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거~리' - 창고극장
그간 이만희 극본 강영걸 연출의 이 작품을
열정적 관객으로서 때론 스텝으로 참여하면서 접하게 되었다.
10수년 전, 제일화재세실극장과 인켈아트홀에서..
제일화재..에선 최종원, 정진각, 연운경이 출연했고
인켈아트홀에선 신철진, 박진영,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여배우가 했다.
연극에서 얼마나 연기를 못했으면 이름 기억이 안 날까~
배우 3인분 중에 홍일점 1인분으로 멋진 연기를 보인 건 - ‘연운경’이다.
배역에 캐릭터에 캐리어까지 딱 맞아 떨어지는 아름다운 궁합!
--- 이번에, 창고극장에서의 ‘아름다운 거~리’.
극중 인물들 명찰은 ‘안광남’ ‘민두상’ ‘고이랑’이다.
순서대로 배우들 명찰은 ‘최효상’ ‘최연식’ ‘김미경’으로 캐스팅이 됐다.
연출은 ‘정대경’. 애초부터 이 작품을 작곡했던 음악가다.
창고극장의 무대.. 아담하다 못해 소담스럽다.
어쩜 그리도 아름아름 이런저런 소품들로 알맞게 채워놨는지..
정대경은 소품 컬렉션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다.
소품컬렉션.. 요 대목에 있어 강영걸 선생은 즐기는 경지의 원조다.
무대는 쓰리세븐(3-7)이란 777사진관 내부풍경..
침대라 하기엔 보잘것없이 너무 작은 1인용으로 2개가 놓여있다.
접이식 군용침대 인듯한데 모양새가 낡고 특이하다.
귀에 익은 노래와 함께 연극이 시작된다.
사운드는 공연분위기를 압도한다.
뮤지션 김해영, 그의 목소리 노래다 - 가수는 아니나 소리에는 일품이 있다.
나랑은 한때 기타와 노래로, 순회공연 여행으로, 에피소드가 많았다.
지나간 연극의 기억들.. 아련한 되새김들..
잊을 수없는.. 잊혀 지지 않는.. 낭만의 추억이 한 보따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참, 얼마나 좋을까~
초반 도입부분.. 배우들이 뱉어내는 대사가 잘 안 들린다.
주범은 민두상役의 ‘최연식’인데
그 상대역 ‘최효상’까지 전염성으로 안 들린다.
이것 참, 대사전달이 50%도 안 되니..
이만희 극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특히, 이 ‘아름다운 거~리’는 맛깔 나는 토종언어가 풍성하다.
그 멋지고 재미난 말들이 안 들리니.. 참, 나~
원인은 50대중반, 일상적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60대중반에서 70먹은 노인네 소리로 웅얼웅얼 거리는 게 문제다.
있는 그대로.. 나이 먹은 대로 질러대면 되는데 왜?
아름다운 ‘우리 언어의 성찬’이라 보는 내 관점이 망가질 뻔했다.
다행히 중후반으로 가니 목소리가 젊어져 제소릴 낸다.
전달예술의 핵심이란 ‘말’‘말’..
이게 전달이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소통이 안 되는데 무슨 연극예술?
言語道斷(언어도단)心行處滅(심행처멸)이란 심오한 말도 있는데..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견연기자 배우라면,
특히나 연극에선, 발성 호흡 화법은 필수고 상식이고 생명이다.
그 나이 되도록 연출에게 가르침을 받아야하나?
이만희 극본에서 말이 안 되면 극이 망가진다.
언어적 기교를 부릴 수 없으니 토종연극의 참맛을 살릴 수 없다.
된장을 항아리에 담아야지 플라스틱용기에 담는 꼴..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해 한국어 소통이 안 되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어디 있긴.. 이만희+강영걸 연극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 다반사다.
연극의 시작은 극본이고 이건 연극의 뿌리이자 문학이다.
작가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얘기를 하는 가는
문학적 범주고 거기에 담긴 사상과 철학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배우는 분석을 하고 간파해야한다.
그저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외워 무대에서 주절대는 게 아니란 것.
작가가 쓴 대사 한줄 말 한마디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읊어대는 것과 모르고 주절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게다.
이건 강영걸 선생이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는 말~
연극 ‘불좀꺼주세요’에서도 그랬지만
이 연극에서도 그러하니 아래 자료를 다시 까는데..
