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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부인 루이스 | 둘째 부인 장 | |
| 결혼 | 1922~1929 | 1937~1964 |
| 성격 | 사교계·상류사회 | 비교적 조용하고 가정적 |
| 맥아더와의 관계 | 초기에는 열렬했으나 점차 악화 | 평생 동반자 |
| 필리핀과의 관계 | 필리핀 생활을 힘들어함 | 필리핀에서 맥아더와 함께 생활 |
| 맥아더의 어머니 | 핑키 생존 중 결혼생활 악화 | 핑키 사망 직후 맥아더와 가까워짐 |
특히 장과 맥아더는 1937년에 결혼해서 1964년 맥아더가 사망할 때까지 27년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외아들 아서 맥아더 4세도 낳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어머니와 지나치게 가까운 아들은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지 않나?”라는 관점에서 맥아더를 보면 오히려 재미있는 결론이 나옵니다.
맥아더는 어머니와 매우 가까웠지만, 그것 자체가 첫 결혼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첫 결혼의 실패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만난 장 페어클로스와는 매우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맥아더의 인간적인 면에서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첫째 결혼에서는 '군인 맥아더'와 '사교계의 남편 맥아더'가 충돌했지만, 장과의 결혼에서는 장이 맥아더의 군인의 삶 자체를 받아들였다는 차이가 상당히 커 보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자녀는 두 여인에게서 어떠한가
네. 이 부분은 맥아더의 가족사를 보면 꽤 선명합니다. 맥아더에게는 첫째 부인 루이스와의 자녀는 없었고, 둘째 부인 장 페어클로스와의 사이에서 아들 1명을 두었습니다.
첫째 부인 루이스 크롬웰 브룩스(1922~1929): 자녀 없음.
둘째 부인 장 페어클로스(1937~1964): 아들 아서 맥아더 4세(Arthur MacArthur IV) 1명. 1938년 2월 21일 마닐라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아서 4세의 출생지가 의미가 있습니다
아들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맥아더가 필리핀군을 만드는 데 전념하던 때였습니다. 즉 맥아더의 인생에서 필리핀이 가장 중요한 무대였던 시기에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서 4세의 이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Arthur MacArthur Jr. — 맥아더 본인
Arthur MacArthur III — 맥아더의 아버지
Arthur MacArthur IV — 맥아더의 아들
따라서 맥아더 가문의 군인 전통을 이어가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갔습니다
아서는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극도로 사생활을 지키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아서가 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엄청난 명성 때문에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질 것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맥아더가 1964년 사망했을 때 아서는 26세였습니다. 이후에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맥아더의 가족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대비가 생깁니다.
아버지 맥아더
→ 미국 육군 원수
→ 필리핀 육군 원수
→ 태평양전쟁 최고 지휘관
→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
→ 한국전쟁 유엔군 사령관
반면
아들 아서
→ 아버지의 유명세에서 벗어나려 함
→ 군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음
→ 철저한 사생활 보호
즉 맥아더는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사람'이었지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역사적 이름에서 자신을 분리하려 했던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앞에서 계속 살펴보신 맥아더와 어머니, 두 번의 결혼, 필리핀과의 관계를 연결하면 가족사가 상당히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어머니 핑키 → 맥아더에게 강한 영향
첫째 부인 루이스 → 자녀 없이 이혼
어머니 사망 → 장 페어클로스와 가까워짐
장과 결혼 → 필리핀에서 아들 아서 출생
아서 → 아버지와 다른 조용한 삶
결국 맥아더의 가족사에서 필리핀은 어머니의 죽음과 두 번째 결혼, 그리고 유일한 자녀의 탄생이 모두 겹치는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맥아더가 필리핀에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면, 단순히 “필리핀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해집니다.
특히 아서 4세의 출생지가 의미가 있습니다
아들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맥아더가 필리핀군을 만드는 데 전념하던 때였습니다. 즉 맥아더의 인생에서 필리핀이 가장 중요한 무대였던 시기에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서 4세의 이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Arthur MacArthur Jr. — 맥아더 본인
Arthur MacArthur III — 맥아더의 아버지
Arthur MacArthur IV — 맥아더의 아들
따라서 맥아더 가문의 군인 전통을 이어가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갔습니다
아서는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극도로 사생활을 지키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아서가 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엄청난 명성 때문에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질 것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맥아더가 1964년 사망했을 때 아서는 26세였습니다. 이후에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맥아더의 가족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대비가 생깁니다.
아버지 맥아더
→ 미국 육군 원수
→ 필리핀 육군 원수
→ 태평양전쟁 최고 지휘관
→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
→ 한국전쟁 유엔군 사령관
반면
아들 아서
→ 아버지의 유명세에서 벗어나려 함
→ 군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음
→ 철저한 사생활 보호
즉 맥아더는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사람'이었지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역사적 이름에서 자신을 분리하려 했던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앞에서 계속 살펴보신 맥아더와 어머니, 두 번의 결혼, 필리핀과의 관계를 연결하면 가족사가 상당히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어머니 핑키 → 맥아더에게 강한 영향
첫째 부인 루이스 → 자녀 없이 이혼
어머니 사망 → 장 페어클로스와 가까워짐
장과 결혼 → 필리핀에서 아들 아서 출생
아서 → 아버지와 다른 조용한 삶
결국 맥아더의 가족사에서 필리핀은 어머니의 죽음과 두 번째 결혼, 그리고 유일한 자녀의 탄생이 모두 겹치는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맥아더가 필리핀에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면, 단순히 “필리핀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해집니다.
