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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는 방법이 담긴 책 "정심요결(正心要訣)"
출처: https://4944.tistory.com/710
이 책을 이해하면 당신도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허무맹랑하게 들리수도 있는 정보를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텐데요,
바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적힌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흡사, 소설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엄연히, 100여년전 우리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신이 된 인간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어떤 내용일지 한번 보도록 할까요?
이름하여 "정심요결" 이라는 매우 신비한 책이 1권 있습니다.
안에적힌 내용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책인데요,
여러분은 제가 올리는 영상을 보고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아셨을테지만
제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된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어떤 한 종교를 깊게 파고나서야 입니다.
"신" 이 되는 방법이 적힌 책 "정심요결(正心要訣)"
인간은 과연 신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한국에 존재하는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기록된 책 "정심요결" 비밀을 파헤칩니다.
이 책을 이해하면 신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 실제로 신이 된 인간이 있나요? 라는 의구심이 먼저 드실텐데요,
조선말기에 "신이라 불리운" 그런 인물이 딱 한사람 있었습니다.
바로 "강일순(강증산)" 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31살이 되던 해, 비밀리에 소장했던 "정심요결" 이란 책을 가지고, 전라북도 모악산 "대원사" 라는 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21일만에 도통(깨우침)을 하게 되는데,
그가 그토록 빠른시간안에 도통 할 수 있던 이유는 "정심요결" 이란 책에 그 비결이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사람들에게 신이라고 불리우며, 인간의 그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행적들을 남겼는데요,
일례로, 주막집 주인 김사명이란 자가, 자기 아들이 급한 병으로 죽어 강증산을 찾아오니 그가,
허공을 향해 두어마디를 말한 후 웃으며 본인의 침을 죽은 아이의 입으로 넣으니 살아나 집으로 돌아갔고,
1871년에 태어난 그가 예언한 우리나라의 국운 즉, 일제의 통치나 6.25전쟁, 남녀평등과 신분차별이 사라짐,
88 서울올림픽 등등...의 내용이 대다수 현실화 되었고,
천지인 삼계를 다 뜯어 고친다는 뜻의, 천지공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천지공사의 배경에 대해, 강증산은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서양인 이마두(마테오 리치, 기독교 선교사)가 동양에 와서 지상천국(복음)을 세우려 하였으나,
오랫동안 뿌리박힌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을 열었느니라.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신이라 불렀던 이유는, 그가 가르쳐준 주문에서 신비한 힘을 느꼇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태을주(太乙呪)라는 주문이 있는데,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아" 이 태을주를 성심성의껏 낭독하면 소원을 성취하게 되고,
생명을 회복하고 모든병이 낫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하여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증산계열 종교에서는 이 태을주를 외우며 수련을 합니다.
이후 강증산은 자기의 딸 강순임에게 훗날 찾아오는 사람에게 이 책을 비밀리에 전하라고 했고,
그 사람이 바로 "원불교" 2대교주가 되는 "송규" 라는 사람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도 원불교임)
그 후 강증산은 증산교라는 종교를 세웠고, 그가 죽고나서는 증산계열의 수많은 종단이 생겨났습니다.
원불교, 증산법종교, 선도교, 청도대향원, 증산대도회, 미륵불교(궁예? ㅋ), 태을교, 무극대도교 등등...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도를 아십니까?" 대순진리회와, 증산도가 세력이 가장 큰 단체로,
서로 만나기만 하면 자기들이 증산교의 진정한 계통이라고 서로 우기며 싸우고 있습니다.
도를 아십니까? 라는 무자비한 포교 활동으로 인해, 민족종교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으나,
강증산은 종교학자들도 인정하는 한국 민족종교의 큰 산맥이자,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종교의 시초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강증산을 직접 추종했던 제자들은 모두 강증산을 천상 도솔천에서 강세한 옥황상제라고 추종합니다.
여러분, 내용이 무슨 판타지 무협 같으시죠?
그런데 이건 진짜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미 저는 "정심요결" 의 번역본을 구해놓은 상태입니다.
한국도교문화학회 라는 단체에서 한자로 쓰인 정심요결을 한글로 번역해놓은 자료가 있더라구요.
살짝 봤는데 내용이 상당히 의미심장하지만 틈틈히 시간을 내서 연구해 보려구합니다.
그러고 보면... 증산종교의 진짜 계통은 "정심요결" 원본을 확보한 원불교일수도...
최고의 수양 교재(강증산 선생께서 전해준 책)
출처: http://cwgkorea.net/zbxe/113753
수심정경은 원래 영보국정정편→정심요결→정정요론→수심정경 해서 전해져왔다.
"원래 이책은 강증산 선생께서 집에 가지고 계시다가 외동따님인
강순임을 통하여 원불교 2대 종법사이신 정산 종법사님께 전달 되었다.
이름을 수십정경으로 바꾸었다..
증산 선생께서 따님에게 누가 찾아오면 주라고 비밀히 감춘 것을
딸 순임이가 정산종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후 정산 종사는 대원사에 이책을 가지고 들어가
여러가지 책을 읽은후 견성하게 되고
원불교를 크게 부흥시키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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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요결 입수과정에 관한 기사(원불교 신문)
송도군은 스승을 찾아 각처로 편력하였지만 모두 기대함만 같지 못하였다.
다만 손바래기에서 증산 유일의 혈손인 강순임으로부터 秘書(비서)를 입수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정심요결』 入手
시루봉 손바래기에 있을 때 선돌댁과 강순임이 도군에 대한 敬愛(경애)가 대단하여,
선돌댁은 그를 「조카」라 불렀고 네살 아래인 순임은 「오빠」라 불렀다.
집안이 매우 조용한 어느날, 순임이 다가와 정답게 말을 걸었다.
『오빠, 내가 좋은 것 하나 일러 줄까』
『무슨 일인데. 이야기 해 봐라』
『옛날 선친께서 서재같이 쓰신 별실이 있는데 그리 가 보아요』 하고 별실로 인도하여,
묵은 종이로 땜질하듯 봉해놓은 천정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선친께서 저기에 책 한 권을 넣고 봉하시면서 뒷날 여기를 열고 찾아갈 사람이 있을 터이니
주인이 올 때까지는 입밖에 말을 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시었으니 오빠가 뜯어보면 좋겠소』
(이상 정산종사의 시자로 있었던 범산님의 이야기).
일구월심 도 구하기에만 전념하는 때, 증산이 후일 어떤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숨겨 두었다면
이는 필시 보통 비서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도군은 순임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천정을 뜯었다(이 부분은 항타원님 이야기임).
빛 바랜 백지에 보통 정도 필체(붓글씨)의 순한문책인데 표지에 「正心要訣」이라 제목하였다.
정심요결 필자는 확실치 않다.
책의 말미에 「道門小子玉圃는 敢發天師之秘하야 記述定靜一部하노니」
(도문 소자 옥포는 삼가 천사의 비서를 발하야 정정 한 책을 지어 기록할 것이니)라고 한 구절로 미루어
「옥포」라는 호를 가진 도학자가 기술한 것만은 분명하다.
송도군, 증산의 무남독녀 강순임으로부터
비서 『정심요결』 입수하고 바로 대원사에 들어가
5종 仙書 번역하여 최초 교서 『수양연구요론』 간행,
정산종사 『수심정경』으로 수정 보완해
주인을 기다리던 서책을 입수한 송도군은 그 내용을 살펴보고 어찌나 황홀하고 즐거운지 그 기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소중한 비서인지라 말이 아니 나야 하겠으므로 도군은 순임에게 단단히 당부하였다.
『내가 여기 뜯어 본 것을 사람들이 알아도 안 되고,
또 이 책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남이 알아서도 아니 되니 우리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자』
굳게 약속을 하고 품속에 간직하고 다니면서 혼자서 잠자기 전이나 일찍 잠에서 깨었을 적에 읽어보곤 하였다.
정심요결 1
출처: http://blog.daum.net/sungtong1/171
무릇 안정하고 고요하게定靜 하는 방법은
지극히 크고 넓은 소원을 품고 지극한 정성과 지극히 믿는 마음을 내서
생각 생각에 잊어 버리지 않으면 안정과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안정한다는 것은 한번 여기에 안정되면
모든 다른 도와 이치를 내가 공부하는 데에 더하지 못하는 것이니
허다한 방법과 술수가 거기에서 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면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것 뿐인 것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한번 안정된 데로 돌아가면 다시는 다른 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부귀영화도 마음을 유혹할 수 없으며 금은보배도 뜻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하나의 뜻이 세워지고 안정되어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맹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노자의 근원의 고요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다 이것인 것이다.
위로 색의 경계를 없이 하고 아래로 욕심의 바다를 없이 하면서
한 생각을 오래도록 계속하면
귀와 눈이 함께 맑아지고 마음과 몸을 함께 잊어
정신과 기운이 함께 상쾌해지고 안과 밖이 모두 텅 비게 되어
깊은 안정과 적막한 고요함에 빠져들고
깊고 고요하게 한 곳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먼저 나의 하늘을 온전히 한 뒤에야
정신과 기운이 서늘하게 맑아지고 신령스러운 빛이 환하게 밝아져
비추지 못하는 경지가 없고 통하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시끄러운 것에 동요되면
정신과 기운이 어두어져 혼미해지고 신령스러운 빛이 캄캄하게 어두어지는 것이니
생각을 보존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오직 끓임 없이 세밀하게 생각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한마음으로 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맥이 근원으로 돌아가
자연히 불기운은 아래로 내리고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 기가 안정되고 정신이 청정해져
큰 우주로 빛을 발생하고 빈 방에 태양이 나타나
위로는 하늘의 세계를 꿰뚫고 아래로 지하의 세계를 통하여
텅텅 비고 밝고 밝아 광명이 끝이 없으니 움직이면서도 끓임이 없게 하면
귀신의 세계도 환히 보이고 열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하는데 다섯 가지 피해야 할 것이 있으니
첫째는 믿지 않는 것이라 하고
다음으로는 집중하지 못하여 쌓은 것을 누설하는 것이라 하고
다음으로는 집착 하는 것이라 하고
다음은 환희심을 내는 것이라 하고
다음은 빨리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 큰 병이 되어 반드시 삿된 도에 떨어지는 것이니
이를 공경하고 삼가 해야 한다.
만약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고요하게 앉으면
자연히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하고 번거롭고 잡다한 생각이 도리어 생기는데
이것을 막고 피하려면 마음의 번뇌가 더욱 요란해지는 것이다.
오직 마음을 너그럽고 여유롭게 가져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맡겨두면
안정되고 고요해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관경定觀經에 이르기를
빨리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너무 급히 하는 것을 먼저 제일가는 경계로 삼은 것은
만약 혹시라도 안정되지 아니하여 나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을 돌이켜 가라앉히고 구하는 뜻을 한가하고 한가하게 하여
태을 구고천존 太乙 救苦天尊 여섯글자의 성스러운 호를 많이 많이 은밀하게 생각하면
자연히 안정되고 고요해진다.
무릇 일을 할 때에 만가지 형상으로 벌어지더라도 너무 급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번거로운 생각들이 다 마음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일체의 기이하고 뛰어나고 선하고 악한 것에 응하여 변하는 일이
다 너의 마음을 따라 펼쳐지며 너의 마음을 따라 생기며
너의 마음을 따라 구해지며 너의 마음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에 이끌리게 하여
곧 다른 권속 가운데에 떨어지게 하면 정도는 후퇴하고 사도가 다가 오리니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또 유명경계도 단지 내 한 생각이 운전하여 옮기는 경지이니 삼가 하여 마음을 화려한
경계가 베풀어지는데다 투입하지 말라.
만약 혹시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이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림이 없게 하고 반드시 한 점의 참된 마음으로 돌이켜
현묘한 곳으로 돌아가 정성이 지극하여 하나가 되면
쇠와 돌이 함께 열리고 뼈와 살이 형상을 나누어
마음은 천지만령天地萬靈의 주인이 되고 몸은 음양조화의 집이 된다.
음부경陰符經에 이르기를 오적五賊이 내 마음에 있으면 우주가 손안에 있고
만가지 변화가 몸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이것이다..
근세의 수련하는 선비들이 왕왕 밖으로 화려한 장식을 구비해 놓고
여러 주문을 베풀어 염하고는 욕심을 품고 수도한다고 칭하면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나니 어찌 참다운 경지에 들어가겠는가.
대개 지극한 도는 깊고 그윽하나 그것이 다른 곳에 있지 아니한 것이니
사람이 도를 능히 넓힐 수 있으면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 것이다.
주자는 도라는 것은 잠깐이라도 몸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라 하였고
자사는 성품을 따르는 것을 도라 했으며
증자는 그침을 안 뒤에 안정되고 안정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하여지고 편안하여진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히는 일인 것이다.
나에게 이미 이 밝은 덕이 있느니 어찌 수련하여서 그것을 밝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일단의 일들은 스스로 밝은 덕을 닦는 것이나
만약 물과 불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의 생성하고 변화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면
곧 한갓 화장하고 노는 어린애의 희롱일 뿐이다.
대개 연마하는 법은 바로 자기조화의 도를 단련하는 것이다.
진실로 힘써 그것을 행하면 심장의 불은 아래로 내려오고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서 참된 하나의 물이 입안에 가득 고여
달고 윤택하며 향기롭고 맛있을 것이니
신장의 참다운 물이 위로 올라가 외부로 드러난 징후이다.
정심요결 2
출처: http://blog.daum.net/sungtong1/175
감과 이가 사귀어 서로 통하여 물과 불이 가지런해진 뒤에
조화가 모두 니환泥丸에 상조하게 된다.
나의 한 점 신령한 빛을 운전하면 남창상궁에서 불 방울이 되어
위로 니환 현궁玄宮을 뚫으면 이마에 있는 문이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정성스럽게 그것을 행하면 활연豁然 해져서 처음에는 많은 개미가 모여있는 것 같아진다.
심히 가려울지라도 삼가 하여 긁지 말고
이마 위에 정精을 모으고 신神을 모으면 홀연히 맑은 우뢰 한 소리에
이마의 문이 마치 큰 돌이 갈라져 열리는 것과 같아진다.
일신의 만가지 신령이 이 문으로 출입하되 형상과 모양이 광명하여
마치 보름달과 같고 삼계의 천진이 니환에 구름처럼 모여서 환희스럽고
화합하고 즐거워함이 동기의 친척들과 같아지니 이 것이 바로 묵묵히
상제上帝를 조회하는 법으로 실로 동일한 이치이다.
이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하단전에 의식을 머무르게 하여
담담하고 진실하게 오래하면 물과 불이 교구하고 옥지玉池에서
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입에 가득 차면 삼켜 내리는 것이니
정령이 곧 상승하여 니환 이마의 문에 모인다.
만약 옥지의 물을 아래로 운전하지 않으면 다만 불꽃이 타올라 태울 뿐이다.
이러므로 수련하는 선비는 매일 야반이나 맑은 새벽에
마땅히 안으로 단련하는 수행을 하되 반드시 두 눈을 내 가슴 앞에 두어
배꼽 아래에다 드리워 두고 목은 뒤로 이마의 머리보다 높여서
마음으로는 불이 내리고 물이 오르는 것을 생각하고 뜻은 감리가 교구하는데다 두면
자연히 물과 불이 순환하는데 운전함이 오래되어 익숙해지면
정과 신이 머리에 모여 조회하고 불 방울이 이마의 문에서 발하여 나온다.
이것이 곧 도를 전하는 비밀이며 도를 닦는 요령이며 도를 전하는 참된 비결이다.
먼저 안정하고 고요하게 하는 법은 모두 이 일로 말미암을 뿐이니 안정되고 고요하지
않으면 물과 불이 오르내리지 않기 때문에 이를 얻은 사람은 날을 정하고 성공할 수 있다.
선요禪要에서는 이르기를 크게 중요한 세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큰 신근信根이요
둘째는 크게 의지를 분발하는 것이요 셋째는 크게 뜻을 의심하는 것이니
의문은 믿음으로서 체를 삼고 깨달음은 의심으로서 용을 삼는 것이다.
완전한 믿음이 있음이 있으면 완전한 의심을 얻을 수 있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하니
이 말이 곧 안정하고 고요함의 빠른 법이다.
왜냐하면 큰 원함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오지 않고 큰 의심이 없으면 죽을 분발함이
나오지 않고 큰 믿음이 없으면 참된 의심이 나오지 않는 것이니
묻건데 무엇으로써 원을 해야 하며 또한 분심과 의심과 믿음의 정성이 나오겠는가?
한 하늘 안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진실하고 지극히 존귀한 법이 있으니
오직 하나의 신령스럽고 보배롭고 참된 집靈寶眞局이다.
영보의 집은 사람사람마다 각각 몸 안에 품부稟賦 되어 있어
하늘이 본디 명한 것이니 즉 나의 본성이다.