구강구조 정상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발음 잘해봅시다’ 자료 -
http://www.otr.co.kr/column_board/view.htm?sid=5760&lsid=13
배우 최연식 땜새 말 많은 공산당이 됐는데..
이만 각설하고, 공연을 해나갈수록 잘 다듬어질 거라 믿는다.
배우 최효상과의 2인극이나 다름없는 공연이니..
연극 ‘아름다운 거~리’는 동네사진관 찍쇠랑 택시운짱이란
50대 사내의 우정이 지나친 순정을 그린 드라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연극인가~
샘터 잡지의 헤드라인과 비슷하지만..
이 작품은 창고극장과 잘 어울리는 듯하다.
연극과 극장, 이것도 악연과 인연이란 어울림의 궁합이 있다.
대개의 연극들은 이런 거 안 따지고 공연한다.
이 작품은 40~50대 중년층을 겨냥한 연극인데,
관객은 거의 아줌마 사모님들이고 아저씨 사장님은 거의 없어 아쉽다.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역정을 통찰하는 참한 작품인데..
‘삼일로창고극장’스러운 repertory공연으로 자리 잡길 바래본다.
아래는 12년전 이 작품을 보고 주절거렸던 흔적이다.
--------------------------------------------------------------------------------
연극 <아름다운 거~리>를 해부해본다.
2000-09-26
불빛들이 모여 산다
바람도 모여 산다
잎새들도 모여 산다
그러나..
여기 서로 떨어져서 더 아름다운 삶의 뜨거운 돌멩이들이 있다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사랑?
서로 맞닿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사람들은 기다리다 돌아간다
프로그램 첫 장을 넘기니 눈에 들어오는 글귀다.
디자인과 카피에서 작품 냄새가 폴폴 난다.
돌멩이들? 인간을 돌멩이 비유하다니!
하긴 돌멩이만도 못한 인간들이 지천에 널려있으니.. 나부터 그런데 모..
무대가 주는 인상은,
인생을 임시로 사는 사람의 집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잘 뵈진 않지만 졸라 너저분해 뵌다.
이사 가는 집처럼 어수선한 느낌도 들고.. 무슨 고물상 안집 같기도 하고,
필요할 때마다 어디서 주워 온 것들로 가득한 느낌..
난지도에 있는 사진관 같기도.. 세트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관객은 한 70명 쯤..내 자린 나열 70번이다.
연극이 시작되면 어두워지고 웬 남자의 노래가 들린다.
귀에 익은 목소린데 듣기 좋다.
어둠 속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불 켜! 안 잤누? 못 잤지. 왜? 너 땜에..’
그러다 한 사내가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뭐에 쿵 찧는다.
‘아얏!’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남의 아픔과 불행은 나의 기쁨과 행복이던가..
잠시 후, 불이 켜진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무대의 이모저모가 선명하게 보여 진다.
희망사진관? 맞다.
난지도, 아니 변두리의 어느 사진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사진관 비슷한데 더 후져 보인다.
두 사내는 후진 침대에서 일어나 말장난을 때린다.
나이는 50대 초 중반 정도?
<으르릉>이라고 세로로 크게 쓴 종이를 들어 보인다.
거꾸로 해도 <으르릉>이 된다.
그것 참, 관객들은 웃음과 탄성으로 반응을 보이고..
나도 저거 누구에게 한번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 사내의 이름은 '안광남'과 '민두상'
안광남 役을 맡은 배우는 '최종원'이고,
민두상 役을 맡은 배우는 '정진각'이다.
둘은 이런 저런 얘길 재미있게 주고받는데 말의 속도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정상속도가 시속 10키로 '보통 빠르게'라면 12키로 쯤 되는 '조금 빠르게'다.
분명 속도위반의 딱지감이다.
속도를 정상으로 한다면 대사전달이 잘될 것이다.
맛깔 나는 대사가 많은 것 같은데 70% 밖에 전달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30%는 관객이 극장 측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야 하는 걸까?
관객 수 70명, 내 자리 70번, 대사전달 70점.. ㅎㅎㅎ..
짝재기 정신의 하나인 서비스 정신에 입각해
모르고 지나쳤을 요 부분의 몇 장면을 공개한다.
안 - 어쩐지 젊은 걸 잘도 잡았다 싶었다.
민 - 우리야~ 부르스 한번만 춰도 상대하고 뭔가 이뤄졌다고 생각하잖아.
걔네 세댄 달라. 잠을 같이 자도 담날 남남이라니까.
안 - 설마.
