 수신자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으나, 사도가 되기 위하여가 아니라 성도가 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성도란 그리스도를 믿는 살아 있는 신자임에 유의하자. 하나님만이 죄인을 성도로 만드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부르실 때처럼(마 3:17) 우리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시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에서 그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역시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요 17:23).
이 간단한 인사말에 다음과 같은 점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기자-바울
-수신자-로마에 있는 성도들(불신자가 아님)
-주제-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
2. 해명(1:8-17)
바울은 이제 이 편지를 쓰는 이유(8-15절)와 그가 쓰려고 하는 내용(16-17절)에 대한 이중의 해명을 한다.
1)이유(8-15절)-오랫동안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방문한기를 원해 왔다. 그들의 간증은 로마 제국을 통하여 이미 널리 퍼져 나갔으며(8절/ 살전 1:5-10), 바울은 방문하려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즉,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세워지도록 돕기 위함(11절)과, 그들을 보고 기뻐하기 위함(12절), 그리고 그들 중에 “얼마의 결실을 얻기“ 위함, 곧 다른 이방인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13절).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자였음을 기억한다면 이방의 제국 수도에 사는 성도들과 죄인들을 위한 부담감을 분명히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을 더 빨리 방문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았다고 설명한다(13절). 이것은 사단에 의한 방해가 아니라(살전 2:18) 다른 곳에서 사역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롬 15:19-23). 이제 그 일이 끝났으므로, 그는 로마를 방문하려고 하였다. 바울의 생애에 있어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주목해 보라. “나는 빚진 자이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2)주제(16-17절)-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계시한다“는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하나님의 의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에 기초한 것으로서,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의로운 분이신 동시에 또한 의롭게 하시는 분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죄인을 의롭게 하시면서 여전히 그의 거룩한 법을 유지하실 수있으신가“를 설명한다. 그는 하박국 2장 4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인용하였다(서론 참조)."
3. 정죄(1:18-32)
우리는 이제 이 서신의 첫부분인 “죄“에 대해 보게 된다(1:18-3:20 개요 참조). 1장을 끝맺는 구절들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여 그들을 삼켜버리는 무서운 어두움에 빠졌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향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설명한다. 이방이 타락해 가는 역사의 과정을 주목해 보자.
1)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18-20절)-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저희 안에“(양심)와 “저희에게“(창조)의 방법을 통해 이중으로 계시하셨다(19절). 인간이 무지함으로 출발하여 점차 지성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강한 계시와 더불어 시작하였으나 그러한 계시에 대하여 등을 돌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순간으로부터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핑계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는 2장에서 다룰 것이다.
2)그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21-23절)-헛된 생각과 철학자들이 실천하는 바, 어리석은 추론이 인간을 진리에서 거짓말로 돌아서게 하였다. 우리는 무관심이 배은 망덕으로 인도해 가며 결국은 무지하게 됨을 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헬라와 로마의 철학들 앞에 절하며 그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인다. 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철학들을 “허망한 생각“이며 “알지 못하던 시대의 일“(행 17:30)이라고 부른다. 다음 단계는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높이는 우상 숭배의 단계였다.
3)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놓았다(24-25절)-이 단어는 “교환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단의 거짓말로 대치하였다. 사단의 거짓말은 무엇인가?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섬기고 하나님 대신 인간을 섬기는 것, 그리스도 대신에 일 또는 물건들을 섬기는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께도 이같이 하라고 유혹하였다(마 4:8-11).
로마서 1장 18절에서는 이방인들이 “진리를 막았고“ 여기서는 “진리를 바꾸었음“에 주목하자. 진리를 믿고 순종할 때에 우리는 자유로와지며(요 8:31-32) 진리를 거절하고 불순종할 때에 노예가 된다.
