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올 집에 정자를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이사 날짜가 다음 주라서, 그때까지 맞추려고 작업을 서둘렀다. 오랜만에 통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다보니 기운이 펄펄 나는데, 일하는 동안 꽃과 풀을 보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웠다. '무궁화 꽃....' 놀이를 할 때처럼 잠깐 한눈을 팔아도 봄은 벌써 이만큼씩 무르익는다. 하여간 내 조수는 도서관에 가야하기 때문에 나 혼자 뚝딱거려야 했다.
12센티미터 두께의 통나무로 정자의 첫 기둥을 세웠다. 누가 기둥을 잡아 준다면 작업이 훨씬 쉬운데 그럴 수 없어서 가새를 세웠다.
기둥마다 일일이 가새를 세워야 하니 일이 두 배로 힘들었다. 나중에 다 철수를 하는 것까지 치면 세배는 더 힘들다.
이때 마침 조수가 집에 들렀기에, 올커니 하고 불렀다. "못이 모자라서 가져와야겠어. 통나무 꼭 붙들고 있어." 이러고 우리 집으로 와서 물도 한모금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하고 못을 한웅큼 집어들고 갔더니, 순진한 우리집 조수, 그때까지 통나무가 쓰러질까봐 꼭 붙들고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안 잡아도 안 쓰러지는데...." 했더니 약이 올라서 펄쩍펄쩍....ㅋㅋ
오후엔 또 혼자서 일을 했다. 높은 곳에 서까래 프레임을 걸어야 하는데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기둥 꼭대기에 작은 못을 먼저 쳐 놓고, 거기에 걸치기로 했다.
못 위에 각재를 걸어 놓으니, 따로 조수가 필요 없었다. 작업이 끝난 후에 작은 못은 빼 버릴 것이다.
이렇게 뺑 돌아가며 서까래 프레임을 달았다.
이젠 서까래 중심을 잡아야 할 차례. 수평, 수직을 잡고 중심점에 표시를 했다.
다루끼라는 각재로 중심을 잡고 끈으로 친친 묶었다.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못을 박을 수 없었기 때문.
사다리 꼭대기에서 까치발까지 들고 아슬아슬 쇼를 했다. 키가 10센티만 더 컸어도 건축사에 이름을 남겼을 텐데.... 혼자 중얼중얼 응원도 해주고... 근데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지가. ^^
상판을 먼저 설치했더라면 사다리 곡예를 안해도 되었을 텐데, 상판에 쓸 나무가 그때는 없었다. 꼭대기 작업이 끝나고 나니까 목재소에서 트럭이 나무를 싣고 달려왔다. 아침에 온다더니 참 빨리도 온다.
이때 수업을 끝낸 선유가 아빠를 돕기 위해 망치를 들고 달려왔다. 아, 망치만 들고 온 게 아니다. 커피와 과일까지 들고 왔다. 아들 웃는 모습에 피로가 싹 씻겼다.
오래 전부터 아빠가 뚝딱거리는 모습을 보아온 터라, 선유는 제법 망치질을 잘 한다. 바이올린 켜는 손으로 망치질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아들이 도와 줘서 오늘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정자 모양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현재는 서까래가 조금 짧아 보이지만, 처마도리까지 하면 모양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가운데 세운 각재는 나중에 잘라버릴 것이다. 그땐 지붕이 저절로 공중부양 된다. 상판 가운데는 왜 비워뒀을까? 그거야 내 맘.
작업을 끝내려는데 선유가 곤줄박이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았다. 창문이 허공인 줄 알고 유리창에 볼을 부비며 날갯짓을 해대던 곤줄박이.... 한참을 데리고 놀다가 "박씨 하나 물어와!" 하고 날려보냈다.
봄바람 꽃바람 속에 꽃잎들 뚝뚝 떨어지던 날, 장군봉 품 속에 망치소리 땅땅 울리던 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마음을 사로잡던 날, 웃음이 나고 콧노래 절로 나오던 그런 날....
2008/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