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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박 태 원
1
그 창은-6척 × 1척 5촌 5푼의 그 창은 동쪽을 향하여 뚫려 있었다. 그 창 밑에 바특이 붙여 쳐놓은 둥탁자 위에서 쓰고 있던 소설에 지치면, 나는 곧잘 고개를 들어, 내 머리보다 조금 높은 그 창을 쳐다보았다. 그 창으로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희멀쑥한 이층 양옥과, 그 집 이층의 창과 창 사이에 걸려 있는 광고등이 보인다. 그 광고등에는,
醫療器械 義手足
이러한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러나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든 그 살풍경한 광고등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그 창으로 안을 엇보는 어린아이의 새까만 두 눈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열 살이나 그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은, 바깥 보도 위에 그대로 서 있는 채, 그 창으로 안을 엿볼 수 있도록 키 클 수 없다. 아마 지나는 길에 창틈으로 새어 나오는 축음기 소리라도 들었던 게지…… 발돋움을 하고 창틀에가 매어달려 안을 엿보는 어린아이의, 그렇게도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보았을 때, 나는 스티븐슨의 동요 속의, 버찌나무에 올라, 먼 나라 알지 못하는 나라를 동경하는 소년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었다.
그러나 대체 우리 어린이는 그 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창으로 향하고 있는 나의 고개를 돌려 그 어린이가 창 밖에서 엿볼 수 있는 온갖 것을 나 자신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 그 안에 등불이 켜질 때까지는 언제든 그곳에 ‘약간의 밝음’과 ‘약간의 어둠’이 혼화(混和)되어 있었다. 이 명암(明暗)의 교착(交錯)은 언제든 나에게 황혼을 연상시켜 준다. 황혼을? 응 황혼을― 인생의 황혼을, 나는 그곳에 분명히 보았다.
사람들은 인생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이 안으로 들어와, 2척 ×2척의 등탁자를 하나씩 점령하였다. 열다섯 먹은 노마는 그 틈으로 다니며, 그들의 주문을 들었다. 그들에게는 ‘위안’과 ‘안식’이 필요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어린 노마에게 구한 것은 한 잔의 ‘홍차’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그리고 ‘축음기 예술’에 귀를 기울였다. 이 다방이 가지고 있는 레코드의 수량은 풍부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의 기쁨은 결코 그 ‘이백오십 매’라는 수효에 있지 않았고 오직 한 장의 ‘옐레지’에 있었다.
엔리코 카루소(Enrico Caluso)의 성대만이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을 사랑하는 점에 있어서, 나는 아무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내가 일곱 시간 이상을 그곳에 있었을 때, 분명히 열두 번 이상 들었던 ‘옐레지’는, 역시 피로한 것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다시 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어느 틈엔가 어린이의 얼굴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언제든 변치 않는 광고등이 다시 그곳에 나타나 있었다. 나는 어제 이후로 한 자도 쓸 수 없었던 원고를 생각하고, 초조와 불안을 느끼면서 얼마 동안인가 무의미하게 그 광고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레몬티를 가지고 노마가 내게로 왔다. 오후 두시에 나는 이곳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면서, 두 시간 지나 레몬티를 갖다 주기를 그에게 청하여 두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인 까닭인지 그것은 뜨거운 액체였다. 차디찬 미각을 예기하였던 나의 헛바닥 위에, 그것은 몹시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애초에 주문하였을 때에 아무런 ‘제한’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렇게 부주의한 나 자신을 저주하면서, 찻그릇을 그대로 한 옆으로 밀어 놓고 다시 원고지를 대하려 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 위에 다만 한 자라도 쓸 수 있기 전에 나는 문학 청년들(?)의 괴 기염에, 나의 귀를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는 그들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한 칸통 떨어진 등탁자 앞에 서너 명의 청년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안경을 벗은 나의 눈은 그들의 얼굴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은 사실 웅변(?)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들의 입에서 ‘춘원’이 나오고 ‘이기영’이 나오고 ‘백구(白鳩)’가 나오고 ‘노산 시조집’이 나왔다. 그들은 얼마나 조선 문단이 침체하여 있는가를 한탄하고, 아울러 온갖 문인을 통매하였다. 그렇게 식견이 높은, 그들은, 혹은, 미미한 ‘나’와는 비길 수도 없게시리 이름 높은 작가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어떻든 나는 그러한 속에서 나의 소설을 계속 할 수 없는 것을 갑자기 느끼고 그 미완성한 원고를 책보에 싸서 그것을 노마에게 맡기고, 그리고 도망질치듯이 그 다방을 나와 장곡천정(長谷川)을 부청 쪽으로 향하여 터덜터덜 걸어갔다.
