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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 空하므로 사성제의 진리도 무너진다.
답: 空하므로 사성제의 진리가 성립된다.
연기적으로 세상이 이렇게 출몰하기 때문에..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게 인명론리인지요.
그리고, 원효의 논리사상과 판비량론에서 8식의 존재규명 중에, 無性의 추론식은 이해되지만 원효의 추론식은 난해합니다.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종) 眼耳鼻識은 반드시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한다.
(인) 三六門중의 3識에 포함되기 때문에
(유) 마치 舌身意識과 같이
답변입니다.
질문이 두 가지이기에 나누어서 답하겠습니다.
질문1.
문: 空하므로 사성제의 진리도 무너진다.
답: 空하므로 사성제의 진리가 성립된다.
연기적으로 세상이 이렇게 출몰하기 때문에..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게 인명론리인지요.
답변1.
제가 쓴 글 또는 제 강의 가운데 <중론>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 사성제에 대한 관찰)에서 사용된 '추론 비판 논법'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올리신 것 같습니다.
관사제품은 총 40수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제1게-제6게'는 '공 사상에 대한 논적의 비판', 뒤의 '제7게-제40게'는 그에 대한 용수의 반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송 몇 수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공 사상에 대한 논적의 비판
1) 若一切皆空 無生亦無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만일 일체가 모두 공하다면 생도 없고 멸도 없다. 그렇다면 사성제(四聖諦)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
4) 若無八賢聖 則無有僧寶 以無四諦故 亦無有法寶
만일, 여덟 가지 현성(賢聖)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승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보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5) 以無法僧寶 亦無有佛寶 如是說空者 是則破三寶
법보와 승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보도 역시 없다. 이처럼 공을 설하는 자는 삼보를 파괴한다.
논적의 비판에 대한 용수의 반박
20) 若一切不空 則無有生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만일 일체의 것이 공하지 않다면 생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성제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
29) 若無有四果 則無得向者 以無八聖故 則無有僧寶
만일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향을 획득한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팔성(八聖)이 존재하지 않기에 승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30) 無四聖諦故 亦無有法寶 無法寶僧寶 云何有佛寶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보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법보와 승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불보가 존재하겠는가?
질문에서 '문'과 '답'을 소개한 후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게 인명론리인지요.'라고 물으셨는데, 이는 위에 인용한 <중론> 제24장 관사제품의 게송 가운데, 제1게의 비판과 제 20게의 반박의 밑줄 친 부분에 해당합니다.
<중론>에서 구사되는 '반논리적 논법'인 '중관논리'는 ①'개념의 실체성 비판', ②'판단의 사실성 비판', 그리고 ③'추론의 타당성 비판'의 3단계 논법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이 가운데 '③추리론'에 대한 중관논리적 비판에 해당합니다. 이 표에서 보듯이 그 어떤 추리가 제시되어도 중관논리에서는 "어떤 추론이든 상반된 추론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추리의 타당성을 비판합니다.
앞에 인용한 <중론> 제24장 관사제품의 게송에서 밑줄 친 부분에서 보듯이 논적이 "일체가 모두 공하다면, 사성제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니까, 용수는 이에 대해서 "일체의 것이 공하지 않다면 사성제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합니다.
이렇게 어떤 추론에 대해 상반된 추론을 제시함으로써 그 추론의 타당성을 비판하는 논법은 <니야야 수뜨라>에 소개된 '자띠 논법 ' 또는 <방편심론>의 '상응 논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 박사학위논문인 <용수의 중관논리의 기원>(오타쿠, 2019년) 또는 강의 녹취록인 <중관학특강>(도서출판 오타쿠, 2022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으실 다른 여러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장황하긴 하지만 이상과 같이 질문의 맥락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에서 '문'과 '답'을 소개한 후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게 인명론리인지요.'라고 물으셨는데, '인명론리'라는 말보다는 '인명학(因明學)의 논리' 또는 그냥 '인명' 또는 '인명학'이라는 용어를 쓰시는 게 옳습니다.
