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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34 - 다카쓰키의 카부산지 절에서 단풍을 보며 천태종과 숲을 생각하다!
2024년 11월 28일 오사카 우메다 (梅田) JR 오사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카쓰키 (高規) 역에 도착
해서 북구 정류소 1번 승차장에서 하라 오하시 (原大橋) 행 63번 버스를 타고 카부산구치
(神峰山口) 정류소에 내려 마을로 올라가 산속을 20분을 걸어서 카부산지 (神峰山寺) 에 도착합니다.
절의 입구인 니오몬 앞에 도착해 400엔을 내고 절 안으로 들어가니 여긴 정말 새빨간 단풍 천지라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흡족한 마음인데.... 카부산지 (神峰山寺 신봉산사,
가미미네잔지) 는 오사카부 북쪽 다카츠키시( (高規市) 하라(原) 에 있는 천태종의 불교 사원입니다.
본존은 코스미가 새긴 비사문천으로 엔노교자 오즈누가 절을 세운 이래 1300년 이라는 역사에다가....
20 종류에 300그루의 나무들이 훙엽이 되니 아름다운 단풍을 장기간, 산 전체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미쓰히토왕(천황) 의 아들 가이세이 태자가 진호잔지 수도원장이 되어 황실의 보호아래 히에이산, 가쓰라기산
과 함께 불교의 성지로서 일곱 절과 많은 승려를 소유했으니 붉은 인장에는 국화 문양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천태종 (天台宗, Tiantai ) 은 《법화경》 을 소의경전 으로 하는
불교의 종파로 중국에서 발생하여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중국에서 천태학은 북제의 혜문과 혜사(慧思, 515-577에 의해 연구되었는데, 종파
로서의 천태종은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에 의해 수나라시대인
594년에 개창되었으니..... 천태종은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들 중에 하나 입니다.
한국에서 천태학은 삼국 시대인 6세기 부터 연구되었는데, 종파로서의 한국의 천태종,
즉 해동 천태종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고려 숙종 2년(1097년) 에 개창
되었으며 일본의 천태종은 전교대사(傳敎大師) 사이초에 의해 805년에 개창되었습니다.
천태종의 교학을 천태교학(天台敎學) 이라고 하며, 천태교학은 《법화경》을 근본 경전
으로 하여 천태지자대사 지의가 대성한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교학 중 하나 입니다.
천태교학은 실상론 (實相論) 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요 교의 및 수행 체계로는 삼제원융 (三諦圓融),
일념삼천 (一念三千), 사종삼매 (四種三昧), 일심삼관 (一心三觀), 교관이문( 敎觀二門) 이 있습니다.
오시팔교 (五時八敎) 는 중국의 천태지자대사 지의가 주장한 천태종의 교판으로,
오시팔교 교판은 한 종파로서의 천태종을 확립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태종은 인도의 용수(龍樹, Nāgārjuna, 150?- 250?) 로 부터 발단되어, 중국 북제의 혜문 (慧文) 과 혜사
(慧思 - 577) 를 거쳐 수나라 (581-618) 의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 로 계보가 이어진 것으로 봅니다.
혜문은 용수의 저작인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권에서 일체지(一切智) · 도종지(道種智) · 일체
종지 (一切種智) 의 삼지(三智 : 세 가지 지혜) 를 한 마음 가운데서 얻는다는 "삼지일심
중득(三智一心中得)" 의 일심삼지(一心三智) 또는 일심삼관(一心三觀) 의 묘리를 깨우치려고 합니다.
또한 용수의 《중론(中論)》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 에 나오는 아래 인용한 "인연소생법 (因緣所生法
: 법은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다)" 의 게송을 보고 공제 (空諦) · 가제 (假諦) · 중제 (中諦) 의 삼제 (三諦)
의 이치를 깊이 깨우쳤으니..... 혜문은 이러한 깨우침을 혜사에게 전함으로써 천태종이 일어날 기초를 열었습니다.
지의 (538-597) 의 천태교학은 지의의 제자인 관정 (灌頂: 561-632) 에 의해 기록되어,
천태3대부 (天台三大部) 라 불리는 《법화현의 (法華玄義)》·
법화문구 (法華文句)》 · 《마하지관 (摩訶止觀)》 과 다른 기타 논서들이 편찬되었습니다.
지의 이후로, 천태교학은 지위 (智威: ?-680) · 혜위 (慧威: 634-713, 천태종 제7조) · 현랑(玄朗: 673-754) ·
담연(湛然: 711-782) 에게 계승되었으니 담연은 천태 3대부에 주석을 달고 한때 천태종을 부흥시켰습니다.
담연 (湛然: - 782) 에 의해 일시적으로 천태종이 부흥하기는 하였으나, 당나라 무종 (840-) 때의 회창의 폐불
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불교 탄압과 당 말기와 오대 십국 시대의 전란을 거치면서 천태종의 많은 논서들이
상실되었으며 후에 송나라(960-1279) 시대 천태종(조송천태 · 趙宋天台) 의 부흥이 있었으나 차차 쇠퇴합니다.
