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선 그 곳에는 남궁 선생과 찻집 주인 밖에 없었다. 일행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선생 혼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약간 의아해 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 제가 좀 인기가 없지 않습니까.” 하며 선생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출발을 할 때는 세 명이었단다. 그런데 첫 번째 찻집에서 차를 마신 후 두 명은 일이 있다면서 빠져나가고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고 예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날따라 날이 지독하게 추웠고, 그래서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동행하는 사람이 없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심의(心醫), 남궁 선생님
강화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남궁 선생을 다 알 것이다. 강화읍 남궁내과의 원장님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그의 자세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한 시간 대기에 삼 분 진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병원에서 의사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 남궁내과에 가면 이 공식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남궁 선생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유명하다. 시골이라서 노인들이 병원을 많이 찾는데, 그 분들의 하소연을 끝없이 들어준다. 몸의 병도 병이지만 그보다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느라 십 분도 좋고 이십 분도 좋다. 간호사가 와서 은근히 눈치를 주며 다음 환자가 기다린다는 것을 환기 시켜주지만 환자가 이야기를 끊지 않는 이상 남궁 선생이 먼저 환자를 내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옛말에 ‘심의(心醫)’가 최고의 의사라는 말이 있다. 약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보다 마음을 읽고 쓰다듬어 주는 의사가 진정한 의사라는 말이리라. 그런 점에서 보면 남궁 선생은 약의(藥醫)를 넘어 심의임에 틀림없다.
낭만에서 출발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품성을 지닌 남궁 선생이니 주변에 사람이 없을 턱이 없다. 의사라는 사회적 신분을 내세우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은 편하게 다가간다. 그런데 왜 그가 제안하는 길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까. 그것은 남궁 선생의 낭만 탓이 크다. 사람들은 실리를 따져보고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다고 생각이 될 때 마음을 내는데 남궁 선생의 제안들은 실리보다는 낭만에 기초할 때가 많다. 그러니 셈이 빠른 사람들은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강화에 있는 찻집들을 둘러보고 ‘강화나들길’과 어떻게 연계를 시킬 것인지를 생각하는 길이라고 하니 어느 누가 선뜻 따라나서겠는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찻집 순례는 썩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차 한 잔에 못 해도 몇 천 원은 줘야 하는데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군데의 찻집을 간다고 하니, 사람이 없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남궁 선생은 몽상가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실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에 떠오르는 창의적인 생각을 펼쳐 보이곤 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제시하는 계획들이 촘촘하지 않고 느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획기적인 발명이나 창의적인 생각들이 이렇게 느슨한 데서 나왔다. 촘촘하게 짜여있는 곳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설 여지가 없지만 좀 빈 듯한 곳이라야 새로운 것이 들어설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새로운 것들이 이렇게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던가.
남궁 선생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강화의 긍정적인 발전 밖에 없으니 당연히 카페 순례를 생각했으리라. 강화에 있는 카페들을 순차적으로 순례를 해서 평가를 하고 강화나들길과 연결 시키기 위한 발상이었는데, 대붕의 뜻을 소작이 깨닫기를 바란 선생이 잘못이었다.
계산을 앞세우지 않는 순수함이 늘 이런 일을 꾸미게 한다. 더러는 낭패를 당할 때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 낭만에서 출발한 일들이 제도화되고 정착된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남궁선생의 낭만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낭만을 북돋워줘야 한다.
패트런(patron)이란 문화의 보호와 육성에 힘을 써주는 사람을 말한다. 남궁선생은 강화 시민운동과 문화 창달의 뒷배를 봐주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후원은 경제적인 원조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인 지원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궁 선생은 훌륭한 패트런이다.
문화 창달의 든든한 후원자
남궁내과의 2층 한 쪽에는 '강화도 시민연대' 사무실이 십 년 이상 둥지를 틀고 있다. 병원은 어찌 보면 영업장이기도 한데 선뜻 시민연대에 장소를 제공했으니, 그것은 바로 패트런의 훌륭한 전범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패트런은 돈을 주고 끝내는 간단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보호하고 키워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도움을 주되 잠자코 주기만 해야 한다. 무엇을 바라고 지원을 한다면 그것은 경제 행위이지 진정한 패트런은 될 수 없다.
내게 이익이 될 지 가늠을 하고 후원을 하는 것은 투자는 될 지언정 진정한 후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안전하기 그지없는 투자는 패트런이 하는 ‘투자’와는 다르다. 돈을 대주는 것은 같지만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패트런은 위험이 따르는 행위이다. 미래의 가치를 보고 후원을 하는 것이니 투기일 수도 있으며 후원하는 것에 운을 걸어보는 도박이기도 하다. 그리고 될 성 부른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니 일회성 선심으로 끝나서도 안 되는 게 바로 후원자의 자리이다. 그 나무가 자라서 큰 그늘을 만들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게 바로 후원자의 역할이다.