그런데 불교인식논리학이라고 불리는 '인명학'은 <중론>을 저술한 용수 스님 이후 근 300년이 지나서 진나(디그나가) 스님에 의해서 집대성되기에 <중론>에서 구사된 논리를 인명학의 논리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이런 논법의 기원은 용수 스님 이전의 고대 인도논리학의 논법 가운데 답파(答破, uttara) 논법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용수의 중관논리의 기원>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또 디그나가 스님이 정리한 불교인식논리학의 오류론 가운데 '상위결정의 오류'를 지적하는 논법이 중관학의 '추론 비판 논법'과 유사합니다. <인명입정리론>에 실린 33가지 논리적 오류 가운데 하나가 '상위결정의 오류'인데 이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표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한 '19.상위결정'이 <중론> 제24장 관사제품에서 용수 스님이 구사하는 '추론 비판 논법'과 유사합니다. 디그나가 스님의 제자로 추정되는 샹까라스와민이 저술한 <인명입정리론>에 실린 '상위결정'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相違決定者 如立宗言 聲是無常 所作性故 譬如甁等 有立聲常 所聞性故 譬如 聲性 此二皆是 猶豫因故 俱名不定
⑥viruddhāvyabhicārī yathānityaḥ śabdaḥ kṛtakatvād ghaṭādivat/ nityaḥ śabdaḥ śrāvaṇatvāc chabdatvavad iti/ ubhayoḥ saṃśayahetutvād dvāv apy etāv eko ’naikāntikaḥ samuditāv eva//
⑥모순이 확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단지 등과 같이. 소리는 상주한다. 들리기 때문에. 소리성과 같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양자 모두 의심스러운 이유를 갖기 때문에, 일어난 것(samuditau)은 이렇게(etau) 두 가지임(dvau)에도(api) 불확정적인 것(anaikāntika)은 하나(eka)뿐(eva)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가 쓴 책 가운데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지식산업사, 2003년)에 실려있는데,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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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因의 三相을 충족시키는 부정인 - 상위결정의 부정인
<因明入正理論>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제5구의 불공부정인과 제1, 3, 7, 9구의 공부정인 이외에 相違決定(viruddhāvyabhicārin)의 因을 부정인에 포함시킨다. 먼저 상위결정에 대한 <因明入正理論>의 설명을 인용해 보자.
‘모순이 확정적인 것’(相違決定)은 다음과 같다. ‘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항아리 등과 같이. 소리는 상주한다. 들리기 때문에. 소리性과 같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양자 모두 의심스러운 이유를 갖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이렇게 두 가지임에도 ‘불확정적인 것’(不定)은 하나뿐이다.
어떤 한 학파의 세계관 하에서 상반된 주장이 담긴 두 개의 논증식이 모두 성립하는 이율배반(antinomy)적 상황이 발생할 때, 그 각각의 논증식에 사용된 因은 상위결정의 부정인이 된다. 위 인용문에 소개된, 상위결정의 관계에 있는 두 가지 논증식을 예로 들어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논증식A>
[종] 소리는 무상하다
[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 항아리 등과 같이
<논증식B>
[종] 소리는 상주한다
[인] 들리기 때문에
[유] 소리性과 같이
勝論師(Vaiśeṣika)가 聲生論師에 대해 <논증식A>를 제시하자 성생론사는 勝論師에 대해 <논증식A>와 상반된 주장을 담은 <논증식B>를 제시함으로써 <논증식A>를 상위결정의 오류에 빠뜨린다. 勝論師의 견지에서 볼 때, 두 논증식에 사용된 因 모두 상위결정의 오류에 빠진 不定因이 되고 만다. 勝論師의 세계관 하에서는 <논증식A>에 사용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라는 因과, <논증식B>에 사용된 ‘들리기 때문에’라는 因 모두가 삼상을 갖춘 타당한 因이다. 왜냐하면 勝論學派에서 ‘소리는 무상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과 ‘물질적 소리도 귀에 들리지만 그런 소리에 담긴 의미인 소리性도 귀에 들린다’는 점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勝論學派의 견지에서 두 논증식의 타당성은 다음과 같이 검토된다.