성품을 따라 도를 닦으면 밝은 덕이 발휘되어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할 수 있고
억조의 임금과 스승이 될 수 있으며 한량없는 수명을 가진 신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 명한 덕이 사람에게 품부 되는 처음에
머리는 천상의 삼청진궁三淸眞宮의 기운이 변화된 것이고
배는 땅의 산과 수풀과 강과 연못의 형상을 받으며 가슴에는 일월 성신과
풍운 우뢰 음양조화의 부府를 품은 것이니 그러므로 내 몸에
천존제군天尊帝君과 구령삼정九靈三精과 오신진군五神眞君과
내외장군과 좌우관속과 제부공조諸府工曹 및 팔만사천元君이
각각의 부분에 의지하여 있으니 이것이 곧 영보도국靈寶道局이다.
닦아서 이를 밝힌 사람은 신선이 되고 성인이 되고
잃어버리고 방치한 사람은 우매하게 되고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닦아서 이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 큰 원이 없으면 어찌 하겠는가?
또 사람 사람이 각기 이 영보도국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얻고 어떤 사람은 이를 얻지
못 얻는가 하고 커다란 분심을 여기에서 내고 또 만가지 이치가 나에게 구비되어 있고
만가지 법이 여기에 갖추어져 있으니 오직 하나 뿐이거늘 도는 어찌 문이 많으며
오직 하나뿐이거늘 방법은 어찌 갈래가 많으며 오직 하나뿐 이거늘 사람들은 어찌 많은
데서 구하며 내가 어찌 다시 의문하리오 하여 생각하면 의문이 없고 바란즉 의문이 있게 되니
의문이 오고 의문이 가는데 의문이 의문하는 것이 없으니 공연히 무엇을
의문하는 것인가 하고 문득 마음을 단련하면 이것이 곧 참된 의문인 것이다.
참 된 의문아래에 만가지 의문이 정적靜寂하여져서 밤과 낮을 분별할 수 없고
꿈도 같고 진실도 같아서 공적空寂한 대지에 오직 한 의문 뿐이라.
이것이 큰 의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개 의문하는 공부가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니 만약 큰 믿음이 없으면
참된 의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선요禪要에 믿음이 완전하면 의심도 완전하고
깨달음도 또한 완전하다고 한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이른 것이다.
믿음을 믿을 수 있고 정성을 정성스러울 수 있으면 믿음으로서 안정되고 고요할 수 있고
믿음으로서 분발과 의심하니 큰 믿음이 아니면 정성을 어떻게 오래 드릴 수 있겠는가?
한번 결정하여 변함이 없고 시작과 끝을 한결 같이 하여야 이를 정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옥경玉經에서는 정성으로서 들어가고
묵묵 함으로서 지키면 사물과 나를 함께 잊고
지혜 광명이 곧 생겨 성인의 지혜가 자연 온전 해진다 라고 하였고
또 음부보경陰符寶經은 온전히 이 영보靈寶의 처음과 끝을 발하여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보를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은 음부로 정정의 원경을 삼아
밖으로는 읽고 생각하고 안으로는 정정으로서 하는 것이니
영보의 처음과 끝이 모두 음부 삼편에 실려 있기 때문에 옛 법이
영보로 전한 것이나 본래 문자와 구결이 없고
다만 음부만 전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보의 참된 도를 아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이제 이미 문자가 있고 또 가령을 기록하였으니 어찌 문이 화창하지 않겠는가.
다시 선현의 수련 지도한 문자를 가하여 이로서 오는 학자들의 마음을 이끄나니
또한 공부를 하는데 일조가 될 것이니 마음을 씻고 논함을 강독하라.
옛날에 서봉도사가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천하에 하나의 주인 없는
빈 집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영보도국이다.
그 가운데에는 천하의 무궁한 묘함이 쌓여 있으며 천하의 무궁한 보배가 쌓여 있으며
천하의 무궁한 재물이 감추어 있는데 팔만 사천의 문과 길로 통하여 열되 담장을 둘러
욕심이 있고 게으르고 어리석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각각 모든 문과 길을 지키라 하고 이를 명하여 탐욕스럽고 게으르고 어리석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와서 당도하면 너희들은 각각 지켜 방어하고
모름지기 정성스럽게 믿고 전일專一한 사람이 와서 당도하거든 곧 문을 열고
그를 맞아들여서 빈 집의 주인으로 삼아 무궁한 재물과 보배를 쓰라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하늘을 보고 웃으며 한갓 버려 취하지 않고 이르기를
그 많은 재물과 보배를 내가 어떻게 감히 취하겠는가? 그것은 복이 있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취할 수 있는 것이라 하고 감히 나아가 구하지 않기에
석가는 말로서 전하고 노자는 길을 가리키고 공자는 권하여 보냈으나
또한 나아가 취하지 않았다. 간혹 거기에 가는 사람이 있어도 혹 불신하는 사람은
방어하여 지키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거절 당하여 들어가지 못하니 그 사이에
들어가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천만인 가운데 한 두 사람이었다.
그 나머지 탐욕스럽고 나태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넓고 편안한 집에 살지 못하고
바른 길을 버려서 다니지 않으면서 곧 들에서 사람들에게 재산을 도둑질하거나
혹은 부자의 남은 것을 구걸하거나 혹은 행인의 여비를 약탈하기도하며 혹은 벽을 뚫고
혹은 속여서 취하며 혹은 굶주리고 추워하거나 혹은 싸우면서 다섯 가지 도적이
함께 일어나고 세가지 도둑이 쉬지를 않으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법관이 형으로 명을 하고
친우끼리도 비방을 하니 한심한 처지라 이를 만하다.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연스럽게 취하고 그가 마땅히 취하지 않아야 할 것을 취하면서
나의 수행 법이 빠른 법이다. 쉽게 취하고 쉽게 얻는다고 하면서 혹은 죽고 혹은
실패하면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지리支離하게 보니 어리석고 게으른 것이라..
공자가 이르신 똥 뭍은 벽과 맹자가 이르신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이 무리들이 아니겠는가.
정심요결 3
출처: http://blog.daum.net/sungtong1/176
선서禪書에 이르기를 많은 문 가운데서 한 문이라도 열고 들어가 무진장한 보물을 취하면
그것을 쓰되 다함이 없고 그것을 취하되 금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보물이 밖에서
오는 물건이 아니라 이 집안에서 생기고 생기는 무궁한 보물이다.
이 집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정성이요 문을 열수 있는 것은 의문이며
보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믿음이다.
의롭게 타인의 재물과 보물을 취하지 않고 마땅히 취해야 할 물건을 취하는 것은
분忿이니 만약 분과 의疑와 신信의 세자가 없으면 담장 밖에서 머뭇거리고
처마 끝에서 머물러서 세월만 보내며 공연히 기력만 허비하다가 크게 쉬어 물러서서 돌아가
곧 구걸하는 사람이 되는 때문이다.
이를 비유하여 말하면 돌 속에 감춰진 옥은 철정鐵釘이 아니면 쪼기가 어렵고 여礪석이
아니면 갈수가 없는 것이고 또 이르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있으리오 하니 정은 신이요 여는 의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은 분이니
쪼고 갈고 호랑이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크게 분심을 내어서 금강의 날카로운 칼로
먼저 세상 인연의 한 오라기 줄을 끓고 큰 의심을 내서 곧 원숭이 같은 마음과 말과 같이
날뛰는 뜻을 없애고 큰 믿음을 품어서 이문에 들어간 뒤에야 중심에 철주鐵柱가 세워지고
외면에 석벽石壁이 쳐 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천만 스승의 말씀도 다시 이 말보다 묘함이 없고 현묘한 도와 이치도
또한 이 도보다 더함이 없다.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즐겁게 들리는 것이 없으며 묘함이 이보다 묘함이 없고
보물이 이 보물밖에 없으면 일심一心이 안정되고 고요하여져서 넓고도 넓게 트이고 트여서
실오라기 같은 티끌도 걸리고 장애 되지 않으면 곧 사람이
처음으로 태어날 때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차를 마셔도 차를 알지 못하며 밥을 먹어도 밥을 알지 못하며 걸어도 걷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앉아도 앉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정식情識이 갑자기 맑아지고 계교를
모두 잃어버려서 흡사 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과 같고 또 진흙으로 만든 사람과 같아서
생각은 있으나 손이 미끄러지고 발이 미끄러져 서고 잡지 못하는 것과 같다가
심화心華가 문득 발현되어 시방에 통연洞然하면 마치 개인 하늘에 밝은 태양과 같고
밝은 거울을 마주 대함과 같아지는데 한 생각을 넘지 아니하면 갑자기 정각을 이루니
선禪가의 부처요 영보의 성인이요 선仙가의 단이다.
그러나 만약 믿음과 분발과 의문의 정성스러움이 지극하지 못하면 팔만 사천 마魔의
병사들이 육근六根의 문두門頭에 있어 엿보다가 기회를 따라 마음을 유혹하고 백방으로
조화를 부려 사면에서 머리를 번화하게 해서 마음과 정신을 수고롭게 하는 것인데
곧 성호聖號를 생각하고 무심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니 다시 정력精力을 더하여
날을 정하고剋日 공부하여 나아가되 내 한 몸이 천 길이나 되는 우물 밑에 떨어진 것
같이 하여서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고 저녁에 이침에 이르기까지 천 가지 사상과
만가지 사량을 단단하게하여 단지 홀로 구출되고 싶은 마음뿐이고
결코 두 가지 마음이 없게 해야 한다.
진실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날을 정해 놓고 기약할 수 있다. 이 단계는 곧
상화相火와 허화虛火가 건강한 사람이 취하는 것이다.
또 이르기를 유약하고 온순하고 가가 약한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죄를 짓고
깊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 사형당할 날을 정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을 때
사방에서 간수가 지키고 있는 중에 문득 간수가 취하여 엎드려 있음을 만나니 때는 밤으로
고요하니 칼로 형틀과 자물쇠를 두들겨 부셔서 감옥을 탈출하여 동서를 분간하지 않고
경계를 도망하여 나올 때 독한 용과 맹수가 하나도 무서운 마음이 없이 곧장 앞을 향해
나가면서 화살과 돌과 칼과 창에도 또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이 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재빨리 달림에 사납고 험준한 길을 평지를 밟는 것 같이 하고
가시 달린 나무 풀과 같이 보는 것이니 이것은 왜 그러겠는가?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을지언정 이곳에서는 죽지않을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지극히 간절한 마음인 것이니 공부를 하는 때에 이 지극히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날을 정해놓은 공부가 대롱으로 취하는 것같이 백발 백중이라.
그러나 이 날을 정해놓고 하는 공부는 간절해야 하니 초행자의 수행이 아니며
마땅히 마지막 경지에서 취하는 방법인 것이다.
처음 수행하는 공부는 위태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안정되고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
미묘하게 마음으로 그것을 사무치게 하면 불 방울이 발휘되는 것이다.
오직 진실되고 오직 한결같이 하면 惟精惟一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을 것이니允執厥中
가운데를 반드시 떳떳하게 하면 중용中庸이 되고 큰 것을 배우면 대학大學이 되고
도를 논하고 이치를 말하는 것은 논어論語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인의예지가 성품의 감응에 따라 나타나서
혹은 성스럽고 혹은 어진 것은 곧 풍토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 받은 것이
자연히 다르므로 기질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보진결은 사람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정定靜 편을 많이 읽고 음부陰符의 뜻을 생각하여 간직하며
진액을 삼키며 기를 단련하고 나의 물과 불을 운전하면
풍토도 바꿀 수 있으며 기질도 곧 가지런히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진심으로 성인에게 예배하고 삼재三才에 동참하면 만가지 조화가 나타나니
순 임금과 내가 서로 같고 나와 하늘이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배우고 배우는 것이 다 그러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는 것이 서로 같아서
달리 더디고 빠름이 없으며 여기에서는 선후가 없는 연고로
정정의 큰 기한은 삼 개월이고 작은 기한은 오십일이다.
큰 공부를 어찌 짧은 기한으로만 한정하겠는가.
십 년의 기한을 정하고 하되 무불관통 된다면
기한의 한정이 어찌 빠르다 하지 않겠는가.
천년 된 눈먼 거북이도 몸이 만리나 되는 수성에서 벗어나고
삼일 쓴 구부러진 바늘로도 반 조각 겨자조각에 던져 뚫을 수 있거늘
하물며 이 날을 한정해 놓은 기한이리요.
대한大限은 삼일이요, 중한은 오일이며, 하한은 칠일이다.
도에 이르는데 날을 정하였는데 어찌 늦을 것인가.
반 시진 안에 둥근 성품을 바로 깨닫는다면 하면 한정된 기한이 멀다 하겠는가.
천인을 배우고자 하는 나의 원함을 경계하노니
다른 도에 망녕스럽게 뜻을 두지 말고 한번 나의 영보국 가운데서 취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밝혀 나가면 신선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으며
성인도 되도 진인도 될 것 인저!
도문道門의 소자옥포小子玉圃는 감히 천사天師의 비밀을 드러내어
정정의 일부를 기술하나니 처음 배우는 사람은 이편을 많이 읽어
기氣를 화합하고 신神을 변화하면 정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를 닦고 이를 밝혀서 이에서 그 성품을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태을구고천존...도가의 네분 천존중의 한분의 약칭으로
태을천존에 관한 경전이 있다.
정심요결원문
출처: http://blog.daum.net/sungtong1/178
夫修養者는 修其妄念하고 養其眞性이니 養性之工은 以定靜으로 僞本이니라.
대범 수양이라 함은 그 망령된 생각을 닦아 없애고 참된 성품을 양성함이라,
양성하는 공부는 정하고 고요함으로 근본을 삼을 것이니라.
定靜之法은 懷至廣至大之願하고 發至誠至信之心하여 念念不忘 則定靜을 可得이니라.
정하고 고요히 하는 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발원을 품고
또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신심을 발해서 생각 생각이 그 발원한 바를 잊지 아니하여야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을 것이니라.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요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며
정이라 함은 한번 이에 결정한 바에는 다른 도리가 나의 공부하는 바에 더함이 없을 것이요,
허다한 법과 술수가 모두 다 세상을 미혹케 하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며,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여 富貴營華가 不能誘心라고 金玉寶貝도 無可奪志니
고요하다 함은 한번 결정함에 돌아가서는 다시는 다른 데에 움직이지 아니해서
부귀영화도 능히 내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며 금옥보패도 가히 뜻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니
一志立定에 五心不動이면 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니라.
한번 뜻을 세워 정함에 다섯 가지 마음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맹자의 부동심과 노자의 근본에 돌아가고요 하다 함이 다 이를 두고 이름이니라.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여 一念萬年에 耳目이 俱淸하고 身心이 俱忘하여
위로 색의 경계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아래로 욕심의 바다에 물들지 아니하여서
오직 한 생각으로 만년을 지낸다면 이목이 한가지로 청정하고 심신을 다같이 잊어버려서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여 泯於深定寂靜하여 湛然至一이라
정신과 기운이 한가지로 상쾌하고 안과 밖이 다같이 공해서 깊이 정해 적정한 데에 빠져 들어가서 담담하게 지극히 한결 됨이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여 無地不燭하고 無理不通이
나먼저 내 자신이 가장 하나인 천성을 온전히 한 뒤에
정신과 기운이 서늘하게 맑고 싱그러운 광명이 초롱초롱하게 밝혀서 빛이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을 것이나,
然이나 若有喧動이면 則神氣??然而昏하고 神光??然而晦하리니 何益於思想之所存哉아
그러나 만일에 복잡하게 동함이 있으면 정신과 기운이 몽롱하게 어두워지고
싱그러운 광명이 멍하게 어두워지리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존속함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唯綿綿密密하여 念而不忘則自然一心不動하고 百脈이 歸源하여 火降水昇에 氣定神淸하여
오직 간단이 없이 지속하여서 일념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여야 자연히 한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가 불은 내리고 물은 올라서 기운은 하나에 정하고 정신은 맑아서
上通天界하고 下達地府하여 空空洞洞에 光明이 無邊하고 動而無間하여 一切玄妙之境을 洞撤開悟하리라.
위로는 천상계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사무쳐서 비고비어 맑고 맑아서 그 광명이 갓이 없고 동하되
사이기 없어서 일체 현묘한 경지를 맑고 밝게 깨우쳐서 열릴 것이니라.
2. 明禁忌(명금기) - 마음을 단련하는 공부
做工之際에 有五忌一
曰不信(不信正法)이요
二曰 泄瀆(不謹嚴)이요
三曰 執着自意(不知是非 固執自意)이요
四曰 輕發喜惡이요
五曰 生欲速之心이니 皆爲定靜之病이라 必落邪道矣리니 敬之愼之하라.
공부를 할 때에 다섯 가지로 금기 함이 있으니, 하나는 믿지 아니함이요,
둘은 거만하게 세여 나아감이니 근엄치 아니함이요,
셋은 자기 자의에 집착함이니 고집 불통함이요, 넷은 경망스럽게 선악간 경계에 동요됨이요,
다섯은 성질이 급해서 무엇이든지 속히 하고자 함이니,
모두가 다 정정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병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게 되나니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니라.
若初學靜坐에 必苦於自心不定이면 煩雜之念이 反生하여 禁忌則心惱益亂하느니
惟在寬寬漫漫하여 任之自然이면 定靜을 自得이리니
만일에 초학자로서 고요히 좌정 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기의 마음이 정하지 못함의 괴로움에 얽매이면,
번잡한 마음이 도로 생기나니 금기하기로 하면 오직 마음을 너그럽고 넉넉하게 하는 데에 힘을 모아
자연 한데 맡기고 보면 정정을 스스로 얻게 되나니,
譬濁水待淸에 急欲澄淸하여 頻考數察하면 則泥濁尤起也라.