문화는 개인의 꿈과 낭만에서 비롯된다. 시켜서 하는 것은 문화로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남궁 선생의 낭만은 곧 문화 창조의 시금석이자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강화의 새로운 문화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오늘도 남궁 선생은 강화 사랑의 꿈을 꾸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바위솔 님 作)
(바위솔 님 作)
첫댓글 지난 겨울에 남궁 선생님에 대해서 떠오른 생각들을 '호삼 씨의 세 가지'란 제목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남궁 선생의 이름은 호삼(호三)이지만 제 나름으로 호삼(好三)으로 고쳐서 남궁 선생이 좋아하는 세 가지, 즉 술과 아내 그리고 강화 사랑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끝마무리를 못한 채 밀쳐두었습니다.
몇 달이 흘러 '세 가지'보다는 '패트런' 이 더 낫겠다 싶어서 다시 글을 고쳤습니다.
여기 올리면서 다시 보니 패트런과 낭만이 뒤섞여 있네요.
언제 다시 고쳐보겠습니다.
모쪼록 이 글이 남궁 선생님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역쉬~~~~100% 적중
-남궁선생은 몽상가다 ㅎㅎㅎ- 한표
ㅎㅎ, 그렇지요?
남궁 선생님이 실크로드를 갔다왔으니 또 어떤 기발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펼쳐 보일까요?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퇴고를 하지 않은 글이라서 어수선하네요.
난 긍정적인발전에 한표드려요~
다소 지키지못한약속도 있지만서도
등나무꽃을보며 싸악~날려버렸구요
실크로드를 다녀오셨군요
정말 기대됩니다 후기~
미감님 칭찬릴레이 좋은데요
이젠원장님이 빨리 붓을 잡을시간인데요~
몽피님 에대한 ㅋㅎ~~~
재밌어요 역시전문가는달라요
글에서 냄새와 향이 동시에 나고풍겨요~
ㅎㅎ, 등나무꽃길이 그렇게 좋았나 봅니다.
내년을 기대해 봐야겠네요.
초코렛님에 대한 이미지도 벌써 전에 잡아놨는데...
아주 달콤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아직 글로 나가지는 않았어요.
언제 나갔으면 좋겠는데 잘 안 되네요.
남궁호삼님은
심의닥터~패트런~!
1박2일물길바람길
그곳에서손수 숫불구이 해주실때
힘드실까 손을바꾸자해도
굳이하시던. 그모습......
강화도매력에풍덩빠진 고슴도치1.2
다시한번1박2일에
만나고싶은분중 한분입니다~~^^*
그러셨군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지요.
타고난 의사인 것 같아요.
배려하는 마음을 보면 말이에요.
원장님은 뵐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같이 걸을 기회나 얘기드릴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늘 선한 웃음 볼때마다 한번 차나 마시고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궁 선생님은 양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겨울에 들었던 '양반론'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의견들...등등
화제거리가 무궁무진해요.
ㅋㅋㅋ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읍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무지 행복한 아침입니다.
ㅎㅎ, 남궁 선생님에 대해서는 더 써야 해요.
'호삼 씨의 세 가지'...
술과 아내 그리고 강화도 사랑.
낭만객.. 남궁쌤!! ㅎㅎㅎ
ㅎㅎ, 그렇지요?
낭만...
패트런...
제가 남궁 선생님에 대한 인상을 잘 잡았지요?
남궁호삼님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군요....
그때.. 그 분위기 아주 좋았습니다...멋지셨던 기억이 아주 많습니다 ^&^**
==고향생각... 뱅기==
맞아요.
남궁 선생님의 노래는 자타가 다 인정하지요.
곧 노래를 들을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흥이 도도해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실 것 같은데...
뭐 들을까요?
제가 강화에 흠뻑빠지게 했던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남궁원장님, 미감님. 몽피님.....만나면 좋은사람들....늘 강화가 그리운...배스킨~♡
우리도 배스킨을 좋아해요~~~.
본 지 꽤 오래 된 것 같아요.
언제 또 같이 걸읍시다~~,
아!......
차 좋아하는 제가 다음엔 꼭.......
강화섬에 있는 모든 찻집 다 가고플뿐~~~~^^
요즘 자고 일어나면 카페가 하나씩 생기는 것 같아요.
진짜 카페가 많이 생겼어요.
그에 비해 우리 차를 파는 전통 찻집은 가뭄에 콩 나듯이 몇 개 밖에 없으니,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갈 곳이 많지는 않아요.
강화읍 풍물시장 근처에 있는 보이찻집인 '지유명차'가 강화에서는 거의 유일한 전통 찻집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