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자전거
할아버지의 거문고 소리에서 파도 소리를 느끼며 항상 자전거를 타시는 생활에서 자연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배워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외갓집에 가면 거문고를 타시고 자전거를 좋아하시는 우리 외할아버지가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 산과 들을 보며,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꽃과 풀들을 스치며 갈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신다. 예쁜 꽃에 나비가 앉아있으며 천천히 쉬어 가도 되고, 오르막길이 힘든 만큼 내리막길이 더 시원해서 좋다고,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을 열 가지도 넘게 얘기하시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자가용이 있으시지만 잘 타지 않으시고, 타신다고 해도 고속도가 아닌 국도로만 다니신다. 고속도로는 쌩쌩 달리기만 해 영 재미가 없고, 제 속도로 가고 있는데도 뒤차가 어찌나 빵빵거리고 추월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싫다고 하신다.
우리 엄마는 반대다. 그런 외할아버지 차는 답답하다며 외할아버지 차는 잘 타지 않으시려고 한다. 특히 국도를 달리며 창문을 열어놓고, 이것 좀 봐라, 저것 좀 봐라, 지난 해 있던 나무가 사라졌다, 국도가 버젓이 있는데 고속도로는 또 왜 내려고 저리 큰 산을 허무냐는 둥 그래 봤자 몇십 분 더 빨리 가는 것을 그리 빨리 가서 커피나 마실 거면서, 저 산에 사는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가느냐는 둥, 할아버지의 걱정은 길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학교도 빨리 가야 하고 학원도 빨리 가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엄청 빠른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신다. 고속도로에서는 치타같은 속도로 달리시기 때문에 항상 고개를 들어보면 1차로로 달리고 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그렇게 빨리 도착해서 가는 곳은 커피숍일 때가 많다.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도 엄마는 쌩쌩 달리신다. 그래서 엄마 차 안에서 오빠와 나는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돌아올 때 또한 몇 게임 안 하면 엄마의 차는 금세 집에 도착해 있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 다르게 고속도로를 구경 못 해 본 외할아버지의 차가 더 좋다. 외할아버지의 차는 언제나 바깥 풍경이 들어오고, 그 풍경에 재미있는 얘기가 따라 들어와 우리들은 이어폰을 꽂고, 게임할 시간이 없다. 할아버지의 길에는 언제나 무궁무진한 비밀들이 숨어있다 나온다.
그 날도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 점심을 드시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신 할아버지께서 저녁때까지 오시지 않아 심심했다. 외할아버지께서 그리 오래 다녀오신 곳이 궁금해 여쭈어 보았다. 금유당에 갔다 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금유당이 뭐예요?”
“거문고와 노니는 집이란다. 한번 가 보련?”
“차 타고 가요?”
“아니, 금유당은 자전거 타고 가는 데란다. ”
외할아버지와 나는 다음 날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금유당에 갔다. 물론 나는 두 발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저 웃으며 나를 기다려 주셨다. 외갓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할아버지의 금유당이 있었다. 작은 작업실이었지만 커다란 창문으로 화단의 나무들이 보였다. 버드나무가 한쪽에 떡 버티고 서서 발 아래로, 사철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들을 감싸고 있었다. 주변에 집들이 없어서 조용했다. 내가 좋아하자 외할아버지께서 금유당에 있던 거문고를 꺼내 연주해 주셨다. 곧 둥탁 둥탁 외할아버지의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와 자주 듣는 방탄 소년단의 'Permission to Dance'의 기본 박자가 아주 느리게, 탁, 탁, 탁 들리는 것 같았다. 슬로우모션으로 춤을 추는 방탄들이 보이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분명 낯선 악기소리였지만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연주를 하시던 외할아버지는 내게 거문고 소리가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 물어보셨다. 바람 소리인가 바다 소리인가 무언가를 느꼈지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게 외할아버지는 거문고가 자연의 소리를 닮은 악기라고 하셨다. 아, 그래서 바람 소리, 바다 소리가 떠올랐구나. 나는 지금까지 바이올린 소리만 알았지 그 동안 외할아버지가 연주하신다는 거문고는 관심이 없었다. 내 키보다 더 큰 옛날 악기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금유당을 가득 채우는 외할아버지의 거문고 소리는 마치 바다의 파도 소리 같았다. 한 번도 거문고 소리를 유심히 들은 적이 없었는데 나무와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곳에서 나는 거문고 소리는 파도였다.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가 탁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이 신기한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그리고 금유당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싶다고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보여 주셨다. 왜냐하면 엄마도 나도 그동안 모두 외할아버지의 취미이자 행복인 거문고를 좋아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거문고 소리에서 파도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그야 당연하지. 우리 악기는 모두 자연의 소리를 본떠 만든 것이란다.”
“정말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거문고 연주자니까 자연을 더 아끼는 사람이네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구나. 파도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자연을 아낄 수밖에”
“할아버지는 그럼 자전거도 타시는 이유가 있네요. 자전거를 타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배웠어요.”
“그래 그런 점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좁은 길로 자전거를 타면서 산과 나무를 보는 것이 즐겁단다. 거기에다 건강에도 좋은 일이잖니.”
외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연의 소리를 닮은 악기 거문고를 연주하시면서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키시려는 것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우리 주변의 자연을 지키시려는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하시니까 깨끗한 파도 소리를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파도 소리를 듣고 거문고 소리를 떠올리지.
나는 거문고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손녀이니까 할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니 자전거 타기가 생각이 났다. 엄마의 빠른 스포츠카를 타는 대신에 외할아버지처럼 느리지만 여유로운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거문고 배우기! 내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자연을 닮은 소리를 낸다면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자연을 아끼고 좀 더 사랑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