비유하건대 탁한 물이 맑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급히 맑히고자 하여 조급히 자주 살피고 보면
진흙에서 일어나는 탁한물이 일어남과 다름이 없느니라.
故로 定觀經에 印心太急으로 先爲上戒하여 若或未定에 惡境이 出現이면
則回心泯泯하여 求意閒閒하며 亦密念師門聖訓하여 自心本願을 轉轉返思하면 自然定而靜矣니라.
그러므로 정관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 묶기를 급히 함을 제일 먼저 경계를 하여서 만일에 마음이 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
좋지 못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 돌리기를 민첩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가롭게 하며
또한 스승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늘 생각하여
자심에 근본 발원함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면 정하고 고요하여 지나리라' 하였느니라.
凡行事之際에 萬像森列하느니 不可怠急이라 粉?灰가 悉從心頭所出하리니
대범 모든 일을 행할 때에 일만 형상이 나타나느니 가히 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요,
분운하고 번화한 생각머리가 다 마음머리로 쫓아 생겨나는 것이니,
一切奇異殊勝善怨應變之事가 隨汝心設하며 隨汝心生이며 隨汝心求며 隨汝心現하느니
일체 기이하고 수승한 착하고 원망함이 경계를 따라 응해서 변화됨이 너의 마음을 따라 만들어지며
너의 마음을 따라 생겨나며 너의 마음을 따라 구하게 되며 너의 마음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若使道心으로 爲人心所牽이면 便墮他圈中하여 正退邪進하리니 豈不愼哉아
만일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에 끌리는 바가 되고 보면 문득 다른 권내로 떨어지게 되어서 바른길은 멀어지고 삿된 길로 나아가게 되나니 어찌 삼가지 아니하겠는가
且幽冥境界는 一念轉移之間에 便現無量塵劫하리니 愼勿役心于灰所施하라.
또한 깊숙하고 현묘한 경계는 한 생각 옳게 돌리는 데에 문득 헤아릴 수 없는 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조심하고 삼가 해서 변화머리 베푸는 데에 미음을 부리지 말지니라.
若或示之에 視若不見이니 ?不掛心於心意하면 必以一點眞心이 反歸玄妙하여
만일 혹 보임에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할 것이니,
잠깐이라도 마음의 뜻에 마음을 걸어두지 아니하면 반듯이 한 점 참마음이 현묘한 경계에 돌아와서
精誠極一하면 鐵石이 俱開하고 骨肉分形하여 心爲萬靈主요 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정성이 지극히 한결 되면 쇠와 돌이라도 함께 열리며 뼈와 살이 얼굴로 나누어져
마음은 일만 신령의 주인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느니라.
陰符經云 五賊이 息하면 宇宙在乎手하고 萬化生於身者此也라.
음부경에 말씀하기를 '다섯 도적이 쉬게 되면 우주가 손바닥 가운데 있고
일만 변화가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말이 곧 이를 이름이니라.
近世鍛煉之士가 往往以外俱華飾으로 宣念科呪하고 懷慾稱修하여 空度歲月하느니
豈入於眞境哉아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근세에 마음을 단련하는 선비가 간혹 밖으로 형식만을 꾸밈으로써 주문이나 베풀어 암송하고
수도를 한다고 생각해서 공연히 세월만 보내나니 어찌 진경에 들겠느냐,
대개 지극한 대도는 심요하나 그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나니
朱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 하시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 하시고
孔子曰 知止而後에 有定하고 定而後能靜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에 能得이라 하시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주자 말씀하기를 '도란 가히 모름지기 몸을 떠나지 아니한다' 하시고,
자사 말씀하시기를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도라' 하시고,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밝은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난 뒤에 능히 얻는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다 그 자성자리를 밝히는 일이라.
我旣有此明德하니 豈不修煉而明之乎아旣知明德之稟我하고 知修煉之在我하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豈區區於外物하고 孜孜於外飾하여 以慾定靜而得眞道哉아.
나에게 이미 이 자성자리가 있으니 어찌 수련을 하지 아니하고 밝힐 것이리요.
이미 성품자리가 나에게 있는 줄을 알고 또한 수련함도 나에게 있는 줄을 알면 곧 닦아서 얻어감이
오직 나의 일심 가운데 있는 것이니,
어찌 감히 외물에 간절히 바라며 외물 하는데 힘써서 정하고 고요하고자 하여 참 도를 얻으리요.
3. 明鍊氣方法(명연기방법) - 定靜(정정)을 연마하는 法
夫以修鍊之士가 不知水火玄妙之理와 五行生化之道하면 則徒是粧點兒?耳니라
대범 수련하는 선비가 수화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의 변화로 생기는 도를 알지 못하면
곧 한갓 이 단장한 아해들의 희롱함이라.
大抵 定靜煉磨之法은 乃煉自己造化道하여 苟力行之하면
心火下降하고 腎水上昇하느니 水昇火降者가 乃定靜之捷徑이요 亦延年之一道也니라.
대저 정정을 연마하는 법은 이에 자기의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착실히 힘을 다해 행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은 아래로 내려가고 신수는 위로 오르게 되는 것이니,
수승화강 함이 이에 정하고 고요함을 얻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요, 또한 연수를 연장케 하는 도가 되는 것이니라.
夫 人이 思慮多煩하여 心氣悖戾하면 則口味苦而操하고 頭腦熱而亂하리니 此火昇之故也요
대범 사람이 생각 생각이 많아 번잡하여 심기가 거슬리게 되면
구미가 씁쓸하며 조급하고 머리가 더워서 어지러워 질 것이니 이는 화가 위로 오르는 연고라,
思慮安靜하여 心氣平順하면 則口味甘而潤하고 頭腦夾而淨하느니 此水昇之故也라
생각 생각이 안정되어서 심기가 평순하면 구미가 달며 윤활하고 머리가 시원 상쾌하고 조촐해지나니,
이는 물이 위로 오르는 연고라,
水昇則火降하고 火昇則水不潤液하여 而但日夜作淡燃하여 ?其靜氣而已니
물이 오르면 불은 내리고 불이 오르면 물이 윤액하지 아니하여
다만 일야로 불꽂을 짓게 되어 그 정기만을 태우게 할 뿐이니,
是故로 修煉之始에 當謹避外境하고 深戒多思하여 亦切莫嗔?어다.
이런고로 수련할 처음에는 마땅히 외경을 피하고 깊이 생각 많음을 경계해서 또한 간절히 진심을 내지 말지니라.
使吾心身으로 安閒自適하여 寬柔自治하고 而無陜心熱腦之病이니 此外煉之法也이라.
나의 심신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해서 스스로 적중하여 관유하게 스스로 다스려
협심열뇌의 병이 없을 것이니 이는 밖으로 단련하는 법이니라.
日用動作에 隨所專心하여 東不念西하고 西不念東하여每日夜半淸晨이면 則必坐禪으로 特加精進이니
일용 동작하는 데에 바를 따라 전심 전력해서 동에서는 서를 생각치 아니하고
서에서는 동을 생각치 아니해서 매일 야반 맑은새벽이 되면 반듯이 좌선함으로써 정진할 것이니,
坐禪之法은 先正坐體하여 無傾委不便之感然後에 調息下氣而注意於下丹田하여 守心以定하고 寂照不昧니 此內鍊之法也라.
좌선하는 법은 먼저 좌체를 단정히 하여 기울어짐이 없어 바르게 앉아 불편한 감이 없이
앉은 뒤에 쉬는 숨을 고르게 하고 기운을 아래로 내리며 마음을 하단전에 주하게 하여서
마음을 지키어 정하고 고요한 가운데 조감함이 매하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안으로 수련하는 공부법이 되는 것이다.
行此日久하여 久久成熟하면 自然五氣相生하고 水火循環하여 眞一之水가 滿口하여 以生甘潤香味하여 異於平時하리니
이렇게 행하기를 오래 오래해서 오래 정숙하게 되면
자연히 다섯 기운이 서로 생기가 나서 수화가 서로 순환하여 참되고 한결 된 물이
입에 가득해서 써 달고 윤활한 향기로운 맛이 생기어 평상시와 기분이 다를 것이니,
此卽腎中眞水上昇之實證也니 切莫唾液하고 滿口呑下하면
則身潤神通하고精氣益暢하리니 古聖所謂飮甘露而得長養者 亦指此謂也니라.
이것은 신장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증이니 간절히 액체를 뱉지 말고 입에 가득히 모았다가 삼켜 내리면
온몸이 윤활해서 정신이 통하고 정기가 더욱 창성할 것이니,
옛 성인들이 감로수를 마시어서 장수함을 기른다는 것은 이를 이름이니라.
수심정경
출처: http://blog.daum.net/sungtong1/182
정정의 큰뜻
明定靜大旨
夫修養者는 修其妄念하고 養其眞性이니 養性之工은 以定靜으로 僞本이니라
定靜之法은 懷至廣至大之願하고 發至誠至信之心하여 念念不忘 則定靜을 可得이니라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요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 며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여 富貴營華가 不能誘心라고 金玉寶貝도
無可奪志니 一志立定에 五心不動이면 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니라
대범 수양이라 함은 그 망령된 생각을 닦아 없애고 참된 성품을 양성함이라 양성하는
공부는 정하고 고요함으로 근본을 삼을 것이니라.
정하고 고요히 하는 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발원을 품고 또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신심을 발해서 생각 생각이 그 발원한 바를 잊지 아니하여야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을 것이니라.
정이라 함은 한번 이에 결정한 바에는 다른 도리가 나의 공부하는 바에 더함이 없을 것이요,
허다한 법과 술수가 모두 다 세상을 미혹케 하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며,
고요하다 함은 한번 결정함에 돌아가서는 다시는 다른 데에 움직이지 아니해서
부귀 영화도 능히 내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며 금옥보패도 가히 뜻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니
한번 뜻을 세워 정함에 다섯 가지 마음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맹자의 부동심과
노자의 근본에 돌아가 고요하다 함이 다 이를 두고 이름이니라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여 一念萬年에 耳目이 俱淸하고 身心이 俱忘하여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여 泯於深定寂靜하여 湛然至一이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여 無地不燭하고 無理不通이나 然이나
若有喧動이면 則神氣惛惛然而昏하고 神光黯黯然而晦하리니 何益於思想之所存哉아
唯綿綿密密하여 念而不忘則自然一心不動하고 百脉이 歸源하여 火降水昇에
氣定神淸하여 上通天界하고 下達地府하여 空空洞洞에 光明이 無邊하고 動
而無間하여 一切玄妙之境을 洞撤開悟하리라
위로 색의 경계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아래로 욕심의 바다에 물들지 아니하여서 오직 한
생각으로 만년을 지낸다면 이목이 한가지로 청정하고 심신을 다같이 잊어버려서 정신과
기운이 한가지로 상쾌하고 안과 밖이 다같이 공해서 깊이 정해 적정한 데에 빠져 들어가서
담담하게 지극히 한결됨이라 먼저 내 자신이 가장 하나인 천성을 온전히 한 뒤에 정신
과 기운이 서늘하게 맑고 싱그러운 광명이 초롱초롱하게 밝혀서 빛이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을 것이나, 그러나 만일에 복잡하게 동함이 있으면 정신과 기운이
몽롱하게 어두워지고 싱그러운 광명이 멍하게 어두워지리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존속함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오직 간단이 없이 지속하여서 일념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여야 자연히 한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가 불은 내리고 물은 올라서 기운은 하나에 정하고
정신은 맑아서 위로는 천상계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사무쳐서 비고 비어 맑고 맑아서
그 광명이 갓이 없고 동하되 사이기 없어서 일체 현묘한 경지를 맑고 밝게 깨우쳐서 열릴 것이니라.
마음을 단련하는 공부
明禁忌
做工之際에 有五忌一曰不信(不信正法)이요 二曰 泄瀆(不謹嚴)이요 三曰 執着自意(不知
是非 固執自意)이요 四曰 輕發喜惡이요 五曰 生欲速之心이니 皆爲定靜之病이라
必落邪道矣리니 敬之愼之하라.
공부를 할 때에 다섯 가지로 금기 힘이 있으니,
하나는 믿지 아니함이요
둘은 거만하게 세여 나아감이니 근엄치 아니함이요
셋은 자기 자의에 집착함이니 고집 불통함이요
넷은 경망스럽게 선악간 경계에 동요됨이요
다섯은 성질이 급해서 무엇이든지 속히 하고자 함이니
모두가 다 정정 공부를 하는 데에는 병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게 되나니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니라.
若初學靜坐에 必苦於自心不定이면 煩雜之念이 反生하여 禁忌則心惱益亂하느니
惟在寬寬漫漫하여 任之自然이면 定靜을 自得이리니 譬濁水待淸에 急欲澄淸하여
頻考數察하면 則泥濁尤起也라 故로 定觀經에 以東心太急으로 先爲上戒하여 若或
未定에 惡境이 出現이면 則回心泯泯하여 求意閒閒하며 亦密念師門聖訓하여
自心本願을 轉轉返思하면 自然定而靜矣니라.
만일에 초학자로서 고요히 좌정 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기의 마음이 정하지 못함의 괴로움에 얽매이면,
번잡한 마음이 도로 생기나니 금기하기로 하면 오직 마음을 너그럽고 넉넉하게 하는 데에 힘을 모아
자연 한데 맡기고 보면 정정을 스스로 얻게 되나니,
비하건데 탁한 물이 맑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급히 맑히고저 하여 조급히 자주 살피고 보면
진흙에서 일어나는 탁한 물이 일어남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정관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 묶기를 급히 함을 제일 먼저 경계를 하여서 만일에 마음이 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
좋지 못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 돌리기를 민첩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가롭게 하며
또한 스승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늘 생각하여 자심에 근본 발원함을 끊임없이 생각코 생각하면
정하고 고요하여 지나리라” 하였느니라.
凡行事之際에 萬像森列하느니 不可怠急이라 粉紜華頭가 悉從心頭所出하리니 一切
奇異殊勝善怨應變之事가 隨汝心設하며 隨汝心生이며 隨汝心求며 隨汝心現하느니
若使道心으로 爲人心所牽이면 便墮他圈中하여 正退邪進하리니 豈不愼哉아 且幽冥
境界는 一念轉移之間에 便現無量塵劫하리니 愼勿役心于華頭所施하라.
대범 모든 일을 행할 때에 일만 형상이 나타나느니 가히 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요,
분운하고 번화한 생각머리가 다 마음머리로 쫓아 생겨나는 것이니
일체 기이하고 수승한 착하고 원망함이 경계를 따라 응해서 변화됨이 너의 마음을 따라 만들어지며
너의 마음을 따라 생겨나며 너의 마음을 따라 구하게 되며 너의 마음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만일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에 끌리는 바가 되고 보면 문득 다른 권내로 떨어지게 되어서 바른길은 멀어지고
삿된 길로 나아가게 되나니 어찌 삼가지 아니하겠는가.
또한 깊숙하고 현묘한 경계는 한 생각 옳게 돌리는 데에 문득 헤아릴 수 없는 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조심하고 삼가 해서 변화머리 베푸는 데에 미음을 부리지 말지니라.
若或示之에 視若不見이니 捎不掛心於心意하면 必以一點眞心이 反歸玄妙하여 精誠
極一하면 鐵石이 俱開하고 骨肉分形하여 心爲萬靈主요 身爲陰陽造化之宅이라
陰符經云 五賊이 息하면 宇宙在乎手하고 萬化生於身者此也라.
만일 혹 보임에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할 것이니
잠깐 이라도 미음의 뜻에 마음을 걸어두지 아니하면 반듯이 한 점 참마음이 현묘한 경계에 돌아와서 정성이 지극히
한결 되면 쇠와 돌이라도 함께 열리며 뼈와 살이 얼굴로 나누워져 미음은 일만 신령의 주인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느니라.
음부경에 말씀하기를 “다섯 도적이 쉬게 되면 우주가 손바닥 가운데 있고
일만 변화가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말이 곧 이를 이름이니라.
近世鍛煉之士가 往往以外俱華飾으로 宣念科呪하고 懷慾稱修하여 空度歲月하느니
豈入於眞境哉아 蓋夫至道는 深窈나 不在其他라 人能弘道하면 道不遠人이니
朱子曰 道也者는 不可須臾去身이라 하시고 子思曰 率性之謂道라 하시고 孔子曰 知止而
後에 有定하고 定而後能靜하고 靜而後에 能安하고 安而後에 能慮하고 慮而後 에
能得이라 하시니 此皆自明其明德之事也라 我旣有此明德하니 豈不修煉而明之乎아
旣知明德之稟我하고 知修煉之在我하면 則修而得之가 惟在我一心이니 豈區區於外物 하고
孜孜於外飾하여 以慾定靜而得眞道哉아.