2
나는 M신문사 앞에까지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잠깐 우두머니 서서 누구나 만나 보고 갈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즉시 그곳 수부(受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면회인명부(面會人名簿)’를 생각하고 나는 그 돌층계를 올라가기를 단념하여 버렸다. 수부에서 청하는 대로 그 명부 위에다 바보같이 ‘만나 보려는 이’의 이름과 ‘나의 주소’와 또 ‘나의 이름’을 적을 용기가 나에게는 결핍되었던 까닭이다.
나는 그 앞을 떠나 신문 게시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제까지 이틀째 R씨의 글이 휴재되었던 것을 기억에서 찾아내고 학예면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R씨의 글은 역시 오늘도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보도 위를 다시 걸어가며, 먼저 받아썼던 약간의 원고료로 말미암아, 신문사의 요구대로 쓰고 싶지도 않은 종류의 원고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R씨의 경우와, 몇 회 계속을 못 하고 이렇게 사흘씩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생각하고, 그곳에도 역시 인생의 피로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길 복판을 전차가 지났다. 자동차가 지났다. 자전거와 함께 휘파람이 지났다. 그 휘파람 소리는 언제까지든 나의 귀에 남아 있었다. 휘파람은 어린이의 노래이다. 그 휘파람을 불 줄 모르는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노래 모르고 지났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허위로 가득 찬 나의 과거를 무기력하게 비웃으며, 몇 번인가 부질없이 입살을 동글리어 휘파람을 불려 하였다. 그러나 그곳으로는 단조로운 바람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나는 나의 눈앞에 나타난 D신문사의 삼층 건물을 잠깐 멀거니 쳐다보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도어에다 손을 내었다. 그러나 도어 안, 정면 벽에 걸린 시계가 넉점 반이나 된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층 응접실까지 걸음을 옮기는 것의, 혹은 부질없는 노력으로 그칠 것을 염려하고, 그곳에 매어달린 전화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나의 수화기로 들린 목소리는 이씨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 나는,
“편집국장을 잠깐 뵈오려는데…….”
하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 자리에 아니 계십니다.”
하고 냉담한 한마디 뒤에 전화는 저편으로서 끊어져 버렸다. 나는 쓰디쓴 웃음을 웃고, 수화기를 제자리에 걸어 놓으려다, 이곳을 나서서 아무 데로도 갈 곳을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을 생각하고, 또 그와 함께 그에게 문의할 것이 몇 가지 있었던 것을 기억에서 찾아내고, 다시 수화기를 귀에 대었다. 그리고 나는 교환수 양에게 현재 편집국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잠깐 기다리십쇼.”
하고 여자는 말하였다. 나는 그의 여자답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미루어, 그가 응당 성의껏 나의 청을 들어 줄 것을 믿으면서, 수화기 안 든 손을 스팀 위에다 얹어 놓고, 얼마 동안을 그곳에가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편집국장의 현재 있는 곳은 교환수 양도 모르고 있었다.
“……하여튼 사내에 계시기는 계십니다.”
하고 그는 덧붙여 말하였다.
‘바로 지금 층계라도 오르내리고 있는 것일까……? 또는 변소 안에라도 있을 것일까……?’
혼자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곳을 나와 한길 위에가 섰다.