민 - 허 참, 결혼해서 젤 고역이 뭐 였는 줄 아냐?
걸핏하면 사내새끼들한테 전화가 오는 거야~ 밤중에도.
'잘 사냐?' '잘 산다' '보고 싶다' '나도' '언제 한번 부킹하자' '나이트가 어떠냐'
안 - 그걸 가만 놔뒀어?
민 - 야, 노땅 취급하면 어떡해.
- 사이 -
민 - ... 그게 내 신혼이야. 헤헤헤..
신혼의 끝이 어딘 줄 아냐?
안 - 몰라.
민 - 남편이 이빨 닦을 때 '자기야 미안해' 옆에 와서 쉬이 하면 그게 끝이래.
걔는 식 올린지 삼일 만에 그러더라구.
- 여기까지 -
사진관엔 여러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똥개가 아가리 짝 벌리고 하품하는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그게 작품사진 이란다.
제목이 거창하고 그럴 듯하다.
<똥개가 드러낸 현대사회의 권태> 관객이 웃고
작가 '마광수'가 와서 이 장면을 봤으면,
남들 다 웃고 조용해 졌을 때까지 웃었을 것이다.
'권태'에 관해서는 책 한 권을 쓴 '권태박사'로 일가견이 있으므로..
두 인간이 하는 얘길 쭉 들어보니까,
둘은 아주 친한 사인데 민두상은 사진관 주인이고,
마누라를 졸라 어린 영계를 얻었는데
뭐에 싸우고 삐쳤는지 친정에 가 있어 별거인 상태고,
안광남도 마누라와 이혼했는데 망가져 불편한 몸으로 택시운전을 하는데,
빈대 붙어 잠은 사진관에서 민두상과 함께 ZZ..
이들은 둘 다, 하는 일 마다 되는 게 없이 망하고 망가져,
빚더미에 허덕이면서 그래도 희망은 잃지 말자며 매일 5000원씩 각출해 일수 찍으며,
근근이 하루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외론 물만두'들이다.
이 연극은 속담이나 격언 같은 말이 많이 나온다.
‘..육체도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육체가 청결해야 정신도 맑아지는 법.
다리하나 부러져 봐. 정신이 먼저 지체부자유자 된 대두.
세수하고 이빨 닦아...’
‘..소나기는 오려 하고, 똥은 마렵고, 괴 다리는 옹 치고, 꼴짐은 넘어가고, 소는 도망치고...’
‘..복은 쌍으로 안 오고, 재앙은 홀로 안 오는 법이다..’
‘..더 망가질 것도 없잖아.. 잘 살 땐 뭐 고민 없었냐..?’ 등등...
두 번째 장면이 끝나고 암전이 되면서 음악이 흐르는데
피아노와 현의 음이 서정성을 느끼게 해 준다.
음악을 편안하게 듣고 있으니 뽀얗게 물안개가 깔려있는 양수리를 마치 풍경화로
그린 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무대가 쌱 바뀐다.
무슨 공원 나무그늘 파라솔 벤치인 것 같은데 안광남과 웬 여인이 앉아 있다.
여인은 이혼한 마누라인데 이름은 '고이랑'이다.
고이랑役 배우는 '연운경'이란 배운데 목소리가 매력 있고 대사 전달도 확실하다.
꽃에 비유를 하자면 잘 피어난 들국화 같다고나 할까?
화려하진 않지만,
淸蓮(청련)한 연못가에 그린 듯 앉아 있는 淸麗(청려)한 여인 같다는 느낌이다.
안광남의 택시승객 원맨쇼가 끝나고 잠시 서먹해진 이들은
다시 호젓하게 淸談(청담)을 나누어 간다.
그들 얘길 통해 안광남과 민두상이
어떻게 인연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고 안광남과 고이랑의 결혼시절 생활과
그들에게 딸이 있고 안광남이 살아온 인생이 그려진다.
비록 따로 따로 살고는 있지만 서로의 애틋한 감정이 교차된다.
이 장면은 작품의 바탕이 되는 '휴몬'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안정감 있는 철학성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을 쓴
'정혜신'은 인생 40은 不惑(불혹)이 아닌 有惑(유혹)의 시기라며
‘깊이 있는 사춘기’이자 ‘기회의 나이’라 했다.
그럼서 '공자'가 지은 큰 죄가 하나있다면,
수1000년 동안 불혹의 남자들 자책감을 느끼도록 만든 것이 죄라고 했다.
