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도솔암
〇 도솔봉 도솔암
최남단 반도의 끝자락 해남군 송지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곳은 땅끝이다. 더 이상의 막막함이 아닌 또 다른 출발선상 반도의 끝자락엔 도솔봉이 있다. 깎아 질듯, 물 한 방울 없는 암벽 밑의 제비집 처럼 축조되어 있는 삼라만상의 수도정진 끝은 어디까지 일까! 연등불빛 보다 화사한 석등이란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한다. 가시넝쿨과 같은 속세의 인연도 끝이 있을까. 갈 곳이 없다는 불안함과 허망함에 봉착한 땅끝 도솔암은 희망의 시발점과 도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싶다. 광활한 평야와 멋스러운 산과 바다 누가 이곳을 종착역으로 단정지울 수 있을까 한다. 어둡고 캄캄한 터널 끝의 밝은 빛이 있듯이 이곳 땅끝 도솔암 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희망의 빛이 아닐까 한다. 세상과 부딪쳐 입은 상처로 남루해진 몸을 추스르고자 부처님께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마음가짐을 다잡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속세의 중생들이 겪는 좌절과 절망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자 하는 이들과, 불도의 수행자들이 열반에 들기 위한 승려들의 기도 도량인 도솔암. 해남 땅끝 마을에 위치한 달마산 달마봉에 가면 금강산의 버금가는 병풍처럼 둘려 쌓여 있는 풍광을 감상 할 수 있다. 달마산은 해발 489m정도이다. 도솔암은 그 중 도솔봉에 위치해 있다. 도솔봉 정상에서 등산로를 따라서 800m가면 사방이 기암절벽 속의 요새의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 사방이 암산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고, 밑으로 깎아내리듯 한 절벽은 아찔함의 느낌을 들게 한다. 도솔암으로 가는 풀잎향기와 뻐꾸기 새소리는 귓전의 전율을 울리고, 길가의 나무 가지 숲속 사이로 천공의 잎사귀들이 소란스지 않게 사각사각 대답하고, 낮게 드리워진 구름은 주위를 맴돌아 잡힐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도솔암에 도착해 만난 인연은 아무도 없다. 기암괴석 사이를 비집고 틀에 박힌 암자를 어떡게 지어 놓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암자가 품고 있는 산 아래 전경은 푸른 바다 쪽빛과 벼이삭, 반짝이는 비닐하우스, 찰랑찰랑 흐르는 담수의 물보라는 파노라마가 펼쳐진 풍광일색 이다. 젖은 듯 들려오는 쉰 목소리 같은 안개도 그 허망이 눈앞의 모든 욕심을 부질없다 소리치는 것 일까! 발끝으로 전해 오는 속세의 모든 연줄은 그저 산 아래 허리 굽어진 욕망일 따름이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다고 하나 나에게는 건축미학 개념일뿐이다. 안내판에 적힌 연혁을 보니 문득 의상 대사와 원효 대사의 일화는 무엇인가. 의상 대사와 원효 대사의 해골 속에 담긴 물 한 바가지로 그들은 각기 다른 깨달음을 얻었듯이 도솔암에 오르면 바다의 해무와 함께 일렁이는 자연의 이치, 붉은 흙빛에서 전해오는 각기 다른 느낌으로 숙연하게 만든다.
미황사
〇 미황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그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고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현종 1)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과 달마산의 자연조화로 아름다움을 잊지않는다.
사성암
〇 구례 오산 사성암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문척면 죽마리 오산(해발 530m)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은 4명의 고승, 즉 원효, 도선국사, 진각, 의상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오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조망을 갖고 있다.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 솟은 절벽이 있고 풍월대, 망풍대, 신선대 등 12비경으로 절경이 조성이 되어 있다. 현재 사찰은 조그마한 소규모의 목조 기와집이며, 암자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애여래입상의 연대가 고려 초기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사성암의 창건 내력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오산 바위 벼랑 사이에 암자가 박 흰 듯 걸려 있으며 절묘한 가람배치에 입이 딱 벌어진다. 바위틈을 파고들어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보이는 건물이 없다. 여느 사찰과 달이 마당이 없고 서 있는 자체가 마당이다. 손바닥만 한 사이로 가파른 돌계단은 이어지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소원바위의 기다림에 세상을 떠난 여인의 스품에 숨을 거둔 남편의 전설이 있고 암자 뒤로 돌아서면 섬진강을 끼고 도는 구례, 곡성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낳은 수려한 고장이다. 봄이면 섬진강 연안도로의 화사한 벚꽃, 여름이면 계곡마다 짙은실록, 가을이면 붉게 타오르는 만산홍엽, 겨울이면 순백색의 하얀 눈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택리지 아닐까 한다.
선암사 선승교
〇 승선교
1963년 9월 2일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다.조계산 계류 건널목에 놓인 돌다리 이다. 다리는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가설이 없고 자연암반이 깔려 있으며 홍예 건물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 냇가와의 사이에 자연석을 축조 쌓아 석벽을 이루듯 무지개모양 이다. 윗면은 평평하게 아래부위는 터널형식으로 자연미를 잘 살려놓고 있다.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측간 왼쪽 스님, 오른쪽 비구니 스님 사용
첫댓글 오지를 탐험하듯.. 심산에 숨은 암자를 찾아 기록을 남긴 방송프로그램이 있던데..초의님도 그런 곳을 찾아 기행문 정도를 남기려나 봅니다. 화이팅!
휴가중 가족들과 함께 두루두루 친견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해남 대흥사를 6월에 다녀왔는데 오래된 나무와, 풍요로운 계곡의 물, 적재적소에 알맞은 표지판, 한숨 돌리려면 나타나는 암자들, 초보등산이라 힘은 들었지만 다시 가고 싶을만큼 멋진 곳 이었어요~가족들과 함께 갔다니 무척 부럽습니다.^&^
감사 합니다. 기회가 대시면 도솔암 구경 해보시고 미황사 가 지척거리에 있어요~
감사합니다..제가 정말 가보고 싶은절을 올려 주셨네요...
이카페도 초의님이 올리신 글따라 가입하게 되었네요..감사합니다
가정에 부처님 가피가 두루 하시길 바래 봅니다..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