근세에 마음을 단련하는 선비가 간혹 밖으로 형식만을 꾸밈으로써 주문이나 베풀어 암송하고
수도를 한다고 생각해서 공연히 세월만 보내나니 어찌 진경에 들겠느냐,
대개 지극한 대도는 심요하나 그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나니
주자 말씀하기를 “도란 가히 모름지기 몸을 떠나지 아니한다” 하시고,
자사 말씀하시기를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도라” 하시고,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밝은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난 뒤에 능히 얻는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다 그 자성자리를 밝히는 일이라.
나에게 이미 이 자성자리가 있으니 어찌 수련을 하지 아니하고 밝힐 것이리요
이미 성품자리가 나에게 있는 줄을 알고 또한 수련함도 나에게 있는 줄을 알면 곧 닦아서
얻어감이 오직 나의 일심 가운데 있는 것이니 어찌 감히 외물에 간절히 바라며 외물 하는데
자자해서 써 정하고 고요하고자 하여 참 도를 얻으리요.
定靜을 연마하는法
明鍊氣方法
夫以修鍊之士가 不知水火玄妙之理와 五行生化之道하면 則徒是粧點兒戲耳니라 大抵
定靜煉磨之法은 乃煉自己造化道하여 苟力行之하면 心火下降하고 腎水上昇하느니
水昇火降者가 乃定靜之捷徑이요 亦延年之一道也니라. 夫人이 思慮多煩하여 心氣悖
戾하면 則口味苦而操하고 頭腦熱而亂하리니 此火昇之故也요 思慮安靜하여 心氣平
順하면 則口味甘而潤하고 頭腦夾而淨하느니 此水昇之故也라 水昇則火降하고 火昇
則水不潤液하여 而但日夜作淡燃하여 燋其靜氣而已니 是故로 修煉之始에 當謹避外
境하고 深戒多思하여 亦切莫嗔恚어다. 使吾心身으로 安閒自適하여 寬柔自治하고
而無陜心熱腦之病이니 此外煉之法也이라.
대범 수련하는 선비가 수화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의 변화로 생기는 도를 알지 못하면
곧 한갓 이 단장한 아해들의 희롱함이라.
대저 정정을 연마하는 법은 이에 자기의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착실히 힘을 다해 행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은 아래로 내려가고 신수는 위로 오르게 되는 것이니
수승화강 함이 이에 정하고 고요함을 얻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요,
또한 연수를 연장케 하는 도가 되는 것이니라. 대범 사람이 생각 생각이 많아 번잡하여
심기가 거슬리게 되면 구미가 씁쓸하며 조급하고 머리가 더워서 어지러워 질 것이니
이는 화가 위로 오르는 연고라, 생각 생각이 안정되어서 심기가 평순 하면 구미가 달며
윤활하고 머리가 시원 상쾌하고 조촐해지나니,
이는 물이 위로 오르는 연고라, 물이 오르면 불은 내리고 불이 오르면 물이 윤액하지 아니하여
다만 일야로 불꽂을 짓게 되어 그 정기만을 태우게 할뿐이니,
이런고로 수련할 처음에는 마땅히 외경을 피하고 깊이 생각 많음을 경계해서 또한 간절히 진심을 내지 말지니라.
나의 심신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해서 스스로 적중하여 관유하게 스스로 다스려
협심열뇌의 병이 없을 것이니 이는 밖으로 단련하는 법이니라.
日用動作에 隨所專心하여 東不念西하고 西不念東하여 每日夜半淸晨이면 則必坐禪
으로 特加精進이니 坐禪之法은 先正坐體하여 無傾委不便之感然後에 調息下氣而注
意於下丹田하여 守心以定하고 寂照不昧니 此內鍊之法也라.
行此日久하여 久久成熟하면 自然五氣相生하고 水火循環하여 眞一之水가 滿口하여
以生甘潤香味하여 異於平時하리니 此卽腎中眞水上昇之實證也니 切莫唾液하고 滿口
呑下하면 則身潤神通하고 精氣益暢하리니 古聖所謂飮甘露而得長養者亦指此謂也니라.
일용 동작하는 데에 바를 따라 전심 전력해서 동에서는 서를 생각치 아니하고 서에서는
동을 생각치 아니해서 매일 야반청신이 되면 반듯이 좌선함으로써 정진할 것이니
좌선하는 법은 먼저 좌체를 단정히 하여 기울어짐이 없어 바르게 앉아 불편한 감이 없이 앉은 뒤에
쉬는 숨을 고르게 하고 기운을 아래로 내리며 마음을 하 단전에 주 하게 하여서
마음을 지키어 정하고 고요한 가운데 조감함이 매하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안으로 수련하는
공부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기를 오래 오래해서 오래 정숙하게 되면
자연히 다섯 기운이 서로 생기가 나서 수화가 서로 순환하여 참되고 한결 된 물이
입에 가득해서 써 달고 윤활한 향기로운 맛이 생기어 평상시와 기분이 다를 것이니,
이것은 신장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증이니 간절히 액체를 뱉지 말고 입에 가득히 모았다가
삼켜 내리면 온몸이 윤활해서 정신이 통하고 정기가 더욱 창성할 것이니 옛 성인들이
감로수를 마시어서 장수함을 기른다는 것은 이를 이름이니라.
坎离交媾하여 水火旣濟之後에 一身萬靈이 能上朝於泥丸(泥丸頭腦也)하여 待其時宜
(時宜淸晨禪定之時)하여 乃運我一點靈光이면 則化爲火鈴於南昌上宮하여 上通於泥丸玄
宮하리니 其始也에 如萬蟻會集之狀하여 甚痒癢之하리니 愼勿括摩하고 聚精會神于
頂上이면 則忽然淸雷一聲에 頂門이 如巨石裂開하여 一身萬靈이 出入此門하리니
形貌光明이 如望夕之月하고 三界天眞이 雲集泥丸하여 歡喜和悅함이 眞若同氣之親 하리니
此乃黙朝上帝法으로 實同一理也(此法은 自注意丹田하여 修煉成熟하여 任運靈氣
時工夫요 初學者强行工夫니 若欲强行此法이면 則反有上氣之病하리니 學者當愼之니라) 先
行定靜之法이 蓋由此事라, 非定靜이면 水火不濟하고 水火不濟하면 則靈氣不會하며
靈氣不會하면 則慧門不能以開하리라. 是法은 乃傳道之秘요 修道之要며 覺道
之眞訣也니 得此法하여 依此而行者는 可克日而成功也니라.
음과 양이 서로 합해서 수화를 이미 보낸 뒤에 한 몸에 신령스러움이 능히 두뇌에 올라 모아서
그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이에 한 점 신령스럽게 빛남이나를 운전하면 곧 불망울이
남창상궁에 화현해서 위로 이환현궁을 통하게 되리니,
처음에는 일만 개미가 모이는 것 같아서 심히 가려울 것이나
삼가 긁지 말고 정밀히 이마 머리에 정신 기운을 모으고 보면,
곧 홀연히 맑은 우레 소리에 이마 문이 큰돌로 두들겨 열리어서 한 몸에 담긴 일만
신령함이 이 문에 출입해서 얼굴에 나타나는 광명이 보름달과 같고 삼계의 천진이 이환에 운집해서
즐겁게 화열함이 참으로 동기의 친함과 같을지니,
이는 묵묵히 옥황상제에게 조회하는 법으로 실상에 있어서는 한 이치와 같은 것이니라.
먼저 정하고 고요하게 하는 법이 모두 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는 것이라.
정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수화가 고르지 못하고
수화가 고르지 아니하면 지혜의 문이 능히 열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 법은 이에 도를 전하는 비결이요 도를 닦는 요긴함이며 도를 깨닫는 비결이니
이 법을 얻어 이에 의해서 행하면 가히 날을 기약하고 성공하리라.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1) ..
明入門要法(1)
禪要에 云 大要有三하니 一曰 大信根이요 二曰 大忿志요 三曰 大疑情이라. 疑者
는 以信爲體하느니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여 悟得十分이라하니 此說은 卽定靜
之要法也라. 何者오 無大願이면 至誠不生하고 無大疑면 死忿不生하고 無大信이
면 眞疑不生하리라 問何以立願하여서 且信忿疑誠之所出處乎아. 曰一天之下에 至
妙至寶至聖至尊之法이 唯一靈寶眞局也라. 靈寶局은 人人各有稟賦於身內하여 而天素
命之하시니 卽我之本性이라.
선요에 이르기를 대요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대신의 뿌리요 둘은 뜻을 크게 분 냄이요
셋은 크게 의심을 가짐이라. 의심은 신으로서 체를 삼나니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어서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이 말은 곧 정정을 얻는데 요긴한 법이라.
어찌 그러한가 하면 큰 원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지 아니하고 큰 신심이 아니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하니라.
묻기를, 어떠한 원을 세워야 또한 신과 분과 의와 성의 출처가 되나이까.
말하기를 한 울 밑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높은 법이
오직 하나인 영보진국이라 영보국은 사람마다 각각 몸 안에 타고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대단한 그대로 명함이니 곧 나의 본래 성품이라.
率性修道하여 明德發揮하여 可以治國而平天下하며 可以爲億兆之君師하고 可以爲無
量之壽仙하나니 何者오 天明之德을 稟賦爲人之初에 頭化天上의 三淸眞宮之氣하고
腹受地下山林川澤之形하고 胸懷日月星辰風雲雨雷陰陽造化之府하였느니 所以 吾身에
有天眞帝君과 九靈三精과 五神眞君과 內外將軍과 左右官屬과 諸部工曺及八萬四千
元君이 各依部分하니 是乃靈寶道局也라.
솔성 수도해서 자성 자리를 발휘해 가히 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며 가히
써 억조 창생의 군사가 되며 가히 써 한량없이 수하는 신선이 되나니,
어찌해서 그런가 하면
하늘이 명한 덕을 사람에게 품부할 처음에 머리는 천상에 삼청진궁의 기운으로 화하고
배는 지하에 삼림천택의 형상을 받고 가슴에는 일월성신과 풍운우뢰와 음양조화의 부서를 품었느니,
바에 써 내 몸에 천진제군과 구영삼정과 오신진군과 내외장군과 좌우관속과
제부공조 및 팔만사천 원군이 각 부분에 의해 있으니 이것이 영보도국 이니라.
修而明之者는 爲仙爲聖이요 失而放之者는 爲愚爲蠢이니라 欲修而明之者는 非大
願而何오 且人人이 各有此局하니 何人得之며 何人不得고하여 大忿出焉이면 萬理가 具於我하고
萬法이 備於此하니 惟一而已어늘 道何衆門이면 惟一而已어늘
法何多岐며 惟一而已어늘 人何多求며 惟一而已어늘 我何復疑하리요 思則疑無하고
望則疑有하리니 疑去疑來에 疑無所疑를 空然何疑리노 忽然燃心하면 是乃眞疑라.
닦아서 밝힌 자는 신선이 되고 성인이 되며 잃어버리고 놓아버리는 자는 어리석고 우둔함이 되느니라.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는 큰 원이 아니고 그 무엇이 있으리요.
또한 사람마다 각각 영보도국이 있으니 어떠한 사람은 얻으며 어떠한 사람은 얻지 못 하리요.
그래서 큰 분심을 내면 일만 이치가 나에게 갇추어 있고 일만 법이 이에 갖추어 있으니
오직 하나 이거늘 도가 어찌 문이 많으며 오직 하나 이거늘 법이 어찌 길이 많으며 오직 하나 이거늘
사람들이 어찌 많이 구하는가 하면 오직 하나 이거늘 내가 어찌 다시 의심하리요 하여 생각한
즉 의심이 없고 바란 즉 의심이 있나니 의심이 가고 의심이 옴에 의심하고 의심할 바가 없거늘
공연히 어찌 의심하리요 홀연히 의심을 태워 버리면 이것이 참 의심이라.
是疑之下에 萬疑寂靜하면 不分晝夜함이 如夢若眞하여 空寂天地에 惟一疑而已거늘
此非大疑而何오 盖疑字之工은 最難得知니 若無大信이면 是疑不生이라 故로 禪要
에 云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고 疑有十分하면 悟有十分이라하니 指此謂也니라
信可信矣요 誠可誠矣니 以信定靜하고 以信忿疑하느니 非大信이면 信何長久리요
一定不變하여 始終如一을 是謂誠也라하느니 五經에 云 以誠而入하며 以黙而守하며
以柔而用이면 則物我俱忘하고 慧光乃生하여 聖智自全하리니 此乃入之眞締也라.
이 참 의심아래 일만 의심이 적정하면 주야를 분별치 못함이 꿈도 같고 참도 같아서
공적한 천지에 오직 한 의심 뿐 이니, 이것이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대개 의심 의자의 공부는
가장 얻어 알기가 어려울 것이니 만일 큰 신심이 아니면 이 의심이 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럼으로 선요에 말하길 신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고 의심이 십분 있으면 깨달음이 십분 있다 하니
이를 가르켜 이름이니라.
신을 가히 신할 것이며 정성을 가히 정성할 것이니 신으로써 정정하면 써
신과 분과 의를 얻을 것이니 큰 신심이 아니면 그 신심이 어찌 장구하리요.
한가지 정해서 변치 아니하여 시종이 여일 함을 이에 성이라 이르느니라.
오경에 말하기를 성으로써 도에 들며 묵묵함으로써 도를 지키며 부드러움으로써 도를 사용하면
곧 물과 내가 한가지로 잊어서 지혜의 광명이 이에 생기어 성스러운 지혜가 스스로 온전하나니
이것이 도의 문에 드는 참다운 요체라.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2) .
明入門要法(2)
昔에 西峰道士가 爲其學徒曰 天下에 有一無主空舍하니 是卽靈寶局也라. 其中에
儲天下無窮之妙하고 積天下無窮之寶하며 藏天下無窮之財하여 通開八萬四千門路하여
圍繞垣墻하여 使慾者 懶者 愚者 不信者로 各守諸門路하라 하고 命之曰 貪慾懶愚不信
者來到면 則爾等各守防禦하고 唯某誠信專一者來到면 則開門納之하여 以爲空舍之主 하여
用無窮之財寶云하니 世人聞此設하고 皆仰笑하여 空棄不取曰 如許財寶를 我
何敢取리오. 此有福有緣者之所當取之라 하고 敢不往求로새 釋迦는 傳設하고 老子는
指路하고 孔子는 勸送하되 不知就取하고 往知者나 不信者는 防而不受하고
貪慾者拒而不納하니 其間能入取者는 惟千萬人中一二人也라.
옛 적에 서봉도사가 그 학도에게 말하기를, 천하에 한 주인 없는 빈집이 있으니 이것이 곧 영보국이라,
그 가운데 천하의 무궁한 묘함을 모아놓고 천하의 무궁한 보배를 쌓아놓고
천하의 무궁한 재물을 갊아 두고 팔만 사천 문로를 통해 열어 두루 담장을 둘러놓고
욕심 있는 자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 믿지 아니하는 자로 하여금 각각 모든 문로를 지키게 하라
하고 명령하여 말하기를 탐욕자 라우자와 불신자가 와서 이르면 곧 너희들은 각각 지키어 막고
어떠한 사람이든지 정성스럽고 믿음이 전일한 자가 외서 이르면 곧 문을 열어 들여서 써
빈집의 주인을 삼아 무궁한 제보를 사용토록 하라고 이르니,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하늘을 우러러 비소하며 부질없이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 재물을 내가 어찌 감히 취하리요.
이는 복이 있고 인연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취할 바라 하고 감히 가서 구하지 아니 할세,
석가는 말을 전하고 노자는 길을 가르키고 공자는 권해 보냈으되
나아가서 취할 줄을 알지 못하고 가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막아서 받지 아니하고
탐욕자는 또한 거절해서 들이지 아니하니 그 사이에 능히 들어 와서 취하는 자는 오직 천만인 가운데 한 두 사람이라.
其餘外道之輩는 曠安宅而不居하고 捨正路而不由하고 卽盜野人之財産하며 或乞富人
之餘財하며 或奪行人之路費하고 或穿壁欺取하며 或飢寒 或爭鬪하니 五賊並起 하고
三盜가 不息하여 天下大亂하며 法官이 形名하고 親友誹謗하니 可謂寒心處也라.
不取所當取하고 取其不當取하여 曰 我行捷法하여 易取易得이라 하며 或死或敗에
修苦不悔하고 反見支離하니 愚耶아 懶耶아 孔子所謂糞土之墻이요. 孟子所謂下愚
不移者 是其徒乎저. 禪書에 曰 能開衆門中에 一門入하여 取無盡藏寶하면 用之不
竭하고 取之無禁하리니 此寶非外來之物이라. 是室內生生無窮之物이니 能昇當者는
誠也요 能開門者는 疑也요 能主物者는 信也라.
