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613 돌아온 미선(美扇)이

[신동]

2021. 3. 20. 07;30

산모퉁이를 돌자 미선나무 꽃이 희끗희끗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16일엔 단 두 송이만 피었었는데 오늘은 얼마나 예쁘게 피었을까.

마음이 바빠진다.

미선나무 꽃을 보려고 성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다 카메라를 놓쳤다.

어눌한 손으로 들었던 카메라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배터리실과 커버가 망가졌다.

난감하다.

일 년 만에 만난 미선나무 꽃을 찍어야 하는데, 손가락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 다시

재발한 모양이다.

통증주사를 맞으면 통상 1년 정도는 유지했기에 금년 8월까지는 버티어야 하는데

나이 먹는 거와 정비례하는지 텀(term)이 점점 짧아진다.

망가진 뚜껑이 제대로 닫히질 않기에, 차분히 앉아 배터리를 끼우고 열었다 닫았다

하니 겨우 전원이 들어와 작동을 하는데 다행히 렌즈와 내장회로는 고장 나지 않은

모양이다.

미선나무 꽃이 돌아왔다.

꼬박 1년을 기다렸는데 작년보다 보름정도 빠르게 많은 개체수의 꽃이 피었다.

작년엔 몇 송이 피지 않았는데 이번에 많은 꽃이 피었으니 미선나무도 해거리를 하는 걸까.

과일이 열리는 대추나무나 감나무는 해거리를 하기에 옛 조상들은 대추나무와 감나무 밑에

두엄을 만들어 발생하는 열로 나무를 보호해 해거리를 방지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는데,

내가 산속에 있는 미선나무 밑에 두엄을 만들 수 없으니 가을에 낙엽을 많이 모아 뿌리를

보호해주는 방법을 궁리해야겠다.

세월 참 빠르다.

미선나무 꽃을 바라보며 잠시 사유(思惟)에 잠긴다.

나이가 들수록 체감하는 속도의 시간이 빨라지는 걸 체감한다.

사실 백수의 신분으로 사는 하루는 매우 지루하다.

그러나 하루가 지루해도 일주일은 후딱 지나가고 한 달은 더 빨리 지나간다.

4계절의 변화는 물론 1년은 순식간에 흘러가기에,

40대는 시속 40km, 50대는 50km, 60대는 60km로 시간이 흐른다는 말이 요즘 들어

실감이 난다.

하루는 길고 1년은 짧으니 하릴없이 나이만 먹는다는 자괴감이 든다.

누구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포로가 되어 허우적대는 삶을 살았겠지만 지난 일 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증발되었다.

반복되는 일상, 새로운 일도 없고, 새로운 상황을 만들 의지도 없고, 가슴 설레는 일도 없으니

마냥 시간과 세월을 갉아먹으며 황혼의 생명을 단축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백수의 일상,

시간을 붙잡기 위해 세 시간짜리 알바를 다니면서 조금씩 되찾던 일상도 어느새 진부(陳腐)해졌다.

이제부터는 반복되는 출퇴근길도 등산로도 새로운 길로 가봐야겠다.

그러면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 산에서도 새로운 꽃과 새를 만날 수 있겠지.

새로운 음식을 먹을 만큼 미식가 신세는 못되기에,

음악이라도 클래식을 줄이고 트로트 등 새로운 음악을 들어야겠다.

요즘 미스트롯의 출연자 양지은, 홍지윤, 은가은의 노래를 수시로 들으면 마음이 젊어진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면 하루는 짧고 한달과 1년은 매우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08;00

윤물무성(潤物無聲)이라,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한다.

산은 아직 짙은 갈색 겨울옷을 입고 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혼잎나무에 아주 미세한 연둣빛이 새순이 나오기 시작한다.

빗물은 잠든 나무를 깨우고, 뒤척이며 꿈틀거리는 꽃들을 깨우는 능력을 가졌기에

곧 마른나무에 연둣빛 물이 오르고 상큼한 초록 새순이 나오리라.

지난 일 년 소중히 여기고 간직했던 많은 것을 빼앗겼다.

언제 회복되고 무엇이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간이 여전히 흐른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불안하고 의지할 데도 없고,믿음과 사랑, 희망을 걸을 데도 없으니

총체적인 난관 속에 실낱같은 삶을 살아간다.

그래도 자연은 봄이라는 약속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다시 찾아온 새 봄엔 빼앗겼던 일상을 찾을 수 있으려나,

미선나무의 아름다운 꽃잎을 바라보며 '희망'이라는 새싹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2021. 3. 20

                                  석천 흥만 졸필

[짱 혁재야]

감동이야!
꼭 책을 출판하기를 학수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