<논증식A의 검토>
동품정유성의 검토: 무상한 것 중에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 → 있다: 항아리
이품변무성의 검토: 무상하지 않은 것 중에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 → 없다
<논증식B의 검토>
동품정유성의 검토: 상주하는 것 중에 들리는 것이 있는가? → 있다: 소리性
이품변무성의 검토: 상주하지 않은 것 중에 들리는 것이 있는가? → 없다
<논증식B>에서 말하는 소리性은 소리의 類를 의미한다. 즉, 낱낱의 소리가 띄고 있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말소리의 보편’을 의미한다. ‘소’(牛)를 예로 들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얼룩소, 검은 소, 물소 등은 특수한 소이지만, 그런 특수한 소들을 관통하는 ‘소 보편’(牛性)이 있기에 우리는 새로운 누런 소를 보았을 때 그것이 소인 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소리가 나타내는 類性이 바로 ‘소리性’인 것이다. 그런데 勝論學派에서는 이런 ‘소리성(聲性)’은 상주할 뿐만 아니라 귀에 들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소리는 상주한다’는 주장을 담은 <논증식B>도 작성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대립된 주장을 성립시키는 因을 相違決定의 因이라고 부른다. ‘相違’란 주장(宗)이 상반된다는 의미이고 ‘決定’이란 이유(因)가 확실하다는 의미이다. 상반된 결정을 초래하며, 또 결정된 것이 상반되기에 상위결정인 것이다. 이러한 상위결정의 因은 九句因表에 의해 감별해 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논증식에 사용된 因은 모두 因의 三相을 갖춘 正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두 가지 因은 상반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기에 ‘공부정인’이나 ‘불공부정인’과 마찬가지로 그 타당성에 대해 확정을 내릴 수 없는 부정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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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상위결정'의 오류에 대한 설명인데, 그 내용이 상반된 두 가지 추론식이 동등한 타당성을 갖고 성립할 때, 그 두 가지 추론식 모두 '타당하지 못한 추론식', '오류에 빠진 추론식' 이 되고 만다는 것으로, 용수의 <중론> 제24장 관사제품의 방식 역시 이와 유사하기에, 인명학의 오류론 가운데 하나인 '상위결정의 오류'의 기원이 중관논리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에서 '문'과 '답'을 소개한 후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게 인명론리인지요.'라고 물으셨는데, [질문의'문'과 '답']은 중관논리의 '추론 비판 논법'이고, 근 300년이 지나서 디그나가 스님이 ' 이런 형식으로 논리를 세우는' 논법을 '상위결정'이라는 이름으로 ' 인명학'의 오류론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질문2.
그리고, 원효의 논리사상과 판비량론에서 8식의 존재규명 중에, 無性의 추론식은 이해되지만 원효의 추론식은 난해합니다.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종) 眼耳鼻識은 반드시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한다.
(인) 三六門중의 3識에 포함되기 때문에
(유) 마치 舌身意識과 같이
답변2.
이에 대해서는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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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제8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元曉의 논증식과 그 문제점
a. 제8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元曉의 논증식
위에서 보듯이, 無性의 <攝大乘論釋>에서 取義된 두 가지 논증식 모두 소승교도를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元曉는 대소승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논증식을 고안한다. 元曉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는 직접 그 의미(所詮)로 나아가 논증식을 세워 第八識을 증명해 보겠다. 이는 다음과 같다. [종] 眼耳鼻識은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한다. [인]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기 때문에. [喩] 마치 舌身意識과 같이. 여기서 [小乘과 大乘] 양측 모두 인정하는 六識은 他派의 異品에 해당된다. [또 大乘唯識家인] 自派가 인정하는 八識은 自派의 異品에 해당된다. [그런데] ‘三識에 포함된다’는 因은 [自派의 異品인 八識 및 他派의 異品인 六識] 양측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三識에 포함되기 때문에’라는] 이 因은 확고하게 성립한다.
여기서 元曉가 六識의 범위 밖의 별도의 識인 第8 阿賴耶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논증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종] 眼耳鼻識은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한다.
[인]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기 때문에
[유] 마치 舌身意識과 같이
이 논증식의 因 중에 기술된 三六門은 ‘六六法門’ 중의 六識身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俱舍論>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발견된다.
…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六六法門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六內處, 둘째는 六外處, 셋째는 六識身, 넷째는 六觸身, 다섯째는 六受身, 여섯째는 六愛身이다’.