그 나머지의 외도의 무리들은 넓고 편안한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바른 길을 버리고 말미암지 아니하고
곧 야인들의 재산을 도적질하며 혹 부자의 남은 재물을 구걸하며 혹 행인들의 노비를 탈취하고
혹 벽을 뚫고 속여 취하며 혹은 기한에 떨며 혹은 투쟁해서
오적이 아울러 일어나고 삼도가 쉬지 아니해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지며 법관들이 형극의 이름을 타고
친우들이 비방하니 가히 한심할 지도다 마땅히 취할 바를 취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취하지 아니할 바를 취하지 말하기를 내가 빠른 법을 행하였다 해서 쉽게 취하고 쉽게 얻었다하며
혹 죽고 혹 패하며 고를 받아도 후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지리 함을 보게 되나니 어리석음인가
게으름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분토의 장이요 맹자가 말하기를 하우에 옮기지 아니함이라 함은 이런 무리들을 말함이로다
선서에 말하기를 능히 여러 문을 열고 한 문에 들어가서
다함이 없이 갊아 있는 보물을 취하면 써도 다함이 없고
취해도 금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보물은 밖에서 오는 물건이 아니라
이 빈집에서 나오고 나오는 무궁한 보물이니
능히 집에 오르는 자는 성이요 능히 문을 여는 자는 의요 능히 물건을 주장하는 자는 신이라
義에 不取他人財寶하고 卽取此當取物者는 忿也 若無信忿衣三字며 則盤桓墻外하고
逗遛簷端하여 漫然歲月타가 空費氣力하여 太息退歸에 乃爲行乞之人이라 故로 比
之曰 石中藏玉은 非鐵釘이면 難琢이요 無鑢石이면 不磨라하고 又曰 不入虎穴이면 焉得虎子리요 하니
釘은 信也요 入虎穴은 忿也니 欲琢磨得虎子者는 發大忿
勇이니 金剛利刀로 割世緣一縷하고 引大疑하여 卽殺心猿意馬之奔馳하고 懷大信하여
能入此門然後에 鐵柱中心이요 石壁外面이라
의리에 다른 사람의 재보를 취하지 아니하고 곧 마땅히 취할 물건을 취하는 자는 분심이니
만일에 신과 분과 의의 삼자가 없으면 곧 담 밖에서 반환하고 처마 끝에서 두류하며
공연히 세월만 보내다가 부질없이 기력만 허비해서 종말에는 크게 한숨만 쉬고 물러가 돌아가매 이에
행걸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하기를 돌 가운데 갊아 있는 옥은 철정이 아니면 쪼아 내지를 못하고 숫돌이 아니면 갈지를 못한다 하고
또 말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지 아니하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것이리요 하니,
끌은 신을 말함이요 호랑이 굴은 분이니 쪼아내고 갈고 호랑이 새끼를 얻는 것은 크게 분내는 용기이니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얽힌 인연의 한 오라기도 다 베어버리고
크게 의심을 당겨 이르켜서 곧 마음 원숭이와 뜻 망아지에 끌리고 달리는 마음을 몰아내고
큰 믿음을 품어서 능히 이 문에 들어간 후에 철주와 같은 중심이 되고 외면 막기를 석벽이 됨이라.
川萬師設이 更不妙於此設하며 妙道玄理가 且無加於此道라 目無所好見하고 耳無所
喜聞하며 妙無他妙하고 寶無他寶면 則一心靜에 蕩蕩焉豁豁焉 無絲亳纖鹿之礙滯면
則若人初生無異하여 飮茶에 不知茶하고 喫飯에 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
知坐하여 情識頓淨하고 計較都忘하여 恰似有氣底死人이요 且泥塑人相似라 是名立
定이니 其若氣發神動이면 則初如圉圉而不得編序나 然至於心華頓發이면 則洞然十方
하여 如杲日麗天하며 明鏡當臺라 不越一念에 頓成正覺하리니 是名得慧라 如此
자는 乃禪家之佛이요 靈寶之聖이며 仙家之丹이니라.
천만 스승의 말이라도 다시는 이 말씀 외에는 더 묘함이 없으며 묘한 도리와 현묘한 이치가
또한 이 도에 더함이 없음이라.
눈으로 보되 좋게 보는 바가 없으며 귀로 듣되 즐겁게 들리는 바가 없으며
묘함이 이에 더 묘함이 없고 보물이 이에 더 보물이 없으면 곧 하나로 마음이
정함에 넓고 또 넓으며 걸림이 없고 또한 걸림이 없어서 털끝만큼이라도 걸리고 막힘이 없으면,
곧 사람이 처음으로 남에 사람에는 다름이 없으나 차를 마셔도 차인 줄을 모르며 밥을 먹어도
밥인 줄을 모르며 행하되 행하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은 줄을 몰라서 모든 정과 식이
돈연히 조촐하고 모든 사량과 계교가 모두 다 없어서 기운은 있으되 죽은 사람과 흡사하고
또한 흙으로 만든 우상과 같음이라.
이 지경에 이르르면 대정을 세웠다 이름할 것이니 이에
기운을 발하고 신령스럽게 움직이면 곧 처음에는 어른어른 해서 차서를 잡지 못하나 그러나
분별심이 갑자기 발하면 곧 시방세계가 한 집같이 밝아져서 태양이 중천에 빛남과 같을 것이며
밝은 거울을 대함과 같음이라. 한 생각 넘지 아니하여 홀연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 이를 일러
혜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이와 같은 이는 이에 선가에서 말하는 불이요 영보의 성인이며 선가에서 말하는 단이라 할 것이다.
道門에 드는 요긴한 法(3)
明入門要法(3)
然若信忿疑之誠이 未極에 八萬四千魔兵이 覘在六根門頭하여 隨機誘心하여 百方作
亂하매 四面華頭勞碌心神하리니 卽念聖訓하여 要取無心하고 更加精力하면 剋日就
工而使吾一身 如墮千尺井厎相似하여 從朝至暮와 從暮至朝에 千思想萬思量으로 單只
是救出之心이요 決無二心이니 誠能如是하면 施工을 剋日可矣리라.
그러나 만일에 신과 분과 의와 성이 지극하지 못함에 팔만 사천 마군이 육근문 머리에 엿보고 있어서
기틀을 따라 마음을 유혹해서 백방으로 작 난을 하여 사면에서 변화머리가 심신을 어지럽게 흔들어 낼 것이니,
곧 성인의 교훈을 생각해서 요긴히 무심함을 취하여 다시 정력을 더하면
반드시 날을 정해 놓고 공부를 성취해서 나란 몸으로 하여금 천 척이나 되는 우물 속에 떨어짐과 같아서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또는 저녁으로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생각으로 다만 이에 구출할 마음 뿐이요 결단코 다른 마음이 없을 것이니
정성이 이와 같으면 공부해 나아감이 반드시 날을 가히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니라.
此段은 卽有相火虛火하니 康健之人이라야 所取也요 又若柔溫氣弱之人이면 則譬如自
身得當死之罪하여 深囚獄中하여 剋日斬殺次로 四面守直타가 忽遇獄卒醉倒하여 時
夜寂廖하매 乃扣枷打鎖越獄脫身에 不分東西하고 卽逃出境之際에 毒龍猛獸가 一無
懼心이요 卽面當前矢石도戟이라도 亦無怖畏하며 蒙被奔迅하여 崎嶇險路를 如踏平
地하고 芴棘蒺藜를 視若草芥하시니 此何故也오.
이 단계에 있어서 곧 실상의 불과 허령의 불이 있나니 강하고 건전한 사람이라야 취할 바이요
또한 만일에 유온하고 기약한 사람은 곧 자신이 죽을죄를 당함과 같아서 깊은 옥중에 수감이 되어
날을 정해 놓고 참살할 차례로 사면을 수직 하다가 문득 옥졸들이 잠에 취해 엎드러짐을 보고,
때에 밖이 적적하매 이에 자물쇠를 두들겨 부수고 옥문을 넘어 몸이 빠져 나오매 동서를 분간할 겨를이 없이
곧 옥 경계를 도망해 나올 때에 독룡과 맹수가 있다 하여도 두려울 마음이 없고
곧 면전에 시석과 도극이 날아온다 할지라도 또한 두려움이 없으며 옥중에 몽피된 몸만이 분주히 풀려나감이 빠를 것이니
기구한 험로라도 평지와 같이 밟아가며 가시 숲 얽히고 얽힘이 있다 할지라도 초개와 같이 보일지니 이 무슨 연고인고.
寧死他死언정 不死此死니 是乃極切之心이라 用工之際에 有此切心하면 剋日之工을
管取百中이라 然이나 如此極切之心은 修煉成熟하여 得其眞趣者에 最後實行之法이요
非初學凡想에 易取易行者也라 故로 初行之工은 務在安其危니 心安이면 則
定力이 益增하며 定力益增하면 則極切之心을 亦不勞而自得이니라.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을지언정 이 곳에서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마음뿐이니 이것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이라,
공부를 할 때에 이러한 절실한 마음이 있으면 날을 한정하고 공부함은 과녁을 취하니 다 맞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와 같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은 닦고 연마함이 성숙해서
그의 진취를 얻은 사람의 최후에 실행하는 법이요 초 학자의 범상한 근기에 있어서는 쉽게 취하고 쉽게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음으로 행하는 공부 인으로 서는 힘쓰는 것이 그 위태로움에 있어서 먼저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마음이 편안하면 곧 정력이 더욱 더 하는 것이며
정력이 더욱 더 하면 곧 지극히 간절한 마음을 또한 힘들이지 아니하고도 스스로 얻을 것이니라.
자성자리로 돌아가는 공부
明風土移化之功
人之心體는 本自虛明이라 元無染汚나 然이나 及其應物遂境에 情私感疑하여 遂
成風土之習故로 做工之始에 當明察自心上習氣所染하여 修煉精治然後에 定靜始得이
라 定靜之後에 微暢之光明이 乃發이며 則亦留心於定慧等持하여 一絲不亂而各得其
正하리니 是明精一執中이라. 執中必庸은 中庸이요 學大는 大學이요 論道語는 論
語라. 元亨利貞과 仁義禮智를 隨性感現하여 或聖或賢이니 雖風土稟受之有異나
氣質則齊也라. 故로 此我靈寶眞訣로 能善化而歸一者也니라.(言性之齊也)
사람의 마음 본체는 본래 텅 비어서 밝음이라. 원래 더럽힘이 없으나
그러나 그의 물체를 응하고 경계를 따라서 인정이 사사로이 느끼어 얼켜서 마침내 풍토의 익힌 바 습성이 되는 고로,
그러므로 공부를 할 처음에는 마땅히 자심에 습기의 물든 바를 맑게 살펴 닦아 단련해서
정밀히 다스린 후에 정하고 고요함을 비로소 얻을 것이라.
정하고 고요함을 얻은 후에 미미하고 화창한 광명이 이에 발할 것이니,
곧 또한 정과 혜를 고루 가짐을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어
일사불란해서 각각 그 바름을 얻을 것이니,
이를 이름해서 정일 집중이라 하니라 중도를 잡아서
반드시 떳떳함을 이름이 중용이요 대 자리를 배움은 대학이요, 도리에 대한 말을 논함은 논어라.
원형이정과 인의예지를 개성에 따라 느끼어 발현됨이 혹 성인도 되고 혹 현인도 되나니,
비록 풍토에 따라 개성을 받음이 다름이 있으나 기운 바탕은 품수함이라.
그러므로 이 나의 영보의 참 비결로 능히 잘 융화해서 하나에 돌아감이라.
多誦定靜編하고 勤行坐禪之法하여 嚥津煉氣하고 運水火風土를 可移로되 氣質卽齊
也라 朝眞禮聖하여 參三才出萬化하며 聖與我가 相似焉이라 修煉正法은 元無二
學이니 學皆然修요 前聖後聖이 其修相同이라. 故로 做工之人은 依此而行이라.
別無遲速이요 且無先後而皆得定靜이니라 定靜之期는 大限은 十年專一하면 無不貫
通이요 小限은 九旬이니(亦有五旬之限 皆言禪期也) 九旬專一이면 外定可得이요
剋日之期는 大限은 七日로(亦有五日或三日之限 皆言入定之期也) 七日精進이면 可入
眞忘이요 小限은 半時니(亦日刹那) 半時 燃燒心이면 能成正覺하리라.
많이 정정편을 달통하고 붙들어서 좌선하는 법을 행하여 단 침을 삼키고 기운을 단련해
물과 불을 운전해서 풍토를 옮기게 되나 기질인 즉 다름이 없음이라.
아침 일찍이 진심으로 체성에게 예를 올리어 천지인 삼재에 혹됨이 없이 참례해서 일만 변화를 나타내면
성과 더불어 내가 서로 상이 없을 것이니라.
수련하는 바른 법은 원래 두 가지로 배움이 없으니 배워서
다 수련함은 전성 후성이 그 수련함이 서로 같음이라.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에 의해서 행함이라.
별로 지속이 없음이요, 또한 선후가 없이 다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라.
정정의 기한은 크게 잡으면 십년이 될 것이니 십년 동안 한결 되이 전일 하면 관통치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적게 잡으면 구순(3개월)이니 구순 동안 전일 하면 외정을 가히 얻을 것이요,
날을 한정한 기한은 대한 칠일이니 칠일을 정진하면 가히 진 마저 잊어버리는 데로 이를 것이요,
소한은 반시이니 반시 동안 모든 분별심을 놓아 버리면 능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라.
定靜之有遲速이 不在於人이요 在乎誠與不誠이니 不誠而以難行으로 見之하면 則如
千年盲龜脫身萬里之樹城이요 三日曲針으로 投穿半片之纖芥요 誠之而以能行으로 見之
하면 則如千尺井底之人이 出乎平地하며 深寓牢獄之人이니 出乎獄外하여 身晏心閒
하여 更無他勞니 因何而更說遲速及爲不爲乎아. 戒乎我願學天人하고 莫妄意於異道하
여 一就我靈寶局中하여 自修自明이면 可仙可佛이며 爲聖爲眞乎고저 學徒者는
能信行此法하여 念念勤修하면 則氣和神化하여 可得定靜하리니 修之明之하여 乃復
其性이 可也니라
정정의 지속이 있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안이요 정성이 있고 없는 데에 있는 것이니
성심이 없이 행하기가 어려우므로 볼 진데 천년이나 눈 먼 거북이 만리나 되는 나무 성으로 몸을 벗어나려 함과 같을 것이요,
삼일이나 굽은 바늘로 반쪽이나 되는 겨자씨를 던져 뚫기와 같을 것이요,
성심으로 능히 행함으로 볼 진데 곧 천 척이나 되는 우물 밑에 빠진 사람이 평지에 나옴과 같으며,
깊은 뇌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옥외로 나감과 같아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다시는 괴롭고 수고로움이 없을 것이니 무엇을 인해서 다시 지속되고 안 된다는 말을 하리요.
경계하기를, 나 자신이 천인 배움을 발원할 뿐이요 다른 도에 뜻을 두지 말아서
한결같이 나의 영보도국 가운데 나아가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밝히면 신선이 되고
가히 부처가 되며 성인도 되고 진인도 될 것이니라.
도를 배우는 무리들은 능히 이 법을 믿고 배워서 생각 생각이 부지런히 수행하면
기운이 화하고 정신이 화현해서 가히 정과 고요함을 얻을 것이니
수련하고 밝히어서 이에 그 자성 자리를 회복케 함이 가할 것이니라.
定靜에 이르는 方法
明定靜次第
夫欲修煉인데 當先捨外事之紛撓하라 外事平定하여 無有忤心然後에 安坐而內觀이 心
起에 若觀一念便起면 卽須除滅하여 務令安靜이니라 其次는 雖非的有貪着이나
浮遊亂想이라도 亦盡滅除하고 晝夜勤行하여 須臾不潛이니라 唯滅動心이요 不滅照
心이니 但凝空心이요 不凝住心이라 不依一其爲心之常이니라 若住則凡心이 躁競하여
煩惱續起라 故로 定靜之門에 以無住로 爲上하니라
대범 수련코자 할진데 마땅히 먼저 밖의 일의 분요함을 놓아버려라.
밖의 일이 평정해져서 마음을 더렵혀지지 않은 연후에 편안히 앉아서 안의 마음을 관할 것이니 마음이 일어나매
만일 한 생각이 일어남을 관할 때에 곧 모름지기 제거해 없애고 하여금 안정하기를 힘쓸 것이니라.
그 다음은 비록 탐 착 심으로 일어남은 아니나 근거 없는 부유란상 이라도 또한 다 멸해서 제거하고
주야로 부지런히 수행해서 잠깐 사이라도 머물러 두지 말 것이니라.
오직 움직이는 마음을 멸할 것이요 자성으로 비치는 마음은 멸하지 아니할 것이며 다만
공심에 얼켜 둘 것이요 주심에 얼켜 두지 아니할 것이니라.
한갓 그 마음이 떳떳함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머물러두면 모든 마음이 조급히 다투워 일어나서 번뇌망상이 계속해서 일어남이라.
그러므로 정정의 문에는 주 함이 없음으로써 우위를 삼았느니라.
且初學之人은 息心甚難하니 或息不得暫停還失이니 然이나 去留交戰에 百體流하여 久
久精思하면 方乃調熟하나니 勿以暫收不得爲憂하고 遂廢千生之業源하라. 其次는 小得
淨己면 則於行住坐臥之時와 涉事之慮와 喧鬧之所에 皆作意安하며 有事無事에 常若
無心하며 處喧處鬧에 其之唯一이니라. 若束心太急하면 又卽成病하여 氣發狂顚하리니
戒之愼之하라.