그럼 이 연극에서 작가가 세상에 대고 할 말은 뭘까?
세상을 사는데 젤 중요한 건 진짜배기 친구 하나라 한다.
죽을 때 송장 치워주고 진짜 슬퍼해 줄 친구하나만 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하다는..
끝물에 가서 안광남과 민두상의 대사에서 그걸 알 수 있다.
- 대사가 넘 좋아 새치기해서 적어본다 -
민 - ..친구도 웬수고 자식도 웬수지요.
자식.. 얼마나 이쁩니까? 일곱 살에 죽어봐요. 그거 웬수예요.
젊은 마누라.. 얼마나 이쁩니까? 바람 나봐요. 그거 웬수예요.
칠칠이 그 자식이요?
평소엔 얼마나 귀엽다구요. 화가 났다 하면 할 말 못할 말 다 해버려요.
오늘은 글쎄 갈라 서재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게 친구예요?
안 -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종일토록 울어 봤으면 좋겠어요.
왜, 그리 빗나가고 빗나간 길들만 골라서 다녔는지..
평상시엔 괜찮다가도 문득문득 초라한 생각이 들어요.
죽고 싶기도 하구요.
나 때문에 다친 사람들이 아프고..
딴엔 그런 것들 숨기려고 명랑한 척 해 보죠.
그러기가 너무 힘들어요.
민 - ..꿈도 그래요 작은 꿈 불태우며 하루 살죠.
다음 날엔 실의에 빠지고..
그 다음 날엔 다시 꿈을 불사르는 겁니다.
그 하루 살아 보겠다고 다들 그렇게 힘들 게 힘들 게 살아가는 겁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야 많은 사람들 도와주며 살고 싶지만,
요 소인배가 무슨 힘으로 그러겠어요.
하나만 책임질까 해요. 그저 칠칠치 못한 그 친구..
그 무거운 거북이 등짐을 함께 지고 사는 겁죠 뭘..
네 번째 장면은 다시 민두상의 사진관이다.
그 두 사람의 힘겨운 일상사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데..
아까 1장 2장에서도 그랬지만 두 배우의 발성과 호흡법에 문제가 많다.
두 배우 다 비슷하지만 특히,
배우 정진각의 불안한 호흡법에 의해 실려 나오는 대사가 잘 안 들린다.
프로그램에 ‘무대는 연습한 만큼 나온다고 했는데..'
그렇담 연습량의 부족인가?
맛깔나고 재밌는 대사가 씹혀 잘 안 들리고 넘어가버리니
객석이 썰렁해지고 극의 흐름에 맥이 빠지고 그런 꼴이 되면 배우들도 힘들 것이다.
벅벅거리는 것은 고사하고 흐름이 원활하고 유연하지 못하니까..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여기서도 흘려버리기 아까운 대사들이 많다.
'..인간도 짐승이다 너.
사내자식이 이쁜 기집 보면 설레이고 아찔한 것도 있어야지
어~허, 이럴 수가.. 아니, 이럴 수가.. 참아야 되느니라..'
'..어제 바퀴벌레 약 쳐서 그래.
고것들 너무 뻔뻔스러운 거 있지. 발라당 누워서 뒈져 버린다.
죄송스런 맛이 전혀 없어. 얼마나 속 썩였냐~'
'..한번 덴 데는 털이 안 나.'
'..아서라 션찮은 국에 입 델라~'
'미친년이 자기 집에 불질러놓고, 히히.. 이것도 운수다 운수여~'
'..쌍놈에 나라에서는 나이가 벼슬이잖아.'
'..개인택시 기산데 암환자야..
선고까지 받았대. 두 달 뒤에 죽는데.. 그런데도 택실 모는 거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놈이 일 안 하면 어떡하냐고..
큰애가 고3이라나 하루하루 죽어가며 운전하는 거지..
주행거리가 올라갈수록 사망거리는 짧아지고..
차를 몰고 어디로 가는 건지.. 사망 선을 향해 치닫는 건 아닌지..’
다음 장면은 사진관인데 분위기가 좀 다르다.
민두상과 고이랑이 있다.
여기서 이들의 대화를 통해 이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몇 개가 더 밝혀진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다름 아닌, 달기똥 같은 눈물 몇 방울과 눈물을 처리 할 손수건이나 화장지다.
맨 먼저 눈물은 고이랑이 털어놓는 분유 얘기다.
