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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누리길12구간(강원5구간)(두타연갤러리-평화댐-풍산초등학교:양구평화길,화천평화의길)
◈ 일 자: 2021. 9. 21/ 16~24도(양구기온)/ 비후 흐림, 맑음
◈ 위 치: 양구군, 화천군
◈ 누구와: 나홀로
◈ 경로: 두타연갤러리- 백자박물관-평화의 댐-해산터널-풍산초등학교
* 한목령~안동철교 출입금지라 평화의댐에서 해산령으로 우회 풍산초등학교까지 답사
◈ 거리: 47.37㎞(한목령-안동철교 구간 출입금지라 해산령으로 우회)
* 오늘은 두다리와 4바퀴 구르마로 답사 병행...일부 도로 구간은 구르마로 답사.. 좀편안한 답사
이구간은 교통이 나빠 두다리와 4바퀴 구르마로 병진해서 장거리 답사
◈ 시간: 5시간15 분
오늘은 추석명절이다. 새벽에 출발 양양/낙산사와 설악 신흥사에 잠깐 들렸다가 화진포에 가서 식사후 바로 출발지점인
고방산 두타연 갤러리에 12시10분에 도착 바로 출발 /
오늘은 두타연갤러리에서 풍산 초등학교 까지 약47키로를 완전도로지역은 일부 차량을 이용하고
최대한 걸어서 답사하기로 한다.. 비도 약간 내리고 있다... 차는 아내가 운전...
백석산지구 전투 전적비
두타연 가는 길
송현2리 버스 승하차장
조선백자 시원지 안내간판
양구 백자 박물관
**양구 백자 박물관**
방산 지역의 백자가 전시된 양구백자박물관(구, 방산자기박물관)은 소장 작품들과 더불어 도침, 갑발 등의 요도구 등이 전시되어 방산 지역의 백자를 살펴볼 수 있고, 다양한 영상물을 통하여 방산 지역 백자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체험실에서는 전기가마, 가스가마, 장작가마 등을 갖추고 야외 및 실내 체험을 겸할 수 있는 시설로 70여평의 규모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흙을 만드는 방법과 성형, 그리고 가마에 직접 구워 자기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도자기 생산지로서 양구 방산면은 이미 고려시대 이래로 주목받는 곳이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 분원에 원료를 공급하였던 곳으로 광주분원의 기술과 조형미가 이식된 곳이기도 하다.
방산면 일대 도요지 지표조사 결과 40기의 가마터가 확인되었으며 그 지역은 양구군내 現 방산면 소속의 장평리, 칠전리, 현리, 송현리, 오미리, 금악리 등 6개 지역과 인접한 양구읍의 상무룡리 1개 지역을 포함한 총 7개 지역이다.
장평리에서는 7기, 칠전리 5기, 현리 4기, 송현리 7기, 금악리 4기, 오미리 4기, 상무룡리 9기 등 총 40기가 확인되었다. 약 7개 지역에서 백자를 제작할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료를 확인하였다. 조선후기 왕실 분원에서 생산되던 백자원료의 주요 공급처 가운데 하나가 양구군이었으므로 원료 수급 관계를 통한 광주 분원백자와의 연관성을 알려준다.
실제로 양구에서 채집되는 백자, 청화백자 등은 특히 조선후기 분원백자와의 조형적으로 상호관계가 매우 높다. 6.25 이전까지도 요업이 계속되었던 곳으로 조선~근대로 이행하는 시기 우리나라 근대도자 산업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양구 방산의 백자생산역사 600년을 정립하는 이 전시관에서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관요 분원리 청화백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왕실백자를 서민에게도 확대하였던 조선백자의 마지막 꽃, 방산 청화백자 항아리를 중심으로 질 좋은 양구백토가 빚어놓은 하얀 조선백자의 빛과 그 흐름을 펼친다.(네이버 지식백과)
"양구백자 박물관": 추석날 휴관이라 관람 불가(네이버지식백과에서 퍼옴)
양구백자박물관은 양구 방산면에 위치하고 있어 양구읍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소요.
강원도 양구는 예로부터 백자의 원료인 질 좋은 백토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습니다.
질 좋은 백토란, 불순물이 적고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고령토(Kaolin) 계열의 흙은 말합니다.