行爲不明의 編輯局長……
編輯局長의 紛失……
나는 속으로 신문기사의 표제를 고르면서, 그곳에 서서, 때마침 관청에서 물러 나오는 샐러리맨들의 복잡한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제 한나절을 내려 곱게 쌓였던 눈이, 어쩌면 그렇게도 구중중하게 녹은 거리 위를, 그들은 전차도 타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고무장화를 신은 사람조차 있었다. 눈이 완전히 녹아 구중중하게 질척거리는 한길 위를 무겁게 터벅거리고 가는 고무장화의 광경은, 물론, 보기에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고무장화의 피곤한 행진을 보며, 그것을 응당 물로 닦고 솔질을 하고 할 그들의 가엾은 아낙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아낙들이 가끔 드나들어야만 할 전당포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곳의 ‘삶’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
어느 틈엔가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나의 타고 있는 버스는 노량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노량진을 가기 위하여서 버스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노량진 이외의 아무 곳을 가기 위하여서 탄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것은 이를테면 아무 데로도 갈 곳을 가지지 않은 나였던 까닭에, 아무 데로라도 가기 위하여서의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우리가 일일이 ‘까닭’ 붙여 말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실로 아무런 별 ‘까닭’ 없이 우리들의 코털을 뽑고 우리들의 수염을 어루만지고 하는 것이 아닌가……?
버스는 러시아워답게 만원이었다. 나는 그곳에 옴츠리고들 끼여 앉고, 웅숭거리고들 끼여 섰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 속에 한 명의 여자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실, 여자를 동반하고 있는 사람은 이 버스 안에서 오직 운전수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여차장도 한 개의 여자로 대우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또 빈약하였다.
나는 이 안에 어깨들을 부비면서 타고 있는 온갖 사나이들이 한 명의 여자도 동반하지 않고, 대체 어디로들 가는 겐고……? 하고 그것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나의 앉아 있는 바로 앞에가 어떤 시골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버스가 정류소에가 서고 또 움직이고 할 때마다, 뒤로 나가자빠지려다, 내 머리 위로 엎으러지려다 하면서, 그때마다 엄청나게나 질겁한 소리로 ‘어그마! 어그마!’ 하고 외쳤다.
그가 그렇게 외칠 때마다, 승객들은 모멸과 흥미가 혼화한 웃음을 웃으며, 그들의 머리를 들어 그 시골 사람의 뒤로 제껴쓴 갓과, 또 갓 속의 조그만 상투를 보았다.
덜컥! 하고 벼스는 또 급격하게 정거하였다. 나는 창 밖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곳이 연병장임을 알았다. 나는 잠깐, 새로운 궤도부설(軌道附設)이 아직 끝나지 아니한 ‘구룡산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눈에 전차 선로를 횡단하여 오는 한 어린이의 모양이 보였다. 그 어린이는 행길을 호떡을 먹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나도 무엇인지 먹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원정 일정목엔가 이정목에 있는 조그만 음식점이 머리에 떠올랐다.
언젠가 나는 그곳에,
金百圓テモ 傳授セヌ ライスカレ—— 一皿五錢 |
(금 백 원이라도 전수하지 않음. 라이스카레 한 접시 15전.)
