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1월 19일 금요일 맑음
“여보 가자. 충희야 우리 먼저 떠날 게”
“예, 조심해서 가세요” 우리 부부와 충정이가 선발대로 먼저 출발했다.
충희는 내일 친구들과 버스로 오기로 했다.
아들 친구들도 우리 아들들. 소중하게 모셔야지. 평생의 친구 하나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하잖나. 우리 충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기를 바라면서, 빈틈 없는 준비를 위해 출발했지.
“여보, 그렇게 일하고 싶어 ?” 안사람이 뜬금없이 묻는다.
“왜 ? 당신도 출근하고 애들도 없는 집에서 혼자있기가 어려워”
“오늘은 내가 학교에 안 가는 날인데 ?” “오늘은 충희 친구들 모실 준비를 하러 가는 거고, 또 일이 밀리면 마음이 편하지 못해”
궁색한 자리를 면하게 해주는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한국일보 기자님이시다. “예, 기자님 안녕하세요 ?” “예. 오늘 기사가 나갔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여보, 인터넷에서 한국일보 찾아 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 못찾아” “그럼 집에 가서 컴퓨터에서 보면 되지” 궁금하다.
오는 길에는 눈이 다 녹았다. 며칠 포근했다고 그 많던 눈이 사라졌네.
그러나 정산 애경유지를 돌아들어오는 길에는 눈이 남아있다. 완전 북향 그늘 길이라 하루 종일 햇빛 구경을 못하는 곳이라 그렇다.
그렇다면 안산밑 매실밭은 어떨까 ? 다행히 부스러기 눈만 남아있네
일하기 훨씬 수월하겠지. 집에 들어서니 우리 집 창고 옆에는 눈이 그대로다.
‘여기가 근동에서 제일 추운 곳인가 ?’ 안사람도 신기해한다.
컴퓨터부터 뒤졌지. 한국일보 한 구석에 ‘10년째 대전 지역 체육 유망주들의 키다리 아저씨’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주욱 읽어 내려가면서 ‘이 건 아닌데’ 생각이 든다. 운사모가 이건표 하나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
전체 형제님들의 정성으로 이어온 10년의 역사인데.... 이건표 보다 운사모 형제님들 전체가 부각되길 바랬었는데.... 괜시리 형제님들께 미안한 생각이 앞서더라. 씁쓸한 마음으로 일어섰지. 이미 지난 일 어쩔 수 있나.
눈 녹은 길로 차를 몰아 불당골에 거름을 내렸다.
장작을 한차 싣고 돌아오니 야옹이가 아는 체 하고 나선다.
‘장모님은 따르지만 나만 보면 피하는 놈인데 배가 고픈가 ?’ 사료를 한 주먹 주면서 등어리 상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고름이나 진물이 나지 않는다.
사랑방 아궁이에서 태어난 야옹이는 오른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던 불구였었다. 나중에 제 어미에게서 버림을 받고 혼자서 숨어 지냈는데, 그동안 무언가에 공격을 받고 등에 큰 상처를 입었나 보다. 그 상처가 악화돼 고름이 질질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사람이 바르는 연고를 발라주었었다.
오늘 또 봐서 고름이 흐르면 가축병원에 데려갈 참이었는데....
상처도 아물고 하니 힘이 났는지 뛰어다니기도 한다. 처음에는 한쪽 다리를 끌고 다니다가, 절뚝절뚝 걷더니, 이젠 뛰기까지 하니 엄청난 발전이지.
‘네가 정말 복이 있는 고양이구나. 사료를 사다가 배불리 먹였으니 살았지. 다리를 못쓰는 고양이가 이 추운 겨울에 먹을 게 있었겠니. 굶어 죽었지. 상처도 나았으니 앞으로 잘 커라. 나도 좀 따르고....’
그동안 안사람은 창고 방 청소에 이부자리 나르느라 바쁘다.
나도 바베큐 기구를 꺼내놓고, 숯을 찾아 놓고, 텔레비전 설치에 힘을 썼지.
준비를 완료하고는 저건너 매실밭 거름을 덜 뿌린 곳을 마무리했다.
저녁에는 안사람과 마트에 가서 과일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다 쌓아 놨지.
‘그놈들 대접하기도 힘드네. 자식 키우다 보니 이럴 때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