고령토(Kaolin)는 도자기 원료로도 많이 알려 있지만 요즘은 미용재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쓰임이 많은 점토네요
강원도 양구의 백토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백자의 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1932년 강원도청이 금강산 산불 저지 공사를 하는 도중 백자 유물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바로 조선을 건국한 왕인 이성계의 발원 사리함이었습니다.
은제와 동제 유물을 감싸고 있던 백자가 바로 양구 방산면에서 제작된 백자입니다.
이 백자의 저부에는 각필로 "방산 사기장 심용"이라는 제작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요. 바로 강원도 양구 방산에서 생산된 자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위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져온 이성계 발원사리함 사진입니다.
그럼 박물관 내부 투어를 해볼까요?
도자기 공부를 하다 보면 흙이라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오브제가 무궁무진해서 끝없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아래 사진에 도자기로 빚은 인형들은 실생활에 사용한 물건은 아니고, 망자와 함께 부장하던 조선시대 도자기 인형이랍니다! 동물 모양의 인형도 있고 사람형태도 있네요. 이런 유물들을 보면 평소 생각지도 않는 삶과 죽음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한답니다.... ㅋㅋㅋㅋ
다음!
은 열린 수장고 입니다.
고궁 박물관처럼 수장고를 부분 개장한 곳은 있지만 이렇게
수장고 전체를 개방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참 좋았어요.
방산자기 특유의 짙푸른 코발트 안료의 청화백자와
일부 분원에서 만든 운룡문준, 모란문호도 보이네요.
수복강녕문 주전자도 있네요!
주전자 기물은 쉽게 볼 수 있는 기물은 아니어서 한참 바라보았답니다.
수장고에는 특별전시와 비교전시를 위하여 다양한
도자기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관사명 인화 분청 사기도 보이고, 조선 초기 관요 기물도 보이네요.
초두에 말씀 드린것과 같이 이성계발원사리구의 백자 수준으로 봐서는
백자성형의 기술과 원료도 꽤 고급 수준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여요.
이런 수준의 도자기가 방산에서 생산되었던 시기는 조선 초기까지이고
이후에는 원료만 분원으로 제공을 하였고
점차 지방백자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데요.
방산가마에서 생산된 새하얀 유색의 특징을 공유하는 지방백자가
바로 경상북도 청송의 청송백자입니다.
아마 비교전시를 위해 청송백자도 몇점 수장중인것 같아요.
최근에는 예술성있는 현대 도자기도 관심이 가는데
한,중,일 현대 작가들의 도자기도 따로 전시해 놓아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박물관관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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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가을 느끼게 벼들이 탐스럽게 익어있고...
13시10분 직연폭포 (인공폭포) 물도 없고 돌덩어리민 보인다
황포 돗대배 모형도
백자 가마들...
직연폭포 0.9키로ㅛ, 평화댐20.2키로 이정목(금악리)
각사교 3.5키로 미터
방산 면사무소/우체국/ 복지 회관(사진 상하)
13시40분 각시교 ( 방산 면사무소3.1키로, 금악교1.2키로)
아래 흐르는 하천이 수입천
**방산 수입천 ; [ 方山水入川 ]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方山面) 송현2리부터 오미리에 걸쳐 흐르는 하천.
북한강의 지류로서,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바로 남쪽에 있는 가칠봉(加七峰:1,242m)에서 발원한다. 이후 문등리, 건솔리, 송현리, 장평리, 현리, 금악리, 오미리 등을 우회하며 파로호로 흘러든다. 서천과 함께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곳에는 평야가 펼쳐져 농업이 활발하다.
연장 길이가 34.8km에 이를 정도로 넓은 지역에 걸쳐 흐르며, 물의 양도 풍부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천을 따라 갖가지 기암괴석과 함께 꽃나무들이 울창하여 찾는 이가 많다. 특히, 봄에는 철쭉꽃이 아름답고, 여름에는 수심이 낮아 물놀이하기에 좋다.
수입천 물줄기가 곧바로 떨어지는 직연폭포, 파로호와 만나는 파스탕계곡은 경치가 좋다. 오미리 구역에는 희귀어종인 어름치와 쉬리, 그리고 천연기념물 황쏘가리가 서식하고 있다. 장평리의 직연폭포 지역은 관광지로 개발중이며, 그 일대는 마을관리휴양지로 지정되어 매년 여름 2개월간 운영된다.
