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취재 인사이드] 'B급 음악'으로 세계 평정한 싸이, 그의 삐딱했던 'B급 학창시절'은?
대중음악 담당기자인 제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싸이가) 도대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랐길래 그런 ‘물건’이 됐냐”는 겁니다.
사실 기자인 저도 매우 궁금한 대목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슨 특출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은 아닐테고. 본인 육성(肉聲)을 듣거나 가족과 인터뷰가 이뤄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월드스타’로 등극한 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선지 지금은 가족들과의 연락 조차, 좀 과장하자면 현직 대통령 직접 취재 비슷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선 싸이와 한 동네에서 초·중·고교 시절을 보냈던 또래들을 수소문해 ‘학생 박재상(싸이의 본명)’의 모습을 추적해봤습니다. 싸이는 서울 서초구의 반포초등학교·반포중·세화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어느정도 짐작하시겠지만, 싸이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놀아도 너~무 노는 학생이었다는군요.
학교에서 오락부장, 응원단장을 도맡았던 그는 중·고교 시절 성대(聲帶) 모사로 좌중을 휘저었다고 합니다. 수학여행이나 장기자랑 때마다 그의 ‘원맨쇼’가 펼쳐졌는데, 유명인사부터 된장 발음의 영어선생님, 뭔가 몸짓과 말투가 서툰 친구들을 기가 막히게 흉내내 좌중을 뒤집었다고 합니다. ‘19금’ 농담에도 탁월해 한 번은 미혼의 여자 교생 선생님 수업시간에 “장기자랑하자”고 손을 번쩍 들더니 걸쭉한 19금 유머를 구사해 교생 선생님은 물론 급우들까지 민망하게 했답니다.
출처=KBS2TV '스타 인생극장' 캡쳐
엘리트 부모·누나와 정반대로 청개구리 같던 싸이, ‘주관’과 ‘고집’ ‘반항심’은 일등
이성(異性)에게도 큰 관심을 가져 2011년 11월 한 인터뷰에선 “중고교때 관심은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는 거였다. 그러려면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아니면 잘생기거나 해야 하는데 셋 다 안 된다. 그래서 연마한 게 재미있는 춤이었다. 데뷔 때 췄던 이상한 춤, 그거 그때 다 갈고 닦은 거”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TV에 나오자 동창생들의 반응은 거의 하나 같았답니다. “연예인이 될 건 120% 확신했는데, 가수(歌手)는 의외다. 개그가 아니고 웬 노래? ㅠㅠ.”
당시 싸이는 부잣집에서 ‘미운 오린 새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싸이의 아버지는 반도체 장비업체인 디아이의 박원호 회장, 어머니 김영희씨와 누나 박재은씨는 내로라하는 유명 레스토랑 사업가와 푸드(food) 스타일리스트입니다. 부모님은 매사에 1등을 놓쳐본적 없는 엘리트이며, 누나는 최고의 ‘엄친딸’로 학교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모범학생이었지요.
흥미로운 것은 싸이는 어렸을때부터 양보할 수 없는 뚜렷한 ‘주관’과 ‘고집’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2006년 방송된 KBS의 친구찾기 예능프로 ‘해피 투게더’에 출연했던 싸이의 초등학교 동창들은 “어릴적부터 빨강·파랑·분홍 같은 원색 옷만 입고 다녔고, 매일같이 무스로 앞머리를 세웠던, 튀지만 자기 주관이 분명했던 아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싸이가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무스 한 통을 다 쓴 것으로 안다”고 귀띰했습니다. 싸이는 얼마 전 “나는 지금도 헤어스타일 세팅이 안되면 구멍가게에 조차 가지 않는다”며 그 말을 뒷받침하더군요.
고교 시절 술과 담배, 나이트 클럽 등 ‘어른 문화’에 탐닉했던 그는 흡연을 훈계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부터 담배를 끊으시라”고 대드는가 하면, 가수가 되려는 걸 아버지가 반대하자, “아버지는 작곡을 해 보셨나요? 어떻게 당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그토록 확신을 갖고 말씀하실 수 있느냐”고 반항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보면 싸이는 ‘내 인생은 내가 가꾸겠다’는 강한 자존감 DNA로 똘똘 뭉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절대 내 삶을 간섭당하고 휘둘리진 않겠다, 설사 가족이라도!’라는 삶의 강렬한 주체적 의지와 독립심인 거지요.
