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수요일 맑음. 대구에서 하루를
아침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환승하여 경산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다. 졸리고 피로할까 싶어 커피를 많이 마셨더니 밥을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간 식당의 주인이 매우 반기고 “귀가 아프시다더니 좀 어떻습니까?” 하고 근황을 물었다.
오후에는 영대 도서관에 오랜만에 들어가서 이층과 일층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두어 시간동안 열람하고, 열람실 팀으로 자리를 옮긴 이전의 고서팀 곽선생에게 부탁하여 찾아내지 못한 정보를 검색하여 출력도 하고, 또 내 새 노트북에 전자판 사고전서를 좀 깔아달라고 부탁도 하였다. 내가 퇴직한 뒤에 몇 년동안 도서관 안에 책상을 마련하고 지낼 때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다.
저녁때에 약전골목에 잠간 들려보고, 수성 못 근처의 조그만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찾아온 주선생과 같이 못을 산책한 뒤에 차도 마시고 한담을 하다가, 예약하여둔 산기슭의 조용한 모텔에 들어가서 혼자서 하룻밤을 잤다. 옛날에는 이런 시설을 “ㅇㅇ여관”, “ㅇㅇ장”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대개 다 “ㅇㅇ모텔”이라고 하니 이름조차 낮 설고, 또 대개는 가족과 같이 다니든가, 그렇지 않으면 누구와 어울려 다녔지, 오늘 같이 혼자 나와서 이런 데서 숙박하는 것은 아주 생소한 일이라서, 매우 망스려 졌으나, 아침부터 먼 길을 와서 종일 분주하게 지냈기 때문에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4월 16일 목요일 오후에 비, 도산서원 방문
아침에 후범이 도마도와 계란을 함께 삶은 것과 과실을 싸가지고 와서 함께 먹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와 주니 오히려 미안하지만 고맙다.
차 2대로 떠나서 도산서원 가는 길목에서 좀 깊이 들어가서 있는 경류정慶流亭에 먼저 들려보았다. 몇 년 전에 사월과 같이 한번 와 본 곳인데 오늘도 동행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의 징조부가 살던 집이다. 나에게도 16대 선조 할머니의 친정이 되는 집이니 선외가先外家가 되는 집이다. 딴 차로 오는 일행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반시간 정도 아무도 없는 바깥 마루로 올라가서 양말도 벗고 들어누워 따뜻한 봄볕을 받고 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여 보았다.
옛날에 우리 집안 어른들이 영해에서 서울로 과거나 벼슬하러 올라가거나 내려올 때에는 흔히 이 집에 들려서 묵고 가셨다고 한다. 그 때는 사방에 연줄을 찾아서 인맥을 다지는 게 풍속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전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이집도 “종가 체험” 숙박을 받는다는 안내가 있기는 하나, 그 종손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집에 보관하고 있던 수많은 고문서와 문적은 지금 서울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몇 집 되지 않은 한적한 산촌에 봄꽃만 난만하다.
도산서원에는 이전에 자주 와서 보았지만 요즘 도산잡영을 좀 읽고 다시 와서 보니 곳곳의 모습이 새롭게 다시 눈에 들어오나, 조금 둘러보는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기 시작하여 서둘러 떠났다.
안동 역에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오후 5시 20분 기차를 타고, 청량리까지 와서 전철을 갈아타고 집에 오니 밤 10시반 쯤 되었다. 이 중앙선 기차는 대학에 다닐 때 자주 타 보았던 것이라 그 시절 생각이 났다. 대개는 차비도 변변히 없이 구차하게 다니던 고생스러웠던 일들만이… 차 안에서 졸면서, 후범이 준 최고운 선생의 〈송광사 진감선사 비문〉 서첩을 펴들고, 무슨 뜻인지 생각하면서 두어 차례 읽다가 보니 시간은 잘 보내게 되었으나, 글은 너무 어려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4월 17일 금요일 맑다. 연민학회에
오전에는 퇴계학연구원에 가서 좌우명 윤독 모임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연대에서 있는 연민학회에 늦게 가서 겨우 얼굴만 내밀고서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왔다. 교정에 꽃이 만발하여 좋았으나 교문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였다. 지하주차장을 만든다고 한다.
첫댓글 고단하신것 같아 모두 걱정하였었는데 무탈하셔 다행입니다. 4월은 5주까지 있어 보강할수있는 여유가 있는것 같습니다. 확인하시어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달 23일에 보강을 하고자 하는데, 다 나올 수 있는지 다시 회신 바람니다.
알아보고 월요일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