난 이 대목에서 눈물 '2.3방울'나왔는데,
40살 이하로.. 가난을 몸으로 경험 못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가 안가리라 본다.
그 담은 민두상과 안광남이 젊었을 때 명동에서 패싸움한 얘기..
여기서 두 사내가 진한 우정을 확인한 것을 고이랑에게 고해 들려주는데,
여기서는 눈물이 좀 적은 '2.1방울'이 나왔다.
아주 근소한 수치로 '우정'이 '분유'에게 분패를 당한 것.
연극의 특징은 한 작품에서 똑같은 부분이지만,
이처럼 배우에 따라, 배우 하기에 따라,
감덩의 눈물이 나 올수 있고 안 나올 수 있고 아예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난 오늘 배우예술의 진수를 또 한 번 확인했고,
연극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새삼스레 실감하는 감동적인 시간이 되었다.
허나, 이 演技催淚彈(연기최루탄)이란 걸 다 써버린 건 아니다.
맨 끝 부분에 사내 둘이서 또 쏜다.
원래 감성이 말라 비틀어져 눈물이 여간해서 안 나오거나
눈물샘이 생산과정에서 아예 없는 관객은,
공연을 보기 전에 눈물 많은 사람에게 몇 방울 구입하거나,
돈 없는 사람은 사정해서 빌려 연극을 보길..
감동의 도가니탕을 먹으며 통곡의 기막힌 맛을 한번 제대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연극은 이처럼 교감 예술의 극치라 말 할 수 있다.
담은 무지무지 해피한 장면이다.
그 넘에 돈 때문에 한이 맺혀 살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운수의 신이 자빌 베풀어 이들을 도와준다.
안광남이 택시 영업중 승객이 놓고 내린 8300만원이 든 돈 가방을 주운 것.
두 사내는 인생 최고 희열을 느끼며 방방 뜬다.
절망속에서 죽었다 세상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희망을 꿈꾼다.
한마디로 '광복절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허나, 마지막 장면은 그 정반대로 '한일합방'내지는 '초상집분위기'가 된다.
왜? 착한 민두상이 그 돈을 몽땅 파출소에 갔다 줬기에..
안광남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다.
거기에 내시처럼 조아리며 아부와 사과 하느라 정신 없는 민두상..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돈은 없어졌지만 친구까진 버리지 않는다.
한바탕 싸우고 나나 아까 언급한 끝 부분 대사처럼..
돈도 명예도 야망도 아닌 인간사랑 친구우정의 Human이다.
아까 얘기한 최루탄은 이 부분에서 쏜다.
안 - 진짜 고이랑이 대 준거야?
민 - 그래, 이 사진관으로 옮길 때도.. 차액을 그쪽에서..
삯바느질해서 한푼 두푼 모은 걸로..
안 - 개자식! 그걸 왜, 인제 말해?
민 - 말 하면.. 니 놈이 그 돈 받겠냐?
안 - 안 받는다! 때려 죽여도 안 받는다!
민 -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 돈 만큼은 안 받겠지! 난 받았어.
안 - 왜?
민 - 굶어 죽기 싫어서.. 니 놈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 - 임마! 그게 죽으려고 한 짓이지 살려고 한 짓이냐?
그 여자 도움을 왜 받아! 그냥 뒈지게 내버려두지 않고..(울먹거린다)
내가 그 여자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어.. 뻔히 다 알면서..
민 - 도움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누굴 도와주지도 못한다잖디.
안 - 내가 그 못된 짓 다 해놓고 뭔 낯짝으로 도움을 받아..
민 - 낯짝이 뭐 필요하누.. 그냥 썩은 낯짝 두리뭉실 뭉개버리고 받으면 되지.
안 - 그만해, 이 개자식아!
난, 이 부분에서 가슴 뭉클해지고 싸해지면서 눈물이 '3,8방울' 나왔다.
때 맞춰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바이올린인지 첼로인지 모를 음악에 취해 달기똥보다
더 큰 왕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건 분명, 오바다 오바.. 왜, 눈물이 나올까?
처절함일까? 애틋함일까?
세상살이에 망가지고 지쳐버린 두 인간에 대한 동정이고 연민일까?
그 끈끈한 우정이 부러워서 일까?
어쨌든 시간이 좀 지나자 진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달기똥 같은 눈물이 나온 총량은 8.2방울인데 옷에다 닦았다.
내가 단골로 쓰는 말,
연극은 최고로 강력한 전달수단이자,
표현예술의 꽃이라 본다.
2012-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