일본 천태종의 창시자 고승 사이초 (最澄, 767 -822) 는 12세에 국분사 (國分寺) 에 들어가 행표 (行表) 를
스승으로 모시고 유식의 교의를 배웠으니 14세에 출가하여 18세에 행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니다.
후에 사이초는 히에이산에 들어가 12년간 수행하면서 근본중당(根本中堂) 을 건립하고, 574년(천평승보 6)
에 중국의 승려 감진(鑒眞) 이 일본에 올 때 들여왔던 중국 천태종의 서적들과
《대승기신론》·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을 학습하였으며, 법화강경회 (法華講經會) 등을 개최했습니다.
804년에 사이초는 구카이 (空海, 774- 835) 와 함께 당나라로 들어가서 805년
9월에 그는 9개월 동안의 구법 (求法) 유학을 마치고 230부 460권의
천태종과 밀교의 경전을 가지고 귀국한 후에 정식으로 일본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818년에 사이초는 《산가학생식(山家學生式)》 을 써서 조정에 상주(上奏) 하고, 히에이산에 대승 교단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자신이 19세 때 동대사에서 받았던 소승 252계를 폐기한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나라 시대의 육종 (六宗) 과 결별한다는 의미였으며 820년 《현계론(顯戒論)》을 저술하여
천태산 원돈계 (圓頓戒) 의 종지를 설명하였으며 ....사이초는 822년 히에이산에서 입적했으니
전교대사 (傳敎大師) 란 시호를 받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대사 시호를 하사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일본의 천태종은 한국이나 중국의 천태종과는 다르니, 중국 천태종에다가 밀종과 선종 및 보살원계
(菩薩圓戒) 를 부가하여 형성된 종파로 나라 시대(710-794)의 불교와 달리 헤이안
시대(794-1185) 와 이후의 종파는 단순한 중국 불교가 아니라, 다원적인 일본 불교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의 천태종은 중국 천태종의 개조 지의의 천태법계를 전파하고 일념삼천 (一念三天) 과
삼제원융 (三諦圓融) 등의 이론을 내세웠으며 그리고 이 기초 위에서 원교
(천태) · 선 · 원계 (대승계) · 밀교의 4교를 합일하는 사종겸학 (四宗兼學) 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산에 전해지는 '진펑산 사원의 비운' 에 따르면 697년(분무왕 원년) 에 한 관리가
가쓰라기산 에서 이 산을 방문하여 가쓰라기산과 북쪽 능선 사이를 오가는
황금빛 빛을 보고 지주신 긴비 라도코의 발표에 따라 사원을 짓고 영수를 얻었습니다.
Kim Yi Luo Douzi 는 이 영혼의 나무로 4 개의 Bishamon Heaven
인물을 조각했으니...... 일본 최초의 비샤몬텐 이라고 합니다.
이 4개 중에 첫 번째 동상은 이동하지 않고 보물 탑 사원의 본전이 되었으며 다음 동상은 북동쪽으로
날아가 구라마 사원의 주요 동상이 되었고, 세번째 동상은 신키지 사원의 본전으로
날아갔고, 네번째 동상은 북쪽 능선으로 날아가 오쿠인 레이우닌 사원(혼잔지) 의 동상이 되었답니다.
774년(호카메 5년), 가이세이 태자는 미로쿠지(현재 미노시의 가쓰오지 절) 에서 산에 들어와 처음에
6개의 절을 두 절이 있는 12개의 절로 나누고, 고쿠라쿠인 절과 2개의 벳쇼 절을 창건하여
주코의 창시자가 되었으니 세자의 아버지인 미쓰히토왕(천황) 이래로 역대 왕실 신사이기도 합니다.
동아일보 이미지 사회부 차장등 기자 8명이 일본을 취재해서는 日 ‘산촌의 기적’...
페목재 발전소 세우자 인구-관광객 늘었다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日 인구소멸지역 되살린 숲 : 오카야마현 마니와시는 산림 면적이 80%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적
산촌이다. 목재 생산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주택 경기 침체로 목재 수요가 줄며
젊은층이 떠나고 인구도 급감해 인구소멸 지역으로 전락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은 ‘숲’ 이었다.
버려지던 폐목재를 원료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다시 목재를 가공
하며 친환경 순환 경제를 이뤄냈다. 지속가능한 산촌 모델로 주목받자 도시 청년들까지 하나둘
정착했다. 숲을 잘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결과적으로 숲도 사는 ‘그린시프트’ 를 이뤄낸 것이다.》
“친환경 산림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산촌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지난달 21일 일본
중부 오카야마현 마니와시(市) 에서 만난 나카야마 나오키 씨(35) 에게 산촌 생활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카야마 씨는 돗토리현 소재 대학의 전기전자공업과를
졸업한 뒤 2014년 마니와시 목재 및 발전 기업인 메이켄(銘建)공업에 입사해 이곳에 정착했다.
