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찍는 감사의 쉼표(살전5:16-18)
2024.11.17, 추수감사절,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예전에 쉼표가 없는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부분에서 호흡을 해야 할지 몰라서 숨 넘어갈 뻔(?) 했던 적이 있었다. 본 설교문을 비롯해서 어떤 글이나 악보든지 대부분은 중간 중간에 ‘콤마(쉼표)’가 있다. 콤마는 숨을 고르게 하고, 더 고운 소리를 내주는 역할도 하고, 문장일 경우에는 전후맥락을 잘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도 콤마가 필요하다. 때로 하나님이 직접 콤마를 찍어서 쉬게 하실 때도 있다. 가을소풍과 같은 여행이나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생의 백미러를 보는 것은 마치 시간 속에 작은 쉼표 콤마를 찍는 것과도 같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면서, 안흥교회 창립기념주일이기도 하다. 오늘 같은 감사절 예배나 창립기념주일같은 절기도 알고 보면, 시간 속에 감사의 콤마를 찍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지나온 시간동안 우리(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우리의 부족했던 점들도 깨닫고, 더 빨리 앞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오늘 예배에 나오신 분들을 세상의 어떤 철학자나 박사보다도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들이다.
감사는 성경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어느 지역에서나 당연한 인륜(人倫)이었다. 그러나 현 시대는 감사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감사가 식어진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차가워졌고, 우리 사회가 더 악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지만, 말세지말로 갈수록 그 속도는 빨라지고,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딤후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이러한 말세의 현상들이 이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늘 깨어서 감사를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오늘 설교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은 감사나 기도에 관한 매우 익숙한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너무 잘 아는 것 같고,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깊이 묵상하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 말씀을 보면, 각박하고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왜 범사에 감사해야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를 말씀한다. 이 시간에는 바로 이 점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밝히 알아가고자 하는 것이 이 시간 설교의 핵심이다. 먼저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읽자.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말씀 속에서 감사할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문구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문구가 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in Christ Jesus)”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감사는 단순한 인륜(人倫) 수준을 넘어서 천륜(天倫)과 관계된 덕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셨고(요19:30),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들 모두를 넣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 딱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요15장). 그런데 승리자이신 예수님께 계속해서 붙어있는 방법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면서(요1:12), 또한 그 안에 계속해서 머무는 방법이기도 하다(엡3:17). 그래서 성도가 사는 방식이 ‘오직 믿음’인 것이다(롬1;17).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이러한 하나님의 본심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할 때, 의심과 불평과 저주를 유발시키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파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풍성히 누릴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본 설교자는 ‘감사는 우리(나)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어떤 사람은 ‘자신은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바늘 같은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말하면서 들보같은 격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려움이 왔다고 하나님을 향해 서운한 마음을 너무 쉽게 가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멀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또는 가족이나 교회, 기업 등) 고난들을 허용하셨는지를 깨달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난은 과정일 뿐이다.
감사요법치료사이자 강연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존 디마티니(John Demartini) 박사라는 분이 있다. 디마티니 박사는 자신의 책 『감사의 효과』에서 자신은 무엇에든지 감사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면서, 이 책 서두에서 린다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린다에게는 산악 오토바이 경주선수인 사춘기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여러 번 우승컵도 수상했다. 린다는 아들이 경기가 있는 날이면, 늘 하나님께 아들이 무사히 경주를 마치게 해달라는 것과 우승컵도 거머쥐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린다의 아들이 끔찍한 사고로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아들의 부상소식을 들은 린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아들의 사고를 수수방관했다고, 하나님을 향해 마구 비난을 퍼부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존 디마티니 박사로 부터 절대감사의 믿음을 가질 것과 척추지압요법을 공부할 것을 제안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린다의 아들은 오토바이경주 부상자를 치료하는 척추요법 전문의사로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심지어 오토바이 회사를 설립해서 큰 부(富)도 거머쥐게 되었다. 그때서야 린다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꿈을 이루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감사의 간증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사고 속에 하나님의 숨은 섭리가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날이 온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성품을 확신하면서 범사에 감사하자.
마지막으로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면서, 우리교회적으로는 교회창립기념주일 이므로, 감사와 교회의 사명과의 관계를 짧게 언급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다고 할 때, 성경적으로 그 감사는 예배와 함께 두 가지 방향의 나눔으로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전도와 환대이다. 복음전도가 영혼의 양식을 나누는 것이라면, 환대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도 감사와 나눔의 관점에서 오늘 추수감사절에 봉헌된 모든 물품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도 실천하고자 한다.
미국 뉴저지 주(州)에 있는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의 레너드 스윗(L. Sweet)박사에 의하면 교회는 네 종류가 있다.
1) 선교적인 교회(Mission Church) -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환대하며,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는 교회.
2) 목회적 교회(Ministry Church) - 선교적 사명을 조금 잃어버리고, 사역(일) 중심, 행정 중심으로 변한 교회.
3) 현상유지적인 교회(Maintenance Church) - 선교적 사명을 많이 잃어버리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교회.
4) 박물관 교회(Museum Church) - 생명, 열정 눈물, 기도, 헌신, 순종도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미라 같은 교회.
이 네 가지 교회 중에 우리의 교회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되돌아보자. 그리고 지금까지도 선교적인 교회의 모습을 추구했듯이 앞으로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감사들을 나눔으로 열매 맺자. 교회의 사이즈나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성에 일마나 일치 하는가의 문제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지금 고난이 있다 해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콤마(쉼표)를 찍는 시간을 갖자.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신뢰하면서 절대감사의 믿음을 갖자. 또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분들은 속히 주님 안으로 들어오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전도와 환대라는 나눔에 더욱 힘쓰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