또한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마음 쉬어버리기가 심히 어려우니 혹 마음 쉬어 버림을 얻지 못하고
잠깐 머물렀다가 또한 잃어버리게 되나니 그러나 버렸다 머물렀다 서로 싸워감에 전신이 흘러 행해서
오래오래 정밀히 생각하면 바야흐로 조숙케 되나니, 써 잠깐이라도 근심됨을 얻지 못함을
거두워 잡지 말고 뒤에 천생의 업원을 폐함이라.
그 다음은 조금이라도 몸이 정화되어 가면 곧
행주좌와 하는 때와 모든 일을 간섭하는 곧 다 번화한 거리에 모두 다 뜻 편안함을 지어서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에 항사무심함과 같이해서 시끄러운 처소에서도 그 뜻만 오직 하나로 만들 것이니라.
만일 마음 묶기를 조급히 하면 또한 병이 되어서 기운에 광전이 발할 것이니
경계하고 삼갈지니라.
心若不動하면 又須放任하라. 如此則寬急이 得所하여 自恒調適하며 制而不着하며
放而不動하며 處喧無惡하며 涉事無惱者此是眞定이니라. 不以涉事無惱라.
故로 求多事하며 不以慮喧無惡이라. 故로 來就喧이니라.
以無事로 爲眞性하고 以有事로 爲應跡이니라(應跡應物通明也) 若水鏡之爲鑑이면 則隨物而
現形하느니라. 善巧方便이 惟能入定이요 慧發遲速이면 則不由於人이니(不分强
求) 仂令定中急急球慧하라. 急則傷性이요 傷性則無慧하느니라. 若定不求慧而慧自
生하나니 此名眞慧라. 慧而不用하면 實智若愚하며 益實定慧면 雙美無極하리라.
若定中에 念想多感하면 衆邪妖精하며 百魅隨心하고 奇蹟異相하여 應
現所見하나니 却須堅立正念하여 反求心常하면 自然妖魔盡滅하느니라.
마음이 만일 동하지 아니하면 또한 모름지기 방임해 보아라.
이와 같이 하면 너그럽고 급함이 바를 얻어 스스로 항상 고루 적중하여 제재해서 착하지 아니하고 방심하되
동치 아니하며 복잡한데 있으나
싫어함이 없으며 일에 나아가서 마음 어지러움이 없어야 이것이 참으로 정함이로다.
써 일을 간섭함에 있어 마음이 수고스럽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일을 많이 구하지 아니하며 써 번화함을 싫어하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번화한데 나아가되
시끄러움이 오지 아니하니라.
일없는 것으로 써 진성을 삼고 일이 있음으로 써 적응해서 막힘이 없음이라.
만일 물과 거울로 귀감을 삼으면 곧 물체를 따라 형상을 나타낼 것이니라.
가장 좋은 방편은 오직 능히 정에 들어감이니 지혜 발함이 지속이었음은 사람에 말미암음이 아니니,
하여금 정 가운데에서 급히 지혜를 구하지 말아라.
급하게 서두르면 자성자리를 상하게 될 것이요 자성자리를 상하고 보면 지혜가 발하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정하는 데에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느니
지혜가 자연히 생 하게 되느니 이를 일러 참 지혜라 하느니라.
지혜를 사용치 아니하면 실상 된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으며 실상 된 정과 혜가 더하면
쌍으로 아름다움이 다함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정 가운데 생각 생각이 많이 감응되면
뭇 사사첩념의 요정이 더하며 일백의 매 망령이 마음을 따를 것이요 기적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바에 응해서 보일 것이니
모름지기 굳게 바른 생각을 세워서 마음에 떳떳함을 구하면 자연히 요마가 다 멸할 것이니라.
定靜之心이 惟虛明淡寂하여 上而豁然無覆하고 下而曠然無基하면 則舊業日銷하
고 新業不造하며 無所絓礙하여 逈脫塵籠하나니 行而久之하여 自然得道하느
니라. 夫得道之人有七候하니(候通也) 一者는 心得定見하여 覺諸塵漏이요 二者
는 宿疾(宿疾宿習之病)普銷하여 心身輕爽이요 三者는 塡補夭損하여 還平復命이요
四者는 延壽無量하니 明曰仙人이요 五者는 鍊形爲氣하니 名曰眞人이요
六者는 鍊氣成神이니 名曰神人이요 七者는 鍊神合道니 名曰至人이니라.
정하고 고요한 마음이 오직 비고 밝아서 담하게 고요해서 위로 활연해서 덮임이 없으며,
아래로 광연해서 기틀(자리)이 없으면 곧 구업이 날로 녹여지고 신 업을 다시 짓지 아니해서
걸리고 막힘이 없이 모든 진롱을 벗어날 것이니 행해서 오래가면 자연히 도를 얻을 것이니라.
대범 도를 얻은 사람이 일곱 가지 징후가 있으니 하나는 마음에 정한 소견을 얻어서
모든 진루를 깨달음이요 둘은 오래된 병이 널리 녹아버려서 몸과 마음이 경상 함이요
셋은 요손함을 도와서 평상심에 돌아와 천명에 회복함이요 넷은 수명을 무량함에 연장하니
신선이라 이름하고 다섯은 얼굴을 단련해서 기운을 만들었으니 진인이라 이름하고
여섯은 기운을 단련해서 귀신을 만들었으니 신인이라 이름하고 일곱은 귀신을 단련하여 도에 합하였으니
지인 이라 이름 하였나니라.
其於鑑力하여 隨候益進하면 得名慧乃圓備하라 若久學定靜하여 心無一候라사
是乃圓通修鍊之士라. 但依此法하여 操縱得宜하면 則無日不工이며 無處非禪이니
若促齡離俗하면 索隱行怪然後에 始可得通云이니 則此未達定靜之法者也라. 定靜
之法在易하고 不在乎難이며 在內不在乎外니라.
그의 힘을 거울해서 징후를 따라 더욱 나아가면 지혜를 이에 원만히 갖추었다 이름할 것이니라.
만일 오래오래 정정하는 공부를 해서 마음 가운데 한 징후라도 없어야 이에 원만히 통달한 수련하는 선비라.
다만 이 법에 의해서 표준의 종을 잡아 편안함을 얻으면 날로 공부를 아니 함이 없으며 선 아닌 곳이 없으니,
만일에 나이를 재촉하여 속세를 떠나서 자취를 숨기고 괴이함을 행한 뒤에 비로소 가히 도를 얻는다고 하니
곧 이는 정하고 고요한 법을 달통하지 못함이라.
정정의 법은 쉬운 곳에 있고 어려운 곳에 있지 아니하며 마음 안에 있고 마음밖에 있지 아니함이라.
참되고 떳떳한 道
明眞常之道
大道는 無形이나 生育天地하고 大道는 無情이나 運行日月하고 大道는 武名 이나
長養萬物하나니 吾不知其名이라. 强名曰道니라. 夫道之行也에 有淸有濁
하고 有動有靜하니 天淸地濁하고 天動地靜하며 男淸女濁하고 男動女靜하나니
降本流末而生萬物하나니라. 淸者濁之源이요 靜者는 動之基라. 故로 人能常
淸靜하면 天地悉皆歸니라. 夫人神은 好淸而心撓之하고 人心은 好靜而慾牽之하나니
常能遣基慾而心自靜하고 證其心而神自淸하면 自然六慾이 不生하고 三毒消滅 하리니
所以不能者는 爲心未證이라.
대도는 형상이 없으나 천지를 생육해 내고 대도는 정이 없으나 일월을 운행하고 대도는 이름이 없으나
만물을 장양케 하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함이라.
강연히 이름하기를 도라 하였느니라.
대범 도를 행함에 맑음이 있고 탁함이 있으며 동함이 있고 정함이 있나니,
하늘은 맑고 땅은 탁하며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하며 남자는 청하고 여자는 탁하며 남자는 동하고 여자는 정하나니
근본으로부터 내려와 끝으로 흘러서 만물을 생 하게 하느니라.
맑은 자는 탁함의 근원이 되고 고요한 자는 동자의 기본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청정하면
천지가 다 한가지로 돌아가느니라.
대범 사람의 정신은 맑음을 좋아하되 마음이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은 정하기를 좋아하되 욕심에 끌리게 되느니 항상 능히 그 욕심을 보내 버리면
마음이 스스로 정하고 마음이 맑으면 정신이 스스로 밝아져서 자연히 육욕이 생기지 아니하고
삼독이 소멸하리니 바에 써 능치 못한 자는 마음이 맑지 못함이라.
慾未遣也니 能遣之者는 內觀其心에 心無其心하며 外觀其形에 形無其形하며 遠觀
其物에 物無其物하느니 三者旣悟하면 惟見於空이니 觀空亦空여 空無所空하며
所空旣無하면 無無亦無하며 無無旣無하여 湛然常寂하며 寂無所寂하면 慾豈能生 이리요
慾旣不生하면 卽是眞定眞常이라 眞常應物하며 眞常得性하여 常應常淸靜矣 니라.
如此淸靜하면 漸入眞道라. 旣入眞道를 名爲得道니 雖名得道나 實無所得이요
爲化衆生을 名爲得道니 能悟之者는 可傳聖道하리라.
욕심을 보내지 못 함이니 능히 보내는 자는 안으로 그 마음 일어남을 관 하되 마음이 그 마음이 없으며
밖으로 그의 형상을 관 하되 형상이 그 형상이 없으며 멀리 그 만물을 관 하되
물건이 그 물건이 없나니 삼자를 이미 깨닫고 보면 오직 공 함만이 나타날 것이니 공을 관 하되 또한 공해서
공 함이 공 한바가 없으며 공 한바가 이미 없으면 없는 것이 없다 함이 또한 없으며 없는 것이 없다 함이
이미 없어서 담연히 항상 고요하며 고요함도 또한 고요한 바가 없으면 욕심이 어찌 능히 생기리요.
하고자 함이 이미 생기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참 정이요 참으로 떳떳함이니라.
참으로 떳떳함으로 물건을 응하면 참으로 떳떳한 성품을 얻어서 항상 응용되는 데에 항상 청정하리로다.
이와 같이 청정하면 점차 참 도에 들어가게 됨이라.
이미 참 도에 들어감을 이름하기를 도를 얻었다 하리니 비록 이름이 도를 얻었다 하나 실상에 있어서는 얻은 바가 없고
중생을 화도 함을 이룸으로서 도를 얻었다 하나니 능히 깨달은 자는 가히 성인의 도를 전하리로다.
且上士는 無自他라. 故로 不爭하고 下士는 執自他라. 故로 有爭하며
上德은 處無相이라. 故로 不德하고 下德은 執有相이라. 故로 執德하느니
執着之者는 不名道德이라. 衆生所以不得眞道者는 爲有妄心이라. 旣有忘心
하면 卽驚其神이요 旣驚其神하면 卽着萬物이요 旣着萬物하면 卽生貪求요
旣生貪求면 卽是煩惱라. 煩惱妄想이 憂苦身心하여 便遭濁辱하면 流浪生死에
常沈苦海하고 永失眞道라. 眞常之道는 悟者自得하느니 得悟者常淸靜矣니라.
또한 상사는 자타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없고, 하사는 자타에 집착함이라.
그러므로 다툼이 있으며, 상 덕은 무상에 처함이라. 그러므로 덕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 덕은 유상에 집착함이라.
그러므로 덕에 집착하느니 덕에 집착하는 자는 도덕이라 이름하지 아니함이라.
중생이 바에 써 참 도를 얻지 못하는 자는 망령된 마음이 있음이라.
이미 망령된 마음이 있으면
곧 정신이 놀랄 것이요 그 정신이 놀라면 곧 만물에, 착심이 생길 것이요 이미 만물에 착심이
생기면 곧 탐심이라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요 이미 탐내서 구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곧 이것이 번뇌가 되느니라.
번뇌망상이 몸과 마음을 근심케 하고 괴롭게 해서 문득 탁하고 욕됨을 만나게 되면
생사에 유랑해서 항상 고해에 잠기게 되고 기리 참 도를 잃게 됨이라.
참으로 항상 떳떳한 도는 깨달은 사람이 스스로 얻게되느니 깨달음을 얻은 자는 항상 청정하리라.
有動之動은 出於不動하고 有爲之爲는 出於無爲하느니 無爲則神(體性)歸하고
神歸則萬物云寂이라. 不動則氣泯하고 氣泯則萬物無生하느니 神神相守하고 物物
相資하여 厥本其根이라. 黙而悟之하면 我自識之하고 入乎無間하면 不死不生
하여 與天地爲一이니라. 忘於目則光溢無極하고 泯於耳則心識常淵하느니 兩機俱
忘하면 絶衆妙之門이라. 純純全全合乎大萬하고 溟溟涬涬하여 合乎無綸하느니
天地之大我之所維요 萬物之衆이 我之所持니 竭有窮終以語其蔽哉아.
동함에 있어서 동함은 동하지 아니함으로부터 나게 되고 함에 있어서 함은 함이 없는 곳으로부터 나오니
함이 없으면 본심에 돌아가고 본심에 돌아간 즉 만물이 적적하다
이르느니라. 동하지 아니하면 기운이 민민하고 기운이 민민하면 만물이 생함이 없느니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움이 서로 지키고 만물과 만물이 서로 바탕해서 궐 하느니라.
그 근본을 묵묵한 가운데 깨달으면 내 스스로가 알고, 사이가 없는 곳에 들어가고 보면
죽지도 아니하고 낳지도 아니해서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느니라.
눈을 잃어버리면 빛이 넘침이 다함이 없고, 귀가 민민하면 마음 알음알이가 항상 연연하느니
두 기틀을 잊어버리면 중묘의 문이 끊기게 되느니라.
순순하고 전전해서 대만에 합하고 명명하고 행행해서 무륜에 합하느니,
천지의 큼이 나의 벼루 줄이요 만물의 중생이 나의 가진 바이니 어찌 다 끝이 있어서 써 그 가리움을 말할 수 있으리요.
養其無相하니 相故로 常存이요 守其無體하니 體故로 全眞이라 全眞相濟면 可
以長久하니 天得其眞故長이요 地得其眞故久요 人得其眞故壽하느니 世人所以不能長
久者는 爲喪其無相하고 散其無體하여 不能使百骸九竅與眞體並存 故로 死矣니라.
그 상이 없음을 기를 것이니 상이 짐짓 보존함이요 그 체가 없음을 지키나니 체가 짐짓 온전한 참이라.
온전한 참됨을 서로 구제하고 보면 가히 써 장구할 것이니
하늘이 그참을 얻음으로 길고 땅이 그 참을 얻음으로 오래고 사람이 그 참을 얻음으로 수 하느니
세상 사람이 바에 써 능히 장구치 못함은 그 상이 없는 자리를 상실하고 그 체가 없음을 해산해서
능히 백해구규로 하여금 참 체성으로 더불어 아울러 존속케 함이라.
그러므로 사 하느니라.
先天而生하되 生而無形하고 後天而存하되 存而無體라 然而無體나 未嘗存也 故不
可思議로다 靜爲之性이나 心在其中이요 動爲之心이나 性在其中矣니로다 心生性滅
하고 心滅性現하느니 性現則如空無相하여 湛然圓滿이라 大道는 無相故로 內其攝
於有하고 眞性은 無爲故로 外不生其心하느니 如如自然하여 廣無邊際로다 對境
忘境하니 不沈於六賊之魔하고 居塵出塵하니 不落於萬緣之化로다 致靜不하고 致和
不遷하면 慧明十方하여 虛變無爲하리라..
하늘 먼저 낳으되 생 함이 그 형상이 없고 하늘 후에까지 존속해 있으되 존속함이 그체성이 없음이니라.
그러나 체가 없어서 일찍이 존속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가히 사의할 수가 없도다.
정하면 성이라 하나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고 동하면 마음이라고 하나
성품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마음이 생기면 성품이 멸하고 마음이 멸하면 성품이 나타나느니
성품이 나타나면 공해서 상이 없어 담연히 원만 하도다. 대도는 상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안으로 모든 있음을 끼워 안고 있으며 참 성품은 함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밖으로 그 마음이 나타나지 아니하느니 여여히 자연 그대로 넓어서 끝과 끝이없도다.
경계를 대하되 경계를 잊게 되느니 육적의 마에 잠기지 아니하고 진세에 거하되 진세를 떠나니
일만 인연 관계로 변화됨이 떨어지지 아니 하도다. 정에 이르러서 동하지 아니하고 화한데 이르러서 옮기지 아니하면
지혜광명이 시방세계에 비치어서 허하게 변화하되 함이 없느니라.
修養으로 定力을 얻는 공부
總明綱要
不修養入定之工은 其法不一이라. .有外修養法하고 有內修養法하며 有外定靜法하고
有內定靜法하느니 學者能洞觀諸法하여 合用方便然後에 始可無缺而得大成하리라.
且有外道之定과 自性之定과 小乘之定과 大乘之定하여 於此에 亦明瓣而善察
然後에 始可無謬而得正定하리라. 是以로 修養之道는 理一而法多하고 言殊而
義同하리니 若不善解綱要면 則恐有執着偏修之病 故로 更擧全篇之總義하여
別爲簡辦如左하노라. 外修養者는 修養之意는 在於對治外境이니 對治外境者는
一 避境工夫니 初學之時에 當遠避外誘境界是也요. 二 捨事工夫니 不緊之事와
煩雜之段을 當捨而不作이 是也요. 三 依法工夫니 信受上乘解脫之法하여 求安心於
眞理가 是也요. 四 多聞工夫니 多聞偉人寬大實話하여 常存心於大局이 是也니라.