일본 또한 젊은 사람들은 대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지만, 역으로 산촌으로 들어와 12년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재 회사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관리 및 기계 운용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나카야마 씨는 “바이오매스 발전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며 이곳을 택한 이유를 말했다.
● 인구소멸지역에 日 최대 폐목재 발전소 : 나카야마 씨가 정착한 마니와시는 2005년
3월 인구가 줄어든 9개 마을을 합해 새로 탄생한 시다. 관할 내
산림 면적이 80%에 달해 임업과 목재 생산이 지역 경제 생산의 약 30% 를 차지했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며 주택 경기가 침체됐고 목재 수요도 줄었다. 다른 산촌 처럼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났고 고령화가 심해졌다. ‘3K’ ( 위험하고
고되고 불결한 일· 3D의 일본식 표현) 로 인식되는 임업과 목재 산업의 종사자는 갈수록 줄었다.
이런 지역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목재 가공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지, 톱밥 등 폐목재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다. 폐기물 감량은
물론 나무가 흡수한 탄소를 발전 과정에서 다시 배출하는 것이라 탄소 중립 효과도 있다.
매연저감설비를 통해 대기오염물질 발생도 최소화했다. 메이켄공업은 1984년 발전능력 175kW
짜리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지역에 처음 만들었다. 이어 1998년 1950kW짜리를 추가했다.
2015년엔 마니와시와 메이켄공업을 비롯 10개지역 기업들이 함께 출자해 ‘마니와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건립했다.
마니와시 관계자는 “‘폐목재를 버리느니 한번 회사에서 필요한 전기를 직접 만들어 보자’란 생각이었는데 예상
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생산됐다”며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던 다른 기업들까지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총자본금 2억5000만 엔(약 25억 원) 중 마니와시도 3000만 엔을 출자했다. 이곳은 일본 최대
목재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됐다. 연간 8만7500MWh 의 전력을 생산해 약 20억엔의
매출을 올린다. 버리는 목재를 재활용하면서 연간 1억 엔이 들었던 폐기 처분 비용도 절감했다.
● ‘산촌의 기적’ 보러 연 4만 명 관광 : 폐목재로 만든 전기는 지역 기업, 관광서, 학교, 주택에 공급된다.
마니와시의 에너지 자급률은 72%에 달한다. 목재 재활용으로 목재도 살고, 지역도 사는 ‘친환경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산촌 경제’ 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촌의 기적’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마을 사람들은 2006년 투어 상품도 만들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출발해도 반나절 넘게 걸리는 이곳 벽지를 다녀간 사람이 연 4만명이 넘는다.
나카야마 씨도 이런 지역의 가능성을 믿고 정착했다. 6년 전 회사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곳에 새집을
짓고 세 아이를 낳았다. 그는 “더 공부하고 노력해 친환경 발전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마니와시에서 미래를 그리는 것은 나카야마 씨뿐만은 아니다. 메이켄공업에는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찾아오고 있다. 1923년 창업한 메이켄공업은 기존 집성판보다 강도가 높은 CLT (합판을
직각 교차해 압축시켜 강도를 높인 집성판) 를 생산한다. 목재로 지어진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뿐 아니라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시설에도 마니와시에서 생산된 CLT 가 사용됐다.
메이켄공업 인사과 관계자는 “우리는 100년 넘게 목재를 다룬 회사다. 바이오매스 발전뿐 아니라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이를 배우러 도쿄나 오사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며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이 15명 정도” 라고 했다.
마니와시 본사와 공장에는 약 300명이 근무 중인데 20∼40대 직원이 전체 직원의 60%다. 연령은 39.8세다.
일본의 제조업 근로자 평균 연령이 43.1세(2021년 기준)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젊은 회사인 것이다.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 :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숲을 더 가꾸고 있다. 전체 산림 중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 57%가 넘는다. 보존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꾸고 활용하면서 숲도 되레 더
커졌다. 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 목재 기업은 벌목부터 목재 가공까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지난해부터 연간 1500t의 음식물쓰레기와 배설물 등을 수거한 뒤
발효시키고, 이 과정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로 발전을 한다. 액체 비료도
생산된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게 마니와시의 목표다.
2018년에는 일본 정부가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 의 시범 도시로 선정 되기도 했다.
미야자키대 산림환경학과의 사쿠라이 린 부교수는 “마니와시의 시민, 기업가, 공무원
들은 ‘숲을 통해 우리가 함께 지속하고, 살아갈수 있다’ 는 공통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어 샄쿠라이 교수는 "숲에 대한 젊은이들의 그런 믿음이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 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