元曉는 이런 六六法門 중 세 번째의 것(= 第三)인 六識身(= 六門)에 대해 ‘三六門’이라고 명명하였던 것이다. 三六門은 구체적으로 말해 三六身門인데 4음절 단위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身’字를 생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元曉는 이런 ‘三六門’에 토대를 두고 總六識 이외에 第七識이나 第八識과 같은 별도의 識體가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독특한 고안을 한다. 즉, 六識身 전체를 양분하여 두 덩어리의 三識身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두 덩어리는 ‘眼耳鼻-識’이라는 三識身과 ‘舌身意-識’이라는 三識身이다. 그리고 ‘삼육문 중의 三識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因을 고안할 경우,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은 ‘眼耳鼻-識身’이나 ‘舌身意-識身’ 모두 그런 因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識身’은 ‘識體’와 동의어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조작을 통해 고안된 元曉의 논증식에 사용된 因이 ‘因의 三相’을 충족시키는지 검토해 보자. 먼저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因(hetu)은 주장명제의 주어인 ‘眼耳鼻-識’을 의미할 수 있기에, 상기한 논증식에 사용된 因은 第1相인 변시종법성을 충족시킨다.
제2상인 동품정유성의 충족 여부는 다음과 같이 검증된다.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하는 것’(同品) 중에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는 것’이 있는가? → 있다(有): 舌身意識
즉, ‘설신의식’의 경우 그 자신인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를 필요로 한다. ‘설신의식’만 있을 경우 완전한 ‘마음’(心王)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六識說을 주장하는 小乘의 견지에서 볼 때 ‘설신의식’에 ‘안이비식’이 추가되어야 심왕은 總六識을 갖추어 완전해진다. 이 때 ‘설신의식’이 필요로 하는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는 바로 ‘안이비식’이다. 그리고 이런 ‘설신의식’은 삼육문 중 삼식에 포함되기에 상기한 논증식 중의 因을 충족시키는 사례이다. 따라서 소승의 견지에서 볼 때, 상기한 논증식의 因은 제2상인 동품정유성을 충족시킨다. 또, 八識說을 주장하는 大乘唯識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同品)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설신의식’이다. ‘설신의식’에 ‘안이비식’과 ‘마나식’과 ‘아뢰야식’이 추가되어야 心王은 總八識을 갖추어 완전해진다. 그리고 이런 ‘설신의식’은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기에 상기한 논증식 중의 因을 충족시키는 사례이다. 따라서 八識說을 주장하는 대승유식의 견지에서 보아도 상기한 논증식 중의 因은 동품정유성을 충족시킨다.
그러면 제3상인 이품변무성의 충족 여부에 대해 검토해 보자. 소승이든 대승이든 이품변무성에 대한 검토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질 경우 이품변무성이 충족된다고 말할 수 있다.
‘舌身意識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識體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異品) 중에 ‘三六門 중의 三識에 포함되는 것’이 있는가? → 없다(無)
그러면 먼저 他派인 소승 六識敎의 견지에서 이품변무성을 검증해 보자. 소승의 경우 ‘총육식’은 심왕 전체를 의미하기에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소승의 경우 ‘안이비설신의식’, 즉 ‘총육식’만이 異品이다. 그래서 元曉는 상기한 判比量論 인용문에서 ‘여기서 양측 모두 인정하는 육식은 타파의 이품이다(此中極成六識 爲他異品)’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總六識은 三六門 중 三識에 포함될 수 없다(遍無). 왜냐하면 총육식은 ‘세 가지 식’(三識)이 아니라 ‘여섯 가지 식’(六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식만을 주장하는 소승교학의 견지에서 볼 때, 위에서 제팔식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元曉가 구성한 추론식은 因의 三相을 충족하는 타당한 추론식이다.
그러면 大乘唯識의 견지에서 이품변무성을 검증해 보자. 대승유식의 경우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심왕 전체인 總八識뿐이다. 그래서 元曉는 상기한 <判比量論> 인용문에서 ‘스스로 인정하는 八識은 自派의 異品이다’(自許八識 爲自異品)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총팔식은 삼육문 중 삼식에 포함될 수 없다. 총팔식은 세 가지 식이 아니라 여덟 가지 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승유식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이품변무성이 충족된다.
