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청운서예전각연구실
 
 
 
 

자주가는 링크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방준형
    2. 무용
    3. ㅇㅇ66
    4. 볏가리
    5. 라파누이
    1. 쏘쏘
    2. 쑥대머리
    3. 만드래
    4. 김인숙
    5. 윈창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서예/전각/회화,작품 스크랩 조선시대 벽화묘-강원도 원주에서 발견
청운 추천 0 조회 45 09.06.23 08: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신도(四神圖) 그려진 조선시대 벽화묘 발견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진 조선시대 벽화묘가 강원도 원주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연웅)는 강원도 원주시 동화리의 충정공(忠正公) 노회신(盧懷愼·1415~ 1456)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석실 안의 벽화들이 발견됐고 이에 대한 정밀 조사 및 보존처리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신도 [四神圖]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 등의 사방위신(四方位神)을 그린 그림.사방의 별자리를 상징적인 동물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동쪽에는 청룡을, 서쪽에는 백호를, 남쪽에는 봉황과 비슷하게 생긴 주작을, 북쪽에는 뱀이 거북을 감고 있는 현무를 그렸다. 중국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천문오행사상(天文五行思想)을 배경으로 대두되었으며, 한대(漢代)와 남북조시대를 통해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 등의 조류와 결부되어 유행했다. 주로 무덤과 석관·석비(石碑)·화상석(畵像石)·와전(瓦塼)·동경(銅鏡) 등에 사방의 수호와 벽사(?邪)를 목적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에는 한대의 한사군(漢四郡) 문화를 통해 전래되었으며, 고구려에서 무덤의 수호신으로 적극 수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도상과 화법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기로 나뉘어 발전했다. 약수리(藥水里)고분과 삼실총(三室塚) 등의 초기(4세기~5세기 전반) 사신도들은 묘주초상의 상단이나 하단에 부속물로 작게 표현되었는데, 몸체의 부피감이 없고 비례가 맞지 않는 등 초보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채색은 먹선의 윤곽에 선명도가 떨어지는 갈색이 주조를 이루었다. 무용총과 고산리(高山里) 1호분 등의 중기(5세기 중엽~6세기 중엽) 사신도들은 초기와 같이 종속적인 부속물로 작게 다루어졌으나, 동물 몸체의 비례와 구도에서 보다 사실적인 모습과 함께 생기있고 율동적인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묘사법에서도 필선에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있고, 세부묘사에 관심을 두는 등 보다 진전된 화법을 보여준다. 후기(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이르러 고구려 사신도는 도교적 색채의 대두와 더불어 강서대묘(江西大墓), 강서중묘, 통구사신총(通溝四神塚), 진파리(眞坡里) 1호분, 통구 4호분, 통구 5호분 등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고분에 보이는 사신도는 종래의 부속물적 위치에서 현실(玄室) 네 벽의 중심화제로 부각되었으며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형태와 세련된 묘사,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 등은 우리나라 고대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발전된 고구려 후기의 사신도 양식은 공주의 송산리(宋山里)고분과 부여의 능산리(陵山里)고분 그리고 일본의 다까마스즈카[高松塚]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백제와 일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에도 수락암동(水落岩洞) 1호분에서처럼 사신도가 12지신상과 함께 다루어졌고, 석관에 조각되는 등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왕릉의 내부장식과 민화의 소재로서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 청룡

 

                                                                   ▲ 백호

 

                                                                     ▲ 주작

 

                                                                   ▲ 현무

이 무덤은 방형(方形) 봉분(封墳) 안에 앞트기식 돌방[횡구식석실·橫口式石室] 두 개를 잇대어 배치한 구조다.

 

▲ 석실을 두 개 덧대어 조성했는데 그 덮개돌을 개봉한 모습. (사진=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연 

    합뉴스

벽화는 화강암제 대형 판석을 이용한 석실 내부 벽면과 천장에 먹과 붉은색 안료 등을 이용해 그렸으며, 사신도와 인물도(人物圖), 성좌도(星座圖·별자리그림)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 두번째 조선시대 벽화묘가 강원 원주시 동화리 소재 충정공(忠正公) 노회신(盧懷愼.1415-1456)묘에서 발견됐다. 화강암제 대형 판석을 이용한 석실 내부 벽면과 천장에 먹과 붉은색 안료 등을 이용해 그린 벽화는 사신도(四神圖)와 인물도(人物圖), 성좌도(星座圖)가 확인된다. 사진은 북측 석실 서 단벽 인물상 세부. (사진=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인물상은 벽면에 직접 묵선(墨線)으로 그린 인물 윤곽이나 손에 쥔 홀(笏), 머리에 쓴 책(쓰개의 일종)과 얼굴 채색(彩色) 등이 1352년 조성된 파주 서곡리(瑞谷里) 고려시대 벽화묘와 유사하게 표현돼 있다.

 

        

          ▲ 사진은 북측 석실 서 단벽 인물상 세부.  (사진=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특이한 것은 남쪽 석실 벽면에 그린 백호(白虎) 그림으로, 웅장한 고구려 벽화와는 달리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어 조선후기 민간에서 유행한 민화(民畵)에 나타나는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 사진은 남측 석실 북쪽 장벽에 그린 백호와 그 세부. (사진=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조선시대 벽화묘가 발견된 것은 지난 2000년 발견된 경남 밀양 고법리 벽화묘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조선시대 무덤에서 처음으로 사신도(四神圖)가 발견돼 삼국시대부터 유행한 사신도가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허윤희 기자]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