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사업이 새로운 암초를 만났다. 사업지구 내 서부이촌동에 위치한 시범ㆍ중산아파트 등 2개 단지 토지가 서울시 소유가 아닌 주민 소유라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 발견됐다고 27일 매일경제신문이 보도했다.
만약 이 문건이 인정받으면 사업시행자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 추진을 위해 시범ㆍ중산아파트 주민들 동의까지 추가로 받아야 하고 큰 폭의 보상비 상승이 불가피하다.
시범ㆍ중산아파트 대책협의회는 1970년대 초 서울시 산하 아파트건설사업소가 작성한 `70 아파트 건설사업 수정계획`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문건에는 당시 서울시가 짓는 시범ㆍ시민ㆍ공무원아파트 총 249개동, 7461가구에 대한 분양대금 등 건설계획이 담겨 있다.
협의회는 이 중 대지대 항목에 주목하고 있다. 대지대란 아파트 건립 시 들어간 토지비용, 즉 토지대금을 말한다.
문건에는 시범아파트 입주자 부담 항목에 가구당 86만4000원, 총 44억5590만원이 대지대로 명기돼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각 입주자들이 아파트 건립 시 토지비용까지 부담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민들이 건립비용을 전액 부담했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회계 항목까지 포함됐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이충용 시범ㆍ중산아파트 대책협의회 공동위원장은 "시범ㆍ중산아파트 입주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ㆍ중산아파트는 원효대교 북단 강변과 접한 단지로 1970년 초 입주를 시작했다. 6개동 총 494가구다.
시범아파트는 서울시 주도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무허가 건축물 밀집지를 헐고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 곳들이다. 서부이촌동을 비롯해 마포ㆍ연희ㆍ이촌ㆍ여의도 등 총 12곳에 99개동, 4034가구가 지어졌다.
가구당 8억원 보상 불가피…보상비 수천억 늘어나
주민들의 토지권 소유 주장이 인정받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시범ㆍ중산아파트 등기상 토지 소유권이 서울시에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법적 소유자는 서울시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등기 문제는 채권적 청구권으로 분류해 소멸시효 10년이 지나면 권리 주장이 어렵다"며 "단, 이 경우 주민들이 최대 40년 토지를 점유해왔고 토지대금 납부 문건도 발견됐기 때문에 법적 판단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문서가 서울시 공식 문건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서울시 기록정보팀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현재 시가 보유한 공식 문서가 아니다"며 "다만 확정이 안 된 계획서이거나 첨부문건, 혹은 각 주관부서가 기록정보팀으로 넘기지 않고 자체 보관하다 폐기ㆍ소실된 경우 기록이 누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문건이 인정되면 입주민들의 보상금액이 큰 폭으로 뛸 전망이다. 반대로 말하면 용산역세권개발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시범ㆍ중산아파트는 등기상 토지 소유권이 서울시에 있기 때문에 용산 개발을 위한 원주민 수용 동의율 산정 조사에서 제외돼 있었다. 하지만 문건이 인정받아 시범ㆍ중산아파트 주민들까지 수용 동의율 대상에 포함되면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은 더욱 험난해 질 수 있다.
시범ㆍ중산아파트는 가구당 대지지분이 평균 26㎡(7.9평) 선이다. 서부이촌동 일대 땅 보상가는 아직 미정이나 이 일대 중개업소에선 "3.3㎡당 최소 1억원은 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
주민 주장대로라면 40년 전 3.3㎡당 11만원씩 지급했던 지분 값이 지금은 최고 1000배 수준까지 껑충 뛰게 되는 셈이다. 총 494가구인 시범ㆍ중산아파트 땅 보상에 가구당 대략 8억원 선이 소요된다고 보면 총 보상금은 수천 억원 가까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대가 거래제한에 묶여 있어 시세를 알긴 어렵지만 건물만 감정평가해 보상할 경우 시범ㆍ중산아파트 보상가는 가구당 평균 2억~3억원 선일 것으로 예측된다"며 "여기에 주민들이 승소해서 토지 보상금까지 더하면 최소 10억원 이상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시범ㆍ중산아파트 주민들은 2008년 토지 소유권을 놓고 서울시와 벌인 소송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이번에 토지대금을 주민들이 부담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발견된 만큼 필요하다면 소송을 다시 벌인다는 각오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면밀한 조사를 하겠지만 과거 법원 판결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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