이상과 같이, 元曉가 고안한 제8식 존재증명 논증식은 총6식을 주장하는 소승교학의 견지에서 보든, 총8식을 주장하는 대승 유식교학의 견지에서 보든 이품변무성을 충족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元曉는,
“[그런데] ‘三識에 포함된다’는 因은 [自派의 異品인 八識 및 他派의 異品인 六識] 모두에 대해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三識에 포함되기 때문에’라는] 이 因은 확고하게 성립한다.
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승이나 대승 모두가 인정하도록 元曉에 의해 고안된 ‘第八識의 존재 증명’은 참으로 절묘하다. 그런데 필자의 管見일지는 몰라도 이 논증식은 法差別相違因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하다.
b. 법차별상위인의 오류를 범하는 元曉의 논증식
<因明入正理論>에서는 法差別相違因을 갖는 논증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의 특질(viśeṣa)과 상반된 능증이란 예를 들어, ‘눈 따위는 [아뜨만인] 타자(他者)를 위한 것이다. 복합체이기 때문에. 침대나 의자 등 부속물과 같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복합체이기 때문에’라는] 이런 이유는, 마치 [복합체인] 눈 따위가 [비복합체인 아뜨만인] 타자를 위하는 것임을 논증하듯이, 타자에 속하며 특질이 상반된 소증법인 복합체도 논증한다. [왜냐하면] 침대 등은 타자인 복합체[인 사람의 몸]에 의해 수용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뜨만(ātman)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아뜨만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증식을 구성하려 하는데, ‘눈 따위는 아뜨만을 위한 것이다’라는 주장명제를 기술하며 논증식을 작성할 경우, 상대측에서 아뜨만을 인정하지 않기에, 논증식은 사립종 중 하나인 能別不極成의 오류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立論者는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 아뜨만이란 말을 숨기고 他者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은 논증식을 작성한다.
[종] 눈 따위는 他者를 위한 것이다.
[인] 복합체이기 때문에
[유] 마치 침대나 의자 등과 같은 부속물과 같이
이 논증식에 사용된 因은 형식상 因의 三相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주장명제(宗)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법(所證法: sādhya dharma)인 ‘타자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실례에 적용해 볼 경우 相違性이 발견된다. 상기한 논증식의 실례는 ‘복합체는 무엇이든 타자를 위한 것이다’라는 판단을 함의하고 있는데, 주장명제에 쓰인 ‘他者’는 ‘복합체가 아닌’ 아뜨만을 의미하지만, 실례가 함의하고 있는 판단 중의 ‘他者’는 ‘복합체인’ 사람의 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입론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所證法의 의미를 되살려 논증식을 다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종] 눈 따위는 비복합체인 他者를 위한 것이다.
[인] 복합체이기 때문에
[유] 마치 침대나 의자 등과 같은 부속물과 같이
그리고 대론자의 입장에서 이 논증식에 사용된 因의 타당성은 다음과 같이 검토된다.
동품정유성의 검토: 비복합체인 他者를 위한 것(同品) 중에 복합체인 것이 있는가? → 없다(無).
이품변무성의 검토: 비복합체인 他者를 위한 것이 아닌 것(異品) 중에 복합체인 것이 있는가? → 있다(有): 침대나 의자 등과 같은 부속물
이는 동품무, 이품유의 相違因이다. 그리고 陳那(Dignāga)는 이렇게 ‘주장명제의 술어’(dharma)에 ‘내포된 의미’(viśeṣa)가 상반(viparīta)되어 오류를 야기하는 因을 法差別相違因(dharmaviśeṣaviparītasādhana)이라고 부르며 似因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런데 元曉가 구성한 논증식 중의 소증법(sādhya dharma)인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식체’의 의미에서 혼란이 발견된다. 주장명제(宗)에 사용된 ‘별도의 識體’는 ‘삼육문에 속하지 않는’ 第七識이나 第八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별도의 식체’란 용어에 담긴 ‘독특한 의미’(viśeṣa)를 노출시켜 상기한 元曉의 논증식을 다시 기술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종] 안이비식은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삼육문(= 六識身) 중의 삼식에 포함되는 것도 아닌 별도의 식체’(= 제7, 8식)를 필요로 한다.