4)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거절하였다(26-32절)-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지식에서 출발하였으며(19, 21절) 죄에 대한 그의 심판을 알았으나(32절) 이들은 이제 아래로 떨어져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고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이러한 타락의 비극적인 결과를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원시적이며 무지하고 짐승 같은 형태에서 놀라운 피조물로 오늘날과 같은 “진화하였다“고 믿게 하려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 반대 상황, 즉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에서 시작하여 짐승의 수준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다음에 제시된 하나님의 세 가지 심판에 유의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부정함과 우상 숭배 가운데 버려 두셨다 / 24-25절
-하나님은 그들을 타락한 정욕에 버려 두셨다 / 26-27절
-하나님은 그들을 “상실한(버림받은)“ 마음에 버려 두셨다 / 28절 이하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 두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었다(18절). 여기 나오는 죄의 목록은 너무도 타락한 것이어서 정의하거나 토론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오늘날도 인간의 승인을 받으며 온 세상에서 자행되고 있다! 인간들은 죄가 심판을 받게 됨을 알지만 어찌 되었든 죄 가운데서 즐거움을 취한다 !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스스로의 죄의 노예가 될 것이다. “말할수 없는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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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의 정죄
-로마서 2장-
2장 1절에서 3장 8절까지 바울은 자기 백성 유대인에게로 촛점을 돌려 그들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로 정죄됨을 보여 준다. 1장 20절에서 이방인들이 핑계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2장 1절에서는 유대인들도 역시 핑계댈 것이 없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언급은 특권 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에게는 천둥과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려고 하시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는 공정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그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들 세 가지를 지적하며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함께 동일하게 정죄됨을 입증된다.
1. 심판은 인간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따른다(2:1-5)
1장에서 바울이 “이교도들“을 기소하는 것을 읽고 유대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마땅한 대우로군 !“이라고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태도는 누가복음 18장 9-14절에 나오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라는 바리새인들의 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당연시하는 유대인에게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너희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하므로 마찬가지의 죄가 있다!“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풍문이나 잡담, 우리 자신의 좋은 의견 또는 인간의 평가에 따르지 않고 “진리에 따라“ 심판하신다(2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신의 실수들을 미워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실수들을 발견할 때는 특히 더하다.“ 바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똑같은 죄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시 논쟁을 벌인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사용하신 똑같은 진리로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으실 것이 분명해 ! 왜냐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선하게 대해 오셨는지를 보면 알지 !“ 그러나, 이들은 그의 선하심을 쏟아 부으실 때 하나님의 심중에 가지신 목적을 알지 못했으며, 왜 그처럼 인내하시며 그들이 순종하기를 기다렸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의 선하심은 회개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회개하는 대신 마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받을 진노를 더욱 더 쌓았다(계 20장). 당신은 오늘날 잃어버린 죄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는가? “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으로 보내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 왜냐하면 그분은 나에게 선한 일을 너무도 많이 베풀어 오셨기 때문이야.“ 이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준비인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겸손한 감사로 경배하는 대신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더욱 많은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단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울 시대에 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두가지 핑계를 오늘날도 듣게 된다. 즉,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선하다. 따라서 내게는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는 것과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셨다. 따라서 나를 정죄하지는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인간의 의견과 평가에 따르지는 않을 것이며 진리에 따르게 될 것이다."
2. 심판은 인간의 지위가 아니라 그 행위에 따른다(2:6-16)
최근에 출간된 「Status Seekers」라는 책에서는 미국인들이 어리석게 “사회적 신분“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과,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값이라도 치르려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산상에 있어서 높은 신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율법을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다(13절).