맥아더 장군이 첫번째 결혼이 나이 41세였다면 두번째 결혼은 몇세였고 아내와의 나이 차이는?
네. 여기서는 맥아더의 나이와 장 페어클로스의 나이를 정확히 계산하면 꽤 흥미롭습니다.
맥아더: 1880년 1월 26일생
첫째 부인 루이스 크롬웰 브룩스: 1890년생
둘째 부인 장 페어클로스: 1898년 12월 28일생
첫 번째 결혼
맥아더는 1922년 2월 14일, 만 42세에 루이스와 결혼했습니다. 루이스는 당시 31세로, 약 11살 차이였습니다. PBS도 맥아더 42세, 루이스 31세라고 명시합니다.
두 번째 결혼
맥아더는 1937년 4월 30일, 만 57세에 장 페어클로스와 결혼했습니다. 장은 당시 38세였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약 19년입니다.
즉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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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부인 루이스 | 둘째 부인 장 | |
| 결혼 연도 | 1922 | 1937 |
| 맥아더 나이 | 42세 | 57세 |
| 아내 나이 | 31세 | 38세 |
| 나이 차이 | 약 11세 | 약 19세 |
| 결혼 결과 | 1929년 이혼 | 1964년까지 27년 결혼생활 |
특히 재미있는 것은 두 번째 결혼 당시 맥아더가 이미 57세였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인데, 오히려 첫 결혼보다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미 육군 자료도 1937년 장 페어클로스와 결혼했다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앞에서 말씀하신 어머니 핑키와의 관계를 연결하면 더 흥미롭습니다. 맥아더의 어머니는 1935년 12월 마닐라에서 사망했고, 맥아더는 그 뒤 장과 가까워져 1937년에 결혼했습니다. 장은 이후 맥아더가 1964년 사망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57세의 노장군이 38세 여성과 결혼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맥아더에게는 어머니를 잃은 직후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고, 필리핀에서 아들까지 얻으면서 가족생활이 새롭게 시작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유명한 맥아더의 말은 노래 가사에서 있는 말인가
네. 원래부터 맥아더가 만든 문구가 아니라, 영국 군인들이 부르던 오래된 군가의 가사였습니다. 맥아더가 1951년 유명한 고별연설에서 이 가사를 인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맥아더의 말처럼 알려진 것입니다.
원래 군가의 제목도 〈Old Soldiers Never Die〉(노병은 죽지 않는다)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군 병영에서 불리던 노래로, 당시에는 다소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군가였습니다. 기본적인 후렴은 다음과 같습니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simply fade away.
출처 입력
즉,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출처 입력
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찬송가 **〈Kind Thoughts Can Never Die〉**를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맥아더가 이 노래를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합니다
1951년 4월 19일, 한국전쟁에서 해임된 맥아더가 미국 의회 합동회의에서 고별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 생활을 돌아보다가 젊은 시절부터 기억하던 병영 군가의 후렴을 꺼냈습니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출처 입력
그리고 곧바로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And like the old soldier of that ballad, I now close my military career and just fade away…”
출처 입력
즉 “나도 이제 그 노병처럼 군 생활을 마치고 사라져 가겠습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미국 의회도 이 연설을 맥아더의 마지막 군 경력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역사적인 연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역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맥아더의 연설이 워낙 유명해지자 1951년 바로 그해에 이 문구를 이용한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진 오트리(Gene Autry)가 맥아더의 말을 소재로 한 〈Old Soldiers Never Die〉를 녹음했고, 빙 크로스비 등 여러 가수들도 같은 제목이나 문구를 이용한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는 맥아더의 고별연설이 워낙 큰 사건이어서 음반업계가 빠르게 노래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정확히 하면:
영국군 병영 군가
↓
“Old soldiers never die, they simply fade away”
↓
맥아더가 1951년 고별연설에서 인용
↓
맥아더의 명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짐
↓
그 직후 실제로 여러 가수들이 이 문구를 노래로 제작
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한국전쟁에서 해임된 바로 그 순간에 나온 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노병의 멋있는 명언”으로만 보면 맥락을 놓치게 됩니다.
맥아더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나는 패배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50년 가까이 군인으로 살았고, 이제 군복을 벗고 역사 속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인연이 갑자기 끊어졌다”는 이야기와 연결하면, 이 문장은 더욱 애잔하게 들립니다. 한국전쟁이 맥아더의 현역 군인으로서의 마지막 무대였고, 그 마지막 퇴장이 바로 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노래 가사를 인용한 연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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