[인]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기 때문에.
[유] 마치 설신의식과 같이.
소승의 견지에서 볼 때 이 논증식에서 사용된 因의 타당성은 다음과 같이 검토된다.
동품정유성의 검토: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는 것도 아닌 별도의 식체’(= 제7, 8식)를 필요로 하는 것(同品) 중에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는 것이 있는가? → 없다(無).
이품변무성의 검토: ‘설신의식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는 것도 아닌 별도의 식체’(= 제7, 8식)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것(異品) 중에 삼육문 중의 삼식에 포함되는 것이 있는가? → 있다(有): 설신의식
이는 동품무, 이품유의 상위인이다. 元曉가 제팔식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논증식은 소승의 견지에서 볼 때 이렇게 법차별상위인의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필자의 이런 분석은 <判比量論> 제9절에 대한 필자의 교정본에 의거한 것으로 앞으로 새로운 판본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교정본이 만들어질 경우 이와 다른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 pp.239-247(지식산업사, 2003년 간, 절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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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에 실린 설명입니다. <판비량론>은 난해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명학의 오류론'의 용어와 논법에 통달하고 있어야 하고, 그런 오류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초 지식에 대한 공부와 철저한 훈련 없이 <판비량론>을 이해하려고 도전할 경우 세월만 낭비하게 되고 몸만 상합니다. (실제로 <판비량론> 이해하려고 도전했다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고생한 분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국 제대로 이해도 못했고요.)
질문에서 "원효의 추론식은 난해합니다.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셨는데, 이는 질문하신 분께서 스스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위에 인용한 그에 대한 설명 이상으로, 전문용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풀이해 가면서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겁니다.
탄허 스님께서는 '선 수행을 하면 자고심(自高心)이 생기고, 교학을 공부하면 자굴심(自屈心)이 생긴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즉, 선수행을 하다 보면 곧바로 어떤 경지에 오른 것으로 자만하거나 착각하기에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 생기고, 불교 교학을 공부하게 되면, 고전어 공부와 불교 교리 전반에 대한 정확한 이해 등등이 너무나 힘들기에 '스스로 못났다고 낮추게 되는 자기 비하의 마음(자굴심)'이 생기기 쉽다는 뜻입니다.
선 수행의 경우 내가 체득한 경지와 남이 체득한 경지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체험이 있을 경우 자신이 깨달았다고 착각하고서 잘난 체 하기 쉽습니다. 즉, 자신이 깨달았다고 남을 속여서 존경이나 재물과 같은 이득을 얻고 교만의 악업을 짓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교 교학 공부는 정직합니다. 내가 공부한 시간, 내가 불교의 특정 교리에 대해서 깊이 사유한 시간에 그대로 비례하여 실력이 늘어납니다. 자로 재듯이, 누군가의 교학 공부의 수준을 가늠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교학 공부에 뜻을 두셨다면, 불교 고전어 공부, 불교 기초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 내가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의 교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위해 온 시간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하루 중 몇 시간을 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불교 공부는 하루 종일 하는 겁니다. 잠자리에 들 때도 교학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잠에 들고, 밥을 먹을 때든 걸어갈 때든 내가 풀지 못한 교학의 문제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시간만 나면 경을 보고, 논을 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평생을 하루 종일 불교 공부하면서, 틈틈이 밥 먹고 세수하고 잠잔다는 마음으로 교학 공부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교학의 수준에 맞추어서, 내가 읽을 책을 선정하시기 바랍니다. <판비량론>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인식논리학 이론에 대해서 통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이상과 같은 점 참조하시어 교학 공부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높은 곳을 보지 마시고, 바로 내 코 앞을 보면서 공부하실 경우 소득이 있습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원효의 <판비량론> 관련한 질문2에 대한 답변2에서, 제가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였는데, 다시 검토해 보니 질문과 무관한 뒷 부분까지 너무 많이 복사되어 있기에, '인용한 부분' 가운데 불필요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이 댓글을 쓰기 전에 위의 답글을 읽은 분들께서는 이 점을 참조하여 <판비량론> 관련한 저의 답변을 다시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