이러한 광고판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야 그 동안에 이삼 년의 시일이 경과되었고, 더구나 서울 어느 구석이라고 찾아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경제공황은, 혹은, 그 음식점 주인으로 하여금 단돈 십 원을 받고―아니, 어쩌면 단돈 일 원조차 받는 일 없이―그 영업 밑천의 ‘특제 라이스카레’ 제법을 아무에게든 전수하여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렇든 좋았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보잘 것 없는 이 겨울의 한강을 나가는 것의 무의미한 것을 막연히 느끼면서, 이곳에서 버스를 내리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좌석 위에서 완전히 일어서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앞에 어깨들을 맞붙이고 서 있는 칠팔 명의 승객을 보았을 때, 그 사람들을 헤치고 도어 앞까지 갈 용기를 상실하고 있었다.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비록 그 ‘특제 라이스카레’에 대한 희망과 욕구를 가지고서도 결행하기에 적지 않은 각오와 노력이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차장은 ‘오라이’를 부르고, 그리고 버스는 다시 구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 자신 뜻모를 웃음을 픽! 웃고, 다시 내 자리에 앉으려다가 홱!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곳에는 어느 틈엔가 그 우둔하게 생긴 상투잡이가 모른 체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눈곱만한 안심도 가질 수 없는 이 시대와 이 인심을 생각하며, 동요하는 버스 위에 간신히 몸의 중심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분명히 연병장에서 내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몇 명의 승객 틈을 비집고 나간다는―오직 그만한 수고를 아끼어 그대로 ‘인생의 한강철교’로 향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또다시 아무리 싫어도 그곳에 인생에 피로한 나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설혹 청춘의 기력을 가지고 그 곤란을 뚫고 나가 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더라도,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구경, 그 한 접시씩오 전짜리 라이스카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나는 잠깐 이런 것을 생각하며 나의 의지에 배반하여, 자꾸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버스 위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4
인생에 피로한 자여! 겨울 황혼의 ‘한강’을 찾지 말라.
죽음과 같이 냉혹한 얼음장은 이 강을 덮고, 모양 없는 산과 벌에 잎 떨어진 나뭇가지도 쓸쓸히, 겨울의 열 없는 태양은 검붉게 녹슬어 가는 철교 위를 넘지 않는가……?
나는 그곳에 인생의 마지막―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으로는 당치 않은 어수선하고 살풍경한 풍경을 발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강가에 스무 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얼음 깨는 기구를 가지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있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순사가 두 명 무엇인지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낫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두 명의 순사가 지휘하는 대로 그대로 그들은 움직이었다. 두 명의 순사 중에, 한 명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동정에 여우털을 단 외투를 입고 있으면서도, 그 순사는 어인 까닭인지 시퍼런 코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십오 년 평생에 시퍼런 코를 흘리는 순사를 그에게서 비로소 발견하였다.
인도교와 거의 평행선을 지어 사람들의 발자국이 줄을 지어 얼음 위를 거멓게 색칠하였다. 인도교가 어엿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얼음 위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었나? 그들은 그만큼 그들의 길을 단축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무슨 크나큰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들의 고무신을 통하여, 짚신을 통하여, 그들의 발바닥이 감촉하였을, 너무나 차디찬 얼음장을 생각하고, 저 모르게 부르르 몸서리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가방을 둘러멘 보통학교 생도가 얼음 위를 지났다. 팔짱 낀 사나이가 동저고리 바람으로 뒤를 따랐다. 빵장수가 통을 둘러메고 또 뒤를 이었다. 조바위 쓴 아낙네, 감투 쓴 노인…… 그들의 수효는 분명히 인도교 위를 지나는 사람보다 많았다.
강바람은 거의 끊임없이 불어왔다. 그 사나운 바람은 얼음 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목을 한껏 움츠리고 강 위를 지나는 그들의 모양은 이곳 풍경을 좀더 삭막하게 하여 놓았다.
나는 그것에 나의 마지막 걸어갈 길을 너무나 확실히 보고, 그리고 저 모르게 악연하였다…….
5
나는 다시 다방 낙랑 안, 그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두 가닥 커튼이 나의 눈에서 그 살풍경한 광고등을 가리어 주고 있다. 이곳 주인이 나를 위하여 걸어 준 엔리코 카루소의 ‘옐레지’가 이 안의 고요한, 너무나 고요한 공기를 가만히 흔들어 놓았다. 나는 세 개째의 담배를 태우면서, 대체 나의 미완성한 작품은 언제나 탈고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마 열한점도 넘었을 게다. 이 한 날도 이제 한 시간이 못 되어 종국을 맺을 게다. 나는 선하품을 하면서 나의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풀어 더듬어 보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문장사,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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