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달맞이꽃과 할머니 마음
― 꽃의 호소문, 할머니의 호소문
윤승원 수필가
이 꽃 이름이 무엇일까요?
▲ 동네 골목길 화단에서 만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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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로 보아 ‘달맞이꽃’으로 보입니다. 우리 동네 골목 화단에서 팔순 할머니가 소중히 가꿔온 노란 꽃입니다.
그런데 길가에 있는 작은 화단이다 보니 행인들이 불쾌감을 주는 일이 잦습니다.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는 사람, 쓰레기 같은 물티슈를 버리는 사람, 심지어 강아지 똥을 싸놓고 그대로 가버리는 견주(犬主)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단 주인인 할머니, 화가 났습니다. 참다못해 이런 팻말을 세워 놓았습니다.
▲ 화가 난 할머니가 세워놓은 팻말 앞에서 필자(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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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쓰레기장이 아닙니다. 개똥 싸는 곳도 아닙니다. 예쁜 꽃이 피는 소중한 화단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얼굴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참겠습니까? 콧물 닦은 티슈, 오물 묻은 휴지를 버리면 참을 수 있겠습니까? 강아지가 여러분 얼굴에 똥을 싼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예쁜 꽃이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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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마음’을 존중하고 헤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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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할머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할머니의 하소연이 가슴을 때립니다.
저의 집 앞 화단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니까요.
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꽃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할머니의 순수한 꽃 사랑을 존중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
2026. 5월
윤승원, 동네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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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님이 폰카로 보여주신 꽃은 말씀하신 대로 달맞이꽃(큰달맞이꽃, Evening Primrose)으로 보입니다.
노란 비단결 같은 꽃잎과 길쭉한 잎, 그리고 저녁 무렵 더욱 환하게 피어나는 특징이 있어요.
골목 화단의 회색 담장 앞에서 저렇게 무리 지어 피어 있으니 더욱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단순한 ‘꽃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되묻는 생활 수필입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할머니의 팻말입니다.
그 문장에는 노여움만 담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꽃을 돌보며 살아온 한 사람의 상처와 애정이 함께 배어 있습니다.
“여기는 쓰레기장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결국 “이 꽃도 생명입니다”라는 절절한 호소처럼 들립니다.
더욱 울림이 큰 대목은 이것입니다.
“여러분 얼굴에 담배꽁초를 버린다면 참겠습니까?”
이 표현은 단순한 경고문을 넘어섭니다. 꽃을 사람의 얼굴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할머니가 얼마나 정성으로 화단을 가꾸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꽃은 말이 없지만, 그 꽃을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대신 말을 하는 셈이지요.
윤 선생님의 글은 바로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골목 화단이 지저분하다.” 정도로 지나칠 일을, 윤 선생님은 인간의 무심함과 공동체의 품격 문제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자기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참 서글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작은 화단을 동네의 아름다움으로 가꾸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익명의 공간이라 여겨 함부로 대합니다.
결국, 꽃을 지키는 일은 단지 원예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저는 윤 선생님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할머니의 하소연이 가슴을 때립니다.”
이 한 문장에는 공감과 연민,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느끼는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꽃을 통해 사람의 양심을 비춰보는 따뜻한 생활 에세이’로 읽힙니다.
골목의 작은 달맞이꽃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된 듯합니다.
◆ 덧붙이는 말
윤 선생님의 따뜻한 공감이 있었기에 그 할머니의 마음도 더욱 살아난 듯합니다.
작은 골목 화단 하나에도 사람의 정성과 인생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윤 선생님께서 놓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이야기는 단순히 “꽃을 아끼자”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인의 수고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용히 묻는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새벽마다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떼어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려고 꽃을 가꾸는데, 그 마음을 함부로 짓밟는 모습은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음 아파해 주는 윤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공감의 시선이야말로 메마른 골목을 다시 따뜻하게 만드는 힘일 것입니다.
노란 달맞이꽃도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자기를 예쁘게 바라봐 주는 사람과, 자기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요.
그래서인지 사진 속 꽃들이 더 또렷하고 환하게 피어 있는 듯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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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팻말의 효과는 곧 '글의 힘'입니다. 언어를 통한 호소력입니다. 꽃밭이 깨끗해졌습니다. 달맞이꽃이 저를 보고 환하게 웃기에 폰카에 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