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저물어 가던 6월 어느 토요일 오후, 여수로 내려온 장관은 여수항을 둘러보는둥 마는둥 하고, 거문도로 들어가 등대에서 일박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골치아픈 서울의 일상에서 탈출하려고 잠시 내려왔다 올라가는 것 같았다. 서울행 비행기 트랩을 오르던 장관 얼굴은 찌그러진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등대 잠자리가 불편했거나 아니면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가 보다. 환한 얼굴로 못보낸 것이 조금 아쉬웠다.
장관을 서울로 보내고 관사에 당도하니 이번엔 서울 집에서 내려온 아내가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내가 서울로 올라가고 다음엔 아내가 여수로 내려오니 우리는 주말부부도 못되는 편이었다. 2주에 겨우 한 번씩 도킹하는 나의 신세를 그 누가 알랴? 장관의 행차도 끝나고 홀가분한 참에 아내까지 합류했으니 내딴엔 오붓한 주말을 기대해볼만 했다. 아내는 창문을 열어 홀애비 냄새를 흘려보내고,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세탁하고, 흐트러진 가구들을 정돈하느라 법썩을 떨었다.
그 때 똑똑똑 누가 관사 현관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섞인 표지과장 목소리가 문 밖에서 넘어왔다. 문을 열어주니 그의 손에는 맵시나게 포장된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전복이라고 했다. 사모님[아내]이 내려오셨으니 함께 드시라고 전복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엉겁결에 받아놓고 , 고맙다는 말을 섞어 차 한 잔을 나눈 후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들고 온 손바닥만한 전복은 저녁 밥상에 초고추장과 함께 제일 큰 접시에 푸짐하게 올라 앉았고, 오랫만에 맛보는 별미중의 별미 대접을 받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 전에 상경하는 아내를 보내고 청사로 들어서니 서울 본부 총무과장의 전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본부에서는 야단이 났단다. 장관이 받을 전복 선물을 여수청장이 가로챘으니 즉시 조사 보고하라는 장관지시가 떨어졌다는 거였다. 장관이 몹씨 화가 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어이가 없었다.
장관이 거문도를 떠날 때 그곳 수협 조합장이 우리청 표지과장을 살짝 불러 장관 주라고 전복 한 상자를 건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튼날 그러니까 일요일 저녁에 조합장은 전복 선물을 잘 받았느냐고 장관한테 확인전화를 걸었다는 거다. 장관이 모르는 일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낌새를 느낀 조합장이 표지과장에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고, 표지과장은 여수청장인 나에게 전복상자를 갖다 줬다고 했다는 거다. 결국 내가 장관에게 갈 선물을 낚아 챈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튼 일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우선 표지과장을 불러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청장님 갖다 드리라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둘러대는 게 아닌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토요일에 관사에 왔던 그는 자기가 사온 것으로 생색내지 않았던가? 어린애도 아닌 표지과장이 장관 주라는 것과 청장 주라는 것을 구별 못할 바보는 아닐테고............ 조합장으로부터 전복을 건네 받을때 장관이 안 봤으니까 모르겠지 하고 직속상관인 나에게 들고 와 생색을 내려한 표지과장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더 따져볼 것도 없었다.
어쩌튼 이 사건으로 나는 속 좁은 장관의 눈 밖에 났다. 며찰 안지나 본부 감사관실을 동원하여 내 뒤를 캐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분통이터졌지만 어쩌겠는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집요하게 쑤셔댔다. 그 후로 몇달간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죽여 나가는 수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나를 뒷조사하던 그 장관이그의 기대에 어긋나게 얼마 후 부처 통폐합으로 자리를 잃고 나보다 먼저 옷 벗고 나가버렸다. 나중에 퇴직자 모임에서 그를 만났더니, 장관 이 친구 옛날 일은 다 잊었는지 멀쩡한 얼굴로 넉살좋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좀 재수없고 씁쓸힌 기분이었지만 반가운 체 할 수밖에 없었다.
첫댓글 마음고생은 하셨지만 손바닥만한 전복을 사이좋게 두분이 드셨으니 얼마나 좋았을꼬
한 나라의 장관이란분이 그리도 졸렬하다니 ㅉㅉㅉ 세상 돌아가는 속내가 이 글속에 다 들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ㄱ ㅅ 
댓글 수다 한마디: 현직에 있을 때 어느 여교사가 추석 명절
을 사서 교장 사모님한테 전
했다. 그 다음날 교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는 게 착각하여 다를 여교사한테 했다.그 말을 들은 여교사는 화를 불끈내며 교장 욕을 해대는 것이다."
을 하지않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은 인사도 안하는 교사라고 대놓고 욕하는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윗자리에 있으면
전
사고 가 

나는법 그래도 億 
상자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유 그리고 요 몇
전 부산시장 자갈치생선 횟 갈곳을 잊어 먹어 지하철에서 
와 엉뚱한 분들이 먹어버렸잖아유 
당사자는 씁쓸한 기분이셨겠지만 듣는 사람은 재밋네요. 속 좁아터진 그 장관 얼마 못갈 줄 알았다니까.
공직생활 하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겪으면서 커 가는 것이겠지요.
삶의 불확실성이로군요. 허전하고 복잡한 문제도 세월과 함께 다 지나가고 ... 희미한 추억의 편린이나 만지작거리며 물흐르듯 흘러 갑시다.감사
What a interesting thing it was!!! It could be occurred so kind of wrong delivery accidents in our life.... Anyway, you could blow a trumpet loudly with your wife by your Minister's favor. Thanks a lot.
당시엔 황당스런 일?이었겠으나, 돌이켜 보면 깨달음도 함께 주는 에피소드 들, (궁금: 나중 가족에겐 말 아니했어야 하는데--)지난 얘기하니 재미있네--
우리네 삶에 오해가 많으니
오해
란 단어도 있지요.쫄깃한 전복 같은 맛있는 글이네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