이 구절들은 구원받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류가 삶의 과정을 통한 행위들에 따라 그들을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 7-8절은 인간의 경우에 따른 행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생의 목적을 말하는 것으로 윌리엄 뉴웰(William Newell)은 “생의 선택“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만약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참을성 있게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결코 영생을 발견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6, 10절), “모든 영“(9절), 이러한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편애하는 분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생애에 기초하여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는 분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들을 이런 식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고 이방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12-15절에서 설명하듯이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그들이 받은 빛에 따라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모세를 모르는 이방인들이 율법 없이 살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덕법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1:19 참조). 콩고(Congo)선교의 베테랑인 단크로포드(Dan Crawford)는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나와서 “이교도들은 홍수와 같은 빛을 받으면서도 이에 대항하여 죄를 범한다“고 말했다. 로이 로린(Roy Laurin)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들은 그들이 소유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따라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결코 그들이 소유하지 않은 더 높은 표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듣고 이를 행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더욱 맹렬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3. 심판은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른다(2:17-29)
이미 바울은 “심판의 날“에 대하여 두 번 언급하였다(2:5/2:16). 이제 그는 이 심판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있는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셔서 마음의 심판이 될 것을 언급한다.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인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종교의 특권 의식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으며, 보다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소경이요, 어두움 가운데 있으며, 어리석고, 어린 아이들이라고 보았다(19-20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독점적인 총아로 생각했으나,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특권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보다 많은 책임을 지운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바로 그 율법을 그들 스스로 불순종하였다. 그 결과 “사악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기에 이르렀다! 바울은 아마도 이사야 52장 5절, 에스겔 36장 21-22절, 또는 사무엘하 12장 14절에 나오는 다윗에게 한 나단의 말을 참고했을 것이다.
만일 “종교“를 가진 백성이 있다면 그것은 유대 민족일 것이다. 그들의 종교는 내적인 실재의 문제가 아니라 외적인 의식의 문제였다. 그들은 할례 의식을 자랑으로 여겼는데, 이 의식은 그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다면 육체의 의식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바울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할례받은 유대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본다 ! 왜냐하면 참된 유대인이란 내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의 마음이 변화된 사람이며, 육신에 거하여 외적으로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27절은 비록 할례를 받지 않은 본질상 이방인들이 율법을 성취한다면 유대인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담대하게 언급한다 !
그리스도의 복음은 내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너희가 거듭나야 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의 비밀들을 심판하실 때 그 시험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종교적인 제도들에 순종하는 일이 아니다.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1:16).
복음을 믿지 않고 그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정죄받은 편에 서게 된다. 자신의 종교와 율법주의를 지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더욱 죄 아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알 수 있는 보다 큰특권과 기회들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좋은 견해나 신분이나 종교에 따라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리들에 따라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서, 인간의 행위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서 심판하신다.
결국, 바울은 1장에서 이방인들이 핑계할 수 없음을 입증하였고, 여기 2장에서는 유대인들이 핑계할 것이 없음을 입증한다. 3장에서는 온 세상이 죄와 정죄 아래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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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계가 유죄함
-로마서 3장-
이 장은 첫번째 부분(죄)과 두번째 부분(구원)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전반부에서(1-10절) 바울은 정죄의 문제를 다루며 유대인과 이방인, 온 세상이 죄 아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후반부(21-31절)에서 그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주제를 소개한다. 이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두 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3장은 이 책의 남은 부분을 위한 “모판“(seed bed)이다. 1-4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다루는데, 이는 9-11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8절에서 그는 죄 가운데 사는 문제를 언급하며, 이는 6-8장에서 논의된다(3:8 이 6:1 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에 유의하자).
21절은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주제를 떠올리는데, 이것은 4-5장의 주제이다. 끝으로, 31절은 율법을 세우고 순종하는 일을 언급하며, 이는 12-16절에서 제시된 주제이다(13:8-14 을 유의하자).
1. 나쁜 소식-죄 아래 있어 정죄됨(3:1-20)
바울은 이 부분에서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답한다.
1)유대인들이 정죄되었다 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것이 특권이 되는가?(1-2절)-특권이 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로서 그의 말씀에 나타난 뜻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면 그 민족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들을 통하여 축복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특권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이러한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2)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케 하는가?(3-4절)-물론 그렇지 않다 ! 인간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미쁘심“-3절)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 비록 모든 사람이 거짓말장이더라도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바울은 시편 51편 4절을 인용하는데, 여기서 다윗 왕은 자신의 죄와 그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자기의 죄를 시인하면서조차 다윗은 하나님의 의와, 말씀의 진실성을 확증하였다.