근방에 고대리 지석묘군(강원기념물 제9호) 등 문화재와 양구선사박물관, 제4땅굴, 을지전망대, 천미계곡, 수입천, 소양호, 파로호, 양구팔랑민속관, 양구전쟁기념관 등 연계하여 관광할 만한 명소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미리산촌 생태 체험관
오미리 마을 포석
**오미리 ; [ Omi-ri , 五味里 ]
요약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있는 리(里)이다.
아래로 수입천이 흐르는 산간지역이다. 외딴 산이라 하여 오미리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수러니, 송서울, 동중골, 피모개, 중간말, 낭구비, 움텃골, 남밭, 안터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14시00분 오천터널 약16키로 지점
14시10 평화의 댐 하부 공원
평화의댐 하부 고원의 각종 구조물과 안내간판
국제 평화 아트파크 상징탑
평화의종 모습(정면 후방 측방등 사진)
댐의 수로(지름이 건물 3층높이의 수로가 4개)
비목공원에서 본 평화의댐... 배수로
평화의 댐 광장과 주차장에 설치된 각종 안내판(상하사진들)
평화의 댐 표석
**평화의 댐(平和의 dam)**
대한민국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의 북한강에 위치한 댐이다.
2차 완공 후의 현재 길이는 601 m, 높이는 125 m이며 최대 저수량은 26억 3천만 t이다. 북한의 금강산댐(임남) 건설에 따른 수공(水攻)과 홍수 예방을 위해 1987년 2월에 착공하여 1989년 1월에 1차 완공(당시 높이 80 m)된 뒤, 2002년부터 2단계 증축 공사를 하여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되었다.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지 않는 건류댐으로 운영되고 있다.
댐 위로는 지방도 제460호선이 지나간다.
평화의 댐의 저수량 26억 3천만 톤은 금강산댐(임남)의 저수량보다 1천만 톤이 더 많으며, 소양강 댐(29억 톤),
충주댐(27.5억 톤)에 이어 셋째로 많은 저수량을 가지며, 댐 높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다.
평화의댐 위 모습
비목공원 가는 계단
비목공원탑
비목(碑木) - 그 숨은 이야기
초연이 쓸고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녘에 비바람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머어언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옛날 천진수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40여년 전 막사 주변의 빈터에 호박이나 야채를 심을 양으로 조금만 삽질을 하면 여기 저기서 뼈가 나오고 해골이 나왔으며 땔감을 위해서 톱질을 하면 간간히 톱날이 망가지며 파편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순찰삼아 돌아보는 계곡이며 능선에는 군데군데 썩어빠진 화이버며 탄띠 조각이며 녹슬은 철모 등이 나딩굴고 있었다. 실로 몇개 사단의 하고 많은 젊음이 죽어갔다는 기막힌 전투의 현장을 똑똑히 목도한 셈이었다. 그후 어느날 나는 그 격전의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생생한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왔다. 그러고는 깨끗이 손질하여 옆에 두곤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해서 가없는 공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쟁 당시 M1 소총이 아닌 카빈의 주인공이면 물론 소대장에 계급은 소위렸다. 그렇다면 영락없이 나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로 산화한 것이다. 일체가 뜬 구름이요, 일체가 무상이다. 처음 비목을 발표할 때는 가사의 생경성과 그 사춘기적 무드의 치기가 부끄러워서 "한일무"라는 가명을 썼었는데 여기 一無라는 이름은 바로 이때 응결된 심상이었다. 이렇게 왕년의 격전지에서 젊은 비애를 앓아가던 어느날, 초가을의 따스한 석양이 산록의 빠알간 단풍 의 물결에 부서지고 찌르르르 산간의 정적이 고막에 환청을 일으키던 어느 한적한 해질녘, 나는 어느 잡 초 우거진 산모퉁이를 돌아 양지바른 산모퉁이를 지나며 문득 흙에 깔린 돌무더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필경 사람의 손길이 간 듯한 흔적으로보나 푸르칙칙한 이끼로 세월의 녹이 쌓이고 팻말인 듯 나딩구는 썩은 나무등걸 등으로 보아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결코 절로 쌓인 돌이 아니라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 카빈총의 주인공, 자랑스런 육군 소위의 계급장이 번쩍이던 그 꿈많던 젊은 장교의 마지막 증언장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이야기가 여기쯤 다다르고 그때 그시절의 비장했던 정감이 이쯤 설명되고 보면 비목 같은 간단한 노래가사 하나쯤은 절로 엮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감성적 개연성을 십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정이 남달라서도 아니요, 오직 순수하고 티없는 정서의 소유자였다면 누구나가 그같은 가사 하나쯤은 절로 빚어내고 절로 읊어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 그때 그곳의 숨김없는 정황이었다. 