출처=스포츠조선DB
버클리음대 유학시절 짐승처럼 음악에 ‘몰입’‘숨은 끼’를 믿어준 부모가 큰 버팀목
그의 ‘독립심’과 ‘자존감’은 싸이가 대마초 흡입과 군대 두차례 입소 등 불미스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 독립심은 독특한 가족 문화에서 유래했는 걸로 보입니다.
일례로 2007년 군 문제로 재입소할 때 싸이는 아버지로부터 CF(광고)위약금을 무상(無償)으로 ‘받지’ 못하고 ‘빌려야’ 했지요. 지금도 어머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싸이는 늘 밥값을 다 내야하고, 싸이의 공연엔 부모가 제값을 주고 티켓을 삽니다.
하지만 2001년 대마초 문제로 싸이가 경찰에서 수사를 받을 때, 아버지는 “세상 공부하는 셈 쳐라. 이보다 더한 일이었어도 널 믿었을 것”이라며 악수를 청해 싸이를 감격시켰다고 합니다. 싸이가 9개월만에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버팀목은 네 식구의 단단한 우정이었고, 싸이 가족에게서 ‘방임’은 믿음의 또다른 표현이었던 겁니다.
‘연예인 기질은 다분했지만, 가수 기질은 안보였던’ 그가 음악을 배우고, 가요계에 첫발을 내미는 과정도 어지간한 뱃심없이는 불가능한 ‘맨땅 헤딩’ 식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고교 졸업후 유학을 떠난 싸이는 작곡의 기본인 화성학 조차 모를 정도로 기초가 없었지만 ‘악보를 몰라도 노래를 못불러도 되는’ 힙합에 흥미를 느끼고, 음악의 바다에 풍덩 빠졌습니다.
버클리음대 시절에 대해 그는 “6개월에 딱 한번 이발하러만 밖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밥, 용변 빼고는 작업대에만 붙어 있었어요. 진짜 미쳐 있었던 거죠. 그때 1년을 밑천으로 지금까지 작곡도 하고 있는 거고요.”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싸이는 일단 선택해서 시작하면 옆사람 질리도록 준비해요. 엄청나게 온 몸으로 준비하고 몰입하는 스타일이지요. 짐승처럼 랩에 푹빠졌던 1년의 유학생활부터 확고하게 몸에 밴 힘의 원천인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노골적 노랫말과 선정성 논란으로 ‘B급 상술’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좋아하고 즐기는게 내 음악관”이라는 고집으로 맞섰습니다. 그리고 그 ‘B급’ 노래인 ‘강남스타일’은 전세계 음악시장을 확실하게 제패한 대한민국 최초의 K팝이 됐죠.
아마 ‘우리 아이도 어떻게 하면 싸이 같은 인재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신 부모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말은 안듣고, 고집불통이고, 엉뚱한 일만 벌이는 아이들. 이런 자녀들이 있다면 부모님들은 한발짝 물러서서 지켜보시면 어떨까요.
겉보기에는 삐딱해도 한 번 마음먹은 건 해내고, 부모에겐 없었던 숨은 ‘끼’를 스스로 캐내서 키우는 ‘싸이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싸이가 몇해전 스스로 밝힌 다음 얘기를 권해 드립니다.
“저는 산만해서, 딴생각 많이 해서, 잡생각 많이 해서, 재미있는 이상한 아이였고, 그런 게 지금 내 음악의 모든 것이 됐다. 산만하고 딴짓만 하는 아이가 한번 몰입하면 얼마나 무섭게 하는데, 맨날 혼만 내면 어쩌라는 거냐? 잡생각을 잡스럽게 보니까 잡생각이지, 좋게 보면 ‘창의’다. 잡생각에서 창의가 나오고, 창의가 반복되면 독창적이 되고, 독창적인 게 반복되면 독보적인 게 되는 거 아닌가.”
곱씹어보면 뭔가 확 와닿지 않으시는지요? 다음번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차트를 정복한 싸이’ 소식으로 여러분들과 만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