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사랑 (요일 4:17-18)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을 이루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됩니다. 그 생명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생명을 주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갈수록 살맛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경우에도 안정감을 유지하고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항상 충만하고 신선한 감동을 받으면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가까이 하고 당신을 닮아가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갈수록 좋아지는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사랑이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 이는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고,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생명을 주는 사랑’, 즉 ‘완전한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심판날에도 담대함을 유지하는 두려움 없는 사랑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수님의 사랑, 즉 ‘생명을 주는 사랑’이 작동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심판의 날이라고 여겨지는 수 많은 위기의 순간에 이 사랑은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험’(시련)이라 여겨질 수 있는 수 많은 과정을 통해 ‘판단’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생에서 실패를 겪거나, 질병과 같은 고난을 겪을 때도 우리는 ‘혹시 잘못될까’, ‘혹시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두려움은 징벌 받을까 봐, 죽을까 봐, 잘못될까 봐, 불안해 하는 마음에 작동됩니다. 그럼에도 ‘생명을 주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이런 심판의 날에도, 두려움 대신 담대함을 갖습니다. 고난의 날 그리고 심판의 날, 즉 두려움의 날에도 담대함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받아주는 사랑 – 위기의 날에도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랑
완전한 사랑은 어떤 시련과 고난 그리고 심판 가운데서도 믿는 자들이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찾아내게 합니다. 심판과 고난, 그 이후에 닥칠 결과가 예측이 되어도,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허물과 죄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큰 두려움의 '심판의 날'에도, 편안히 돌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자리를 담대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나 예수님 안에서 '용납받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죄 많고 무익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사랑하시는 일을 그치지 않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며 죄악을 저지르던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무릎이 떨리고 볼품이 없는 노년의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이 불타며 끝나는 날에도, 끝까지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에게 계속 유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천국을 누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크고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완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모르기에 죄의식에 사로잡혀, 일상을 심판 날처럼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저들을 두려움에서부터 해방시킵시다.
적용 나눔) 불안하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완전한 사랑’, 즉 허물있는 자, 죄인도 받아주는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평안을 지켜가고 담대하게 처신한 경험이 있으면 나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