그후 세월의 밀물은 2년 가까이 정들었던 그 능선, 그 계곡에서 나를 밀어내고 속절없이 도회적인 세속 에 부평초처럼 표류하게 했지만 나의 뇌리, 나의 정서의 텃밭에는 늘 그곳의 정감, 그곳의 환영이 걷힐 날 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TBC 음악부 PD로 근무하면서 우리 가곡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쏟던 의분의 시절, 그 때 나는 방송일로 자주 만나는 작곡가 장일남으로부터 신작가곡을 위한 가사 몇편을 의뢰받았다. 바로 그때 제일 먼저 내 머리속에 스치고간 영상이 다름아닌 그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옆을 지켜섰던 새하얀 산목련이었다. 나는 이내 화약냄새가 쓸고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의 이름모를 돌무덤을 포연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그리고 비바람 긴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그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따라 순절 한 연인으로 상정하고 사실적인 어휘들을 문맥대로 엮어갔다. 당시의 단편적인 정감들을 내 본연의 감수성으로 꿰어보는 작업이기에 아주 수월하게 엮어갔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이렇게 해서 비목은 탄생되고 널리 회자되기게 이르렀다. 오묘한 조화인양 유독 그곳 격전지에 널리 자생하여 고적한 무덤가를 지켜주던 그 소복한 연인 산목련 의 사연은 잊혀진 채 용사의 무덤을 그려본 비목만은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한 셈이며 지금도 꾸준히 불려지고 있다. 비목에 얽힌 일화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가사의 첫 단어어인 "초연"은 화약연기를 뜻하는 초연(硝煙)인 데, "초연하다" 즉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오불관언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때는 비목(碑木)이라는 말 자체가 사전에 없는 말이고 해서 패목(牌木)의 잘못일 것이라는 어느 국어학자의 토막글도 있었고, 비목을 노래하던 원로급 소프라노가 "궁노루산"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한 일이 있었다. 궁노루에 대해서 언급하면, 비무장지대 인근은 그야말로 날짐승, 길짐승의 낙원이다. 한번은 대원들과 함께 순찰길에서 궁노루 즉, 사향노루를 한마리 잡아왔다. 정말 향기가 대단하여 새끼 염소만한 궁노루 한마리를 잡았는데 온통 내무반 전체가 향기로 진동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그날부터 홀로 남은 짝인 암놈이 매일 밤을 울어대는 것이었다. 덩치나 좀 큰 짐승이 울면 또 모르되 이것은 꼭 발바리 애완용 같은 가녀로운 체구에 목멘 듯 캥캥거리며 그토록 애타게 울어대니 정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수정처럼 맑은 산간계곡에 소복한 내 누님 같은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그놈도 울고 나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이란 가사의 뒤안길에는 이같은 단장의 비감이 서려 있는 것이다. 6월이면 반도의 산하는 비목의 물결로 여울질 것이다. 그러나 우직한 촌놈기질에 휴가나와 명동을 걸어보며 눈물짓던 그 턱없는 순수함을 모르는 영악한 이웃, 숱한 젊음의 희생위에 호사를 누리면서 순전히 자기탓으로 돌려대는 한심스런 이웃 양반, 이들의 입장에서는 비목을 부르지 말아다오. 시퍼런 비수는커녕 어이없는 우격다짐 말 한마디에도 소신마저 못펴보는 무기력한 인텔리겐차, 말로만 정의, 양심, 법을 되뇌이는 가증스런 말팔이꾼들, 더더욱 그같은 입장에서는 비목을 부르지 말아다오. 풀벌레 울어예는 외로운 골짜기의 이름없는 비목의 서러움을 모르는 사람, 고향땅 파도소리가 서러워 차라리 산화한 낭군의 무덤가에 외로운 망부석이 된 백목련의 통한을 외면 하는 사람, 짙푸른 6월의 산하에 비통이 흐르고 아직도 전장의 폐허속에서 젊음을 불사른 한많은 백골들이 긴밤을 오열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호국영령을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가련한 사람, 아니 국립묘지(현충원)의 묘비를 얼싸안고 통곡하는 혈육의 정을 모르는 비정한 사람, 숱한 전장의 고혼들이 지켜낸 착하디 착한 이웃들을 사복처럼 학대하는 모질디 모진 사람, 숱한 젊음의 희생아닌 것이 없는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위에 살면서도 아직껏 호국의 영령앞에 민주요, 정의요, 평화의 깃발 한번 바쳐보지 못한 저주받을 못난 이웃들이여, 제발 그대만은 비목을 부르지 말아 다오. 죽은 놈만 억울하다고 포연에 휩싸여간 젊은 영령들이 진노하기 전에! |
두타연 갤러리에서 평화의댐까지 답사를 완료하고 여기서(평화댐) 출발 풍산초등학교까지
두다리와 네바퀴로 달려 간다. 시간이 벌서 15시30분이 다 되었다...