3)그렇다면, 죄를 범해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것이 왜 안되는가?(5-8절)-“결국 하나님이 나의 죄를 심판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다면 나는 하나님께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 또는 나를 심판하는 대신, 하나님은 나를 죄 가운데 버려 두심으로써 영화롭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따라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 바울은 재빨리 이같은 죄악된 삶을 옹호하는 논급을 6절에서 반박함으로써 처리해 버린다. 그 같은 견해는 하나님께서 결코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다는 뜻인데,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이 이 세상의 심판자이심을 알지 않았던가!(창 18:25)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심판하고 그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말한 대로 행하신다면 세상에서 모든 진리와 정의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바울의 유대인 적들은 바울에 대하여 거짓말을 했으며, 그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8절)는 식의 교리를 가르쳤다고 말했다(6:1/6:15 참조). 이러한 서술은 이성과 성경에 모두 위배되므로 바울은 이를 거론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
4)그러면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이 더 선한가?(9-18절)-그렇지 않다. 그리고 또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둘다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무서운 정죄 아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 이 말은 로마서가 전하는 위대한 멧세지이다. 죄에 있어서나 구원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3:22-23/10:12-13).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 아래 있다고 결론을 내리심으로, 은혜 가운데 모두들 자비를 얻도록 하셨다(롬 11:32).
이제 바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의 전 죄악성을 설명함으로써 전 세계가 유죄함을 입증한다. 10-12절에서, 그는 시편 14편 1-3절을 언급하며 그들의 죄악된 성품을 묘사한다. 그리고 13-18절에서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설명한다(시 5:9/시 140:3/시 10:7/시 36:1/사 59:7-8 인용). 이 구절들을 읽고 그 배경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19-20절에는 그의 마지막 판결이 나온다. “온 세상은 유죄하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율법은 그들을 정죄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좋은 소식-믿음으로 의로워짐(3:21-31)
1)율법에서 벗어남(21절)-21절은 “그러나 이제 은혜의 시대에 의, 곧 새로운 종류의 의가 나타났는데 이는 율법에 의존하는 의가 아니다“라고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법적인 의, 행위적인 의를 원한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은 정죄할 뿐이며 결코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증명하였다.
이러한 은혜로 인한 의는 구약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 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선포되었다. 하박국 2장 4절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였다. 로마서 9장 30-33절을 읽고 이스라엘이 왜 이러한 믿음의 의를 상실하였는지 알아보자.
2)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함(22-26절)-바울이 위대한 단어 “믿음“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에 유의하자. 23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아담을 통하여 단번에 모두가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늘상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바울은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을 소개한다.
- 의로워지다-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을 뜻한다.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같이“ 의롭게 여기신다. 이 일은 지상에서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그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함없는 우리의 지위를 뜻한다
- “칭의“-하나님께서 나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의, 또는 나의 것으로 돌려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다.
- 성화-나누어 받은 의 또는 나의 일상 생활에 살아 있는 의이다.
- 구속-이것은 죄와 그 형벌로부터 그 값을 치르고 구원받는 것이다. 이 값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이다.
- 화해-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본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만족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용서하실 수가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는 만족을 얻었다. 그는 이제 잃어버린 세계를 사랑과 자비로 보실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절) 얼마나 감격적인 말인가 ! 행위나 선한 의도나 은사나 기도로써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된 것이다 ! 바울이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동시에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설명하는 것도 이 서신에서이다(26절). 그리고 그 해답은 십자가이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그는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벧전 2:24)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살아계셔서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
2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분히 계시되기 전의 시기에 대해 지적하는데,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간과하심“(passing over-넘어가다)으로, 예컨대 노아와 아브라함, 에녹 등과 같은 이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불의하게 보인다. 사실상,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는 진노를 보내셨으나,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실 수 있는가?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모든 진노를 드러내실 것을 아셨고, 소와 염소의 피로써는 다만 “덮을 수“있을 뿐이었던 죄들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구속의 길을 예비하실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히 9-10장).
3)믿음으로 받아들임(27-31절)-“문제의 전체 결론을 들어보라 !“ 유대인들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하나님이 된다. 이스라엘만이 율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이다 !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 같은 방법, 곧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러한 간단한 구원의 방법은 율법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에 대해 죽음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이로써, 복음은 율법을 세운다 ! 하나님의 법은 그의 은혜의 필요성을 계시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율법에 순종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