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두기고
골로새서 4:7~8
1. 바울의 동역자-두기고
골로새서의 마지막에는 바울의 동역자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인물이 두기고입니다. 골로새서 4장 7~8절에는 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추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출신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인물입니다. (행20:4)
두기고는 바울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선교 사역에 두기고는 중요한 역할로 쓰임 받았던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골 4:7~8) 했습니다.
두기고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의 형편을 전해줄만한 믿음직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두기고는 꼭 필요한 동역자였습니다.
저에게도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이지만 교회가 저 혼자만 있으면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저를 돕는 교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관부서를 세워가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기관장, 부서장 직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부족하니까 ‘하나님께서 좋은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다’고 믿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모인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늘 감사합니다. 이렇듯 주 안에서 하나 되어 동역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저의 동역자입니다. 교회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기 위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일하는 협력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 안에서 만나게 하신 것은 지금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 모두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 우리를 만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 교사, 찬양대원, 속회강사 안내위원, 중보기도팀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맡은 일들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저와 함께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사정을 잘 알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사정을 다 아십니까?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사실 멀리 보이는 잔디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멀찍이에서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너무 많이 알면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제 사정을 다 알 수 없다 해도 모든 것을 이해해주시리라고 믿고 감사합니다.
혹, 여러분 중에 저를 잘 알아서 제 허물과 약점, 부족함을 알고 계시다면 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기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도로 밀어주시지 않으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예배 섬김이’를 조직했습니다. 여러분이 주일낮 예배는 대부분 나오시는데 주일저녁예배, 수요일예배, 금요심야기도회 등 저녁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예배 섬김이’를 만들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제일 중요하고 잘 해야 하는 일은‘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을 잘하려 하기보다 예배를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사는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목사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이 평안해야 가장(家長)이 마음 놓고 밖에 나가 일하는 것처럼, 교회가 평안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제가 맡은 일들을 마음 놓고 힘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동역이 필요합니다. ‘함께 같은 일을 한다’는 뜻이 동역(同役)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제자들을 세우셔서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두기고를 비롯한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하였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몸의 각 부분은 하는 일이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몸에 연결되어 일을 합니다. 다르게 일하지만 틀린 것이 아닙니다. 눈이 귀한테 ‘너는 볼 줄도 모르냐?’한다면 말이 됩니까. 귀가 입보고 ‘너는 듣지도 못하냐?’라고 하면 안됩니다.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입은 말하고, 코는 숨쉬고 각기 하는 일은 다르지만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몸인 교회의 지체입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 /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통일되어/하나되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라고 세워 주신 것입니다.
2. 사랑받는 형제
바울은 두기고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사랑받는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dear brother’(NIV) 라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에서 ‘친애’는 ‘친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번역본에 보면 ‘My good friend’(The Message) ‘내 좋은 친구’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구를 소개할 때 ‘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좋은 친구에요’라는 말은 최고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뿐 아니라 에베소교회에도
두기고를 같은 말로 소개하였습니다. (엡6:21) 그것은 평소에 바울과 두기고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려줍니다.
특별히 바울은 누구를 향해 ‘형제’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기고를 ‘형제’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그만큼 두기고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도 안 만나도 그만인 사람, 만나기 싫은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개인적으로, 행사 때문에, 노회의 일, 연합행사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만남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인 제가 다 사랑해야겠지만 / 다 좋아해야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품고 있는 사람 / 나쁜 뜻으로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 사람, 눈물 나고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고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 내 입에서 한숨 나게 한 사람, 내 눈에서 눈물 나게 한 사람, 다시 볼까봐 걱정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두기고는 만나고 싶은 사람, 가슴에 사랑으로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의 목회를 돌아볼 때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없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살아계시는 데도 애잔한 마음이 들고 만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박수쳐 주지 않는다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목사가 사람 우습게 안다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혹시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해같이 빛나리’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라는 마음이면 안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기억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 박수쳐 주느냐, 표창장 주느냐, 공로패 주느냐가 뭐그리 중요합니까!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3. 신실한 일꾼
두기고는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영어성경에 ‘faithful minister’(NIV)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믿음직한 사역자’란 뜻입니다. ‘신실(信實)’은 ‘믿을 신, 열매/가득할 실’ 로 ‘믿음이 가득하다’/ ‘믿음이 꽉 찼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두기고가 믿을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충성된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두기고의 사역이 크게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보면 두기고는 바울의 심부름을 잘 했던 정도입니다. 하지만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심부름은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심부름을 가는 ‘사신/특사’는 아무나 보내지 않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 똑똑한 사람, 실수 없는 사람, 최고의 인물을 택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원하십니까? 제가 부노회장이 되어 일하다보니 이런 저런 교회에서 교역자를 소개해달라는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청하면서 키가 커야 하고, 영어를 잘해야 한답니다. 키가 작으면 목사 못합니까? 영어 잘하면 좋겠지만 영어 못한다고 목회를 못합니까? 그리고 음악을 잘하면 좋겠다고 하는데 음악은 전공자들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만 틀리지 않고 부를 줄 알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목회자에 대해 이런 저런 조건을 거는데, 목회자는 무엇보다 진실한/신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보통 사람들도 흉내 내서 할 수 있습니다. 신실한가가 문제입니다.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느냐 얼마나 진실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시편 51편 6절에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 (시 51:6) 했습니다.
중심이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일꾼은 정직합니다.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눈가림으로 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4.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
마지막으로 두기고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였습니다. 바울과 두기고는 하는 일이 달랐지만 주 안에서 함께 종의 역할을 감당했던 하늘 사람이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바울과 두기고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종으로 살기를 기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 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두기고가 그랬듯이 바울이 그랬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래서 바울이 ‘이는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친한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사람입니다.’라고 두기고를 추천한 것처럼 저나 여러분도 그런 추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학교 진학을 위해서, 유학생을 위해, 취업을 위해 추천서를 많이 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와 친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바른 신앙을 가진 하늘 사람입니다’ 등 여러 가지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러분을 소개한다면 여러분을 소개하는 글을 뭐라고 쓸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랑 받는 사람, 사랑 받을 만한 사람, 신실한 사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늘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두기고는 바울에 의해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하늘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오늘 두기고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가지 말고 두기고 같은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모두가 … 식구들에게나, 윗사람에게나, 교회에서, 일터에서, 이웃에게 “사랑 받고 / 신실하며 /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추천되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