안동철교에서 한목령까지 출입 통제라 평화의댐에서 풍산 초등하교 까지 도로로 가야 한다
시간도 많이 자났고 해서 빨리 진행 한다
16시00분 전망대(전망대 쉼터, 각종안내간판, 장승등) 약33키로 지점
전망대 쉼터
16시20분 해산령/해산터널 약37키로미터 지점
해산령 휴게소
비수구미로 내려가는 문에 걸린 표지기들, 일반 관광객들은 해산령-비수구미계곡-평화의땜으로
**비수구미계곡 ; [ 飛水口尾溪谷 , Bisugumigyegok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 1리에 위치한 계곡이다. 맑고 깨끗한 계곡으로 유명하며, 청정환경 탓에 수달이 살고 있다. 이 계곡 주변에는 인적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림이 울창하다. 원시림과 넓은 바위가 계곡을 따라 밀집되어 있고 계곡 하단부에는 파로호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수구미로 내려가는 문에 걸린 표지기들, 일반 관광객들은 해산령-비수구미계곡-평화의땜으로
**비수구미계곡 ; [ 飛水口尾溪谷 , Bisugumigyegok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 1리에 위치한 계곡이다. 맑고 깨끗한 계곡으로 유명하며, 청정환경 탓에 수달이 살고 있다. 이 계곡 주변에는 인적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림이 울창하다. 원시림과 넓은 바위가 계곡을 따라 밀집되어 있고 계곡 하단부에는 파로호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17시03분 해산휴게소... 풍상초교까지 약2키로 남았다.
17시25분 풍산초등하교에서 오늘의 답사를 종료
승용차다고 화천 신포리 사창리 광덕고개 이동 전곡 자유로로 해서 일산복귀
오늘은 차량 덕을 많이보고... 답사 완료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홀로 걷으셨구요~
앞으로 가야할길 눈여겨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하셔요~()()()
감사합니다
추석날 겸사겸사해서
걷다가 일부 차량으로 답사 완료 했습니다
이번구간은 교통이 영아니라서 대충끝냈습니다.
산중선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달인클럽에서 지나가며 두꺼비대선배님이 포스팅을 잘 해주셔서 두번째입니다.
백석산 전투도 평화의댐 동쪽 고지로 정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피터지게 싸운 고지전 중의 하나입니다.
집에 가서 가곡 비목 올려드릴께요.
https://youtu.be/ew0G09K1Ix4
춘천지맥 마치고 관천리 노인정에서 버스 출발 기다리고 있습니다.
18:10분으로 알고 왔는데 저번 19일에 18:50분으로 조정되었다네요.
그래도 강촌에서 19:52분 ITX 탈 수 있을것 같습니다.
PLAY
수고하셨습니다.
지맥 열심히 하시내요
늘 건강하시고 안산하십시요.
여유롭고 느낌도 있는
멋진 걸음이십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평화누리길 강원도 구간을 지나는군요.
이 구간 평화의댐도 만나구요.
출입금지지역도 있어 차량과 병행하여 진행하셨네요.
만만치 않은 여정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안전한 여정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