대범 닦아 길러서 정력을 얻는 공부는 그 법이 한가지가 아니니라. 외 수양 법이 있고
내 수양 법이 있으며 외정정법이 있고 내정정법이 있으니 배우는 사람은
능히 모든 법을 밝게 살피고 합해서 모든 방편을 사용한 뒤에 비로소 가히 결함 없이 대성함을 얻을 것이니라.
또한 외도의 정과 자성의 정과 소승의 정과 대승의 정이 있어서
이에 또한 밝게 판단하고 잘 살핀 연후에 비로소 가히 그르침 없이 바르게 행함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써 수양하는 도는 ,
이치는 하나로되 그 법은 많으며 말은 다르나 뜻은 같을 것이니 만일 잘 강령과
요긴함을 해결치 못하면 곧 편벽 되이 수련하는 병에 집착될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므로 다시 전 편의 총 의를 들어서 분별해 간단히 좌와 같이 분별되었으니 외 수양이라 함은
수양의 뜻이 주로 외경을 대해서 공부하는 데에 그 뜻이 있으니 의경을 대해서 다스리는 자는,
하나는 경계를 피하는 공부이니 처음으로 배울 때에 마땅히 멀리 모든 경계를 피하라 함이 될 것이요,
둘은 일을 놓는 공부이니 긴급하지 아니한 일과 번잡한 단계를 마땅히 놓아버림이니
다만 만들지 아니함일 것이요, 셋은 법에 의거해서 하는 공부이니
상승 해탈의 법문을 신봉해 가져서 안심 법을 진리에서 구함일 것이요, 넷은 많이 듣는 공부이니
많이 위인들의 관대한 실화를 들어서 항상 마음을 대국적인 면에 존속함일 것이니라.
做工之際에 行此四事하면 則自然外境平定하여 無有忤心之段하리니 古語에 云
樹欲靜而風不止라하니 風者는 外境也라. 風之則樹靜하고 境治則心安이니라. 內修
養者는 修養之意가 在於內修自心이니 內修自心者는 一 執心工夫니 念佛坐禪과
及一切時中에 常念執心不動하여 使吾心神으로 不得流放外境이니 如馴牛人執轡不
捨 是也요 二 觀心工夫니 執心稍可면 則又放任自適 而但觀心所之하여 制其妄念
而已니 如馴牛人의 捨轡觀牛하여 但制其錯行이 是也요 三 無心工夫니 觀心己熟 이면
則又捨觀相 明寂自在 觀而無所觀이니 如馴牛人이 始入人牛不二之境하여 動
靜一眞 是也니라.
공부를 할 즈음에 이 네 가지의 일을 행하면, 곧 자연히 외경이 평정해저서 내 마음을 거스릴 단계가 없을 것이니,
고어에 말하기를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한다
하니 바람이 일어난다 함은 외경을 말함이요 그러므로 바람이 그치면 나무가 고요함과
같이 경계를 다스리면 마음이 편안 하느니라.
내 수양자는 수양하는 뜻이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데에 있나니
안으로 자심을 수련하는 자는, 하나는 집심 공부이니(마음 대중을 잡는 공부)
염불 좌선과 및 일체 시중에 항상 생각하기를 마음 대중을 잡음이 동치 아니해서
나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여금 외경에 흘러 놓치지 아니함이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소 고삐를 놓지 아니함일 것이요,
둘은 관심공부이니 마음 대중을 잡아감이 자못 숙달되어 가면 곧 놓아서
스스로 적중하는데 맡겨 두고 다만 가는 곳만을 관해서 그 망념이 일어남을 제재할 뿐이니,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아버리고 소만 관해서 다만 그릇 되이 행함을 제재함일 것이요
셋은 무심 공부이니 마음 관함이 이미 숙달이 되면 또한 상을 관함 마저 놓아버리고
밝고 적적함이 자유자재해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음이니 비유컨데 소 길들이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가서 동과 정이 한결같이 참됨일 것이니라
經云 心淨則一切淨하느니 心者는 包虛空萬相者也라. 心一淨이면 則百千外境이
一切淸淨하여 境我無間하여 同成淨土니라. 外定靜者는 定靜之義가 在於立志不
動이니 立志不動者는 一 發大願心이니 願心이 己極하면 則千萬世緣이 雖
當面橫在라도 視若不見하여 小不掛心이니 如釋迦世尊이 發心大道하여 王宮
之樂과 雪山之苦를 無留心內底思想이 是也요 二 發大信心이니 信心己極이면
則千萬世法이 雖紛紜並處라도 更無思量取捨之心에 如慧可之於達磨也니 一信決
志에 忘軀求法底思想이 是也요 三 發大忿心이니 忿心己極이면 則千萬障礙가
包圍重疊이라도 無有恐怖退縮之心어니 如耶蘇之十二司徒가 冒險守道하여 死而
不己底思想 是也니라. 做工之際에 有此三思想則自然立志가 如山하여 無有動搖하
리라(特擧世尊慧可十二司徒는 但指一例而言 諸聖之能入道門者는 皆有若是底心思이니 且曰
非云實行之果有同一而但思想之同一也니라)
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조촐하면 일체가 다 조촐하다 하니 마음이라 함은 허공만상을 다 싸고 있음이라.
마음이 하나로 조촐하면 백천외경의 일체가 다 청정해서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어 한가지로 정토세계를 이루었음이라.
외정정 이라 함은 정정한 뜻이 입지 부동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입지부동하는 것은,
하나는 대원에 마음을 발함이니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곧 천만세상의 얼킨 바 인연이 모름지기 마땅히 면전에 비껴 있을지라도
보아도 보이지 아니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지 아니할 것이니
석가세존이 대도에 발심해서 왕궁의 즐거움과 설산의 모든 고통을 마음 가운데 머물러 두지 아니하는 사상일 것이요,
둘은 대 신심을 발함이니 신심이 이미 지극하면 천만세상의 법이 비록 분운한 곳에 아울러 있을지 라도
다시는 사량으로 취사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혜가 달마에게
나아감과 같음이니 한번 믿음으로 뜻을 결정함에 몸을 잊고 법을 구하는 사상일 것이요,
셋은 대분심을 발함이니 이미 분심이 지극하면 천만 장애가 중첩으로 포위했을지라도
공포의 마음과 퇴축하는 마음이 없음이니 야소의 십이사도와 같이 모험 가운데 도를 지켜서 죽어도 굽히지 아니함일 것이니라.
공부할 때에 이 세가지 사상이 있으면
자연히 뜻 세움이 산과 같아서 모든 경계에 동요됨이 없을 것임이라
(특히 세존과 혜가와 십이사도를 들어 보인 것은 다만 한 예를 말한 것이요,
모든 성인들의 도문에 들어감은 다 이와 같은 심사이오니,
또한 말하기를 실행 결과가 동일함이 있음이 아니라 다만 사상의 동일함을 말함이니라.
태을주
태을주란 증산 강일순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강증산을 옥황상제로 믿는 종교 계열에서 수행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주문이다.
증산도 수행문화 태을주 주문수행
태을주(太乙呪)
출처: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007
증산교의 여러 교파에서 사용하는 주문.증산교주문.
증산교의 종교의식이나 수련생활에는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원문(祈願文)으로서 많은 주문을 사용하고 있다.
이 주문들은 문장의 구성이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고 밀교적인 신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자기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기도문과 남녀노소가 모두 읊고 노래하는 찬송가,
그리고 신명(神明)에게 고축(告祝)하고 불사르는 축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주문’은 읽거나 글로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닐 때에는 사귀(邪鬼)를 쫓는 부적이 되는 것으로 믿는다.
원래 「태을주」는 조선 선조 때
충청도 비인(庇仁)에 살았던 도인(道人) 김경흔(金京訢)이 50년간의 도통공부를 마치고 지은 것이라 한다.
그는 모든 주문들을 사용하여 보았지만 효험을 얻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불교에서 쓰이는 「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질병과 잡귀를 몰아내는 주문)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吽哩哆耶都來 吽哩喊哩 娑婆訶)”를 읽어 비로소 개안(開眼)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신명의 계시가 있어 이 주문의 머리에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을 붙여 읽게 되었으나,
이 주문으로도 완전한 도통을 하지 못하고 다만 『태을경(太乙經)』이라는 책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죽었다.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姜一淳)은 1897년부터 3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구도생활을 하던 가운데 이 주문을 얻었다.
그 뒤 강일순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주문을 많이 읽도록 권유하면서,
“시천주(侍天呪)는 이미 행세(行世)되었으니 태을주를 읽으라.”,
“이 주문을 문 위에 붙이면 신병(神兵)이 지나가다가 도가(道家)라 하여 침범하지 아니하고 물러가리라.”,
“태을주는 역률(逆律)을 범하였을지라도 옥문이 스스로 열리리라.”,
“이 주문은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5만년 동안 동리동리(洞里洞里)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고 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태을주가 주요 주문임을 강조하였다.
증산교에서 사용하는 태을주의 원문은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이다.
따라서, 이 주문은 불교의 구축병마주와 김경흔의 ‘태을천상원군’에다 강일순의 ‘훔치훔치’가 덧붙은 셈이 된다.
‘훔’과 ‘치’는 원래 인도에서 주문에 쓰여지는, 비밀을 가지는 어음(語音)이다.
구축병마주의 머리자와 다라니진언(眞言)의 끝자에 ‘훔’자가 있고, 병마주 속에 ‘치’자가 들어 있다.
‘훔치’는 불교의 범어(梵語)로 된 다라니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그 뜻도 범어의 다라니의 뜻을 좇아야 분명해진다.
‘훔’자는 범어의 ‘Hu-m’을 중국에서 한역(漢譯)할 때 취한 것으로서,
이 글자 속에는 제천(諸天)의 총종자(總種子), 일체의 교의(敎義), 인왕(仁王), 신과의 합치,
여럿의 큰 부르짖음〔犬爭衆吼〕 등의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된다.
증산교의 한 교파인 태인미륵불교(泰仁彌勒佛敎)에서는 ‘훔’자를 겹붙여 ‘훔훔’을 대중수련의 주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불경의 다라니에서는 ‘훔’과 ‘치’라는 어음은 무한한 공덕의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태을주」가 나오기 전에도 우리 나라의 민간에서는 질병, 특히 학질을 몰아내는 데 훔치훔치라는 주문을 사용하였다.
증산교에서는 ‘훔치’는 송아지가 모태(母胎) 밖으로 나오면서 우는 소리,
즉 아기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와 같은 신생의 뜻이 있으며, 또한 음양학적으로 보아 송아지는 음성이므로 후천(後天)을 뜻한다.
따라서, ‘훔치’로 시작되는 「태을주」를 읽는 것은
후천개벽의 초기에 태어나 도인들이 새 생명을 받으려는 소리와 같으며,
음음(陰音)으로 된 태을주는 후천종교의 주된 주문이 된다고 한다.
‘태을천상원군’은 하늘의 으뜸가는 임금으로서,
『사기(史記)』 천관서주(天官書註)에서는 “태을은 천제의 별호이다.”라고 하였으며,
우리 겨레의 선민(先民)인 동이(東夷) 겨레가 받들어 온 ‘하누님’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태을천상원군’은 도가의 신앙대상이기도 하다.
태을주의 끝부분에 있는 ‘사바하’는 다라니의 ‘sva-ha-’를 한역한 것으로서,
주문의 끝에 붙여 신에게 소원성취를 구하는 구의(究意)·원만·성취·산거(散去)의 뜻이 포함된다고 한다.
「태을주」는 역(易)·불(佛)·선(仙)의 세 사상이 조화롭게 합하여져 있으며,
말세의 병마를 내쫓아 후천세계를 개벽한다는 사상이 포함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즉, 각종 질병을 내쫓고 선계(仙界)의 개벽을 ‘태을천상원군’에게 기원하는 주축(呪祝)이며, 아울러 부서(符書)의 뜻을 가진다.
증산도 신앙인은 태을주를 기본으로 하여 오주, 절후주, 운장주, 갱생주, 칠성경, 진법주, 개벽주 등의 주문 수행을 합니다.
증산도 주문(태을주/오주/운장주/절후주/칠성경/갱생주/개벽주/진법주)
출처: http://blog.naver.com/misobin/20036408639
1. 태을주(太乙呪 )
吘哆 吘哆 太乙天 上元君 吘哩哆㖿 都來 吘哩喊哩娑婆訶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훔치훔치’는 우주의 근원을 찾는 소리이며 신도의 조화세계와 내 몸을 직접 연계해주는 신성의 소리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듯이 창생이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道典 7:74:1~2)라고 하시며....
'태을천 상원군'님은 모든 인간과 신명의 생명의 뿌리 하늘인 태을천의 주인, 주신主神이 바로 태을천 상원군님이시다.
그러므로 태을천 상원군님은 내 조상이며, 전 인류의 조상이다.
인간 세상이 열린 이후로 인간 생명의 원元 원조가 태을천 상원군님이시다.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파하’는 병마(病魔)를 물리치는 주문(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로
‘치’는 ‘소 울음 치, 입 크게 벌릴 치’ 자로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신과 하나됨’을 뜻한다.
‘함’은 ‘꼭 그렇게 되게 해 달라’는 뜻을 가진 글자고,
‘사파하’는 산스크리트어로 ‘나의 모든 서원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다.
`사파하`에는 또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는 의미도 있다.
‘사파하’는, ‘이 주문을 읽는 모든 사람이 태을주를 통해 소원을 성취한다.
생명을 회복하고 모든 병이 낫고, 깨달음을 얻어서, 이 대우주가 개벽해서 새로 태어나는 그 때,
우주와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새로 태어난다.’ 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2. 오주(五呪)
新天地家家長世 日月日月 萬事知
신천지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원위대강
明德 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명덕 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
三界解魔大帝神位 願진天尊關 聖帝君
삼계해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 성제군
신천지 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천지의 때가 바뀐 이 때에 지구촌의 모든 가정마다 저 해와 달처럼,
일월의 광명처럼 이 세상일에 환히 통하기를, 그런 문명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천주님을 모시고 새로운 조화(변화)의 길을 정하니 그 은혜를 잊지 못하겠나이다.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원위대강: 복록도 성경신이요 수명도 성경신이오니
제가 앞으로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여 더 많은 공을 쌓아서 이 복록과 수명을 누리고자 하옵니다.
명덕관음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 제 본성의 명덕을 밝히고, 관음의 경계에 들어서고,
팔음팔양의 천지조화를 받아서 영생할 수 있는 상제님의 열매 도를 닦으니
천지의 그런 지극한 성령의 기운을 크게 내려주시옵기를 엎드려 기원하나이다.
※ 명덕(인간 본래의 명덕), 관음(인간의 모든 소리를 듣는 관세음보살), 팔음팔양(천지의 조화)
삼계해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 성제군: 삼계의 마를 해원시켜 주시는 상제님이시여.
원하옵건대 제가 성제군의 큰 천존의 반열(관)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꿈과 소망이 다 깃들어 있는 주문으로 구원의 문제도 영생의 길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하늘과 땅의 이상적인 그리고 우리들 삶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그 길을 밝히는 기운을 모두 뽑아서 여기에 담아두었다. 그래서 천지의 진액주라 한다.
오주(五呪)를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천지의 진액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수운가사는 내 일을 노래한 내 비결이요 오주(五呪)는 너희들의 비결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3편 148장)
3. 운장주(雲長呪)
天下英雄關雲長 依幕處 謹請 天地八位諸將
천하영웅관운장 의막처 근청 천지팔위제장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屛營邪鬼
육정육갑 육병육을 소솔제장 일별병영사귀
엄엄급급 如律令 娑婆訶
엄엄급급 여율령 사파하
천하영웅관운장 : 하늘아래 일등영웅인 관운장이시여.
의막처 근청 천지팔위제장 : 장군이 있는 막사에서 삼가 청합니다.
육정육갑 육병육을 : 신장들의 이름
소솔제장 : 모든 거룩한 천지의 신장들을 거느리는
일별병영사귀 : 삿된 귀신을 전부 다 몰아내주십시오.
엄엄급급 여율령 사파하 : 빨리빨리 영을 받듯이 삿된 귀신들이 침범하지 않도록 하여주시옵소서!
4. 절후주(節侯呪)
(이십사절)
冬至 小寒 大寒 立春 雨水 驚蟄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春分 淸明 穀雨 立夏 小滿 芒種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夏至 小暑 大暑 立秋 處暑 白露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秋分 寒露 霜降 立冬 小雪 大雪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24절후주를 읽음으로써 천지의 변화과정, 그 시간의 변화의 질서에 대해서 빨리 눈을 뜰 수 있다.
천지의 1년 생장염장하는, 인간 농사짓는 천지의 1년의 오행기운을 조화시킨다.
하늘과 땅의 4대 시간대의 기운을 종합하고 내 생명과 조화시켜서 고르게 화하게 한다.
