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오전 일찍 배타고 올라가야하니 오늘은 멀리 가기보다 가까운 곳을 탐색해보기로 하고 정한 곳이 성산일출봉 근방. 광치기해변 초입에 주차를 하고 해변에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은 4.3유적 기념비가 세워진 곳에서 일단 끝이 납니다.
광치기해변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관광객이 북적이다보니 일부러 피하기도 했고, 워낙 성산일출봉이 출중하다보니 해안 쪽의 상황에 대해 크게 관심이 가질 않았는데, 큰 실례를 범한 셈이 되었습니다. 광치기해변은 그냥 해변이 아니었습니다. 180만년의 화산잔재인 빌레가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때마침 썰물 때라서 이 특별한 빌레더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왜 사람들이 그리 몰렸는지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썰물에 훤히 드러난 특별한 빌레 무리들을 천천히 오랫동안 밟았습니다.
광치기 해변을 지나 신양리 해변으로 들어서니 신양리층이라는 성산일출봉 일대의 특별한 퇴적암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누룩빌레라는 명칭은 특유의 황갈색 바위색깔이 독특해서 붙여진 별칭이랍니다.
비록 완이녀석 물분탕질 욕구때문에 그거 막느라 눈길과 목청이 분주했고, 준이녀석 무기력의 국면에서 바지에 손넣고 다니는 꼴 때문에 성질이 좀 났지만 반들반들한 돌 하나 주어들고 바지에 손들어가면 던질꺼라고 협박과 으름장을 놓았더니 생각보다 잘 먹혔습니다. 바지에 손 넣으려는 찰라 돌을 올리는 시늉을 바로 했더니 바로 꼬리를 내립니다. 이리 쉬운 방법이... 신양리 해변에 좀 미안하지만 그 돌을 챙겨서 왔습니다.
180만년을 버텨준 이 멋진 너럭바위 위를 걷고 있는데 이런 씨름을 해야되다니... 틈새를 이용해 경치감상이라도 할라치면 완이녀석 바지내리고 아무렇치 않게 소변깔기고, 내 참 언제 이런 풍경을 공유할런지... ㅎㅎ 그래도 좋습니다. 때맞춰 썰물에 드러내준 누룩빌레의 태고적 흔적은 이제 또하나의 경치보물이 되었습니다. 맑디맑은 가을햇살과 독특한 바다풍경이 어우러져 태균이가 찍어주는 사진도 모두 일품입니다.
완이의 물유혹 단속이 너무 힘들어 돌아오는 길은 보도블럭이 깔린 도로로 걸어왔는데 제주도 특유의 식물들이 길가에 지천이라 이것도 신기합니다. 문주란도 많지만 꽃대를 높이 올려 흰 꽃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실유카도 여기서는 참 보기좋습니다. 영흥도집에 전주인이 심어놓은 실유카 두 대가 있는데 잎끝이 바늘이라 가까이 갔다가는 그냥 찔리는 통에 공포의 대상인데, 환경에 따라 이렇게 모습이 다릅니다.
대략 8천보 정도에서 오늘은 끝났지만 일출봉 쪽으로 조금더 가면 충분히 만보감입니다. 자주 이용해봐야 되겠습니다.
내일 올라가면 일주일은 준이나 완이 모두 집에만 있을터, 조금이라도 더 해주자 싶어 섭지코지 뒷편 우리만의 바다로 갔습니다. 입동이라고 하지만 햇살이 따스해 아직까지는 바닷물놀이 여지가 있습니다. 몸살앓듯 그토록 물에 들어가고자 했으니 완이소원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고... 밀물이 얼마나 거세게 닥치는지 암석에 부딪치고 부서지는 물살들도 오늘은 장관이네요.
제주도 참 좋습니다. 매일 즐겨도 끝없이 쏟아지는 즐거운 태고적 자연들, 오늘의 발견은 그야말로 보물급! 일주일 떠나있어도 그리울 것 같습니다.
첫댓글 제주도에서 대표님 글과 풍광 보며 놀라고 부러워합니다. 참말로 앉은뱅이도 아닌데, 핑계거리를 찾아도 유구무언이네요.
누런 빌레도 좋고, 기어이 입수한 완이 모습도 좋습니다. 태균형님도 살짝 서늘한 물을 경험하네요.
일주일간 완이보다 준이씨가 더 걱정되네요. 일주 내내 은둔자로 지낼까봐서요.
일주일 후 다시 걷는 길 위의 아름다운 풍광과 수많은 접촉이 있을거니까 안심입니다.
안녕히 무사히 다녀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