시간정신의 인식과 시간의 창조성신에 대한 강도나, 신명이 깨지는 강도가 빨라진다.
우주 시간의 정신, 그 틀을 보는 도안을 열어 주는 그런 생명의식이 바로 이 절후주에 담겨 있는 것이다 .
5. 칠성경(七星經)
七星如來 大帝君 北斗九辰 中天大神
칠성여래 대제군 북두구진 중천대신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制乾坤
상조금궐 하부곤륜 조리강기 통제건곤
大魁貪狼 文曲巨門 祿存廉貞 武曲破軍
대괴탐랑 문곡거문 녹존염정 무곡파군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際 細入微塵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제 세입미진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하재불멸 하복부진 원황정기 내합아신
天勍所指 晝夜相輪
천강소지 주야상륜
俗居小人 ○○生 ○○○ 好道求靈
속거소인 ○○생 ○○○ 호도구령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六淳曲生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육순곡생
生我 養我 護我 形我 許身形
생아 양아 호아 형아 허신형
魁 작관행 화보표 尊帝喼喼 如律令
괴 작관행 화보표 존제급급 여율령
칠성여래대제군: 대장이다.
북두구진중천대신 : 북두칠성은 본래 아홉 개인데 두 개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인체에서 구멍이 일곱 개인데 두 개가 안 보이는 것과 같다.
이곳에 계신 분이 중천대신이다.
상조금궐 하부곤륜 : 위로는 상제님께서 계시는 금궐인 옥경 세계까지 비추고,
아래로는 곤륜(지상)의 모든 것을 덮는다(덮을 부).
조리강기 통제건곤 : 이치가 우주의 기틀이 되는 씨줄과 날줄 같이 묶어서 건곤의 정신을 가지고 통제한다.
대괴탐랑 : 큰 무리되는 탐랑성(북두칠성 중 우두머리 별)이다.
일곱 개의 별자리를 지키는 모든 신명 앞에 '대괴' 자를 붙인다.
문곡 거문 녹존 염정 무곡 파군 : 칠성 중 나머지 여섯 개의 이름이다.
고상옥황 자미제군 : 위로는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자미성이라 한다.
대주천제 세입미진 : 크게는 하늘에 있는 큰 것으로부터 돌아서 작은 티끌까지 이런 기운이 골고루 미친다.
하재불멸 하복부진 : 어떠한 재앙인들 멸하지 않겠으며, 어떠한 복인들 다다르지 않겠는가?
원황정기 내합아신 : 원컨대 큰 우주의 정기가 내 몸에 합해지기를 원하옵나이다.
속거소인 ○○생 ○○○ : 속세에 살고 있는 소인 무슨 생 누구는
호도구령 : 도를 좋아해서 우주의 신령한 생명의 기운을 갖고자 합니다.
원견존의 영보장생 : 원하옵건대 존엄한 의로운 모습을 제가 배우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삼태허정 육순곡생 : 삼태성에서 허정의 허자 기운이 나오며, 인간의 근본이 되는 정을 받을 수 있는 기운이 나온다.
생아 양아 호아 형아 : 나를 낳게 하여주고, 길러 주고,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태어날 때 기형아 등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허신형 : 죽을 때까지 태어난 몸 그대로 유지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괴작관행화보표 : 북두칠성의 이명(異名)으로 괴성, 작성, 관성, 행성, 화성, 보성, 표성이다.
6. 갱생주(更生呪)
天更生 地更生 人更生 更生 更生 更生
천갱생 지갱생 인갱생 갱생 갱생 갱생
天人天地天天 地人地地地天 人人人地人天
천인천지천천 지인지지지천 인인인지인천
남조선에 상제님이 오심으로써 인인인지인천 즉,
이제 사람이 하늘도 땅도 인간도 뜯어고치고 진정으로 인간이 궁극적인 생명 기름의 목적을 실현하게 되었다.
갱생주는 가을개벽의 부활정신을 노래한 것이다.
즉 다시 태어남의 축복, 은혜, 감사함과 개벽정신을
우주의 창조원리에 그 시간의 정신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이 갱생주이다.
우주의 근본정신은 갱생이다.
항상 자기 스스로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갱생주는 글자 그대로 다시 살았다, 다시 산다는 뜻이다.
갱이라는 것은 다시 갱 자이다.
이것은 개벽기에 부활의 정신을 담고 있는 주문이며, 천지의 생성원리를 아주 간단히 정리를 해 놓았다.
선천개벽 이래로 이 하늘과 땅의 생명 창조원리,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그 창조원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래서 천갱생 지갱생 인갱생, 하늘도 다시 살리시고 땅도 다시 살리시고 인간도 다시 살리신다.
하늘도 다시 태어나고 땅도 다시 태어나고 사람도 다시 태어난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다시 살고 또 살고 또 다시 태어나는 도다. 부활의 도다.
그 부활의 정신이, 갱생하는 근원의 정신이, 우주의 창조정신의 그 과정이 천인천지천천,
봄은 천리지상으로써 하늘이 하늘 노릇 땅 노릇 인간 노릇을 한다.
여름에는 지인지지지천, 선천의 여름은 땅이 만물을 내서 기르기 때문에
땅이 하늘 노릇 땅 노릇 인간 노릇 이런 인간의 기운을 열어주는 인간 생명의 그 기틀이 된다.
가을은 인인인지인천이다. 상제제님도 인간으로 오셔서,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이제 하늘 노릇하는,
하늘의 길도 개벽을 하고 땅도 개벽을 하고 인간의 세계도 개벽을 하는 인존시대다.
가을개벽의 부활정신을 노래한 것이 바로 갱생주이다.
다시 태어남의 축복, 은혜, 감사함,
그 개벽정신을 이 우주 창조원리의 시간의 정신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 갱생주이다.
7. 개벽주(開闢呪)
天上玉京天尊神將 天上玉京太乙神將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上下變局雷聲霹靂將軍 白馬元帥大將軍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雷聲霹惡將軍 惡鬼雜鬼禁亂將軍
뇌성벼락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三首三界都元帥 地神霹靂大將軍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天地造化風雲神將 太極斗破八門神將
천지조화풍운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六丁六甲遁甲神將 三台七星諸大神將
육정육갑둔갑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二十八宿諸位神將
이십팔수제위신장
感我微誠 助我大力 力拔山 吾奉 九天上世君
감아미성 조아대력 역발산 오봉 구천상세군
勅速勅速 唵唵喼喼 如律令
칙속칙속 엄엄급급 여율령
개벽주에 나와있는 천존신장, 벼락장군, 벽력장군, 풍운신장 등은 어떤 한 신장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별 2개 달고 4개 단 장군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명예제대 한 사람도 있고 퇴역한 사람도 있고 해서 별 4개 짜리 출신이 얼마나 많은가?
지구상에 있는 별 4개 짜리 장군은 오죽이나 많겠는가?
이 개벽주를 읽게 되면, 천지신명들이 동해서 풍운조화가 일어나는 그런 경우도 있다.
정심을 가지고 잘 읽으면 이 주문이 어떤 주문보다도 큰 기운을 갈머가지고 있는 주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법주, 개벽주를 읽을때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인간이 태어나는 데는 우주의 모든 기운을 다 받아서 태어난다.
우주의 여러 신장들로부터, 사시토왕 사해용왕으로부터 또는 지구의 오악산왕으로부터
모든 기운을 다 받아서 조화시켜서 태어난다.
생명이 태어날 때는 바다도 필요하고 공기도 필요하고 비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다.
이러한 시간의 모든 과정, 인류역사는 수억 년 수십 억 수 백억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은 이 우주의 만유 생명, 또는 우주의 모든 생명의 주가 되며 또한 주인이다.
신도세계로부터도 은혜를 받고 있다.
가까이는 조상신, 보호신, 민족신 또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순교자들로부터 은혜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신도를 잘 받들고 그 신도를 좀더 통일적으로 보편성 있게 또는 그 신도의 무궁한 다양성,
인격신과 비인격신의 경계 이런 것까지를 통일적으로 볼 수 있는 고도의 도의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늘에서 태양이 기운을 열어주려 해도 제 스스로가 안 받으려고 하면 받지 못한다.
지상에 영사가 있고 부영사가 있고 보좌하는 서기관 등 이렇게 있듯이 신도세계, 신장세계도 위계질서가 있다.
실제 대권을 쥐고 있는 신장이 있고, 그 주변에서 협조관계에 있는 그런 신장이 있는 것처럼
진법주, 개벽주는 신도세계를 우선 현실감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문이다.
8. 진법주(眞法呪)
九天下鑑之位 甑山上帝下鑑之位 衆宗祖下鑑之位
구천하감지위 증산상제하감지위 중종조하감지위
冥府十王應感之位 五岳山王應感之位
명부시왕응감지위 오악산왕응감지위
四海龍王應感之位 四時土王應感之位
사해용왕응감지위 사시토왕응감지위
直先祖下鑑之位 外先祖應感之位
직선조하감지위 외선조응감지위
妻先祖應感之位 妻外先祖應感之位
처선조응감지위 처외선조응감지위
七星使者來待之位
칠성사자래대지위
左側使者來待之位 右側使者來待之位
좌측사자래대지위 우측사자래대지위
冥府使者來待之位
명부사자래대지위
天藏吉方하사 以賜眞人하시니
천장길방 이사진인
勿秘昭示하시고 所願成就케 하옵소서.
물비소시 소원성취
진법주는 천지간의 인간의 위치를 밝히는 내용의 주문이다. 여기에는 조상과 신계의 위계질서가 있다.
이것은 상제님의 진법사상과도 관계가 있다.
상제님께서 20대 때 진법주를 읽으시면서 시루산에서 미리 풀고 공부를 하셨다.
진법주를 읽으시면서 그 산길을 오르내리시고 또 시루산 위에 올라가시면서 진법주를 큰 소리내서 주문을 읽으셨다.
상제님께서 진법은 천하의 대법이다라고 하셨다.
구천하감지위에서 구천이라는 것은 일천부터 구천까지를 전부 통합해서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구천만 말씀하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의 구천은 이미 일천에서 팔천이 포함된 구천을 말하는 것이다.
하감지위 응감지위 래대지위는 다르다.
하감지위는 높은 신, 지존, 또는 자신의 뿌리되시는 분들이 하감지위가 된다.
그렇지 않고 좀 낮은 신은 응감 지위가 된다.
응감이라는 것은 글자그대로 마음에 응하여 느낀다는 것이고, 하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하나님인 상제님 이나 천존, 또는 직계조상이나 하늘에서도 받들어주는 높은 성령들이 하감지 위가 된다.
래대지위라는 것은 와서 대기하고 있는 신이라는 뜻이다.
사자라는 것은 원래 심부름 해 주는 사람이다.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래대지위라는 것은 바로 내 곁에 와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돌봐주고 무슨 일을 해주기 위해서 와 있는 신이다.
중종조하감지위에서 중종조라는 것은 무리 중衆자 마루 종宗자 할아버지조 祖자 인데 종조라는 것은
최고 높은 할아버지, 가장 뿌리되는 할아버지이다.
여기서는 각 선영신의 뿌리, 시조신을 종조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각 종교의 종장, 예를 들면 공자도 종조가 되고 석가모니도 종조가 되고 예수도 기독교의 종조가 되기 때문에
각 종교의 종장도 바로 중종조에 든다.
셋째는 각 민족의 시조신, 유대민족의 야훼도 중종조에 들어가고 단군 삼신 성조도 중종조에 들어가고
각 민족 부족의 그런 신들이 다 중종조에 들어간다.
다음은 명부시왕인데 선과 악은 공존하고 있다.
명부라는 곳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계이다.
이 명부시왕은 무속, 불교, 도교에서 한결같이 시왕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각각 맡은 역할이 다르다.
증산도 각주문
http://www.jsd.or.kr/?mod=audioplayer&playlist=jsdmantra_pls.dat
- 주문이란 무엇인가요?
출처: http://www.jsd.or.kr/c/med/taeulju/304/359/360
주문의 의미
주문(呪文)의 주(呪)는 `빨 주` 자이다.
주(呪)자를 명명하면 口(입구)에 兄(클 황, 부를 황)이 되는데,
여기에는 입으로 우주의 성령을 부르고 우주의 진기를 빨아들인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영어로는 인보우케이션(invocation)이라 한다.
영적 보호를 받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는 뜻.
한마디로 주문은 신으로부터 생명과 성신을 받는 글, 또는 하늘의 상제님께 간곡히 기도하는 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문을 영어로는 만트라(mantra)라고 하는데, 만(man)은 영어로 `인간, 남자`라는 뜻이며
`정신`을 뜻하는 마인드(mind)나 `정신의`라는 뜻의 멘탈(mental), 모두 같은 어원 `만(man)`에서 나왔다.
트라(tra)는 `돌보아 주다` 또는 `도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즉, 만트라(mantra)는 `마음의 도구(The instrument of mind)` 다.
분별의식을 갖고 오만 가지 세속적인 생각을 하는 `중생의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어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고 돌봐주는 도구`가 바로 만트라(mantra), 주문인 것이다.
주문의 이해
주문을 읽는다는 것은 우주의 절대자께 소원을 간구하며 그 힘을 받아 들이고자 하는 반복적인 기도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주문이란 어느 특정한 종교에서만 읽는 의식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주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읽는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은 전형적인 주문입니다.
반야심경은 불교의 핵심 교리를 모아 놓은 경전인데 불교 신도들은 이것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또는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유명한 마지막 구절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가는 이여, 가는 이여,
피안으로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아지이다' 또는 '닿았노라, 닿았노라, 피안에 닿았노라, 피안에 와 닿았노라,
깨달음에 이르러 기쁘도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평범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문장을 몇 천년동안 읽어 왔으며 힘이 발휘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나 '옴마니반메훔' 등등의 수많은 진언과 만트라도
계속 읽음으로써 절대적인 힘을 받아들여 높은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점에 있어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도 역시 주문입니다.
기도문은 기도일 따름이지 무슨 주문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주기도문은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알아두셔야 할 것은 주문이란 기도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며
정형화된 기도문은 모두 주문의 일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느님을 찾고, 찬양하고, 진리의 실현을 바라고, 일상의 행복을 빌고,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 뿐 아니라 사도신경이나 천주교에서 읽는 성모송, 대영광송 등등의 기도문들도
모두 소원을 간구하고 절대적인 힘의 도움을 받기 바라는 주문인 것입니다.
내용이 있는 기도문도, 그 뜻을 잘 알기 어려운 문장도 모두 주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주문이든 믿고 읽기만 하면 기운을 발휘합니다.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맞추면 항상 그 채널에 해당하는 방송이 나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다름아니라 텔레비전의 몸체 안에는 특정한 파장을 잡아내는 동조(同調)회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안테나에 잡힌 여러 가지 전파 가운데서 보고자 하는 파장만 가려내는 것입니다.
긴 복도를 걸어가면 유난히 발소리가 크게 들리지요?
이는 바닥을 밟는 몸무게 때문이 아니라 발자국 소리와 동일한 파장에서 떨리는 물체들이 함께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과학에서는 공명현상(共鳴現象)이라 하지요.
기타(Guitar)의 몸통은 공명통인데 이 통이 없으면 기타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기타를 옆에 놓고 목소리를 내보면 어느 특정한 음 높이에서 그 몸통이 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보다 낮은 목소리나 높은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그 울림통의 진동수에 맞는 목소리에는 신기하게 '웅'하고 따라서 울리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 들리거나 들리지 않는 모든 것은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입으로 소리를 내면 음파가 발생하고, 두뇌에서는 그 활동상태에 따라 몇 가지 뇌파가 발생하는데
이 우주 어느 곳엔 가는 거기에 상응하는 파장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실제 세계 전체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생명체는 실로 엄청난 생명력으로 꽉 차 있고,
그 생명력은 동일한 성질의 힘끼리 동조되어 더 큰 힘으로 증폭되는 것입니다.
매우 초보적인 원리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주문을 읽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수도란 안테나, 동조 회로, 증폭 회로의 기능을 가동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주문을 읽어 형성된 파장은 우주 깊숙한 곳에 있는 기운을 끌어 들여 대우주의 생명력을 체험케하는 것입니다.
모든 주문은 그 주문만의 독특한 결이 있어서 각각 받아들이는 기운이 다르고 결국 권능도 효력도 다르게 됩니다.
누가 만든 주문인가에 따라서도 거기에 깃들어 있는 기운이 다릅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넓게 말하면 주문입니다.
그러니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며 더욱이 자신이나 남을 해치는 언사는 절대 써서는 안되겠습니다.
한 예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죽겠다'는 말을 합니다.
'더워 죽겠다' '추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밥 한 끼 잘먹고서는 '배불러 죽겠다'고 합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일 안되게 하는 기운을 쌓는 것입니다.
좋으면 좋은 거지 '좋아죽겠다'는 것은 또 뭔가요? 우리 일상의 언어 습관을 잘 반성해야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작은 우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우주 전체와 맞먹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다만 인간의 마음이 욕심에 찌들고 어리석음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의 참 가치와 능력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수도란 인격을 그 밑바닥까지 제대로 여물게 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도록 하는 훈련이며 주문 수도는 가장 탁월한 수도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